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화 〉[4권] 153회 - 기승
둘은 초조해지려는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시간을 들여 기회를 살폈다. 총알과 화살이 그들 주위를 계속 때리고 스쳤다. 피카니는 견제가 멈출 기미가 보이질 않아 위험을 감수하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표정이 굳었다. 후드가 달린 검은색 망토를 걸친 다섯 명의 사람들이 절도 있는 걸음으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엄호 사격을 등에 업으면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다들 후드를 깊게 눌러 썼고 눈가 아래의 얼굴까지 복면으로 꼼꼼히 감싸서 종족이나 성별 같은 특징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사실 생물학적 특징은 그들이 손에 칼을 들고 있다는 사실에 비하면 사소하긴 했다. 차림새들은 모두 청동색 단추가 눈에 띄는 외투를 입고 있다. 피카니는 본능적으로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는 걸 느꼈다.
“소위? 소위! 저것들 뭐야?”
그 말을 듣고 타티아나가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고는 저들을 보자마자 눈을 부라렸다.
“보가티에.”
“그게 뭔데?”
“정예.”
타티아나는 그녀답지 않게 긴장된 티를 내면서 심호흡을 하고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 피카니는 더 묻고 싶은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으나 그 이상한 짐승들이 또 나타나는 바람에 할 일의 우선순위를 바꿨다. 이상한 짐승들은 전력으로 달려와 걸어오는 보가티에를 추월해서 두 사람의 코앞까지 밀어닥쳤다.
피카니는 일어나서 저 앞으로 자동소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꽉 당겼다. 곰도 한 방에 쓰러트리는 대구경 탄환을 속사하는 소리가 평원의 지축을 울렸다. 짐승 무리는 쇠스랑에 찔린 볏단처럼 뭉개졌다. 자동소총의 약실이 비자 그는 순식간에 오른손만 허리춤으로 뻗어 자동권총을 꺼내 지향 사격으로 자기 목을 물어뜯으려 펄쩍 뛰어오른 짐승의 머리를 박살 냈다. 이내 소총을 멜빵으로 몸에 걸치면서 권총 손잡이를 민첩하게 양손으로 포개고 팔을 몸에 바짝 붙이면서 권총의 몸을 비틀었다. 타티아나는 가장 가까운 놈의 한쪽 다리를 찌르기로 도려내고 칼을 거두는 동시에 대각선으로 올려서 몸통을 두 도막 내버렸다.
두 사람은 서로 등을 맞대고 자신들을 둘러싸려는 괴물들에게 맞섰다. 피카니가 대각선으로 조준을 비틀고 몸에 바짝 붙인 권총으로 순식간에 방향을 바꿔가며 쏴버리자 괴물들의 포위망 절반이 파괴됐다. 그가 손목의 반동으로 빈 탄창을 빼버리고 다른 손으로 장전하는 동안 타티아나가 춤에 가까운 발동작과 공격으로 달려드는 놈들을 모조리 토막 내버렸다. 피카니는 장전을 마치고 다시 자세를 잡았고 타티아나는 얼굴에 묻은 오물을 고양이처럼 손등으로 훔치면서 손목을 돌려 칼에 묻은 피를 털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 싸울 괴물들은 이제 없었다. 대신 다른 형태의 괴물을 상대할 차례였다.
검은 옷으로 온몸을 감싼 다섯 명의 사람들이 나란히 차례대로 서서 이쪽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다 같이 군무처럼 손에 든 칼을 옆으로 살짝 늘어트렸다. 피카니는 무슨 일어날지 직감하면서도 방아쇠를 한 번 당겼다. 제일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 칼을 쥐지 않은 빈손을 앞으로 뻗고는 허공을 향해 움켜쥐자 보이지 않는 벽에 박힌 듯 떠 있던 45구경 탄환은 주름이 잡히면서 뭉개지다가 땅으로 툭 떨어졌다.
“역시나!”
피카니는 자기도 모르게 그리 외치고 탄창이 빌 때까지 계속 쏘았다. 이번에는 가운데에 있는 사람의 양옆도 손을 뻗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힘으로 총알들을 붙잡고 다른 곳으로 흘려보냈다. 피카니는 이제 어찌해야 할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그의 빈틈을 눈치채고 가장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손을 뻗으며 손가락을 튀기자 그 손끝으로부터 이상한 글자가 나타나더니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가장 왼쪽에 있는 사람이 손을 펼치고 앞으로 지르자 충격파가 불길을 키우면서 이쪽을 향해 덮치려 했다.
