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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4화 〉[4권] 154회 - 심판과 집행 (154/188)



〈 154화 〉[4권] 154회 - 심판과 집행

타티아나는 칼을 허리춤에 차고 자신을 향해 오는 레스의 손을 맞잡아 실크 스카프가 목에 휘감기듯 가볍게 몸을 날려 그의 뒤로 착지했다. 그녀는 발에 닿는 감촉이 묘한 걸 느끼고 밑을 보고는 놀라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안장은 어디 갔어?!”


“앤 군마가 아니야! 마차에서 떨어져 나온 녀석을 빌렸어!”

지금 그들이 타고 있는 말의 품종은 체격과 체력이 좋은 대신 속력은 떨어지는 편인데 등자와 안장이 없는 덕에 말에게 가해지는 부담이 적어져서 그들은 비교적 빨리 달릴 수 있었다. 레스는 타티아나가 자신의 옷깃을 잡는 와중에도 거의 다리 힘만으로 매달려 있는 중이다.

그녀가 뒤를 쳐다보고 말했다.


“뒤에 온다!”


검은 옷의 무리가 각자 괴물의 등에 올라타서 쫓아왔다. 다들 고삐 대신 목줄 같은 것을 양손으로 쥐고 있었다. 타티아나가 권총으로 애써 맞추려고 했으나 서로 빨리 움직이는 와중이니 맞추는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레스는 고삐를 입에 물고 소총을 양손으로 잡고는 레버를 움직였다. 고삐는 도로 왼손으로 쥐고 총을 자신의 오른쪽 어깨에 거꾸로 걸치고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서 그는 외쳤다.

“머리 숙여!”

타티아나가 그의 등에 머리를 박자 레스는 거꾸로 걸친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가장 바짝 붙은 놈이  괴물의 머리에 탄환이 박히자 상대는 낙마했다. 그동안에 다른  놈이 이쪽을 좌우로 포위하려 하자 레스는 소총의 레버에  손가락에 힘을 단단히 주고 어깨에 걸쳤던 총을 밑으로 거칠게 젖혔다가 반동을 살려 위로 되돌렸다.

왼쪽에 있는 놈이 오른손에 든 칼을 휘두르려 가까이 다가왔다. 레스는 고삐를 입에 물고 왼손으로 권총을 뽑았다. 그리고 공이의 걸쇠를 앞으로 젖히고 방아쇠를 당겼다. 르맷 리볼버의 하단 총열에 장전된 산탄이 상대가 타고 있는 괴물의 앞다리들을 다져버리자 칼질은 허공만 가르고 탑승자는 낙마했다. 이제 그가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렸더니 상대가 빈손을 이쪽으로 뻗었고 손끝에는 빛나는 글자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녀가 다급하게 외쳤다.


“방향 틀어!”

레스가 방향을 돌리자 그의 뒤에 탄 타티아나가 저쪽을 향해 칼을 휘둘러 상대가 손끝으로부터 뿜어낸 불길의 파도를 밀어냈다. 불길이 사그라들기 직전 잠깐 밝아진 어둠 속으로 레스는 자신의 왼쪽 겨드랑이 사이로 소총을 집어넣고 뒤를 향해 지향 사격을 했다. 탄환이 팔을 관통하자 상대는 칼도 놓치고 목줄도 놓치면서 땅을 거칠게 굴렀다. 그는 권총을 총집에 꽂고 고삐를 쥐면서 오른손으로는 소총을 거칠게 한 바퀴 돌려서 장전했다. 그는 말의 목을 쓰다듬어서 칭찬해주고 뒷사람을 향해 물었다.


“다른 놈들은?!”


“낙마한 놈들을 지키러 물러났어! 이제 우릴 쫓아오는 건 없어!”


타티아나가 질리지도 않고 또 한차례 몰려오는 괴물 무리를 보고는 급하게 말을 바꿨다.

“방금 한 말 취소!”


“너도 급한 상황일수록 농담하는 부류구나?!”

“웃자고 한 거 아니거든! 이제 어쩔 거야?!”


당장 달려도 모자랄 판에 레스는 말의 목을 한  쓰다듬어서 달래주고는 말이 숨을 고를 틈을 주었다. 그가 계속 외치느라 조금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 생각이 있어!”


“말해봐!”

