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4권] 129화 - 자연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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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과 푸른색의 음영이 드리워진 도시 속에서 사람들은 집으로 가거나 술집으로 향했다. 석양이 내리자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날씨가 맑아서 그날따라 가로등 불이 닿는 곳이 제일 싸늘했다. 넓었지만 하늘은 좁았고 넓었으나 메아리가 없다. 사람들부터 소리까지 모두 회색이었다.
피카니는 눌러쓴 모자의 챙을 고쳐잡으면서 뒤에 있는 레스를 바라보았다.
“이쪽 맞나? 오랜만이라 기억이 가물거려.”
“방향은 맞아. 그때 이후로 한 번도 안 갔어?”
“일이 있어야 가지.”
레스는 걸친 외투의 깃을 높게 세웠다. 레스 뒤에는 타티아나가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의 등을 노려보고 있었다. 루나는 가장 뒤에서 유령처럼 느릿느릿 따라왔다. 다들 특징 없는 평상복에 통 넓은 외투 차림이었는데도 루나만 몸매가 감춰지질 않아서 눈에 확 띄었다. 그녀가 허리를 숙이고 헐떡이며 애원했다.
“잠깐만… 조금만 천천히….”
그들은 루나 때문에 잠깐 도중에 멈춰서 쉬었다. 피카니가 습관적으로 루나의 등을 두드려주려다가 손이 닿기 직전에 멈칫하고 손을 콱 움켜쥐었다. 루나는 그걸 보지 못했다. 그는 멀찍이 떨어져 모자챙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면서 건물 벽에 기대었다. 루나에게는 타티아나가 붙었고 레스는 눈치를 살피다가 피카니에게 갔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둘의 관계에 대해서 말인데. 어떻게든 해결을 봐야 할 거 같아.”
“어떻게?”
피카니는 정색하고 눈빛에 살기를 번뜩였다.
“마무리를 지어. 낮에 있었던 일은 제대로 된 고백이라고 할 수 없잖아. 이대로면 다른 사람들까지 어색해서 앞으로도 곤란해.”
피카니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 없이 웃다가 복화술사처럼 입을 움직이지 않고 말했다. 물론 여자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만큼 언성은 조절했다.
“네가 레스 알 하자르만 아니었으면 방금 정말 죽였을 거 같다. 아니, 네가 레스 알 하자르라서 죽이고 싶어진 건가?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대체 왜 그래? 연애는 예전에도 몇 번 해봤다며?”
레스의 표정은 덤덤했다.
“대륙의 운명이 우리 손에 달렸을지도 모르는 판국에 지금 이딴 대화나 해야 한다니.”
“그래서 언제 제대로 고백할 건데?”
“이 나쁜 새끼야 기회 되면 나중에 다시 제대로 결투하자.”
또다시 복화술사 같은 표정과 말투로 그는 말했다. 레스는 턱을 쓰다듬으며 ‘흠’하고 소리 내며 목을 가다듬었다.
“제대로 된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냐? 진정되면 먼저 말 꺼내줘.”
“네가 정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는구나. 우리가 계속 나아가려면 마법사가 꼭 필요한데 너 때문에 루나 씨가 곤란해하고 있잖아! 난 때가 아니면 끝까지 눌러 담을 생각이었는데! 안 그래도 대위는 루나 씨를 경계하고 있어. 그가 이걸 알게 되면 출발이 취소될 수도 있다고!”
한편 루나는 양 손바닥을 활짝 펼쳐서 타티아나에게 지압을 받고 있었다. 타티아나가 손가락을 잡아당겨 주거나 혈맥을 노려서 눌러줄 때마다 신음 비슷한 야릇한 소리가 근처에 흘렀다. 레스는 눈을 게슴츠레 뜨면서 말했다.
“아직 출발하자고 확정된 건 아니다만…. 확실히 내게 책임이 있기는 하네. 아, 데자뷰.”
“내가 제대로 고백해서 루나 씨한테 YES를 받든 NO를 받든….”
레스가 말을 가로챘다.
“YES를 받으면 다 집어치우고 무조건 루나 씨랑 돌아가고 싶어질 거고 NO는 받기 싫지?”