타티아나는 자신의 단검과 장검을 힘껏 맞부딪히면서 교차시켰다. 칼에서 기이한 소리와 파동이 일어나더니 그들을 덮치려던 불의 파도가 보이지 않는 존재와 힘겨루기를 하듯 기세가 조금 죽었다. 타티아나가 반보 앞으로 내디디면서 허리까지 써가며 칼을 횡으로 거칠게 휘두르자 불의 파도가 가로로 갈라지더니 불길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그라들었다.
이 싸움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이 저쪽으로부터 엄호 사격이나 견제 사격은 오지 않았다. 검은 옷의 무리는 뻗었던 손을 거두고 다들 타티아나를 향해 시선을 모았다. 정확히는, 그녀가 들고 있는 칼을 향해서. 가운데에 있는 자가 입을 열자 복면 너머로 뭉개진 낮은 목소리가 듣는 이의 고막을 때렸다.
“그 ‘언령 베기’는 우리 것이다. 그랜드 마스터를 팔아넘긴 것도 모자라서 네가 차지해?! 빠르고 편안한 죽음은 기대하지 마라!”
타티아나는 냉소를 섞어서 대꾸했다.
“리차트라가 후대를 생각할 위인이었다면 마계에 놔두고 떠났을 텐데 왜 너희들이 화를 내?”
“더러운 입 다물어!”
다른 사람이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여자 목소리다. 그들이 칼을 앞으로 쳐들고 이쪽으로 성큼 다가오자 타티아나도 저쪽으로 보폭을 옮기고 피카니에게 물러나라는 손짓을 했다.
같은 시간, 레스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습격자가 휘두르려는 곤봉을 권총으로 쏴서 부숴버렸다. 상대가 거기에 놀라서 정신을 파는 틈에 레스는 주먹을 상대의 이마에 꽂아 넣고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그의 뒤로 구급낭을 온몸에 잔뜩 매고 있는 루나가 졸졸 따라다니면서 주변에 늘어선 사람들을 부지런히 하나씩 살피면서 중얼거렸다.
“경상, 경상, 기절, 중상, 중상. 레스 씨 저쪽이 더 급해요! 서둘러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짐승들이 사방으로부터 몰려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레스는 반사적으로 루나를 자신의 등 뒤로 감추고 잠깐 권총을 왼손으로 옮긴 다음 손목을 돌려 오른손을 풀었다. 한 번 심호흡하고서 그는 권총을 도로 오른손으로 던져서 쥐고 몰려오는 짐승들을 향해 겨눴다. 총을 허리춤에 대고 패닝을 하자 44구경 탄의 격렬한 반동이 그의 손목으로부터 어깨까지 감전된 것 같은 통증을 일으켰다. 레스는 이를 악물면서 권총의 손잡이를 왼손으로 바꿔서 쥐고 정조준으로 자세로 계속 쏘았다. 그가 9발을 전부 쏘는 순간 그걸 노리기라도 한 듯이 숨어있던 한 마리가 측면으로부터 달려들자 루나가 지팡이를 쳐들면서 외쳤다.
“저리 가!”
난데없는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치더니 짐승은 갑자기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다. 레스는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눈이 휘둥그레 떴다. 그러다 루나가 하늘을 바라보는 걸 보고 레스도 시선을 위로 올렸다. 때마침 짐승이 땅으로 돌아왔다. 소리가 질퍽거렸다.
“엄마야!”
그녀가 기겁하며 뒤로 주춤거렸다. 레스는 꿈에 나올까 두려운 장면을 다른 생각으로 잊으려고 권총을 장전하면서 루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것들 대체 뭡니까? 야생을 돌아다니면서 괴물은 종종 봤는데 이런 건 못 봤어요.”
그의 망토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입을 막으며 헛구역질을 참던 루나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야생에서는 못 봐요. 이것들은 만들어졌으니까요.”
“세상에! 대체 우리가 뭐랑 싸우고 있는 거야?”
루나는 한 번 헛기침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그러다 사방의 끔찍한 광경 때문에 또 헛구역질했다. 쉰 목소리로 그녀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조종되고 있죠. 물려 죽은 말은 한 마리도 없는 거 눈치채셨나요? 사람만 공격당하고 있어요. 서둘러서 근방에 숨어있는 마법사를 찾아내야 해요.”
레스는 장전을 마치고 약실이 정상적인지 확인하기 위해 탄창을 돌렸다. 떨그럭하는 소리가 경쾌했다. 그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렸다.
“이 지경이 됐는데 그 자식들은 어디서 뭘 하는 건지.”
