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5화 〉[3권] 105회 - 전면전 (105/188)



〈 105화 〉[3권] 105회 - 전면전



그곳은 살이 탈 듯이 뜨거우면서도 피가 얼 듯이 차갑고. 어떠한 생명도 거부하는 곳이자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곳이었다. 오로지 하늘의 푸른색과 모래 바다의 금빛만 존재하는 곳. 낙타의  박자 걸음에 맞춰서 영원한 방랑자들이 시를 읊으며 건너는 곳.  한복판에 온몸을 까만 옷으로 두른 누군가가 흐릿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레스는 그쪽을 향해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으려 했으나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로 잠에서 깬 레스는 자기 몸속에서 나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생각했다.


그의 코는 화약 냄새를 맡았다.  번 기침을 터트리고 레스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무기를 손질하고 있는 하얀 머리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는 한눈에 봐도 오랜 세월을 느끼게 해주는 목깃이 두툼한 외투를 입고 있었다. 외투는 겉이 나무껍질처럼 거칠고 두툼하다. 색은 타르처럼 칙칙했하고 외투 자체는 60~70년 전에나 유행했을 법한 물건이다. 팔뚝과 허리, 허벅지 등 주머니를 달 수 있는 곳에는 탄입대가 붙어있는데 그것들은 현대식이라서 기묘하게 보였다. 모자는 중절모가 아니라 앞이 뾰족하고 뒤쪽이 넓게 펴진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가 손질하고 있는 무기를 보고 레스가 물었다. 푹 쉰 덕에 목소리가 한결 맑아졌다.

“그거 자동 권총이에요?”


캘러헬은 들고 있는 권총이 잘 보이도록 들어 올렸다. 네모난 금속 상자에 손잡이와 총구가 달려있었다. 2개 있었다.


“C96. 일명 빗자루 손잡이.”

“내가 저번에 봤던 건 쇠막대기에 손잡이가 달려있었는데.”

“브라우닝이 만든 걸 봤나 보군. 이건 다른 사람이 만든 거야.”


권총을 겨드랑이 밑에 달아둔 총집에 집어넣고 캘러헬이 말했다.

“잠꼬대를 심하게 하더군.”


“죄송합니다. 제가 이상한 소리라도 내던가요?”


“나무라는 건 아냐.  잤으면 좋은 거지.”

다시 눈꺼풀을 닫고 레스가 힘없이 웅얼거렸다.


“제가 얼마나 잠들었죠.”

“아주 잠깐.”

캘러헬은 탁자에 늘어놓은 산탄총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M1897 펌프 액션 산탄총이었다. 그는 명상하듯이 계속 무기를 살폈다.

“자네도 이 축축한 공기가 느껴지나?”

“온몸이 쑤십니다.”


“아픈 사람한테 아침에 내리는 비는 지독하지. 아직 옥상에 빨래 안 걷었는데.”


점검을 마친 총은 관처럼 생긴 커다란 나무 상자에 집어넣었다. 곧 비가 올 거라 그런지 금속음이 더욱 또렷했다. 나무 상자에는 총알이 가득 꽂힌 탄띠와 다른 총, 수류탄으로 가득했다.

“뭐 물어봐도 되겠나? 굳이 대답할 필요는 없는 질문이야.”


“뭔가요.”


“알미트라가 누구지?”


레스는 그 이름을 듣고 반사적으로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눈동자만 돌려서 저쪽을 보았다.

“자네 잠꼬대는 하나도  알아들었어. 사쿠라비의 말은 모르거든. 그래도 누군가의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는 건 알겠더라고.”

대답은 조금 뒤에 나타났다.


“아직 마음속에 묻은 걸 꺼낼 각오가 안 됐습니다.”

“미안.”


캘러헬은 걸터앉았던 탁자에서 일어나 나무 상자의 뚜껑을 발로 차서 닫았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혈액형 별로 늘어서 있는 피가 담긴 유리병 사이에 숨어있는 우유병을 찾아서 꺼냈다.


“목마르지 않아?”