피카니는 그대로 굳었다. 불현듯 그는 강연하는 현자처럼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만사에는 공백기가 필요해.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봐야 할 시간이. 연애랑 전쟁도 마찬가지이며 또한 이 둘은 닮은꼴이 많은 개념이지.”
“갑자기 무슨 소리야.”
“모두를 위해서 나하고 마법사님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둬야겠어. 지금 상태로는 내가 마법사님한테 뭘 하든 간에 자극이 될 테니까.”
“너한테 갈 자극이기도 하고.”
피카니는 갑자기 레스의 멱살을 붙잡고 그의 목에 팔을 감은 다음 귓가에 속삭였다.
“남자 대 남자로 부탁이다. 나 대신에 어떻게든 루나 씨를 진정시켜줘. 그리고 기왕이면 YES가 나올 수 있도록 밑 작업도 해봐. 좋은 말 좀 해달라고. 모두를 위해!”
그의 광기 섞인 목소리가 멎고 약간의 침묵 뒤에 레스가 대답했다.
“차라리 결투하자.”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피카니는 상대의 목에 감은 팔에 한층 더 힘을 주고 눈에 핏대를 세웠다.
“바다위는 책임을 피하지 않는다고 맹세도 하잖아!”
“그런 구절 없거든!”
레스가 캑캑거리면서 버둥거릴 때 타티아나가 다가와서 점잖게 말했다. 도서관 서기가 책장을 청소할 때에나 할법한 표정을 하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일부러 감정을 억누르느라 표정이 저렇다는걸 레스는 눈치챘다.
“슬슬 가지.”
피카니는 그제야 진정하고 레스의 목을 졸랐던 팔을 풀면서 괜히 그의 외투를 털어주었다. 이쪽을 바라보는 루나의 눈빛은 짐승을 바라보는 어린이를 연상시켰다. 두려움과 호기심, 그리고 안쓰러움이 뒤섞인 시선. 레스는 저쪽의 눈치를 보다가 기침을 한번 뱉고 쉰 목소리로 피카니에게 잽싸게 속삭였다.
“너무 기대는 하지 마.”
레스는 피카니에게서 떨어지고 타티아나에게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루나는 큰 고민 없이 부모 따라가는 어린이처럼 타티아나의 뒤를 쫓았다. 피카니는 마지막으로 따라가면서 엉뚱한 곳을 바라보며 손을 불끈 쥐고 쾌재를 표정으로 외쳤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이상한 눈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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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더 찾았다.”
아자리는 어둠 속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붉은색이 선명한 산딸기를 따서 뒤집은 자신의 고깔모자에 담았다. 모자 안에는 다른 나무 열매와 도토리가 데굴거리고 있었다. 아자리는 덤불에 있는 딸기를 전부 따지 않고 일부러 조금 남겼다.
“이 정도만 해야지. 감사히 받겠습니다. 미타쿠예 오야신.”
그녀는 모자를 위로 몇 번 들어 올렸다가 그 무게에 만족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자리는 땅에 꽂아둔 자신의 지팡이를 다시 들고 움직였다.
아자리가 가는 길에 샤카자이아가 어느 틈엔가 나무 위에서 내려와 근처로 떨어졌다. 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자신의 일행에게 자기가 모은 수확을 자랑했다. 샤카자이아가 산딸기를 들어 보이면서 작게 미소지었다.
“딸기가 붉어지면 연어가 가까워진다는 뜻이야. 지금쯤 우리 마을도 분주하겠어.”
“언니는 찾은 거 있나요?”
샤카자이아는 허리춤에 매달아둔 새의 다리를 잡고 거꾸로 들어 보였다. 다 자란 닭하고 비슷한 크기에 머리는 비둘기를 닮았고 깃털은 흰색과 갈색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발에도 털이 자라나 있었다.
“처음 보는 새.”
당돌하게 들리는 순수한 목소리로 샤카자이아는 말했다. 같이 걸으면서 아자리는 그것을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뇌조예요. 이상하다.”
“뭐가 이상한데?”
“애들은 추운 곳에서만 살 거든요. 발에 털 난 거 봐요. 추운 곳에 사는 새들만 발에 털이 나요. 왜 이런 곳에서 잡혔지?”