“놈들이 생포해야 할 목록 중에 분명 내가 있을 거야! 아마 너도! 그래서 저쪽이 여태껏 우릴 쏘질 않는 거고! 괴물들을 행렬로 끌고 가느니 차라리 저쪽으로 가자!”


타티아나는 바로 답했다.


“그럼 그렇게 해!”


레스는 습격자 대열을 향해 박차를 가했다. 그가 달려드는 방향에 있는 원주민들이 당황하면서 그를 피해 자리를 벗어났다. 말을 탄 두 사람을 쫓아서 괴물들도 몰려왔다. 혼란에 빠진 일대를 휘저으면서 레스는 목소리가 묻히지 않도록 최대한 목청을 키웠다.

“목표물은 어디지?! 난 못 알아보겠어!”


타티아나가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고 뚜껑을 열자 안에 들어있는 오르골의 톱니가 움직이면서 아무도 듣지 못할 곡을 연주했다. 이내 주변의 괴물들이 한꺼번에 현기증을 느끼고 머리를 땅에 처박고 끙끙거렸다. 타티아나는 숨을 쉬기가 힘들어졌으나 어떻게든 견뎌내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같이 사방을 살피던 레스는 유난히 눈에 띄는 곳을 알아채고 외쳤다.


“찾았어! 저기가 수상해!”

타티아나도 그쪽을 보고는 이빨 사이로 쌍소리를 뱉었다. 다른 보가티에가 그쪽에 넷이나 더 있었고 그들이  명을 둘러싸서 지키는 중이다. 그녀가 외쳤다.

“난 지금 축지술을 못 써! 오르골의 효과는  분 뒤에 사라질 거고!”

레스가 저쪽으로 말을 몰면서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저격할 기회도 거의 안 남은 건가?!”


“저것들은 몸으로라도 저격을 막아낼 거야! 막다른 길이라고! 돌아가야 해!”

레스는 말의 속력을 낮췄다.

“지금 자리 바꿀 수 있어?!”

“뭐?!”


“자리 바꿀 수 있겠냐고! 나 대신 말을 몰아줘!”


“무슨 생각인데!”


“급하니까 할 수 있으면 당장 해!”

타티아나가 손짓으로 대답하자 레스는 고삐에서 손을 놓고 소총을 끌어안으면서 말의 등위에 몸을 옆으로 대굴거려서 뒤로 갔고 타티아나는 폴짝 뛰어서 건너편으로 착지했다. 말의 몸집도 크고 속력을 낮춘 상태라지만 곡마단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었다. 타티아나는 고삐를 쥐자마자 발을  등자와 안장이 없어서 순간 당황했다. 이내 허벅다리에 힘을 바짝 주면서 쏴야할 목표물의 주변을 빙 둘러서 달렸다.


원주민들은 자신들과 뒤섞인 괴물들에게 정신이 팔린 참이다. 확실히 기회는 지금이 유일할 것이다. 타티아나가 그에게 무슨 생각이냐고 물을 생각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그녀는 말을 잃고 턱을 떨궜다. 레스는 달리는 말 위에  발을 올리고 두 다리와 허리를 일자로 똑바로 펴서 곧게 서 있었다. 그는  손을 타티아나의 어깨에 올리고 잠시 균형을 잡았다. 지극히 차분한 목소리로 주문을 읊듯 그가 중얼거렸다.


“그대로. 그대로. 좋아. 계속 이대로.”


말 위에 똑바로 서서 바라보는 세상과 땅에 있는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은 차이가 컸다. 레스는 타티아나의 어깨에서 손을 뗀 다음 균형감각만으로 버티면서 소총을 양손으로 잡고 정조준 자세를 취했다. 저쪽에 있는 놈들이 필사적으로 마법사를 지키기 위해 뭉쳐서 벽을 만들려 했으나 고지에 있는 레스의 조준은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철의 화살이 어둠을 가르며 초연으로 만들어진 날개를 펼쳤다. 탄환이 몸으로 방패가 되어주려던 놈의 쇄골 부근을 뚫고 목표물에게 닿았다. 당황한 대열이 무너지는 틈을 노려 레스는 레버를 움직이고 다음 탄환을 마법사의 어깨에 맞췄다.  순간 이미 제정신을 가누지 못하던 괴물들이 일제히 바보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어슬렁거리거나 제자리에서 기절해버렸다. 레스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치며 자세를 쪼그렸다.


