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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화 〉[3권] 90회 - 안전한 고립 (90/188)



〈 90화 〉[3권] 90회 - 안전한 고립

여하튼 그들은 누가 먼저 밑으로 내려갈지 뽑아야 했다.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데 레스가 먼저 운을 띄웠다.

“톤토 씨하고 너. 그리고 샤키가 먼저 내려가.”


피카니가 말을 받았다.


“상관없지만 특별한 이유 있어?”


“네가 방금 전화로 정중히 모실 사람들이 곧 내려갈 거라고 했잖아. 피카니 조슈아 홀리데이가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톤토하고 샤키를 빌려 간다고 해봐.”

잠깐 생각해보고 피카니는 살짝 감탄하며 입술을 오므렸다.


“나쁘지 않아. 이게 이렇게 연계가 되네.”

본인도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명성을 이용할 때라고 확신했다.


“애초에 우리는 이 두 사람을 꺼내러 여기 온 거잖아.”

그때 샤카자이아가 레스의 앞을 가로막으며 일행들에게 말했다.


“레스 없이는 안 가.”

“샤키. 의리는 고마운데 지금은 내  좀 들어줄래.”

“아직 금발 머리를 못 믿겠어.”

아무래도 결판이 쉽게  날  같으니 레오포드하고 톤토, 늑대는 바닥에 쪼그려 실랑이를 얌전히 지켜보았다. 피카니도 의견을 냈다.

“다른  제쳐두고  어쩔 생각이야?”


“나? 나야 뭐….”


레스는 자신의 오른손을 남의 물건처럼 성의 없이 허공에 흔들어댔다.


“그냥 여기 숨어있든가 해야지. 날 무리해서 데리고 나가려 해봐야  쓸모가 없어.”


피카니가 혀를 끌끌 차다가 살짝 농담조가 섞인 투로 말했다.

“다른 때면 미련 없이 버려두고 갈 텐데 그랬다간 전하가  죽이겠지. 좀  생각해보자.”

“시간이. 없어.”

샤카자이아가 다시 끼어들었다.

“난 못 가.”

“내가 애원하는 꼴을 봐야겠어?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몸이 성하고 제대로 싸울 사람은 너밖에 없어. 아자리하고 단테에게는 네가 필요해. 난 오늘 충분히 굴렀으니 이제 쉴게.”

그녀는 째려보는 것으로 대답했다. 새벽이 지나가도 꺾이지 않겠다는 눈이었다. 늑대를 쓰다듬어주며 기다리던 레오포드가 결국 참견하기로 했다.


“제안할  있네만.”

일행들의 주목이 자신에게 쏠리자 그가 말을 이었다.


“닥 홀리데이가 플러머한테서 사람을 빌려 간다는 내용으로 연극을 할거라면 나하고 톤토만 데려가는 게 훨씬 자연스러울 거야.”

모두 같은 마음으로 같은 생각을 했다. 피카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난 샤키를 데려갈 이유가 없어! 그리고 연방 보안관도 샤키를 나한테 빌려주지 않을 거야. 하지만 여기 있는 두 사람과 한 마리는 언제 누가 빌려가도 이상하지가 않지.”

톤토가 말했다.

“얘기 끝난 건가?”


피카니가 승강기 버튼을 누르자 바로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갔다. 레스가 눈을 게슴츠레 뜨면서 그들에게 넌지시 물었다.

“나하고 샤키의 의견은 안 들어?”

샤카자이아가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대신 대답했다.


“반대 안 함.”

레오포드가 늑대에게 안으로 들어오라며 손짓하자 늑대가 조심스레 발을 디디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쇠로  무언가가 휘어지고 늘어나는 불안한 소리가 승강기 안으로 울리기는 했으나 정원에서 한 마리 정도는 추가해도 괜찮은 모양이다. 피카니가 버튼을 누르며 외쳤다.


“그 녀석 좀  돌봐줘!”