대답이 없다. 레스는 그새 정신을 잃고 곯아떨어져 있었다. 걱정돼서 우유병을 들고 가까이 갔더니 상태가 나빠진 건 아니고 꿈나라로 돌아갔을 뿐이다. 캘러헬은 그가 또 자기 때문에 잠에서 깨지 않도록 우유병을 소리 없이 탁자에 살그머니 놓았다.


병을 손에서 놓는 순간 그는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안의 우유에 파문이 미세하게 일렁였다. 은신처는 레스의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하지만 신경이 극도로 예민한 사람에게는 환청만큼 희미한 무언가가 멀리서부터 오는 게 느껴졌다. 그는 야생동물들이 육감으로 천재지변을 감지하는 것처럼  스치는 소리도 내지 않고 몸을 어느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흉기가 가득한 나무 상자를 미간에 주름이 질 정도로 째려보았다.












우두머리 총잡이는 자동차의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앞쪽엔 다른 자동차들이 나란히 서서 천천히 달렸다. 우두머리 총잡이 바로 뒤쪽엔 사람과 물건들을 짐칸에 가득 실은 트럭이 매캐한 연기를 뿜으며 따라왔다. 기계의 행렬 주위에 사람들이 수선스럽게 몰려 다녔다. 대부분은 중구난방으로 모인 고용된 총잡이나 갱단원이었고 그들 사이사이에 두툼한 외투와 깊게 눌러쓴 모자로 엄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자들이 있었다. 우두머리 총잡이 또한 그들하고 같은 외투를 입었고 같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곧 해가  시간이어서 거리의 가로등은 꺼져 있었다. 흐린 하늘 때문에 햇살이 눈에 보이지는 않았으나 칙칙했던 어둠은 충분히 투명했다. 하늘 저편에 낮게 떠오른 거대한 소나기구름이 다가왔다. 그들은 공장이 있는 상업지구를 가로질러 교외의 빈민가로 향했다. 벽돌과 콘크리트의 숲 사이로 어둠을 뚫고 그들은 행진했다. 잡초가 난무하는 비포장도로에 타이어와 신발 자국이 찍혔다. 자연의 찌꺼기와 문명의 찌꺼기가 합쳐진 버려진 곳으로 그들은 들어왔다.

날씨가 순식간에 바뀌고 있다. 새벽 사이에 내린 이슬이 안개로 변한 탓에 시야가 짧아졌다. 우두머리 총잡이는 유리창에 입김을 불고 목이 매달린 사람을 낙서했다. 운전사가 말했다.

“그 사쿠라비가 여기 있는 거 확실합니까?”

운전사는 하라스였다. 전날 결투장에서 입은 총상 때문에 배에는 붕대가 둘려 있었다. 당연히 괜찮은 상태가 아니었으나 하라스는 신경 쓰지 않았다. 우두머리 총잡이는 멍하니 ‘그래’라고 답했다.


“그 새낀 나한테 줘요. 현상금은 필요 없고 목만 있으면 돼요.”

“지금은 다른 걱정도 하는 게 좋을걸.”

하라스는 콧방귀를 뀌었다.


“무슨 걱정? 여기 있는 경쟁자들한테 뒤처지지 말라는 걱정?”

“나 같은 놈들이 왜 카우보이라고 불리는지 알고 있나?”


우두머리 총잡이가 시선을 유리창에 그려둔 낙서에  채로 말했다.


“모릅니다. 갑자기 왜?”


“인간의 영토에서 강화된 인간들은 보통 세 가지 집단 중 하나에 속해있다. 하나는 나라마다 자질이 있는 사람을 훈련 시켜서 양성하는 범국가 수사기관인 ‘시크릿 서비스’. 제국의 연방 보안관들도 여기에 속하지. 또 하나는 아카수스의 수도에 있는 ‘검은 벽돌’ 대학교 출신의 마법사들. 그리고 르바티아에 있는 교황령이 관리하는 ‘기사단’이다. 강화 시술은 군사 기밀로 취급되니까 평민 사이에는 강화 인간을 볼 수가 없지. 원래는 그랬어.”

