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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화 〉[4권] 142회 - 덕과 복이 함께 하기를 (142/188)



〈 142화 〉[4권] 142회 - 덕과 복이 함께 하기를

빈센트는 사격장에 있는 하딘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바로 손을 들어 인사했다. 브라우닝도 빈센트와 눈이 마주쳤고  남자는 서로 손바닥을 모아 고개를 숙여 인사를 나누었다.


“덕과 복이 함께 하소서. 찬양하나이다 주님.”


“덕과 복이 함께 하소서. 찬양하나이다 주님.”

그리고 둘은 이마와 명치를 손으로 찍고 크게 원을 그었다. 레스는 저게 이쪽 방식의 성호 긋는 법이구나 하고 얼추 짐작했다. 하딘이 빈센트를 가리키며 일동을 향해 말했다.

“아쉽게도 피에르는 이번에도 우리와 함께하지는 못한다. 대신 다른 일을 맡을 거야.”

카르델이 말했다.


“의사 양반이 다른 방향을 맡는 겁니까?”

피에르가 말했다.


“나는 그쪽으로 먼저 떠난 탐정들하고 합류한다. 거기서 소령도 만날 계획이야.”


“소령?”


아비투스가 묻자 하딘이 대답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소령이 맞다. 마침내 서류가 통과됐어.”

“세상에 맙소사.”

카르델이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레스는 무슨 소린지 알아먹을 수 없었으나 관심도 없어서 괜히 묻지 않고 얌전히 아침이나 먹었다. 레스는 타티아나가 보이지 않아서 계속 두리번거렸다. 어디로  거야?

루나가 샌드위치를 먹다가 목이 막혔는지 가슴께를 두드리자 피카니는 자기가 쓰던 수통의 입구를 깨끗한 손수건으로 닦아주고 루나에게 건넸다. 매이는 목에 물을 축이고 루나가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고마워요.”

갑자기 하딘이 브라우닝을 향해 바라보며 말했다.


“잠깐 양해 부탁드립니다. 마무리 지어야 할 문제를 지금 짓겠습니다.”

남자들은  말을 신호로 그녀와 레스를 둘러싸듯이 서서 지켜보았다. 다들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긴장한 루나는 또 목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레스가 말했다.

“갑자기 무슨 짓들이야? 밥 먹는 사람 건드리지 마!”


하딘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루나 센델자레 수석 마법사. 그대는 신의 앞에서 인류를 위해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으나 그 맹세를 어겼습니다. 부정하십니까?”

루나는 침울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레스는 대신 나서서 그녀의 편을 들어주고 싶었으나  참았다. 자신이 대신 나선다고 해결해줄 수도 없고 소용도 없는 사정이었으니, 레스는 답답했다. 루나가 들고 있던 먹다 남은 음식을 레스에게 건넸다. 양손이 자유로워진 루나는 두 손을 꽉 붙잡고 배에 대고서는 허리를 직각으로 숙이면서 땅을 향해 울먹이는 목소리로 외쳤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이 죄를 용서해달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부디 이 죄를 앞으로의 노력으로 갚게 해주세요! 참회할 기회를 주세요!”

“고개를 펴십시오! 마법사님!”


하딘은 루나보다 훨씬  목소리로 외쳤다. 루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이 자기 머리 위가 아니라 고개를 숙인 자기 머리보다도 밑에서 느껴졌다. 루나는 고개를 폈다. 그리고 앞을 보니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은 모두 한쪽 무릎과 양 주먹을 땅에 대고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레스는 눈치껏 루나의 근처에서 물러나 줬다.

피카니가 말했다.


“용기를 내어 위험한 여정에 따라와 주신 루나 씨.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하딘이 말했다.

“마법사님이 극단적인 충동을 품게 될 정도로 명예롭지 못한 짓으로 모두의 이름을 더럽힌 저의 죄를 인정합니다.”


아비투스가 말했다.


“그날 코앞에서 납치당하시는 걸 못 막았던 저의 죄를 인정합니다.”


카르델이 말했다.


“저 또한 그 순간을 생각할 때마다 남자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빈센트가 말했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수많은 아픈 자들을 보살펴주시고 헌신해주신 마법사님. 그 덕은 모두의 마음과 생명 속에 남아있습니다. 저희는 물론이고 마법사님이 살려주신 모든 이들이 마법사의 덕을 기억합니다.”