“누구를 말씀하시는 거죠?”
레스는 고개를 저으면서 걸음을 서둘렀다. 루나도 뒤를 따랐다. 급하게 달리면서 그가 말했다.
“아뇨! 신경 쓰지 마세요! 급한 불부터 끕시다!”
“예!”
두 사람은 행렬 앞쪽으로 나아가면서 부상자를 보살피거나 투항하지 않고 덤비는 습격자들을 제압했다. 달아날 수 있는 습격자들은 이미 달아났고 남은 건 행렬의 병사들과 어쩔 수 없이 남은 습격자들, 그리고 사람이 아닌 것들이었다.
루나가 잔뜩 매고 왔던 구급낭은 금방 동이 났다. 그녀는 손이 닿는 대로 원주민들에게까지 붕대를 나눠주고 있었다. 레스는 루나의 행동에 반대도, 찬성도 안 하고 그녀가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동안 열심히 망을 봤다. 그 모습을 본 어떤 부사관은 그녀에게 할 말이 많았다.
“이 년아 지금 뭐 하는 거야! 모자란 붕대를 왜 야만인한테 낭비하는데!”
그 부사관은 방금 루나한테 응급처치를 받고 다친 곳을 붕대로 압박하고 있었다. 호통을 들은 루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동작이 굳어버렸다. 레스는 어금니를 한 번 깨물었다가 품에서 건빵을 꺼내고 반으로 쪼갰다. 그리고 부사관을 향해 성큼 다가가고는 그의 입에 건빵들을 쑤셔 넣었다.
“우우우우웁?!”
“덕분에 살았으면 닥치고 있어.”
레스는 부사관을 향해 차갑게 쏘아붙이고 루나의 어깨를 잡으며 다른 곳으로 끌었다. 루나는 코를 훌쩍이면서 눈가를 비비다가 그를 향해 물었다.
“건빵은 언제 챙기셨어요?”
“싸우다가 배고프면 큰일이잖아요.”
“그렇긴 하죠.”
해충들처럼 쉬지 않고 나타나는 짐승들을 무찌르면서 두 사람은 마침내 하딘과 기병대들이 있는 맨 앞에 도착했다. 병사들은 마차에서 내린 화물을 엄폐물 삼아 숨어있었고 저 건너편에는 원주민들이 쌓아 올린 시체들을 엄폐물 삼아 숨어서 아직도 저항하고 있었다. 하딘은 레스와 루나의 도착을 단번에 감지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그가 자세를 낮추면서 이쪽으로 다가와 두 사람에게 말했다.
“저기 농성하고 있는 놈들만 제압하면 이쪽은 완전히 정리됩니다. 큰 거 한방 부탁드립니다!”
“주… 죽이라고요? 저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당황한 루나에게 한창 전투 때문에 흥분된 하딘은 앞뒤 안 가리고 소리쳤다.
“안 그러면 저희가 죽습니다! 느긋한 소리 마십시오!”
레스가 루나를 자신의 등 뒤로 감추면서 하딘에게 나무라는 눈빛과 표정을 지었다. 물론 전투 때문에 격앙되어 있던 하딘은 레스를 향해서도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레스는 상대의 반응은 무시하고 침착하게 말했다.
“저 사람들도 더 싸워봐야 의미 없다는 걸 알 겁니다. 이성이 있다면 투항하겠죠.”
하딘이 거칠게 말했다.
“여기가 지금 이성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인가?!”
레스는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다른 생각으로 발상을 발전시켰다.
“그럼 이성을 되살리면 되겠네. 루나 씨. 저한테 걸었던 암시를 응용하면 어떻습니까? 저 사람들 제정신을 되찾게 해봐요.”
루나는 잠깐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너무 멀어요. 저쪽으로 가까이 가야 해요.”
하딘은 두 사람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바로 깨닫고 레스의 양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제정신이야?! 너하고 마법사님의 목숨에 얼마나 많은 것이 걸렸는지 알아?!”
“모두의 목숨이 걸렸지. 그리고 지금 책임을 지러 가는 거고. 갑시다!”
레스는 당당하게 대답하며 그의 손길을 뿌리치고 루나의 손을 잡아서 일으켜주었다. 하딘은 옷깃이라도 붙잡아서 그들을 말리려다가 기회를 놓치고 어쩔 수 없이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엄호해라! 저 둘을 지켜라!”
레스는 루나를 자신의 등 뒤로 감추고 같이 공격이 오가는 벌판을 터벅터벅 걸었다. 권총은 총집에 꽂혀있었다. 그는 빈손을 어깨 위로 들면서 습격자들을 향해 외쳤다.