승강기 문이 닫히자 목소리는 작은 메아리가 되어 묘한 여운이 그곳에 남았다. 레스가 멍하니 있는데 샤카자이아가 투덜거렸다.

“저놈은 날 샤키라고 부르면 안 되는데.”

“지금 그거 따질 때야?! 온종일 너 찾아다니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어디서 그런 기운이 솟아나는지 신기할 정도로 우렁찼다. 샤카자이아는 노골적으로 흘려넘기면서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자아. 착하다 착해.”

“일 벌여놓고 은근슬쩍 넘어가기냐.”

“남 말 할 처지?”

“...”


더 다퉈봐야 부질없겠지. 레스는 그렇게 말싸움에서 진 것을 속으로 변명하며 어디론가 향하는 샤카자이아를 따라갔다. 따져보면 레오포드가 제안했을 때 그 자리에서 제대로 반대하지 못한 자기 잘못도 있었으니.

샤카자이아는 쓸만한  찾아다니려는지 복도로 돌아와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녀가 문을 열고 전시실로 들어가자마자 벽에 걸려있는 두개골들을 보고는 화들짝 놀랬다.


“왜 해골을 저렇게 모아둔 거냐?”

“장례 치러준 거겠지. 부.. 분명 그럴 거야.”


레스는 애써 둘러댔다. 자기가 봐도 역겨운데 굳이 진실을 말해줬다간 충격을 받을 게 뻔했다. 샤카자이아는 분위기로 그의 의도를 눈치채고 캐묻진 않았다.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며 플러머의 수집품을 구경하는데 레스가 원주민들의 공예품에 눈길이 끌렸다. 버드나무 가지로 만들어진 원형 테두리에 실이 거미줄처럼 섬세하게 얽혔고 구슬과 깃털로 장식되어 있었다.


“저 거미줄 같은 건 뭐야?”


“‘바야지베 나가완’. 꿈 덫이야.”


“꿈 덫?”

“잘  머리 위에 걸어두는 거야. 우리가 악몽을 꾸려고 하면 꿈 덫이 그걸 막아주고 이슬로 변해서 아침 햇살과 사라지지. 오래전에 ‘아시비카시’라는 거미처럼 생긴 여인이 만들어주는 법을 알려줬대.”

레스는 가볍게 감탄을 해줬다.


“하지만 저번에 네 집에 들렀을  이런   봤던 거 같은데.”


“말했잖아. 난 손재주가 없다고….”

본인은 그 사실이 신경 쓰였는지 말투가 조금 토라져 있었다. 도중에 샤카자이아는 근처에 걸려있는 활을 보았다. 자신이 원래 갖고 있던 활보다는 작고 가벼운 것이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고는 그녀가 말했다.


“혹시 근처에 화살은 없는지 찾아주겠는가?  그래도 나중에 작은 활도 만들어볼까 생각했는데 이거라면 쓸만하겠어. 그  많던 와시추(백인)가 물건 보는 눈은 있군.”

레스가 바로 옆에 있는 창고 쪽을 들여다보았다.

“아마 여기에 있을 거 같아.”

“그러고 보니 너의 총은 어디 있는가?”


“애들한테 맡겨 놨어. 네 활하고 장비들도 그렇고.”


샤카자이아는 쐐기를 맨손으로 간단하게 뜯어버리고 벽에 고정되어있던 활을 집었다. 시험 삼아 시위를  번 당겨보니 생각 이상으로 손에 잘 맞았다. 창고를 뒤적이던 레스가 돌아왔다.

“이거라면 거기에 쓸 수 있을까?”

그가 들고 있는 화살집에서 화살을 하나 꺼내 샤카자이아에게 던졌다. 그걸 받은 샤카자이아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촉이 흑요석이잖아! 깃털은 참수리의 꽁지깃이고! 이런 화살은 제사 지낼 때나 쓰는 건데!”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나한테는 돈을 무기로 쓰는 거나 마찬가지다. 흑요석은 쇠보다 가벼운 데다 훨씬 날카로워. 내가 쓰면 곰 가죽도 뚫을 거다.”