“왜 그중에 핑커튼 탐정사무소가 없죠?”

“내가 인간의 영토 ‘안에서’라고 했잖아. 핑커튼은 제국 소속이 아니니까. 다만 앨리엇 핑커튼이 ‘시크릿 서비스’를 발전시킨 사람이긴 하지. 여하튼 인간 땅에는 그렇게 좋은 것들이 많은데도 제국은 개척시대  황무지로 향한 양민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주질 않았어. 어디가   있는 땅인지 알아보는 물건으로 취급했지.”

하라스는 잠자코 듣기나 했다. 토를 달아서 상대의 심기를 긁어봐야 좋을 게 없었다.


“이런 도시 말고 진짜 황무지는 더럽고 위험한 곳이야. 들짐승, 성병 걸린 창녀, 자연재해, 보호구역에서 틈만 나면 뛰쳐나오는 야만족, 돌팔이 약장수, 전염병, 무법자, 그리고 오래전에 인간들의 땅에서 쫓겨나고 황무지로 먼저 갔던 온갖 괴물들도 있지. 황무지 토종 괴물하고 경쟁과 교접을 거듭해서 훨씬 강해져 있었지. 갑옷 입고 칼 들고 싸우던 시절보다 몇 배로.”

“하지만 지금은 총이 있잖아요? 제깟 괴물들이 잘나 봤자 얼마나 한다고.”

“당시에 총은 사치품이었어. 게다가 30년 전만 해도 군대는 머스킷 총이 제식 무기였다고. 그런데 어느   남자가 자신의 힘으로 강화 인간이 됐어. 원래 있던 강화 시술이 아니라 이단의 힘으로 태어난 강화 인간이었지. 괴물에 맞서기 위해 그 힘을 빌려 또 다른 괴물이 된 거야. 그 남자는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괴물을 잡는 집단을 만들었는데, 이때 활동한 초창기 괴물 사냥꾼들이 대부분 카우보이 출신이었어.”


하라스가 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설마… 형씨가 그들 중 하나였습니까?”


“그럴 리가 있나. 아무튼, 그 일을 계기로 괴물 사냥은 개척시대의 열풍을 부채질했어. 돈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제국도 자신들이 가진 정예를 보내기 시작했지. 이건 여담인데 괴물 사냥꾼들도 은근히 유파가 다양해. 지금은 다들 카우보이만 기억하고 있지만.”


“왜 지금은 카우보이들이 거의 사라졌죠?”

“이젠 개척시대가 아니라 그놈의 빌어먹을 20세기니까.”


잠깐 뜸을 들이고 하라스는 원래 화제가 뭐였는지 떠올렸다.


“그래서 제가  걱정해야 하는 겁니까.”

우두머리 총잡이는 돌 같은 표정으로 노려보기만 했다. 유리창에 빗방울이 하나 떨어졌다. 어딘가부터 느슨한 총성이 나더니 그들 앞에 있던 자동차 앞에 무언가가 터졌다. 하나 더,  하나 더. 가뜩이나 안개도 진해지고 있는데 곳곳에 터진 연막탄 때문에 사람들은 코앞도 보기가 힘들었다. 하라스는 자동차를 세우고 총을 뽑았다. 우두머리 총잡이도 총을 뽑고 같이 바깥으로 나왔다. 수십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지르는 아우성과 혼란 때문에 난리가 났다. 우두머리 총잡이를 포함한 다른 카우보이들은 침착하게 감각을 곤두세웠다.


“7시 방향!”


카우보이 중 하나가 소리치는 순간 무언가가 쿵쿵거리는 소리를 내며 연막을 뚫고 불곰처럼 돌진해왔다. 우두머리 총잡이는 저 앞의 연막 너머로 사람들이 지르는 비명과 총성, 금속이 구부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몇  뒤에 소란은 갑자기 끊어졌다. 우두머리 총잡이와 하라스는 앞으로 갔다.


