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6화 〉[3권] 96회 - 땅에서 하늘까지 (96/188)



〈 96화 〉[3권] 96회 - 땅에서 하늘까지

파스낙은 반사적으로 막았다. 화살은 방어막에 간단히 막혔으나 샤카자이아가 화살을 따라잡을 기세로 그에게 달려왔다. 파스낙은 자기 코앞까지 다가온 주먹과 쩍쩍 갈라진 방어막을 보고 동공이 흔들렸다.

“워….”

그가 마법을 쓰려고 했으나 샤카자이아의 발길질이  빨랐다. 방어막이 깨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면서 파스낙은 나무들을 부수며 한참을 날아갔다. 그녀는 상대가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확인하고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갔다 오겠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눈짓을 한 번 보내고 어둠 속으로 사라진 상대를 쫓아갔다. 아자리는 겨우 현실감각을 되찾고 지팡이에 기대어 일어났다.


“언니!”

레스가 아자리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아자리. 내가 너한테  물어볼 건데, 신중하게 생각하고 대답해. 우리가 저놈하고 싸워서 이길 수 있겠어?”

그녀는 지레 겁먹고 고개를 저었다.

“계속 싸울지 제가 결정하라고요?! 그런 거 못 해요!”

레스는 아자리의 눈을 똑바로 보며 꾸준히 다독이는 투로 말했다.

“마법사는 너잖아. 어렵게 받아들이지 마. 그리고 여태껏 무거운 거 들고 다니느라 수고했어.”

“무거운 거? 아.”


그제야 아자리는 자기 몸에 레스의 무기들이 매여있던  알았다. 싸우느라 정신이 없어서 자기 몸이  이리 무거운지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레스가 무기를 돌려받고 몸에 두르는 모습을 보니 아자리는 잊었던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자신은 혼자가 아니었다. 파스낙이 수많은 악몽을 보여줬어도 눈앞에 있는 진실에 견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온몸이 따듯해졌다. 맑아진 머리로 재빠르게 판단했다.

“쿠드라크는 약점이 있어요. 그 녀석이 유난히 단 거에 집착하던 거 기억해요?”

“기억하지. 카라멜 팝콘을 순식간에 비우던데.”

“입으로 주문을 읊지 않고 마법을 부리면 연비가 나빠요. 더 빠르고 편하지만 체력 소모가 심신 양면으로 몇 배는 들죠. 파스낙은 숙련도가 대단한 마법사라 정신적인 면은 감당 할 수 있겠지만….”

“몸뚱이는 아니군.”


아자리는 그제야 그들에게도 기회가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래서 쿠드라크는 만성적으로 혈당 부족에 시달려요. 신체 능력도 평범한 인간보다 약간 뛰어난 수준이고요. 방금 파스낙은 저한테 수준 높은 마법을 쓰려다가 실패했어요. 계속 몰아치면 승부를 내거나 쫓아낼 수 있을 거예요!”

파스낙과 샤카자이아가 사라진 방향으로부터 소란이 났다. 소리가 마치 전쟁터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기 얼굴을 찰싹 때리고 눈을 부릅떴다.

“좋아.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끝내죠!”

“찬물 끼얹긴 싫은데  좀 봐줄래? 손이… 말을 안 들어.”


레스의 기어가는 목소리를 듣고 아자리는 고개를 돌렸다. 레스의 오른손이 허공에 어중간히 들린  덜덜 떨기만 하고 꿈쩍도  했다. 여태껏 레스는 자기한테 별일 없었던 거처럼 애를 썼으나 지금 한계가 와서 얼굴이 고통으로 가득하였다. 아자리는 마법을 써가며 그의 몸을 살피고는 자기 입에서 나오려는 비명을 손으로 막았다.


“세상에. 당신 지금 죽어가고 있어!”

레스는 자기 오른손만 왼손으로 묵묵히 가리켰다.




파스낙은 몸에 묻은 부스러기들을 털어내면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그가 날아온 곳을 따라 길쭉한 구덩이가 패어 있었다. 어둠 너머로는 아무 기척도 보이거나 들리지 않았으나 혼자가 아니라는  확실했다. 그가 짜증이 가득한 투로 중얼거렸다.

“바퀴벌레 같은 놈들. 죽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고 포기도 안 하고. 하나를 잡으려고 하면 둘이 튀어나와. 잡았다 싶으면 날아다녀. 게다가 생긴 것도 시커멓지!”