“자연의 균형이 깨지고 있는 건가.”
조금 전의 순수한 태도는 자취를 감추고 심각한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아자리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어쩌다가 무리에게서 떨어진 개체가 다른 곳에서 나타나는 건 크게 드물지는 않아요. 전 예전에 남쪽 섬에 나타난 펭귄에 대한 기록도 읽어본 적 있어요.”
“나는 ‘와칸탕카’ 안에 모든 것은 이어져 있고 이유 없는 일은 없다고 배웠어. 추장님이 말씀하시길 자연의 균형을 깨트릴 수 있는 건 사악한 힘뿐이라고 하셨지.”
“문명의 발전 같은 거요?”
아자리의 짓궂은 말을 듣고 샤카자이아는 입을 다물고 생각에 빠졌다. 한동안 낙엽과 흙 밟는 소리만 들렸다. 샤카자이아는 상체는 그대로 두고 힘껏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그런 뜻은 아니었어. 어린애들한테 들려주던 이야기였으니까. 그런데 펭귄이 뭐야?”
“직접 본 적은 없는데 그림을 보니까 귀엽게 생겼었어요.”
“맛은?”
“기록에 없었어요.”
샤카자이아는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였다.
“아무튼, 사악한 힘은 저 광야 어딘가에 먹구름 속의 천둥처럼 자연스럽게 이유 없이 형체를 가지고 태어나기도 해. 우리는 그걸 윈디고라고 불러. 사악한 영혼.”
아자리의 발걸음은 경쾌했다.
“윈디고는 어떻게 알아봐요? 그냥 보면 아나?”
“하얀색 몸에 하얀색 털, 그리고 눈이 붉대. 머리에는 수사슴 같은 커다란 뿔이 달렸고. 엄마는 직접 봤다고 하셨어.”
“그 윈디고는 어떻게 됐데요?”
“퇴치했대. 친구랑 같이. 그때는 자세한 이야기를 안 들었지만 도와준 친구가 분명 캘러헬 씨와 라카키 씨가 아니었을까 싶어.”
아자리는 숨을 한 번 크게 쉬었다.
“핑커튼 사람들이 무사했으면 좋겠네요. 저흴 도운 거 때문에 분명 제국에게 책잡힐 텐데.”
“나도 항상 신경 쓰여.”
두 사람은 냇가에 도착했다. 단테는 신발을 벗고 바짓단을 위로 올린 채 나무 몽둥이를 들고 하천 한복판에 서 있었다. 아자리가 근처를 쓱 훑어보고는 작게 말했다.
“여태껏 한 마리도 못 잡았나 봐요.”
샤카자이아가 조금 더 앞으로 나서며 저쪽을 향해 물었다.
“잘 안돼?”
물속을 노려보던 단테가 갑자기 그쪽으로 몽둥이질을 했다. 물만 거칠게 튀겼고 물고기는 떠오르지 않았다. 아자리의 얼굴에 물방울이 몇 개 붙었다.
“제길! 엄청 재빠르네!”
“여기 뭔가 있기는 해?”
샤카자이아도 신발을 벗고 바짓단을 걷은 다음 물가로 들어갔다. 다리가 워낙 가늘어서 물살을 헤쳐도 첨벙거리는 소리가 거의 안 났다.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되게 길쭉한 놈이었어요. 도통 기절을 안 하네.”
그녀가 말했다.
“그런 식으로 물고기를 잡는 건 물살이 잔잔한 곳에서 하는 게 좋아. 여긴 물살이 세서 물고기가 기절해도 떠오르지 않고 바로 흘러갈 거야.”
“하지만 우린 뜰채나 낚싯대도 없잖아요.”
단테는 화도 나고 지쳐서 어깨를 늘어트리고 샤카자이아에게 들고 있는 나무 몽둥이를 건네려 했다. 그녀는 그걸 받지 않고 손가락으로 발밑만 가리켰다.
“물고기를 여기쯤에서 봤다고?”