“방랑자에게 막다른 길은 없어!”


타티아나는 너무 놀라 그 광경을 남 일처럼 넋을 잃고 멍하니 보고 말았다. 레스가 자연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잡으면서 뒤에 자리를 잡고는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한테는 추임새  넣어줄 거야? ‘명중’이라고 해봐.”


그녀는 표정 관리가 안 되는 얼굴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타티아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대강 눈치를 보다가 레스는 실망하는 말투로 자기 질문에 스스로 답했다.


“됐어. 이만 돌아가자고. 임무 완료-”

그들이 탄 말이 총에 맞고 옆으로 고꾸라졌다. 레스는 반사적으로 타티아나를 끌어안으면서 땅을 굴러 낙법을 했다.  사람은 앓는 소리를 내면서 서로에게서 떨어지고 급히 몸을 일으켰다. 타티아나는 사방으로부터 몰려오는 포위망을 보면서 아픈 몸을 두드리며 무기를 꺼냈고 레스는 다친 말을 향해 기어갔다. 말은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레스가 말의 갈기와 목을 쓰다듬어주면서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어떻게든 달랬다. 말에게는 가망이 없었다. 포위망이 그들을 감싸자 레스는 이를 악물고 권총을 말의 머리에 대면서 읊조렸다.

“아타마나 안 야수닥 알무타자이 알압으디우 민 와라익(저 너머에서 영원한 방랑자가 너를 거둬주기를).”


총성이 퍼졌다. 타티아나가 장검과 단도를 양손에 쥐면서 그를 안 쳐다보고 말했다.

“마음은 알겠는데 지금 그럴 때가 아니야.”

말의 눈을 감겨주고 레스는 가라앉은 기분으로 주변을 살폈다. 원주민 습격자들은  사람을 위협하거나 경계하기보다는 다른 세상의 생물을 보듯이 시선에 경외심이 깃들어 있었다. 대조적으로 보가티에들은 노골적으로 적대하는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면서 하나둘 인파 속에서 나타나 두 사람 앞으로 모였다. 9명이 나란히 그들 앞에 늘어섰다. 제일 가운데에 있는 남자가 레스를 향해 말했다.

“네가 마왕을 잡아갔던 날 우리도 있었다. 그때 날 죽였어야지.”


레스는 권총을 죽은 말 근처에 내려놓고 상대에게 빈손을 보여주면서 침착하게 말했다.


“누구신지?”

“날 기억하지도 못하나.”

“그때 검정 옷을 입었던 친구가 어디 한둘이었어야지.”


남자가 콧방귀를 뀌고 칼을 쳐들어 타티아나를 향해 가리켰다.


“투항해라. 아니면 도망치거나. 너라면 지금  남자를 남겨두고 사라질 수 있을 터.”

그녀는 초조해하면서 지금 상황과 레스를 번갈아 보았다. 긴 고민 끝에 그녀가 축지법을 위해 자세를 낮게 잡으면서 숨을 들이쉬려 하자 아홉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빈손을 앞으로 뻗고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그녀를 붙잡아 땅으로 찍어눌렀다. 레스가 외쳤다.


“타티아나!”

숨도 제대로 쉬질 못하고 있는 그녀를 향해 남자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 목숨이 걸린 판에 이렇게나 주저하다니. 저년답지 않아. 낙마했을 때 바로 도망쳤으면 됐을 것을. 사람이 변하기도 하는군.”

타티아나 주변의 땅과 풀까지 납작하게 눌리고 있었다. 레스가 두손을 더 올리면서 외쳤다.


“그만! 투항한다! 나도 어차피 저쪽한테 포로로 잡혀있던 신세였어! 협력할 테니 그만!”


남자가 앞으로 뻗었던 손을 거두면서 정중한 손짓을 하며 레스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럴 의무가 있으시니까.”

그러다 칼을 위로 쳐들면서 말했다.

“하지만 배신자에게 자비란 없어. 손가락부터 시작해볼까.”


레스가 뒤늦게 땅에 둔 권총으로 손을 뻗으려 하자 남자가 보이지 않는 힘으로 레스의 목을 움켜쥐고 상대를 통째로 들어 올렸다. 레스가 쥔 권총도 보이지 않는 힘에 붙잡혀 엉뚱한 방향을 향해 굳었다. 남자는 레스가 산소 부족으로 기절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계속 집중하느라 허공을 움켜쥔 손과 팔에도 저절로 힘이 들어가 부들부들 떨었다. 결국 레스의 손에서 힘이 풀려 권총이 땅으로 떨어지자 남자는 손을 거두고 레스가 털썩 쓰러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또 콧방귀를 뀌었다.


