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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8화 〉[4권] 138회 - 모르는 게 약 (138/188)



〈 138화 〉[4권] 138회 - 모르는 게 약

대치한 두 남자 사이에 어느 때보다도 묵직하고 날카로운 바람이 흘렀다. 사람들이 거기에 숨을 죽이고 집중하는 사이 레스는 라카키에게 수갑에 묶인 자신의 손을 보이며 정적을 깼다.


“제발 풀어주세요.”


“앗, 미안. 깜빡했어.”


라카키는 열쇠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맨손으로 수갑을 풀어주었다. 레스가 인상을 찡그리면서 자신의 손목을 매만지며 말했다.

“굳이 결판을 내야 해? 서로 더 싸워서 이득 볼  없잖아.”

그에게 타티아나가 힐난하는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분위기 파악 좀 해. 인간과 마족들 통틀어서 지금 시대에 남은 그랜드 마스터들은 이제 거의 없어. 지금 그 둘이 맞붙는 귀중한 순간을 보는 거라고.”


“그딴 것보다 저기 노점에서 파는 덤플링에 더 관심이 간다만.”

타티아나의 바로 옆에 있던 피카니가 고개를 돌리지 않은  말했다.

“서로가 40년 묵은 적수라잖아. 오랜만에 만났으니 서로 손이 근질거리는 거겠지.”

“나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 영원히 공감  하겠지.”


레스는 꿍얼거렸다. 타티아나가 그의 옆얼굴을 보면서 코웃음을 쳤다.

“넌 적수라 할만한 사람이 영영 없을 거니까?”


“아니, 요즘 내 세상살이를 돌이켜보면 40살을 못 넘길 거 같아.”


타티아나가 한쪽 눈을 게슴츠레 감았다. 루나가 모르스를 가리키며 그녀에게 소곤거렸다.

“그런데 쌍검술은 쓸모가 있나요? 제가 아는 기록 중에 칼  자루를 동시에 쓰는 검객에 대해서는 거의  들었던 거 같아요.”


“한 손으로 휘두르는 무기로 무장했다면 비어있는 손에 다른 무언가를 드는 편이 훨씬 유리합니다. 오른손잡이들을 기준으로 왼손에는 가벼운 방어용 도구를 들도록 권장합니다. 절박한 실전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면 모자나 신발이라도 손에 들라고 교본에 적혀 있죠.”


모르스는 몸의 옆이 앞을 향하도록 비스듬히 섰다. 그리고 손에 쥔 칼을 수직으로 세우고 양팔을 앞뒤로 쭉 뻗었다. 캘러헬은 발을 앞뒤로 넓게 두고 봉의 뒷부분을 양손으로 모아 쥐어서 끝이 위로 향하도록 길게 뻗었다. 둘 다 쉽게 움직일 기미가 없다. 노점에 있는 모르스의 부하들은 주먹을 쥐고 긴장하면서 대치를 지켜보지만 레스와  주변 사람들은 레스 때문에 아무런 감흥을 못 느끼고 있었다. 한가한 말투로 그가 물었다.


“그래서 쌍검을 쓰는 칼잡이가 왜 드문데?”


“무게가 같은 한 손 무기를 동시에 다루려면 조건이 대단히 까다로워. 근력도 많이 필요하고 손과 생각이 꼬이니까 숙련에 드는 시간이 말도  하게 길어져. 어지간한 재능과 실력이 아니면 그 시간과 노력을 다른 곳에 쓰는 게 낫지. 하지만 만약 두 자루의 무기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경지에 오르면 상대하는 사람한테는 그야말로 악몽이지.”

모르스가 보폭을 앞으로 내디디면서 앞에 세운 칼을 손목의 힘만으로 휘갈겼다. 칼이 봉과 한 번 닿았다가 모르스의 팔 동작을 따라서 칼이 그의 겨드랑이 밑으로 들어갔다. 봉이 옆으로 살짝 젖혀지자 그대로 모르스가 크게 한 바퀴 몸을 돌리면서 앞으로 내디디며 뒤에 세웠던 칼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캘러헬이 급하게 뒤로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그 칼날에 봉을 쥐고 있던 손가락이 잘릴 뻔했다.