단테는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샤카자이아가 자신의 허리에 손을 대고 발을 그쪽으로 쭉 뻗더니 첨벙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느 틈에 샤카자이아는 유연하게 다리를 위로 쭉 뻗고 있었는데 발가락 사이에 길쭉한 뱀 같은 생물이 붙잡혀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자리가 그걸 보고 외쳤다.
“칠성장어다!”
단테는 기가 차서 하마터면 물속으로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샤카자이아가 뭍에 있는 아자리를 향해 외쳤다.
“아자리! 냄비!”
분부대로 아자리가 근처에 쌓여있는 야영 도구 사이에서 냄비를 꺼내고 저쪽을 향해 냄비의 안쪽을 보이자 샤카자이아가 다리를 휘둘렀다. 칠성장어는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냄비 안으로 들어갔고 계속 날뛰느라 시끄럽게 퍼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샤카자이아는 학처럼 한쪽 다리만으로 물살을 견디면서도 도도하게 균형 잡힌 자세로 우뚝 서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단테는 모닥불에 불을 쬐면서 재채기를 했다. 아자리가 헛기침을 하고 조심스레 말했다.
“이런 말 하기는 미안한데. 당신 몸 말리니까 짐승 냄새 되게 심하네요.”
“전 레스가 아니라서 어떻게 받아쳐야 할지 모르겠네요. 푸헷츄!”
샤카자이아는 자기가 잡아 온 뇌조를 손질하는 중이다. 아자리는 새 한 마리한테서 뿜어져 나오는 솜털들의 양을 보고 큰 인상을 받았다.
“오늘 밥은 어떻게 하실래요?”
샤카자이아가 명상하는 수도사 같은 표정을 지키면서 낮게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손으로는 끝없이 뿜어져 나오는 깃털들을 북북 쥐어뜯었다.
“일단 물고기부터 먹자. 새는 한 마리밖에 없고 물고기는 넷이나 잡았으니까. 그런데 나는 이것들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
아자리는 눈을 크게 떴다.
“장어 먹어본 적 없어요? 그렇게 잘 잡으면서?”
“먹을 생각으로 잡은 적은 없어. 그냥 잡으면서 놀기만 했지. 우리는 다들 그래.”
“그럼 제가 말하는 요리법으로 해봐요. 저 한 번쯤은 바다 건너 식으로 먹어보고 싶었어요.”
아자리가 말하면서 눈을 반짝였다. 샤카자이아는 아직도 깃털을 뽑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다 건너?”
단테는 입을 오므리며 살짝 감탄했다.
“바다 건너 식이라. 재밌겠네. 한 번 해봅시다.”
요리의 첫 번째. 재료 손질. 샤카자이아는 장어와 칼을 손에 들었다. 아자리가 바로 뒤에서 그녀에게 지시를 내렸다.
“일단 등이나 배를 갈라서 척추를 뽑아야 하는데 어느 쪽이 더 편해요?”
“배.”
“그럼 편한 쪽으로. 피는 전부 따로 받아두세요. 칠성장어의 피는 깊은 맛이 나요.”
단테가 말을 받았다.
“이놈들의 피로 만든 소스는 문명 세계에서는 궁중 요리로도 취급할 정도지요.”
샤카자이아는 지시받은 대로 깔끔하게 손질했다. 칠성장어에서 뽑아낸 피는 그릇에 모두 담았다. 그걸 단테가 자기 앞으로 옮겼다.
“이제 양념을 만들어야겠는데. 먼저 간은 설탕이랑 소금으로 맞추고, 농도는 마침 다 떨어져 가던 럼으로 맞춰볼게요…. 난 예전에 먹어본 적 있으니까 최대한 비슷하게 해볼게요.”
아자리가 근처에서 단테의 자잘한 수발을 들어주며 잡담을 했다.
“원래라면 소이 소스(간장)가 필수인데 없는 게 아쉽네요.”
“최대한 진하게 맛을 내고 바싹 구우면 비슷한 풍미가 나오지 않을까요? 산딸기도 찧어서 섞어봅시다.”
단테와 아자리의 대화에 즐거움이 묻어나왔다. 그동안 샤카자이아는 손질한 장어에서 눈에 보이는 잔뼈를 발라내고 살점을 나무 꼬챙이에 구불구불하게 꿰었다.