소란이 났던 곳에는 사람들은 팔다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틀어져서 눈을 까뒤집고 기절해있었고 자동차는 폐차시켜야 할 수준으로 부서져 있었다. 하라스는 등줄기가 서늘해져서 몸을 한번 떨었다.


“방금 뭐가 나타난 거야.”

“걱정거리.”


우두머리 총잡이는 덤덤히 대꾸했다. 그는 문짝이 떨어져서 안이 훤히 보이는 자동차로 다가갔다. 자동차 시트에는 붉은색 여우 털이 조금 묻어있다. 땅으로는 방금 생긴 발자국에 걸음마다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작은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갑자기 일어난 소란 때문에 단테는 기절했었다. 머리에 쓰고 있던 포대 자루가 벗겨지고 나서야 그는 정신이 들었다. 얼굴에 분무기로 뿌린 것처럼 축축한 안개가 확 닿았다. 장소는 골목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의 포박을 풀어주고 있어서 단테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 누구세요?”

“그 친구들하고는 서로 엇갈린 건가.”

캘러헬은 단테의 손에 걸려있던 수갑을 맨손으로 부수고 그를 일으켜줬다. 뒤늦게 단테는 그의 하얀 머리칼과 눈을 보고 상황을 파악했다.

“맙소사 당신이  캘러헬이죠! 그 와일드번치를 잡았다는….”


“뛸 수 있나?”


단테는 입을 다물고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캘러헬이 그의 어깨를 탁탁 쳐주면서 말했다.


“레스는 내 집에 있어. 장소는 알지?”

“같이 안 가나요?”


“난 알아서 할 거야.”


그는 총집에서 C96 권총을 뽑아서 양손으로 하나씩 쥐었다. 단테는 당황했다.


“저쪽은 50명이 넘는데요?! 폭탄도 가져왔다는데….”


캘러헬은 어서 가라고 눈짓하고 방향을 가리켰다. 단테는 엉거주춤 발을 옮기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캘러헬은 그사이에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다.








우두머리 총잡이는 자신의 부하들을 한데 모았다. 그들은 빈민구역의 광장에 있었다. 카우보이들은 그를 포함해서 모두 12명이었다. 구성원들은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약병을 꺼내고 같은 순간에 마셨다. 다시 모자를 쓰면서 우두머리 총잡이가 말했다.

“무법자들에게 경의를.”


그들은  약병을 땅에 버리고 흩어졌다.

그들 중 넷은 졸개를 5명씩 맡아 분대를 이뤄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갔다. 고용된 갱단원과 총잡이들은 원래 오합지졸이었으나 분위기에 휘말려 최대한 절도있게 움직였다.


그들 중 하나는 조준경이 달린 소총을 들고 있는 가장 높은 곳으로 향했다. 빈민구역에는 지원금이 끊겨서 버려진 교회와 낡은 종탑이 있었다. 그는 종탑의 꼭대기를 향해 갈고리가 달린 밧줄을 던져서 걸고 단숨에 올라갔다.


그들 중 둘은 같이 움직였다. 들고 있는 산탄총에는 자신들이 손수 만든 철갑 슬러그 탄이 들어있었다. 허리에는 대구경 소총의 개머리판과 총구를 톱질해서 짧게 만든 총을 찼다.


그들 중 둘은 트럭 짐칸에 실려있는 물건을 내렸다. 35mm 휴대형 박격포와 개틀링 건이 조립됐다. 개틀링 건에는 손잡이와 멜빵이 달려있다. 체격이  쪽이 개틀링 건을 매고서 발사 손잡이를 돌릴 수 있도록 끈을 조절했다. 다른 쪽은 레버 액션 소총으로 무장하고 탄창이 들어있는 가방을 챙겼다.


우두머리 총잡이를 포함한 나머지 카우보이들과 졸개들은 자신들이 타고  것들을 엄폐물로 삼아서 광장 한복판에 진지를 세웠다. 누군가는 비어있는 건물로 들어갔고 누군가는 그림자에 숨었다. 모든 과정은 목소리 없이 손짓과 수신호로 이루어졌다.

빗줄기가 하나둘 늘어나더니 본격적으로 땅을 두드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