타티아나가 어느 틈엔가 루나의 바로 옆에서 나타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다정하게 말했다. 뒷전에 서서 얌전히 보고 있던 레스는 조금 놀라서 주춤거렸다.


“루나 씨는 저의 은인입니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너 설마 멋지게 등장하려고 여태껏 숨어있었냐?”


타티아나가 잡아먹을 눈으로 그를 째려보자 레스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반사적으로 움츠렸다. 한편 루나는 당황해서 두 손을 모아 가슴께에 두고 시선을 이리저리 허둥거렸다. 브라우닝이 무릎을 꿇은 남자들과 서 있는 루나 사이에 걸어 들어가고는 엄숙하고 경건하게 말했다.

“주께서 말씀하시길. ‘선행이란 물보다도 순수하여 아무리 비난을 섞어도 더럽혀지지 않는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마음과 선행으로 뉘우치며 무법자는 입으로 뉘우친다.’ 형제와 자매들. 우리 중에 죄를 짓지 않는 이는 없다. 남는 것은 앞날의 행동과 지난날의 행동뿐이다. 정직한 마음에 정직한 행동이 따라오리라. 그대들 모두 인정하는가?”

남자들이 모두 입을 모아 외쳤다. 예. 인정합니다. 타티아나는 조금 물러나 손을 모아서 공손히 섰다. 루나도 뒤따라 당차게 말했다.

“예. 인정합니다.”


브라우닝이 눈을 감고 다시 입을 열었다.

“주께서 말씀하시길. ‘네 이웃의 불의를 용서하여라. 그러면 네가 간청할  네 죄도 없어지리라. 인간이 인간에게 화를 품고서 주님께 치유를 구할 수 있겠느냐?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자비를 품지 않으면서 자기 죄의 용서를 청할 수 있겠느냐?.’ 자매여, 그대의 맹세는 아직 깨지지 않았으니 더는 부끄러워하지 마시오. 그대의 마음은 지난날의 행동으로 이미 증명되었으니 참회하는 자에게 복이 있느니라. 이제 자매와 형제는 서로를 용서하고 일어나시오.”


남자들은 모두 일어났다. 루나는 눈이 새빨개지고 물기가 맺혀있었다. 하딘이 브라우닝을 향해 말했다.


“저희 사이를 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나는 아무것도 아니오. 주의 말씀을 대신 말했을 뿐. 자매여. 괜찮소?”

루나는 눈가의 눈물을 소매로 훔치고 살짝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네. 고맙습니다. 선생님에게도 덕과 복이 가득하시길.”


하딘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묵은 짐을 털어내니 후련하군요.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루나 마법사님.”

아비투스와 카르델은 곧게 자세를 펴고 그녀를 향해 꾸벅 머리를 숙였다. 브라우닝은 일동을 향해 공손히 고개를  번 숙이고 공구가 놓인 작업대로 돌아갔다. 레스는 루나에게 샌드위치를 돌려줬다.

“중요한 일이었다는 건 알겠는데 하필 밥 먹을 때 그러는 건 좀 아니잖아.”


하딘이 말을 받았다.

“우리가 용서를 비는 대상에는 자네도 포함되어 있어. 마법사님을 구해준 게 그쪽이니까.”

“입바른 소리는 됐어.”

레스는 덤덤히 대꾸하고 마지막 남은 샌드위치를 자신의 입에  밀어 넣었다. 물 한 모금 마시지도 않고 양이 상당했던 샌드위치를 먹는 게 어지간히 신기했는지 타티아나가 그에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렇게 먹고도 목 안 막혀?”

레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씹던 걸 삼키고 대답했다.


“사막에서 살았으니까. 그런데 아까 나타나기 직전에 넌 어디 있던 거야?”

“화장실, 뒤늦게 눈치 살피다가 축지법으로 나타났다. 됐냐?”

타티아나가 또 살기 서린 눈으로 그를 쏘아붙이자 레스는 또 움츠렸다.


“미안.”

그때 저쪽으로부터 브라우닝이 높은 목소리로 외쳤다.