숨어있던 샤카자이아는 뭐라 말하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화살집에서 화살을 여럿 꺼내고 시위에 비스듬히 걸어서  준비를 했다. 마법사와 싸우는  처음이지만 괜히 겁먹을 필요 없었다. 손에 힘을 주면서 샤카자이아는 중얼거렸다.

“레스가 해냈다면 나도  수 있어.”

파스낙은 칼을 휘둘러 날라온 화살을 쳐냈다. 그가 굵게 외쳤다.

“의미 없어!”


휘두른 칼을 땅에 꽂아버리자 지진이 일어나고 벼락이 내리쳤다. 화살이 날아온 방향의 숲이 불에 타고 쓰러졌다. 파스낙은 박살 난 숲을 자세히 살폈으나 거기에 샤카자이아는 없었다.

“뭐야?”

어떻게 피한 건지 정중하게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파스낙은 당황했다. 공격이 또 날아왔다. 화살 하나는 왼쪽에서, 다른 화살은 오른쪽에서, 어떤 화살은 위쪽에서 왔다. 시간 차이만 조금 있을  궁수 여럿이 자신을 둘러싸고 다 같이 쏘는  같았다. 파스낙은 사방에서 오는 화살을 피하고 막아내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묵었던 지식을 떠올려냈다.


“아하. 화살 휘어 쏘기로군. 실전에서 쓰는 걸 볼 줄이야. 분명 기마 민족 사이에서 전승되는 기술인데 어떻게 저 녀석이 쓰고 있지?”

그는 자기 입으로 말해놓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헛웃음을 냈다. 공격이 멎자 파스낙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고쳐잡았다.


“다크 엘프하고도 여러 번 싸워봤었지. 넌 소질이 탁월해. 전에 싸워본 놈들하고도 충분히 견줄만해. 아는 사람 중에 소드마스터가 있는데 만나볼 생각 없어? 체력은 받쳐주니 기술만 배우면 도망친 내 부하만큼은 될 거야.”


“나의 스승은 자연이다.”

샤카자이아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하고는 전혀 엉뚱한 방향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몸을 틀어서 피하고 그가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아자리아는 복도 많지. 좋은 친구들을 뒀어.”

파스낙은 지팡이에 칼을 도로 꽂고 한 손을 위로 쳐들었다. 주변의 중력이 뒤집혀 그를 제외한 모든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너도  밑으로 오게  거다!”


그의 눈에 초록색 섬광이 번쩍이고 파스낙이 주먹을 움켜쥐자 중력이 되돌아왔다. 모래알부터 사람만  바위하고 통나무까지 한꺼번에 땅으로 처박히는 소리가 공원 바깥까지 울려 퍼졌다. 나무에 붙어있던 나뭇잎은 모두 낙엽이 됐고 샤카자이아는 떨어진 충격으로 땅에 몸이 살짝 박혀있었다.

더 숨어다닐 어둠이 없었기에 그녀는 달려들었다. 파스낙은  흐르듯 손을 그녀에게 향했다. 보이지 않는 힘에 맞아 샤카자이아가 가로등이 세워져 있는 산책로까지 날아갔다. 도중에 나무  그루가 부서졌다.


“윽!”


그녀는 가로등을 붙잡고 일어나 몸을 추슬렀다. 목에서 피리 소리가 났다.


“조금 띄워줬다고 신났지? 애송이!”

가볍게 날아서 근처로 다가온 파스낙은 샤카자이아가 뿌리째 뽑아서 휘두른 가로등에 맞고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만월 밤에는 모든 마족이 강해진다. 애꿎은 나무들이 불쌍하게 또 부서졌다. 그가 숨돌리기도 전에 샤카자이아는 이마에 핏대를 세우고 바람처럼 다가왔다.


가로등에 맞은 충격으로 잠깐 넋이 나갔던 파스낙은 자기 앞에 있는 그녀를 보고 퍼뜩 정신이 들었다. 샤카자이아가 금이 쩍쩍 갈라진 방어막 사이에 손가락을 밀어 넣고 양옆으로 찢어버렸다. 그녀가 힘을 더할 때마다 암벽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뭣.”


