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4권] 141회 - 복음을 전파하라
병원에 있는 일행들이 출발하는 동안 피카니는 총을 쏘고 있었다. 주둔지에는 사격 훈련을 위해 꾸며진 공터가 있었는데 지금 피카니가 그곳을 독차지해서 쓰고 있었다. 황량하고 널찍하게 펼쳐진 모래 위에 세워진 표적지를 걸어둔 철제 걸이들과 사람 모양 나무판 표적들, 그리고 무기가 펼쳐진 탁자들. 피카니는 자기 앞에 놓인 탁자에서 자동권총과 탄창을 집어서 최대한 빠르게 장전하고 저 앞의 표적을 향해 탄환을 전부 쏘았다.
총성이 멎자 피카니 근처에 선 백인 남자가 회중시계를 바라보며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8.7초. 7발 모두 명중. 5점에 4발. 3점에 2발. 1점에 1발. 합계 27점.”
피카니는 자동권총에서 탄창을 뽑고 잰 놀림으로 슬라이드를 재차 잡아당겨서 약실이 비었는지 마지막까지 확인한 다음 탁자에 내려놓았다. 저 앞으로 가서 걸려있던 표적지를 바꾸고 자리로 돌아와서 확인해 보니 결과는 들은 대로였다.
“주께서 말씀하시길 ‘노함을 더디게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다’. 자네의 조준에 분노와 초조함이 느껴지네. 형제여, 무엇이 그대를 쫓아오는가?”
백인 남자가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다. 피카니는 연이은 사격으로 얼얼한 손을 주무르면서 옆을 보았다. 균형 잡힌 체격의 중년 남성이 지긋이 그를 마주 보았다. 만물을 사소히 보지 않겠다는 듯한 마음가짐이 단번에 느껴지는 그윽한 눈빛은 피카니에게 시선을 피하기가 어렵게 했다. 보통 사람보다는 살짝 큰 매부리코 아래로는 깔끔하게 정돈된 콧수염이 있었고 보기 좋은 둥근 두상 위로 탈색된 금발이 가을의 밀밭처럼 가지런히 뒤로 넘겨져 있다. 미간 사이에 주름이 살짝 패여서 인상 쓰는 것 같은 표정처럼 보이는 데도 특유의 눈빛 덕에 험상궂어 보이기보다는 진지한 모습으로 느껴졌다. 검은색 정장 바지 위에 각종 공구가 매달린 허리띠가 매여 있었고 소매를 걷은 와이셔츠에는 거뭇한 기름 얼룩이 묻어있었다.
피카니는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아직 감각이 안 돌아와서 그런 겁니다. 요즘 정신이 없었거든요.”
“마지막으로 헤어졌을 때 형제의 기록은 7초에 7발 모두 5점에 7발이었네. 걱정이 있으면 말하게. 그대의 초조함은 바깥이 아니라 내면으로부터 오고 있으니. 주께서 말씀하시길 ‘사람 마음속의 뜻은 깊은 물과 같고 슬기로운 사람은 그것을 길어 올린다.’ 말만 하게 형제여.”
미사를 치르는 신부처럼 경건하게 고조되는 특유의 억양으로 남자는 말했다. 피카니가 헛기침을 하고 눈을 몇 번 깜빡였다.
“해주실 수 있는 조언 중에 연애 상담도 있습니까? 브라우닝 선생님?”
브라우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뺨을 홀쭉하게 했다.
“정신적인 면은 물론 구체적인 것까지 고루 내려주겠네.”
“구체적인 것은 좀 궁금하군요. 뭐에 대한 겁니까?”
피카니가 의아해하는 투로 물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참고로 난 자식이 열이야.”
피카니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을 내리깔며 손을 내저었다.
“정말로 듣고 싶지만 지금 저한테는 도움이 안 되겠네요.”
“어지간히도 상대가 아주 특별한가 보군.”
“그렇고 말고요. 넘어가고 총 얘기나 하죠. 지금 쓰는 것보다 화력을 더 높이고 싶습니다.”