“미사를 거행할 준비가 되었으니 복음을 받을 형제께서는  명씩 오시오!”


레스가 중얼거렸다.

“미사?”

여태껏 얌전히 있었던 피카니가 끼어들었다.

“물론 비유법이야.”

빈센트가 먼저 저쪽으로 갔다. 브라우닝은 어느 틈엔가 탁자 위에 소총 한 자루를 올려놓고 살펴보고 있었다. 빈센트와 마주친 브라우닝이 그 소총을 가리키며 말했다.

“리엔필드 MK1. 손질 상태가 훌륭하네. 내가 손을 볼 곳이 없을 정도야.”


“그렇습니까?”

“형제가 맡은 소임은 군의관이라 했지. 이 물건에서 형제의 흔치 않은 각오가 느껴지오.”


“때로는 생명을 앗는 짓이 더 많은 생명을 구합니다.”


빈센트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씁쓸하게 읊조렸다. 브라우닝은 회중시계를 들고 말했다.


“기록해줄 테니 형제는 준비되는 대로 쏘시오.”

빈센트는 심호흡하고 탁자에 놓인 클립을 약실에 꽂아서 재빠르게 장전했다. 그리고 표적지를 향해 연사했다. 한번 쏘면 왼손만으로 총을 붙잡고 오른손으로 총열 뒤에 달린 노리쇠를 철컥 잡아당기고 순식간에 방아쇠로 손가락을 옮겼다. 비 오는 날 처마 끝에 매달린 굵은 물방울이 땅을 때리듯 규칙적으로 경쾌한 총성이 한참을 이어졌다. 사격이 끝나자 브라우닝이 외쳤다.

“7.5초! 5점에 4발, 4점에 5발, 3점에 1발. 50점 만점에 43점! 볼트 액션으로 속사해서 이만한 속도와 점수라니! ‘광란의 1분’을  정도로 다루는 이는 처음 봤네! 대단하군!”

“제 솜씨가 녹슬지 않았다니 다행이군요.”

빈센트는 겸허한 표정으로 칭찬을 받고 노리쇠를 재차 잡아당겨서 약실을 확인하고 총구가 앞으로 향하도록 탁자에 내려놓았다. 리엔필드 소총은 특유의 구조 덕분에 연사속도가 대단히 빠르다. 다만 그러한 만큼 부품들이 마모되는 속도도 빠르고 자연스럽게 고장률도 높아진다. 제대로 다루려면 사수의 재능은 물론 근면한 관리가 요구된다. 브라우닝이 경건한 목소리로 말했다.

“필요한 복음이 있다면 말만 하게 형제여.”


빈센트는 고개를 젓고 점잖게 말했다.


“한동안 생명을 구하다가 이제 생명을 앗으러 가니 용기를 돋우는 축복만 받겠습니다.”

브라우닝은 고개를 끄덕이고 허리춤에서 성수가 들어있는 플라스크의 코르크 마개를 뽑고 그의 옷에 뿌렸다.

“우리는 주님의 오른손이오, 복수의 도구일지어다. 불경한 자들은 자손이 불어나도 파멸되기 마련이오, 태어나도 저주받을 터니. 주님의 영광 아래 형제의 별빛 같은 시야는 영원하고. 의로운 행동은 빛처럼 반짝이게 되리라.”

빈센트는 성호를 그었다. 브라우닝이 상자 안에서 네모난 탄창들을 잔뜩 꺼냈다.

“본디 리엔필드는 10발이 들어가는 탄창으로도 장전할 수 있으나 비용 때문에 병사들에게는 탄창이 보급되지 않았지. 이 기회에 넉넉히 가져가게 형제여. 유용할 걸세.”

한편, 레스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아침 체조를 하고 있었다. 타티아나가 나란히 선 일행의 앞에 서서 체조 동작을 지휘하고 있었다. 돌아온 빈센트가 그들에게 말했다.

“다음 사람 오래.”