요즘 온갖 일을 당하고 봐왔던 파스낙이지만 지금보다 등골이 서늘해진 적은 없었다. 이를 악물고  뼘씩 다가오는 샤카자이아는 사람이 아니라 일종의 재앙으로 느껴졌다. 기어코 방어막이 완전히 부서졌다. 방어막이 부서지기 전에 파스낙은 공중으로 날아올랐으나 이번에는 그녀가 제자리 뛰기로 펄쩍 올라와 그의 발목을 잡아서 땅으로 매쳤다.


자기 입에 들어간 흙을 퉤 뱉고 파스낙이 앞으로 엎어진 채 한탄했다.


“아나 진짜….”

그녀가 파스낙을 찍어 누르고 그의 온몸에 팔다리를 휘감았다.

“이제 네가 누구 밑에 있는지 말해 보시지!”

여태껏  마디 해주고 싶어서 꾹 참았던 샤카자이아는 겨우 직성이 풀렸다. 파스낙은 목을 졸리면서 점점 의식이 희미해졌다. 그 와중에도 손에서 자신의 지팡이는 놓지 않았다. 샤카자이아의 품속에서 파닥거리는 생명이 그녀에게 온몸으로 전해졌다.

아자리하고 레스는 겨우 그들을 따라잡았다. 저들이 워낙 이곳저곳에서 날뛰느라 쫓아가기에도 벅찼다. 레스는 파스낙이 단단히 잡혀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샤키가 이기고 있잖아?”


같이 뛰어가면서 아자리가 말했다.

“마법사로서는 다른 마법사보다 오히려 언니처럼 날쌔고 겁 없는 사람이 더 상대하기 까다로워요. 생소하니까요. 일방적으로 공격할  있으면 모를까 거리가 가까우면 얘기가 다르죠.”

“특히 상대가 샤키라면 그렇겠지.”

“실전에서 승부를 결정 짓는 건 변수에 달렸다고 녀석이 말하더군요. 자기 몸으로 직접 보여주다니 참 스승일세. 저였으면 괜히 언니를 상대하느니 자존심 접고 그냥 피했을걸요.”

가는 길에 있는 무수히 파괴된 흔적을 보면서 아자리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편이라 정말 다행이야.”


“잠깐만. 뭔가 이상해요.”

“왜?”

아자리가 그의 옷깃을 잡고 멈춰 세웠다. 그녀도  그랬는지 몰랐다. 곧 두 사람은 이유를 알았다. 깊은 곳에서부터 하늘까지 닿을 만큼 큰 소리가 울리고 주변의 땅에 금이 갔다.


파스낙은 발상을 뒤집었다. 몸싸움으로 이길 수 없다면 그냥 땅을 통째로 움직이면 되지 않을까? 한시가 급했던 파스낙은 앞뒤 가리지 않고 당장 생각을 실천했다. 그는 중력을 뒤집고 자신이 낼 수 있는 한계까지 힘을 끌어모았다. 샤카자이아는 발밑이 격하게 흔들리는 바람에 놀라서 순간 몸에서 힘이 빠졌다. 그는 팔꿈치로 그녀의 옆구리를 때리고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이내 몸싸움을 벌이는 두 사람 주변 일대가 뭉텅이로 하늘을 향해 떠올랐다. 흙먼지와 돌 부스러기로 이루어진 구름이 가라앉고 나서야 뭐가 일어난 건지 두 사람은 알았다.

“저게 뭐야?!”

레스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땅덩어리를 보고 경악했다. 저대로 호수에 떨어지면 땅덩어리는 인공섬으로 즉각 완공될 만큼 컸다. 샤카자이아와 파스낙이 있던 장소에는 각도기로 잰 듯 정확하게 그어진 거대한 원형 구덩이만 남아있었다. 아자리는 또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레스? 혹시 당신도 저거 보여요? 저 지금 또 환각이 보이는 거 같은데.”

“우리  다 미쳤거나 우리 둘만 정상이거나. 가서 도와줄 수 있겠어?”

말하지 않아도 아자리는 지팡이에 올라타서 날아가려 했으나 노력만 가상했다. 레스의 머리도 못 넘었다. 급한 마음에 그녀는 답답해서 타고 있는 지팡이에 따귀까지 때려댔다.

땅덩어리는 끝을 모르고 계속 떠올랐다. 이제는 건물 10층 높이였다. 그리고 파스낙과 샤카자이아가 그 한복판에서 아직도 난투를 벌였다. 파스낙이 자기한테 다시 엉겨 붙으려는 그녀를 구둣발로 밀어버리고 지팡이를 천천히 휘둘렀다. 측량사가 도구를 다루듯 동작이 깍듯했다.