“그럼 저기 한가득 쌓여있던데 내가  들어줄까?”

그때 레스는 샤카자이아가 처음으로 욕심을 내고 침을 꿀꺽 삼키는 모습을 보았다. 이내 그녀는 고개를 이리저리 저었다.

“가자. 몸도 안 좋은 사람한테 그럴 순 없지.”


그녀는 반대편 벽에 걸려있던 고풍스러운 단도도 칼집째로 챙겨서 혁대에 꽂아두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샤카자이아는 레스에게 눈짓을 보내고 같이 승강기로 향했다. 기분이 좋은지 지금 처한 상황도 잊은 듯 발걸음이 가뿐해 보였다.

좋은  좋은 거지. 레스는 그리 받아들이면서 버튼을 누르려다 멈칫거렸다.

“아래층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어쩌지?”

“금발 머리하고 ‘개안내타하 들로오’씨도 밑으로 내려갔는데.”


“누구?”

“아. 레오포드 씨.”


“그쪽은 금발 머리가 있어서 지나갈  있지만 우리는 갇혀있어야 하잖아.”

샤카자이아는 하관에 손을 대고 갸우뚱 고개를 기울였다.


“어쩌지?”


레스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앓는 신음을 내며 벽에 등을 대었다. 그녀는 쪼르르 다가가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다.


“팔하고 손은 어떤가?”


“가려운데 긁을 정도는 되는데 아직도 욱신거려.”

“얼마나 여기까지 있어야 할까? 아침?”


“아자리가 사람들 데리고 도와주러 오기로 했어. 시간은  정해놨지만.”


샤카자이아가 흐응하고 목 안으로 소리를 냈다.

“아주 대책 없이  건 아니었던가.”

“어쨌든 난 쉴래. 이렇게 하루가 길어보기도 오랜만이야... 너도 이럴 때 숨 좀 돌려놔.”

“갇혀있는 동안 여태껏  했다고 생각하는가.”


레스가 할 말을 잃어버리자 샤카자이아가 이어서 말했다.


“내가 잡혀간 뒤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다오.”


“엄청 길어.”

“어차피 할 일도 없잖아.”

그건 그랬다.


“그럼 너희들하고 숙소에서 헤어졌을 때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5분 경과.


“제페토 씨하고 절묘하게도 마주쳤군.”

“나중에 안 건데 판돈에 제한이 없는 몇 안 되는 곳이었다고 그러네.”


“그럼 우리 계획은 마차가 완성될 3일까지 여기 안에서 이리저리 도망치는 건가?”

“모르겠어. 어쩌면 단테랑은 헤어져야할지도 몰라.”

그녀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이제 좀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만나고. 헤어지고. 모험에는 일상이야. 지금 사태는 모험의 범주를 한참 벗어났다만.”


“그래서 결투장에 들어가고 어떻게 됐어?”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고 5분 경과.

“결투는 여러번 해봤지만 그때처럼 간담이 서늘해지기는 오랜만이었지.”


“총알을 튕겨냈다고?”


“그래 못 믿겠지.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으니.”


“딱히 그런 뜻으로 한 소린 아니다.”

“어. 그래.”


“그건 그렇고 시간이 꽤 지났는데 슬슬 내려가도 괜찮지 않겠나?”

“확실히 밑에서 무슨 일이 있었으면 지금쯤 사람이 올라올 법도 한데. 저쪽은 무사한가보다. 그래도 아무도 없는지 알 방법이...”


레스가 말을 끝내기 전에 샤카자이아가 허리춤에서 단도를 뽑았다. 그녀는 칼을 역수로 고쳐쥐고 마룻바닥에 냅다 꽂아버렸다. 쇠망치로 때린듯 손잡이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깊숙히 박혔다. 샤카자이아가 바닥에 바짝 엎드린다음 귀에 양손을 모아서 단도에 가까이 대었다. 레스는 숨을 죽이고 얌전히 기다렸다. 한참을 귀에 신경을 집중하다가 샤카자이아가 말했다.