그들은 기절한 타티아나와 레스를 내버려두고 의논했다. 남자를 향해 누군가가 물었다.

“총알받이로 쓸 괴물들은 쓸 수 없게 됐는데 이제 어떻게 합니까?”

남자가 넌지시 물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우리에게 총알받이가 모자란다고?”

누군가는 원주민들로 가득한 주위를 둘러보고는 상대의 의도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대로 하겠습니다.”

남자가 손목을 돌려 칼을 우아하게 고쳐잡으며 칼집에 꽂아 넣었다.

“절반 얻었고, 절반 남았다. 장군께서 기뻐하시겠군. 쓰 나미 보흐(신께서 함께하신다).”

“쓰 나미 보흐.”


그의 선창을 따라서 일동이 엄숙하게 외치자 화음이 울렸다. 그런데 난데 없는 곳으로부터 들리는 소란이 시끄러웠다. 뭔지는 몰라도 소란의 원인은 점점 가까워졌고 당연히 더욱 시끄러워졌으니 자연스럽게 그들은 신경이 저쪽으로 쏠렸다. 남자가 손짓으로 그들   명에게 가서 보라고 지시했다.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돌아온 동료에게 남자가 가벼운 투로 물었다.


“무슨 난리지? 캘러헬이라도 행차했나?”

“그… 그게….”


동료가 하던 말도 제대로 맷질 못할 정도로 당황해하고 있기에 남자의 여유로웠던 태도가 자못 심각해졌다.


“그럴 리가. 정보대로라면 캘러헬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고 들었는데.”


인파들을 가르면서 나타난 누군가가  말에 대신 대답했다. 철모 안에서 메아리를  굵은 목소리가 윙윙거리며 그들에게 닿았다.


“이름을 댈 만큼 거창한 몸은 아니다만.”

그는 십자 모양으로 시야와 숨구멍만 간신히 나 있는 머리 전체를 덮는 철모와 전신을 가리는 갑주로 무장했으며 땅에는 관만큼 거대한 나무 상자를 밧줄에 매달아 질질 끌었다. 사람들은 알아서 길을 비켜주고 있었다. 원주민들은 그를 제지하거나 말조차 걸 엄두도  내고 서둘러 물러나기 급했다. 보가티에 일동도 상대의 존재감으로부터 나타난 알 수 없는 감정 때문에 그들의 몸과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갑옷을 입은 사람이 나무 상자를 근처에 대충 두고 하던 말을 마쳤다.

“날 그 놈팡이에 비견하다니. 치욕이군.”

검은 망토와 후드, 외투로 몸을 칭칭 감은 아홉의 앞으로 철갑으로 무장한 하나가 대치했다. 사람들이 알아서 물러난 덕에 그들 주위로 투기장처럼 원형의 공터가 생겼다. 남자는 방금 허리에 꽂았던 칼을 신중히 느리게 뽑으면서 상대를 향해 겨누고 외쳤다.

“기사  기사로서 말하나니. 나는 시에라의 발라팡! 제국의 검이자 인민들의 방패다. 그대는 누구인가!”

“오르메의 베르나르.”

그의 이름이 저들에게 닿자 일동은 동요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일제히 검을 뽑고 자세를 잡았다. 남자가 앞장서서 외쳤다.

“기사  기사로서. 검을 뽑아라!”

“검을 뽑으라고? 미개하긴.”

베르나르는 가소롭다는 듯 기우뚱 고갯짓하고 근처에 놔둔 나무 상자를 밟아부수고 내용물을 번쩍 들어올렸다. 400발들이 탄통을 결합한 M1895 콜트 브라우닝 공랭식 기관총이다. 탄약 무게까지 합쳐서 25kg은 가볍게 넘을 기관총을 베르나르는 평범한 소총처럼 다루어 자세를 잡고 방아쇠를 당겼다. 기관총의 무지막지한 소음에도 묻히지 않을 만큼 엄청난 성량의 목소리로 그가 쩌렁쩌렁 외쳤다.

“주님은 심판하고! 내가 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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