그들은 꼬챙이에 꿴 살점에 양념을 묻히고 모닥불에 올렸다. 불 조절과 구이 담당은 아자리가 맡았다. 샤카자이아는 모닥불 위에 둥둥 떠 있는 장어 꼬치구이에서 기름기가 오르다가 증발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감탄했다. 식욕을 돋우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오오.”
아자리는 꼬치구이들을 전부 거두고 모조리 양념 속에다가 담갔다. 샤카자이아는 깜짝 놀라서 어쩔 줄을 몰랐다.
“앗! 안돼! 눅눅해져!”
“한 번으로 멈추지 않는다! 초벌구이가 끝나면 다시 바르고 다시 굽는다!”
아자리는 귀신 들린 거처럼 말투를 다른 사람처럼 꾸미고 마법으로 모닥불의 화력까지 키워가며 주변을 환하게 만들었다. 연극 조로 그녀가 다시 외쳤다.
“바른 양념이 다 마르면 다시 바르고 또 굽는다! 몇 번이고 겹쳐서 갑옷처럼!”
단테가 살짝 인상 쓰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못 본 사이에 술 마신 거 아니죠?”
아자리가 바로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죄송해요. 그럴싸한 기회가 생기면 참기가 어려워요. 극단에서 보낸 추억 때문에 그만….”
샤카자이아가 조용히 말했다.
“솔직히 방금 너무 무서웠어.”
“이젠 먹는 거로 장난 안 칠게요.”
아자리는 순식간에 태도가 숙연해졌다. 어쨌든 구이는 끝났다. 각자 자기 몫의 꼬치구이를 들자 단테가 엄숙한 얼굴로 후추통을 들며 말했다.
“유일한 향신료는 무조건 제일 마지막에.”
엄중한 비밀이라도 고백하는 투로 그렇게 말하며 단테는 후추통을 기울였다. 요리는 완성됐고. 다들 심호흡을 했다. 아자리가 샤카자이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먼저 먹어요. 언니가 잡았잖아요.”
샤카자이아는 눈을 감고 읊었다.
“미타쿠예 오야신. 냠.”
베어먹는 소리가 마치 과자 부스러지는 소리 같았다. 그녀는 먹은 걸 깨물고 씹는 동안 온몸을 비비 꼬며 행복한 표정을 감추지를 못하고 어찌할 줄 몰라 안달이 났다. 아자리하고 단테도 뒤따라 자기 몫을 먹었다. 단테가 허탈하게 웃었다.
“하하 이거! 전에 먹었던 거랑은 완전히 다른 맛인데! 나중에 또 먹고 싶어지면 어쩌냐 이거!”
“손은 많이 갔어도 보람이 느껴지네요.”
아자리가 자기 모자를 앞으로 내밀자 일행들은 알아서들 거기서 나무 열매와 산딸기를 가져갔다. 밤은 그렇게 나무 타는 냄새와 음식 냄새와 함께 바람처럼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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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와 루나는 초콜릿을 절반으로 쪼개서 나눴다. 그들은 아직 길거리에 있었고 레스와 루나는 걸어가면서 초콜릿을 먹었다. 레스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걸 보고 피카니가 말했다.
“맛없지?”
“대체 어떻게 만들면 초콜릿이 맛이 없을 수가 있지?”
입에 음식이 들어있어서 레스의 발음이 조금 뭉개져 있었다.
“그거 군용으로 납품된 거야.”
“이거 먹고 열 받은 채로 적군 죽이러 가라고 이따위로 만든 건가?”
“아니, 비상식량인데 맛있으면 병사들이 미리 먹어버리니까 일부러 맛없게 한 거래.”
루나는 울상을 지으며 어떻게든 초콜릿을 입안에서 녹여 먹었다. 타티아나가 두 사람을 바라보며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나중에라도 챙겨줄까?”
레스는 순식간에 초콜릿을 뱃속으로 넣어버리고 포장지를 길가의 쓰레기통으로 휙 던졌다.
“됐어. 지금 내 친구들은 황야 어딘가에서 끼니 챙기기도 힘들어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