캘러헬이 앞발에 체중을 싣고 앞으로 쥔 손에 힘을 실으면서 봉을 상대에게 내려찍었다. 모르스는 겨드랑이 밑에 두었던 칼을 꺼내고 방금 휘두른 칼을 교차시켜서 위로 쳐들었다. 교차한 칼의 코등이 사이에 철봉이 끼었다. 거대한 금속 종이 울릴 때나 날법한 굵은 파동이 주변에 퍼졌다. 모르스가 기합을 내지르며 팔에 힘을 줬다.


“카앗!”


두 자루의 칼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자 그 틈에 끼었던 철봉이 하늘로 솟구치다 못해 캘러헬의 어깨너머까지 넘어갔다. 캘러헬은  반동으로 자세가 휘청거렸다.

모르스가 칼을 역수로 고쳐잡아서 자세를 정돈하고 자리에서 뛰어올라 화려하게 몸을 돌리며 상대를 발꿈치로 걷어찼다. 맞는 소리가 바위 떨어지는 소리 같았다. 캘러헬은 사정없이 뒤로 나뒹굴다가 팔꿈치와 주먹을 땅에 때리면서 옆으로 구르던 몸을 세우고 봉을 땅에 찍었다. 캘러헬이 인상을 찌푸리고 맞은 곳에 묻은 흙먼지를 털면서 일어났다.

노점에 있던 모르스의 부하들이 성원을 보냈다. 릴리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잘하셨습니다! 사부!”


“조용히 해라.”


“죄송합니다.”


릴리는 명령을 받고 순식간에 차분해졌다. 모르스는 앞으로 둔 칼만 손짓으로 원래대로 고쳐잡고 뒤로 둔 칼은 팔을 등에 대고 그대로 거꾸로 쥐었다. 캘러헬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모르스는 서서히 다가갔다. 캘러헬이 봉을 어깨에 걸치더니 보폭을 수시로 움직여서 몸을 팽이처럼 돌리고 봉에도 회전을 실어 손에 휘감았다. 봉이 그의 목에서 몸으로, 그리고 손끝으로까지 움직이면서도 계속 회전을 멈추지 않았다. 모르스를 향해 강철의 소용돌이가 다가가자 그는 혀를 차는  같은 가벼운 기합을 내질렀고, 그의 몸이 얼음판 위에서 미끄러진 것처럼 뒤로 순식간에 움직였다.


캘러헬이 앉았던 자세를 일으키면서 회전이 실린 일격을 상대에게 휘두르자 모르스가 앞에 둔 칼을 대각선으로 세워서 공격을 위쪽으로 흘려냈다. 그대로 뒤에  칼로 송곳 찍듯이 상대에게 찌르려 하자 캘러헬이 봉을 기울이면서 찌르기를 걷어냈다. 두 사람은 서로 연타와 연타로 공방을 주고받으면서 쇠의 노래를 합창했다.

모르스가 역수로  칼이 봉에 걸렸다. 그는 힘을 실어서 철봉을 땅으로 걷어내고 양발로 밟으려 했다. 캘러헬이 허벅다리로 기울어진 철봉을 아래쪽에서 쳐올리자 그 위에 올라탄 모르스가 하늘로 솟구쳤다. 저 기세로라면 3층 건물 옥상까지는 가볍게 닿을  같았다.

위로 솟구친 상대는 허공에서 재주넘기를 하다가 어느 틈에 제대로 자세를 잡았다. 허공에서. 마치 보이지 않는 바닥이라도 있는 양 모르스는 공중에 서 있었다. 이내 그는 돌계단이라도 밟고 내려오듯 허공을 밟으면서 품위 있게 땅으로 내려왔다.  남자는 다시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에 들어갔다.

타티아나가 자신의 입가를 한 손으로 가다듬으면서 조용히 감탄했다.


“저 정도 수준의 경공술이라니. 난 공중에서 두어  내딛는 게 고작인데.”

레스가 그녀에게 물었다.


“대체 저건 무슨 원리로 부리는 기술이야?”