“아무것도 안 들려.”

“확신해?”

“슈슈니의 명예를 걸고.”

“그렇게 편리한 기술이 있었으면 진즉에 하지?”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툭툭 털었다. 샤카자이아가 단도를 다시 칼집에 꽂으며 대답했다.

“나도 방금 떠올랐다. 원래는 평지에서 먼곳에 있는 상대를 감지할 때 쓰는 거다.”


‘앤 똑똑하긴 똑똑한데 항상 어딘가가 어설퍼.’ 그렇게 생각하며 레스는 버튼을 눌렀다. 두 사람은 승강기 안으로 들어갔다. 샤카자이아는 밀폐된 공간이 무척 불편한 눈치였는데 승강기가 움직이자 진동을 느끼고 질겁했다.


“히끅!”


“내려갑니다.”

 승강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그녀가 장담한대로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과연 공무원들이었다. 바깥으로 나오면서 레스가 말했다.

“오는 길에 과자랑 음료가 비치된  봤어. 이쪽이야.”

“와시추는 어떻게 저런 걸 매번 타고 다니지? 속이 울렁거려.”

엘리베이터 멀미에 시달리며 두 야만인은 계속 걸어갔다.


“여하튼. 계속 신경 쓰였던 건데 그 늑대 이름이 어쨌길래 이상하다고 한 거야?”

“‘슌카와칸’말이지. 큰 개.”

“뭐라고?”


“슌카와칸은 커다란 개라는 뜻이야.”


레스가 왼손을 허리에 대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혹시 멍멍이나 야옹이 같은 애칭은 아니고?”

“우리는 동물들을 그런 식으로 부르지 않아. 적어도 우리 부족은.”

“그 사람 취향 참.”

사치가 흐르는 복도를 지나 휴게실에 닿았다. 과자들은 눅눅했고 음료는 찬물과 홍차 티백 밖에 없었다. 아까 식사를 했지만 양이 한참 모자랐던 샤카자이아는 쿠키를 2개씩 집어서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그녀가 씹던 걸 삼키고 차를 마시고 있는 레스에게 물었다.

“하던 얘기로 돌아와서. 파스낙이라는 놈한테 초대장을 받고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됐더라.”

 이야기를 시작하고 5분 경과.

“그 현상금 사냥꾼의 바지는  벗긴 건가?”


“독한 놈들은 무기를 뺏어버리거나 때려도 이 악물고 계속 달려들기도 하거든. 그런데 내 경험상 바지가 벗겨진 채로 싸우는 놈은 하나도 없었어.”


샤카자이아는  같은 놈이 다른 사람 이름 짓는 취향에 참견할 처지냐고 말하고 싶었다.


“그게 말이 되는... 음. 생각해보니 그럴싸한데.”


“나한테 시험해보지는 마.”


“그건 그렇고. 우리는 계속 기다리는 게 좋겠지?”

“하늘이라도 날  있는 게 아니면 다른 방법이 없어.”


“다음 부분 말해줘.”

“그 다음? 아, 영화관으로 들어갔을 때구나.”


레스는 영화관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대략적으로 설명해줬다. 파스낙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피카니하고 어떻게 다시 손을 잡게 됐는지, 루나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 파스낙이라는 놈 정말 저질이군.  자식만 때려눕히면 다 해결할 수 있는 건가?”

“우린 그녀석 머리에 든 게 필요해.”


샤카자이아가 손마디를 우드득거렸다. 레스가 물끄러미보다가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도중에 그는 생각이 다른 쪽으로 흘렀다.

“갑자기 생각난건데  여기 부족 사람들 말은 어떻게 알아듣는거야?”

“무슨 소리냐.”

“여기 부족하고 너네 부족은 종족이 다르잖아. 하는 말도 달라야하는  아냐? 아자리하고 루나 씨도 너희들이 엘프 말을 쓴다고 했고. 여기 사람들은 인간인데.”