하딘이  말을 듣고 하던 체조 동작을 마무리하면서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하딘이 자리를 떠나자 빈센트가 그의 자리를 채우고 그들을 따라서 아침 체조를 했다. 타티아나는 팔과 다리를 넓게 뻗고 허리를 돌려 아주 느린 춤을 추듯이 우아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얼핏 보기에는 간단해 보였으나 보고 흉내 내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곡소리가 나오고 땀이 뻘뻘 흘렀다. 타티아나가 자세를 곧게 잡고 손뼉을 짝짝 치며 말했다.

“휴식!”

카르델과 아비투스는 그 자리에 바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얼굴에 흐른 땀을 땅으로 쏟아냈다. 피카니는 선 채로 무릎에 손을 대고 헐떡이다가 바로 옆에 있는 레스가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는  보고는 이를 악물고 자세를 제대로 잡았다. 레스는 힘들어하는 기색 없이 양팔을 터덜터덜 흔들면서 몸을 풀고 있었다. 루나는 시체처럼 흙바닥에 털썩 엎어져 있다. 피카니가 욱신거리는 허리에 손을 대고 두드리면서 레스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랑 같이 지내는 것도 꽤 익숙해진  같네.”


“쫓고 쫓기는 관계만큼 가까운 사이가 어디 있겠어. 심지어 난 잡혔지.”

레스는 하품을 하면서 손깍지를 하고서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타티아나가 이쪽으로 와서 시체처럼 꼼짝도 하지 않는 루나의 상태를 봤다. 그녀는 루나의 맥을 짚고 두 남자에게 말했다.

“뭣, 잠들었어! 지나치게 힘든 동작을 시켜서 기절이라도 한 줄 알고 걱정했더니.”


레스가 태평한 목소리로 반응했다.

“보통은 네가 시킨 근육 이완과 혈액 순환 체조 덕에 잠이 깨겠지만 이분은 반대인가 보다. 걱정되면 무릎베개라도 해주는 게 어때?”


타티아나는 정말로 루나한테 무릎베개를 해줬다. 공손한 자세로 무릎을 땅에 대고 루나의 머리를 허벅지 위에 올리자 루나는 옹알거리며 타티아나의 허리에 손까지 둘렀다. 피카니가 말했다.


“어지간히도 피곤하셨나 보군.”

레스가 말을 받았다.

“아직도 후유증이 남아있는 걸지도. 아자리도 무리해서 마법을 부렸다가 며칠을 환자처럼 골골거렸으니까.”


“너희는 어떻게 대처했는데?”


“정성껏. 섬세하게. 샤키하고 같이 사우나를 만들어서 마음껏 땀을 흘리고 쉬게 해줬어. 원래‘땀 움막’은 신성한 일에만 사용한다고 했었지. 샤키가 요리도 잘해서 매 끼니가 기대됐고. 토끼 훈제구이 맛있었지.”


타티아나가 루나의 얼굴에 손바닥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레스를 향해 코웃음을 쳤다.

“어지간히도  다크 엘프에게  빠지셨군.”


레스는 왠지 모르게  말이 거슬렸다.


“말투가 묘하다?”


타티아나가 자기한테 엉겨 붙는 루나를 달래면서 동시에 레스를 향해 짓궂은 미소를 보냈다.


“왜 묘하게 느껴지지? 응? 창피해?”

“아하. 그런 식으로 몰아넣으시겠다.”

레스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입가를 실룩였다. 타티아나는 새침하게 말했다.

“남자로서 그 다크 엘프가 여자로 보이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

갑자기 피카니와 타티아나는 피부에 소름이 쫙 돋는 걸 느꼈다. 루나도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뜬금없이 잠에서 깨고는 레스의 얼굴을 보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꺅! 왜 그러세요!”


“예? 제 얼굴이 왜요? 아무 표정도 안 지었는데요.”

레스는 어느 순간 자기가 넋을 잃어버렸다가 정신을 차렸다는 걸 자각했다. 당황해서 스스로 자기 얼굴을 쓰다듬어봤는데 그의 말대로 그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루나가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그, 그게 기척이 완전히 달라져서 당장이라도 누구 죽일  같았어요.”


피카니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화 났구나.”


타티아나가 마른 침을 삼키고 겁먹은 듯 작게 말했다.

“내가 장난이 너무 지나쳤지. 미안해.”


레스는 얼떨떨하기만 하였다.

“난 방금까지 우리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만. 잠이 모자라서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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