브라우닝은 피카니가 방금 다뤘던 권총을 집어 들고 맨손으로 분해해서 내부를 보았다. 계속 총의 내부를 살피면서 변함없이 인자한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자네에게 내려준 이 ‘복음’은 형제의 탄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가 양보한 것이야. 45구경은 아직 일러.”
브라우닝은 탁자 밑에 있는 상자 속에서 짚단 사이를 헤치고 권총 한 정을 꺼내 우아한 손짓으로 피카니에게 선보였다. 피카니가 방금 쓴 것과는 생김새가 거의 비슷한 총이었다.
“난 오늘도 형제에게 꾸준히 올해 양산이 시작된 1903년 모델을 권하겠네. 시크릿 서비스는 모두 이것을 쓰고 있지. 38구경. 탄창에는 8발이 들어가고 탄을 제외한 중량은 약 900g. 다루기 쉽지. 고장을 감수한다면 급한 대로 리볼버에 사용하는 38구경도 사용할 수 있어. 녹이 슬지 않도록 금속들을 전부 블루잉 처리했고 슬라이드에는 미끄럼방지용 톱니 장식을 새겼지. 안전장치도 2개나 있어서 자동권총을 불안정하다고 꺼리는 이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네.”
피카니는 고개를 저었다.
“화력이 필요합니다.”
“정녕 45구경을 고집하겠다는 거지. 그럴 줄 알고 당연히 준비했어.”
브라우닝은 다시 손을 상자 밑으로 뻗어서 우아한 손짓으로 부품들을 꺼내고는 피카니가 보는 앞에서 공구로 아까 얼추 분해했던 권총을 완전히 분해했다. 그리고 꺼낸 부품과 분해된 권총의 부품끼리 서로 합치기 시작했다. 브라우닝은 수많은 부품을 섬세한 솜씨로 시간을 들여서 전부 교체하거나 조립하고는 경건하게 말했다.
“받아라. 이것은 그대의 일부분이오, 때로는 적의 일부분이다. 이 복음으로 그대는 온 하늘 아래를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과 화음을 퍼트리리라. 내 다시 형제에게 나의 시제작 ‘거버먼트’를 양도하나니. 빈 몸의 중량은 1.1kg이오. 발당 무게 12g인 45구경의 가격은 은화 한 냥에 달한다. 그대에게는 7번의 기회가 있으며 장전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평균 0.9초라 하여도 명심하라, 빠르기보다 정확함이 우선이로다.”
피카니는 떫은 표정으로 성호를 긋고 권총을 양손으로 받았다. 그리고 이리저리 다양한 자세로 겨냥을 하면서 손에 감각을 길들이고는 탁자 위에 놓인 탄창을 손잡이 밑으로 넣었다. 피카니가 사격을 시작하기 전에 브라우닝이 말했다.
“고장에 취약한 부품들을 전부 합금 소재로 교체했어. 손잡이는 호두나무로 바꿔서 무게중심과 반동을 안정시켰지. 장담컨대 흑단이 최고라는 놈들은 겉멋 든 놈들뿐이야.”
피카니는 숨을 쉬었다가 참은 다음 한 손으로 총을 들고 세 번 쏘았다. 표적지 한구석에 구멍 3개가 모였다. 피카니는 다시 숨을 마시고 내쉬었다가 참고 네 번 쏘았다. 이번에는 표적지 가운데에만 구멍이 모였다. 그는 이번에도 총을 내리기 전에 슬라이드를 여러 번 움직여서 약실이 비었는지 확인하고 떨어진 탄피들을 긁어모아 깡통 안에 넣었다. 브라우닝을 향해 그가 말했다.
“이번에는 선생님에게서 기본무장도 받고자 합니다. 양손으로 드는 거요.”
“구체적인 요구사항은?”
“정확하면서 강력하고 많이 쏠 수 있는 것.”
브라우닝은 그의 요구사항을 입에 되새기며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한참을 생각에 빠지다가 그는 근처에 있는 상자의 뚜껑을 쇠 지렛대로 따버리고 내용물을 하나 꺼냈다. 아주 세련되고 곡선이 날렵한 소총이었다. 총몸과 개머리판은 우아한 광택이 나는 단풍나무로 만들어졌고 금속으로 된 노리쇠와 약실, 총열에는 아름다운 장식이 새겨져 있었다. 브라우닝은 그것의 총구가 하늘을 향하도록 양손으로 쥐고 그에게 쥐여주었다.