“저리 꺼져 찰거머리야!”


땅덩어리가 45도로 기울어지자 샤카자이아는 아래쪽으로 굴렀다.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으나 그녀는 허리춤에서 단도를 뽑아 땅에 박아서 버텼다. 몸을 가눌 수 있을 만큼 균형 감각이 돌아오자마자 샤카자이아는 위쪽으로 뛰었다. 파스낙이 그녀를 향해 불덩어리를 한 다발 쏟아내자 그녀는 네발 달린 동물처럼 땅을 박차면서 모조리 피했다. 인제 와서 놀랍지도 않았다. 파스낙은 땅을 걷어차고 수직으로 뛰어서 종이  장 차이로 죽음의 손아귀로부터 달아났다.

땅이 90도로 기울어졌다. 오늘 밤 도시의 하늘에 기묘한 것이 참 많이도 보였다. 샤카자이아는  손을 땅에 박고 매달렸다. 바로 근처를 날고 있는 파스낙은 호흡을 가다듬고 팔을 앞으로 뻗어서 아래쪽으로 향했다. 뒤집혔던 중력이 돌아오자 땅이 원래 자리로 돌아갈 조짐이 일었다. 땅덩어리와 함께 그녀를 밑으로 처박을 생각이었는데 파스낙은 갑자기 저항을 느껴서 밑을 보았다.

아자리가 양손으로 지팡이를 쥐고 이쪽을 겨누고 있었다. 이젠 아자리가 땅덩어리를 위로 들어 올리고 있다. 레스도 왼손으로 권총을 들고 쏘았다. 친구들이 파스낙의 시선을 끌어주는 동안 샤카자이아는 화살집에 남아있던 마지막 화살을 집어서 입에 물었다. 다른 화살은 몸싸움 중에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어깨에 걸쳐둔 활을 다시 쥐고 물고 있던 화살도 손으로 옮겼다. 그녀는 화살을 쥔 손으로 시위를 잡고 발로 활을 밀었다. 파스낙은 신경 쓸 게 많아서 자기가 사정거리 안에 있다는 걸 몰랐다. 그리고 활에 겨눠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해서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마지막 화살이 바람을 찢으며 파스낙의 가슴에 박혔다. 활은 밑으로 떨어졌다. 물론 파스낙은 방탄 직조된 외투를 입고 있었으나 흑요석 화살촉은 그것을 간단히 뚫었다. 방탄 직조는 총알의 회전력을 멈춰서 공격을 막기 때문에 직선으로 날라오는 날붙이나 화살을 상대로는 큰 의미가 없다.


“제기랄!”


화살을 맞고도 파스낙은 용케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맞은 곳을 부여잡으며 공중에서 버둥거리자 땅덩어리도 세차게 흔들렸다. 샤카자이아는 반동을 이용해서 상대를 향해 뛰었다. 표범은 사냥할 때 막 날아오르는 새도 낚아챌  있다고 한다. 지금의 모습이 딱 그러했다.

추락한다. 거대한 것과 작은 것 둘 다. 아자리는 여태껏 들고 있던 땅덩어리를 조용히 내려놓으려고 했으나 힘이 부쳤다. 레스는 아자리를 데리고 서둘러 최대한 멀리 몸을 던졌다. 땅과 땅이 만나자 공원에 남아있는 나무가 모조리 흔들리고 몇 구역 바깥에 있는 건물의 유리창까지 흔들렸다. 그는 그녀를 감쌌고 그녀도 그를 지켰다. 레스와 아자리가 웅크리는 곳을 제외하고는 주변의 모든 땅이 갈아엎어졌다.

“쿨럭….”


자기 팔이 부러졌던 것도 잊고 아자리를 감싸는 바람에 레스는 바보처럼 한 박자 늦게 통증을 느꼈다. 아자리도 졸였던 숨을 다시 쉬었다.


“콜록! 레스? 괜찮아요?”

“샤키부터 찾아야 해.”

아자리는 양손으로 그의 몸을 붙잡고 낑낑거리며 일으켜줬다. 둘은 아직도 가라앉질 않는 먼지구름을 헤쳐나가며 주위를 살폈다. 곧 먼 곳에서 싸우는 기척이 들려왔다. 아자리가 말했다.