“짧게 비유하자면 마법사들이 언어와 지식으로 마법을 부린다면 무림인들은 무술과 정신으로 무공을 다룬다. 힘의 뿌리는 같지만 맺어진 꽃은 전혀 다르지.”

“어쨌든 마법사하고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는 거군.”

캘러헬이 철봉을 길게 잡아서 한 바퀴 크게 돌려 수평으로 휘두르자 모르스가 한쪽 팔과 칼로 공격을 받아냈다. 흘려낼  있는 각도가 아니었다. 그는 기세를 버티지 못하고 맞은 방향으로 몸이 흔들렸다. 캘러헬이 봉을 계속 상대에게 갖다 대면서 쫓아갔다. 그러다 도중에 모르스가 뒷발의 발끝을 세우고 봉을 막았던 칼을 순식간에 반대편으로 옮기면서 다른 칼을 봉에 맞댔다. 순식간에 철봉이  자루의 칼 몸통 사이에 끼어서 단단히 묶였다.

모르스와 캘러헬이  싸움을 하면서 온몸이 덜덜 떨렸다. 캘러헬이 모르스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와서 제국이 날 원하는 이유가 뭐냐?”

“이유라면 예전부터 푸짐하게 쌓이지 않았던가.”


모르스의 팔이 덜덜 떨렸다.


“진심으로 너도 내가 너희들에게 협력해줄 거리라 생각하는 거냐?”


“아무리 통제할 수 없는 놈이라고 설명해도 그들은 듣질 않아.”


캘러헬이 봉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자 모르스의 자세가 무너졌다. 그리고 봉을 아래로 내렸다가 다시 들어 올리자 철봉이 모르스의 겨드랑이에 걸렸다. 캘러헬이 봉에 팔꿈치까지 휘감고 팔을 들어 올려 상대의 팔을 위로 걷어 올렸다. 올린 철봉을 그대로 내려치자 모르스는 무릎을 들어 올려 받아냈다. 그가 칼에 준 힘을 풀자 캘러헬은 철봉으로 땅을 훑었고 모르스는 화려하게 옆으로 몸을 돌려 곡예를 부리며 피했다.

그는 칼을  양손을 앞으로 모아서 비스듬하게 칼날을 세웠다. 양손으로 칼을 동시에 휘두르면서 상대의 철봉을 걷어내고 앞으로 발을 내딛자 캘러헬은 반대 방향으로 철봉을 휘둘러 반격하려 했다. 바로 모르스는 칼을 등 뒤에 깔아 공격을 받아냈다. 공격을 받아내자마자 바로 등 뒤에 깔아둔 칼을 앞으로 내리치자 캘러헬의 몸에 칼자국이 두 줄기 흘렀다.

“읏!”

그는 짧게 신음을 지르면서 몸 안쪽에 둔 철봉을 앞으로 내밀어서 휘둘러 상대를 쫓아냈다. 모르스는 숨을 내뱉고 칼을 앞뒤로 수직으로 세워서 들었다. 대치가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루나가 다급하게 말했다.


“저기 여러분? 슬슬 그만하시죠?”


캘러헬이 피에 젖은 셔츠를 조금 만지작거리다가 쓰고 있던 중절모를 휙 벗어 던졌다. 레스가 모자를 받았다.

“아뇨. 아직은.”


그는 봉의 가운데 부분에 양손을 모아서 쥐었다. 그리고 앞에  손의 엄지가  안쪽을 향하도록 바꿔서 잡았다. 봉보다는 날붙이가 달린 장병기를 다룰  쓰는 자세다. 캘러헬이 날아가듯이 펄쩍 뛰더니 체중을 실어서 양손을 과감하게 앞으로 내밀자 모르스는 피리 소리 같은 기합을 이빨 사이로 뱉으면서 잔상을 남기고 사라졌다. 바로 근처에서 모르스가 나타나고는 왼쪽 칼을 겨드랑이 밑에 둔 채로 오른쪽 칼을 내려 베면서 왼쪽으로 몸을 돌려 뒤로 피했다.