“나도 여기 부족 사람들하고 대화는 못 해. 하지만 어휘나 어감은 겹치는 점이 많아. 간단한 단어는 감으로 알아들을 수 있어.”

“과연.”


출신과 인종이 달라도 사는 곳이 가까워지면 쓰는 언어가 닮아가는 일은 드물지 않다. 열강들이 국경을 세우기 전에는 슈슈니와 이쪽 땅에 있는 부족들끼리 교류하는 일도 잦았을 것이다.


“아무튼 영화관 자체는 재밌는 경험이었어. 주인공이 그놈인게 흠이었지만. 팝콘도 맛있었고.”

“나 원래 옥수수 튀김 좋아하는데... 사탕을 씌웠다니 침 고이는데.”


그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씁쓸히 중얼거렸다.


“언젠가 우리들끼리 마음 놓고 놀러갈 날이 있으면 좋겠다.”

샤카자이아는 잠깐 뜸을 들이고 애써 화제를 돌렸다.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해줘.”

“맞아. 그 양반을 빼놓으면  되지.”

 또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고 5분 경과. 얌전히 레스의 말에 귀만 기울였던 샤카자이아가 입을 열었다.

“파스낙이 그렇게나 쌔?”

“앞뒤  가리고 죽일 생각으로 날뛰었으면 그때 우리 셋이 다 합쳐도  이겼어.”


“용케도 결투로 쫓아냈군.”

“운좋게 꼼수가 먹혔지. 그 이상한 전차장이 도와주기도 했고.”

“대체  사람은 정체가 뭔가?  머리에 빨간 눈? 마치 어머니가 옛날 이야기로 들려주시던 윈디고 같군.”


“윈디고?”


“악령말이다. 저주받은 존재.”

레스는 그 말을 듣고 여태껏 샤카자이아에게 두었던 시선을 뜬금없이 다른 곳으로 돌리고 불현 듯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에 감정이 숨김없이 드러나있긴한데 읽을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건지 그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저주받았는지는 모르겠고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 또 만나는 건 사절이다만.”


“난 만나보고 싶은데.”

레스는 뒷목을 벅벅 긁으면서 길고도 긴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했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서 단테하고 윈프리 씨랑 합류했고. 다들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레오포드 씨가 나타났지.”


“그리고?”


작은 부분이라도 소홀히 넘어갔다간 이야기가 더 복잡해지기 때문에 레스는 한참 시간을 들여서 자기가 들은 대로 고스란히 전했다. 레오포드가 어떤 사람인지. 그가 어떤 처지에 있으며 어떤 이유로 자신들에게 왔는지. 그리고 어떤 결론으로 자신들이 여기까지 왔는지까지.

“할 말은 이게 다야. 어우  아프네.”


“레오포드 씨가 만사의 핵심이구나. 날 붙잡고 여기로 데려왔다는게 그런 뜻이었나.”


“그 소식 들었을 때 우리 심정이 어땠을지 절대 상상 못할 걸.”


어느새 휴게실에 있던 주전부리들이 동났다. 두 사람은 푹신한 의자에 몸을 파묻고 잠시 적막을 누렸다. 말없이 같이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관계. 이런게 친구구나. 레스는 괜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역시 아무 말도 안 하면 심심했다.


“샤키.”


“뭐냐.”


“톤토가 널 보자마자 마토아카라고 소리쳤잖아. 그거 무슨 의미야?”

“아. 우리 엄마 이름.”

불편하지 않았던 적막에 갑자기 폭풍 직전의 전야 같은 공기가 흘렀다. 레스가 눈을 부릅뜨고는 몸을 그녀쪽으로 내밀면서 소리를 질렀다.


“뭐?!!!”


그녀는 담백하게 받아쳤다.

“왜 소리 지르는가.”


“네 어머니하고 아는 사람들이었다고?! 그걸 알고도 여기에 남았어?!”


“내가 가면 넌 누가 지켜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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