“맙소사 아직도 싸우고 있어요!”

레스는 그녀가 가리킨 곳을 보았다. 샤카자이아와 파스낙이 엎치락뒤치락 엉켜서 땅을 구르고 있다. 파스낙도 지쳤고 샤카자이아도 지쳤다. 하지만 떨어졌을 때 샤카자이아가 충격을 더 많이 받았던 건지 그녀의 몸놀림이 파스낙보다 둔했다. 그가 샤카자이아의 얼굴을 때리고 발을 걸어서 넘어트렸다. 아자리가 지팡이를 겨누고 주문을 외치려다가 숨을 삼켰다.


“어…. 어쩌죠? 제가 공격했다간 언니까지 휘말리는데?!”

그녀의 어깨에 소총이 턱하고 얹혔다. 레스는 왼손으로 소총을 잡고 오른손은 자기 어깨를 껴안아서 소총을 받쳤다. 그대로 무릎을 접고 아자리의 어깨를 삼각대 삼아 그는 앞을 겨눴다. 감정 없는 목소리로 그가 속삭였다.


“움직이지 마.”

아자리는 숨도 쉬지 않았다. 파스낙이 샤카자이아의 배를 밟고 지팡이에서 칼을 뽑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자리는 가만히 있었다. 그가 칼을 위로 쳐드는 순간 레스는 속으로 주문을 읊으며 방아쇠를 당겼다.

‘비나예 아하니.’


50구경 탄환이 칼에 꽂혔다. 굳이 몸을 맞추지 않은 까닭은 파스낙이 자기 무기까지 방어막으로 감싸지는 않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파스낙은 쥐고 있던 무기를 놓치고 총알이 날아온 곳을 바라보며 욕지거리를 뱉었다. 샤카자이아는 공중제비를 돌 기세로 다리를 위로 쳐들어 파스낙의 등을 걷어차고 일어났다.  깜짝할 사이에 그녀가 파스낙이 놓친 칼을 먼저 잡아챘다. 그걸 보고 파스낙의 얼굴이 굳었다.


그가 서둘러서 벼락을 한줄기 쏘았지만 지금 샤카자이아이 쥐고 있는 것은 마법을 베어내는 칼이다. 아까 본 게 있었기에 그녀는 본능적으로 칼을 휘두르고 다가갔다. 그리고 급하게 펼쳐진 방어막째로 상대를 향해 내려 베었다.


 영문 모를 파장이 사방을 휩쓸었다.











피카니 일행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레오포드가 갑자기 생기를 되찾은 얼굴로 자신의 옷깃을 열었다. 그의 몸에 박혀있던 낙인이 은은한 빛을 내며 사라지고 있었다. 피카니가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거지?”

톤토가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대답했다.

“저주가 사라졌어! 케모사베는 이제 자유야! 마토아카의 딸하고 친구들이 계약서를 없애버렸나 봐!”


레오포드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잠꼬대 같은 목소리를 냈다.

“내가 꿈을 꾸는 건가?”

피카니가 그들의 들뜬 마음을 현실로 되돌렸다.

“진정하고  길이나 서두르죠. 파스낙을 이겼는지 몰라도 저 녀석들은 아직도 백 명이 넘는 총잡이한테 포위당하고 있어요. 우리까지 사이좋게 잡히면  의미 없습니다.”

매정하기 그지없는 소리였으나 틀린 말도 아니었다.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톤토는 그 태도에 기분이 조금 상했다.

“자네 참으로 심장이 싸늘한 사람이로군.”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 없어. 슬슬 준비해둔 보험이 저쪽으로 가고 있을 테니.”


그 말을 들은 톤토와 피카니가 레오포드를 쳐다보았다. 레오포드는 이제 완전히 기운을 차리고 늑대의 털을 쓸어주고 있었다. 피카니가 물었다.


“보험이라니 무슨 소립니까?”

“핑커튼 비장의 일격이 남아있지. 숙소에서 자네들을 만난 뒤로 나도 놀지만은 않았네.”

피카니는 한쪽 눈을 찡그렸다.


“그게 뭔지는 둘째치고, 그것이 저기로 갔는지는 어떻게 압니까?”

“우리한테 오지 않았으니까.”

레오포드는 단칼에 대꾸하고 앞서서 움직이자고 손짓했다.

“바라는 대로 서두르자고. 슌카와칸이  길을 알려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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