마치 팔짱을 낀 거 같은 자세로 팔을 교차시키고 그는 칼끝이 어깨에 닿을 만큼 들었다.  자세에서 교차시켰던 팔을 양옆으로 펼쳐서 베는 찰나의 순간 칼끝 사이로 철봉이 직선으로 날아와 모르스의 어깨에 박혔다. 모르스의 자세가 무너졌다.

앞으로 지른 철봉을 오른쪽으로 돌려서 캘러헬이 보는 방향에서 오른쪽 칼을 걷어내고 반대편 끝부분으로 왼쪽 칼의 공격을 받아쳤다. 바로 오른쪽 손에 힘을 줘서 철봉을 땅에 찍어 상대의 다리를 노린 공격을 막아내고 그대로 땅에 찍은 철봉을 발과 손으로 같이 밀어서 앞으로 날려 보냈다. 모르스는 수직으로 똑바로 서서 날라오는 철봉을 이번에도 칼의 코등이로 받아내었다. 칼의 코등이가 견디지 못하고 부러졌다.


“썩을!”

충격을 받아내느라 상대의 자세가 굳어버린 틈에 캘러헬이 반동으로 튕겨 나온 철봉을 돌려받고 수평으로 고쳐 쥐었다. 상대에게 달려들어서 머리 높이로 들어 올렸다. 코등이가 부서진 상태라 모르스는 철봉의 움직임을 칼날만으로는 막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캘러헬이 기세를 실어서 그를 밀어트리려 하자 모르스는 뒤로 달리다시피 뒷걸음질 쳤다.

레스가 급하게 소리쳤다.


“그쪽으로 계속 가면 가게랑 부딪혀요!”

캘러헬이 팔에서 힘을 풀고는 급하게 말했다.

“너도 들었지?! 돌려!”

“돌린다!”

모르스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두 남자는 방향을 180도 돌리고 아까와 똑같은 자세로 다시  싸움을 했다. 계속 뒷걸음질 치던 모르스가 팔꿈치로 상대의 얼굴을 쳤다. 캘러헬은 맞으면서도 머리를 숙이고 팔을 교차시켜서 봉을  바퀴 돌리고 발동작으로 몸도 돌렸다. 어느 틈엔가 모르스의 쌍칼이 캘러헬의 철봉과 캘러헬의  사이에 단단히 붙잡혔다. 물론 칼날이 그의 피부에 깊숙이 박혔으나 캘러헬은 끄떡도 안 했다. 캘러헬이 그대로 온몸의 힘으로 어깨에 걸친 철봉을 잡아당기자 모르스는 칼을 놓쳤다.  자루의 칼이 땅에 떨어졌고 그중 한 자루는 수직으로 깔끔하게 꽂혔다.

피투성이가  몸으로 캘러헬은 한 손으로 철봉을 들어서 상대를 겨눴고 모르스는 반사적으로 맨손 무술 자세를 잡고 있었다. 모르스가 거친 호흡을 내쉬다가 땅을 손바닥으로 내리찍으면서 외쳤다.


“샤마디히!”

갈퀴처럼 구부린 손가락으로 흙먼지를 상대에게 뿌리고는 모르스가 곧게 편 손가락을 교차시키자 난데없이 저 앞에서 불꽃이 튀었다. 불꽃은 이내 폭발로 변해 캘러헬을 감쌌다. 캘러헬은 타는 흙냄새가 풀풀 나는 연기에 기침을 터트리면서 조금 휘청거렸다. 타티아나가 둘 사이로 뛰어들어서 말렸다.

“그만! 여기까지만 하세요! 흥분을 가라앉히세요!”

캘러헬은 철봉을 돌리면서 고쳐잡으며 땅에 찍었고 모르스는 땅에 떨어진 자신의 칼을 주웠다. 그가 칼을 쥐고 나오는 길에 떨어트렸던 칼집을 향해 칼끝을 뻗자 칼집이 저절로 날아와 칼과 합쳐졌다. 타티아나가 두 사람 사이에서 자리를 비켜주자 캘러헬이 말했다.

“사실 아까 너한테 베였을  허리띠가 칼에 끊어졌었어. 그래서 더 싸웠다가는 바지가 흘러내렸을 거야. 사람들 보는 앞에서 바지를 벗는  좀 아닌 거 같아.”