“더 싸워봤자 의미 없습니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세요! 반복합니다! 투항하세요!”
원주민 중 하나가 이쪽을 향해 화살을 쏘자 레스는 맨손으로 자신을 향해 날아온 화살을 붙잡고 아무렇지도 않게 땅으로 버렸다. 계속 다가가면서 그가 외쳤다.
“더 피를 흘릴 필요는 없습니다! 진정하세요! 대위! 엄호는 필요 없어! 그만 공격해!”
하딘의 근처에 있는 병사가 기가 찬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대체 저 새끼 뭐 하는 놈입니까?”
“나도 항상 궁금해. 망할. 사격 중지! 반복한다! 사격 중지!”
저쪽으로부터 들리던 총성이 멎자 흥분과 공포에 빠졌던 습격자들은 숨을 고르고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의문의 남자와 여자를 바라보았다. 마치 신화나 전설에 등장할 법한 비현실적인 광경에 양측은 잠깐 넋을 잃었다. 두 사람은 대치하고 있는 두 진영의 한복판에 섰다. 참으로 짧고도 먼 거리였다. 루나는 목을 가다듬고 지팡이를 양손으로 쥐면서 심호흡했다. 그녀의 눈에서 사파이어처럼 맑고 푸른 안광이 흘러나왔다.
“누구도 죽이거나 죽을 필요가 없도다! 나의 말을 따라 모두 무기를 내리거라!”
그 거룩한 목소리에 레스도 기분이 고조돼서 거기에 자신의 말을 덧붙였다.
“무기는 흙이 되고 피는 물이 되리라! 의미 없는 죽음에는 영광도 없다! 그대들이 명예를 안 다면 선조와 후손을 위해 살아남아라!”
“모두, 정신 차리세요!”
루나가 음정이 엇나간 목소리로 외치면서 지팡이를 땅에 내리찍자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이 원형으로 퍼져나갔다. 파동에 휩쓸린 사람들은 귀신에 홀린 듯 잠깐 감정과 표정을 잃어버리다가 각기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누군가는 싸움을 잊어버리고 땅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흐느꼈고, 누군가는 땅으로 토악질했고, 누군가는 기절했고, 누군가는 하늘을 향해 어머니와 아버지를 찾았고, 누군가는 묘비처럼 멍하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무튼, 싸움은 끝났다. 두 사람이 뒤를 돌아보니 제국군 병사들도 파동에 휩쓸리면서 원주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반응을 겪고 있었다. 하딘조차 자신의 눈가를 부여잡으면서 반작용에 맞서 싸우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레스와 루나는 많은 생각이 들어 잠깐 넋을 잃었다. 이내 먼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란이 둘의 정신을 일깨웠다. 레스는 권총을 뽑고 소란이 들리는 곳으로 달렸고 루나도 자연스럽게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행렬의 측면으로 갔고 피카니와 타티아나가 싸우는 모습을 봤다. 피카니는 자리를 바꿔가면서 자신이 가진 모든 탄약을 써가며 행렬로 향하는 짐승들을 막았고 타티아나는 검은 옷을 입은 무리를 홀로 상대하고 있었다. 때마침 자리를 바꿨던 피카니는 레스와 루나하고 눈이 마주쳤다. 피카니가 외쳤다.
“레스! 탄약이 떨어졌어! 소위도 상황이 안 좋아!”
루나가 피카니를 향해 외쳤다.
“다친 곳은 없으시나요!”
피카니가 루나의 목소리를 듣고 표정이 밝아졌다.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짐승들을 부리는 놈이 어딘가에 있습니다. 확인할 여유가 없어서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레스가 저쪽에 진을 치고 있는 습격자들의 규모를 보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차피 저기에 숨어있겠지. 아 이런.”
레스가 짐승들이 이쪽을 향해 일제히 몰려오는 광경을 보고는 얼굴이 굳었다. 그때 숨을 다 고른 하딘이 그들을 향해 외쳤다.
“저쪽 마차에 맥심 건이 실려있어! 서둘러! 조립할 시간이 촉박해!”
하딘과 레스는 그가 가리킨 마차로 달려가서 같이 묵직한 상자를 바깥으로 꺼내고 내용물을 꺼냈다. 삼각대를 펼치고, 기관총을 올렸는데 뭔가 이상했다. 기관총이 생각보다 가볍다. 하딘이 욕지거리를 했다.
“블러디 헬, 냉각수가 없어! 탄약통은 언제 오는 거야! 빨리 찾아 애물단지야!”