“조금 더 개선을 거쳐서 몇 년 뒤에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야. 자동권총이 있으면 자동 소총도 나와야지. 정식 명칭은 ‘모델 8’이지만 원하는 이름이 있다면 개머리판에 세례 해주겠네.”
피카니는 위에 달린 공이 손잡이를 잡아서 몇 번 움직여보고 제대로 자세를 잡아봤다. 브라우닝이 양손에 탄창을 하나씩 들고 상대에게 보였다. 하나는 작았고 다른 것은 컸다.
“하나는 다섯 발이 들어가고 다른 하나는 열다섯 발이 들어가.”
피카니는 눈을 부릅떴다.
“열다섯!”
그는 일단 작은 탄창을 받아서 총신 밑에 부착하고 노리쇠를 움직였다. 몇 번의 심호흡 뒤에 피카니는 천천히 한발씩 쏘았다. 격렬한 반동으로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그의 몸이 흔들렸다. 표적지는 완전히 찢어져서 이제는 걸린 흔적만 그곳에 남아있었다.
“전용 탄을 사용하지. 가장 강력한 거로 준비했어. 자네가 좋아하는 45구경보다 위력이 3배는 넘어. 맹수를 잡는 총알이야. 평범한 사람에게는 너무 과하겠지만 형제에게는 아무리 준비해도 과할 일이 없겠지. 어디에 쓰일지는 주님만이 아시리라.”
그는 물건이 마음에 들어서 흡족한 얼굴로 브라우닝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군요. 개머리판에 ‘딜러(Dealer)’라고 새겨주세요.”
“무슨 뜻이 담겨있는가 형제여?”
“전 제가 직접 카드를 돌리는 판은 절대 지지 않습니다.”
피카니는 짓궂게 입가를 실룩였다.
“다른 의미의 말장난도 담긴 거 같은데 거기까지는 굳이 캐묻지 않겠네.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성도들은 마땅히 곤란하고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주께서 형제의 여정으로부터 작동 불량과 불발탄 그리고 총기 폭발의 불행으로부터 지켜주시길.”
브라우닝은 소총을 돌려받고 손깍지를 거꾸로 끼고 손을 푼 다음 공구를 들었다. 피카니는 잠깐 기지개를 켜고 허리춤에 찬 수통을 입에 대고 물을 마셨다. 때마침 병원에서 출발한 일행이 사격장에 도착한 참이었다. 피카니가 그들에게 다가가며 손을 들어 인사했다.
“좋은 아침.”
레스가 인사를 받으며 투덜거렸다.
“여기까지 걸어서 오게 하다니 취급이 너무 하잖아.”
피카니가 그의 옷차림을 보고는 눈썹을 실룩였다.
“네 터번은?”
“잃어버렸어. 망토라도 남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지.”
“그럼 이제 너도 우리랑 같은 모자를 써야겠네?”
레스는 그 말을 듣고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됐어. 모자는 사양할게. 터번은 새로 만들면 되니까.”
“말이 나와서 말인데 터번은 금지야. 지금 넌 온 대륙의 주의를 받는 처지인데 그러고도 터번을 쓰고 싶어?”
“그렇게 들키는 게 무서우면 네 존재부터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냐?”
피카니가 말을 잃어버리자 일행은 웃다가 멈췄다. 루나가 말했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된 걸까요. 저분이 그 브라우닝 씨인가요?”
브라우닝은 자동 소총의 개머리판에 글자를 다 새기고 먹물을 박으려던 참이었다. 그는 잠깐 기다려달라는 손짓을 하고는 하던 일을 마치고 일행 앞에 제대로 섰다. 그가 양 손바닥을 붙여서 손끝을 앞에 세우고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일행에게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형제와 자매들이여, 조나단 브라우닝이오.”
루나도 똑같이 손바닥을 붙이고 고개를 숙였고 하딘이 앞으로 나서서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브라우닝 박사님. 인류의 진보와 전진, 그리고 전쟁의 승리는 분명 선생님 덕입니다.”