모르스도 긴장을 풀고 지친 표정을 지으며 허탈하게 말했다.


“지금이니까 하는 소리인데. 밥 먹자마자 격하게 움직여서 속이 많이  좋다. 게다가 오랜만에 먹는 고향 음식이 반가워서 술을 이것저것 다양하게 마셨는데. 그게 뱃속에서 섞이는 바람에 조금만 더 싸웠더라면 못 보일 꼴 보여줬을  같아.”

“오늘은 이쯤 할까.”


두 남자가 타티아나를 같이 바라보자 그녀가 조금 당황하면서 손을 들어 올리고 말했다.

“양쪽 인사하세요.”


 남자는 점잖게 서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레스가 앞으로 나서서 먼저 운을 뗐다.

“40년 동안 계속 이렇게 서로 승부가 비등했었나요?”


모르스가 얼굴을 찡그리면서 레스를 가소롭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비등? 내가 저놈하고 비등하다고?”


캘러헬이 철봉을 어깨에 걸치고 헛웃음을 뱉으며 말했다.

“일단 말해두는 건데 우리가 작정하고 죽일 각오로 싸웠으면 이 구역은 재개발됐어. 방금은 주변 사람들 때문에 서로 적당히 봐준 거야.”

레스가 덤덤한 투로 받아쳤다.


“말은 그렇게 하셔도 두 분 사이를 봐서는 여태껏 서로 죽일 각오로 깊은 원한을 갖고 붙은 적은 없었던  같네요. 쫓고 쫓기기만 했지.”

모르스가 캘러헬에게 물었다.

“저 친구한테 우리 사이에 대해 말했어?”


“아니.”

“눈썰미가 제법이군.”

피카니, 라카키와 루나, 그리고 타티아나가 레스 근처로 왔다. 피카니가 말했다.


“그래서 이 난장판의 결론이 대체 뭡니까.”

캘러헬이 레스에게서 중절모를 돌려받으며 대답했다.


“인사치레는 마쳤으니 이제 중요한 대화를  차례지.”

루나가 실눈을 뜨면서 중얼거렸다.

“인사치레?”

모르스가 두 자루의 칼을 한 손에 모아서 쥐고 다른 손을 바지 주머니에 꽂았다.


“자네들, 저녁 식사는 했나?”

레스가 대답했다.

“배고프긴 한데. 왜요? 한턱내시려고요?”

“그냥 물어봤어. 밥 먹고 싶으면 자기 돈 주고 사 먹어. 대화는 거기서 하지.”


일행들의 시선이 피카니에게 쏠리자 그는 한숨을 쉬었다. 피카니가 모르스에게 물었다.

“저희가 부린 난동 때문에 주인장이 불쾌했을  같은데 받아주실는지 모르겠군요.”

“농담해봤어. 당연히 내가 사주는 흐름이잖아. 정말로 사줄 테니 따라와.”

모르스는 먼저 자리를 떠나 노점으로 향했다. 루나가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레스를 바라봤다.

“의외로 좋은 사람이네요.”


“루나 씨가 좋은 사람으로 판단하는 기준은 꽤 후하군요.”

“먹을 것에는 죄가 없어요.”


루나는 당당했다.


“그냥 솔직하게 배가 많이 고팠던 거라고 말씀하시죠.”


라카키가 레스의 옆구리를 찰싹 때렸다.

“아야! 왜?”


레스가 황당해하는 눈으로 바라보자 라카키가 한심해하는 투로 말했다.

“그러니까 연애를  하지.”

“여기서 그 소리가  나와?”


캘러헬이 레스의 어깨를 잡고 노점을 향해 끌었다.


“어쨌든 다 잘 된 거 같지? 내 약속대로 자네가 위험해질 일은 전혀 없었고.”


“제 성별을 바꿔버리겠다는 말. 그거 진심이었어요? 애초에 가능하기는  거예요?”

라카키가 바로 옆에서 졸졸 따라오면서 대신 대답했다.


“세상에는 모르는 게  나은 것이  많아.”

“그래. 모르는 게 약이겠지.”


레스는 한숨을 쉬면서 눈자위를 뒤집고 자기 머리를 쏘는 시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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