마차 짐칸을 뒤지고 있던 피카니도 그에 질세라 거칠게 외쳤다.
“캄캄한 데다가 여기 상자가 어디 한두 개입니까!”
총체적 난국이었으니 루나는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앞으로 나서서 지팡이를 들었다. 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달궈져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고 그녀의 눈은 고열의 불꽃처럼 선명한 푸른색 안광이 번뜩였다. 루나가 지팡이를 높이 쳐들고 땅에 찍었다.
“아다치아 익사티오 그란데 로스브로크!”
방금 삼각대에 올린 기관총이 떨어질 정도로 땅이 크게 진동하더니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남자들은 뒤늦게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레스와 하딘, 피카니는 난데없는 지각 변동 현상의 진동으로 뇌수가 흔들리고 정신이 반쯤 나가버렸다. 루나가 바라보는 방향으로부터 커다란 부채꼴 범위의 땅 밑에서부터 대규모 폭발이 일어나 솟아오른 파편과 흙덩어리들이 우박과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돌은 달궈져서 붉게 빛났고, 모래는 유리로 변하고, 짐승들은 겉이 타버린 살 토막이 되어 거인이 도끼로 내려친 듯 갈라진 땅속으로 파묻혔다. 루나는 헉헉거리면서 지팡이에 기대어 비틀거리다가 옆으로 쓰러졌다. 피카니가 이성을 잃은 목소리로 외쳤다.
“루나!”
피카니는 루나에게 달려갔다. 루나는 피카니가 맡았고 하딘은 다시 현장을 정리하러 자리를 떠났다. 레스는 타티아나를 찾았다.
당연히 그녀는 지금 아주 바빴다. 타티아나가 몸을 돌리면서 공격을 피하는 동시에 회전을 실어 역수로 쥔 장검으로 올려 베자 상대가 휘두른 칼 가운데가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칼이 망가진 상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잘려서 떨어진 칼날을 염력으로 들어서 잘린 곳에 갖다 대더니 한번 거칠게 호흡을 내쉬자 순식간에 칼이 붉게 달아올라 부러진 것들끼리 서로 달라붙었다. 다른 보가티에 둘이 손을 뻗어서 벼락의 줄기와 화염의 파도를 양쪽에서 날리자 그녀는 단검을 역수로 쥐고 장검을 똑바로 쥐어서 춤을 추듯 발을 놀려 풍차처럼 몸을 돌렸다. 불과 바람, 벼락의 폭풍이 그녀를 둘러싸 빛의 소용돌이가 일었다. 타티아나는 거친 숨을 한 번 뱉고 칼을 십자로 교차시켜 자세를 고쳐잡으며 자신을 포위한 자들과 대치했다.
조명탄의 불꽃이 꺼져간다. 어둠이 다가왔고 그녀의 고양이 눈도 번뜩였다. 어둠 속에서 추가 달린 굵은 밧줄이 날아오더니 생물처럼 저절로 움직여서 그녀를 휘감으려고 했다. 타티아나는 단검으로 몸에 감긴 밧줄을 잘라내고 자리를 옮기려다가 사각에서 날아온 다른 밧줄에 발이 묶여서 축지법에 실패하고 어색하게 한쪽 발만 움직이다가 땅으로 엎어졌다.
“윽….”
그녀를 둘러싼 보가티에들이 자신의 빈손 위로 도깨비불을 하나씩 띄우며 저벅저벅 다가왔다. 타티아나가 칼을 휘둘러 밧줄을 잘라내려고 하자 두 명이 밧줄을 던져 그녀의 양팔을 낚아챘다. 완전히 제압된 그녀를 향해 남자가 말했다.
“배신자에게 도망치거나 숨을 곳은 없다.”
그때 말발굽이 땅을 때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총성과 함께 타티아나가 단검을 쥔 팔을 붙잡고 있는 밧줄 하나가 끊어졌다. 다른 총성이 울리자 보가티에 중 하나가 총알을 붙잡았다. 레스는 레버 액션 소총의 개머리판을 겨드랑이에 끼워서 레버를 움직이고 고삐에서 손을 놓았다. 그리고 양손으로 소총을 들고 저쪽을 겨눴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자 보가티에가 붙잡은 총알에 총알이 박혀서 총알들이 상대의 어깨를 관통해버렸다.
“뭣?!”
그들이 당황한 사이 타티아나는 잽싸게 몸에 걸린 밧줄들을 잘라내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거칠게 숨을 헐떡이는 그녀를 향해 말을 몰면서 레스가 외쳤다.
“올라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