“모두 주의 덕입니다. 저 자체도 주의 일부분이듯이 저의 손에서 태어난 것 또한 주의 일부분이지요. 궁극적으로는 저의 복음을 전파하는 형제와 성도들의 덕이 곧 주의 뜻입니다.”
루나가 머뭇거리면서 손을 들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기, 지금 총을 복음이라고 비유하신 건가요? 진심으로?”
피카니가 급하게 루나에게 다가갔다.
“선생님은 언제나 진심이십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먹을 것은 저쪽에 있습니다.”
그가 루나를 데리고 서둘러서 자리를 떠나자 루나가 그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대체 저 사람 뭐가 문제죠?”
“유머 감각이 다소 남다른 분이십니다. 불경하다고 여기지는 마세요.”
어느새 레스가 자연스럽게 뒤따라오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레스가 두 사람 뒤에서 말했다.
“딱 봐도 유머 감각만 남다른 사람은 아닌데.”
피카니가 거칠게 뒤돌아봤다.
“넌 왜 따라와!”
“나도 배고프니까!”
하딘과 그 부하들은 브라우닝하고 이런저런 이야기에 빠져있는 모양이었다. 피카니는 사격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의자에 앉아 쉬고 있던 중년 사내에게 그들을 데려갔다. 루나는 상대를 알아보고 바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빈센트 중위님. 오랜만에 봬요.”
빈센트는 마침 면도하려던 참이었는지 면도칼을 펼쳐서 가죽에 대고 날을 갈고 있었다. 그는 일행들을 알아보고 반가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쾌차하셔서 다행입니다. 루나 씨. 그리고 사쿠라비도.”
레스가 자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알아요?”
“이 근처에서 자네에 관한 얘기를 안 들은 사람은 전혀 없어. 특히 나는 병원으로 직접 가서 대민지원을 갔거든. 톤토하고 같이 그쪽 둘을 보살피느라 고생 좀 했지. 다른 의사들 손에 맡길 사안도 아닌 데다가 그쪽도 우릴 도와줄 처지가 아니었거든.”
“그러니까, 당신 군의관이군요?”
레스가 그를 가리키며 말하자 빈센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른손을 뻗으며 그가 말했다.
“제대로 된 첫 만남이니까 정식으로 소개하지. 빈센트 피에르 중위다.”
악수를 받으면서 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피에르. 캘러헬처럼 쇼생 출신이군요. 그러고 보니 그 사람 봤어요? 눈에 잘 띄는 사람이니까 근처에 있다면 놓치기가 힘들었을 겁니다.”
빈센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것보다 식사 받아.”
그렇게 말하며 빈센트는 깨끗한 천으로 덮어놨던 샌드위치를 루나와 레스에게 건넸다. 내용물이 충실한 게 손으로 느껴지는 무게부터가 남달랐다. 루나와 레스가 묵묵히 샌드위치를 크게 베어먹고 우물거리자 빈센트가 앞장서서 그들을 다시 사격장으로 끌었다. 따라가면서 루나는 음식을 삼키고 그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뭐 먹어요?”
빈센트가 대답했다.
“전투식량. 그쪽은 환자니까 건강하게 챙겨 먹어야죠. 그 샌드위치는 제가 직접 만든 겁니다.”
레스도 먹던 걸 삼키고 그에게 물었다.
“쇼생 사람들은 다들 미식가라던데 사실이에요?”
“맛있는 음식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아카수스 쪽 섬사람들은 그렇다던데.”
빈센트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건 맞아. 먹는 거에 관해서 헨리와는 상종할 수가 없었지.”
루나가 지나가는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참고로 저 아카수스 사람이에요. 그중에서도 산이 많은 촌 동네에서 났어요.”
상대가 아무 말도 안 하자 루나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말을 이었다.
“못 먹을 음식이 많다는 건 저도 인정해요. 냠. 샌드위치 정말 맛있네요.”
레스는 피카니에게 몰래 속삭였다.
“요리 배워둬라.”
“그래야겠어.”
그는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