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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9화 〉[5권] 169회 - 주거니 받거니 (169/188)



〈 169화 〉[5권] 169회 - 주거니 받거니

한참 멀리 떨어진 곳. 타티아나가 고양이 귀를 쫑긋거리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어디서 누군가가 비명을 지른 거 같은데.”

카르델이 꿍얼거렸다.

“그래서 왜? 가서 핥아줄 거야?”

“원 스트라이크. 팔 이리 뻗어.”

그들은 고대 유적만큼이나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사격 훈련장에 있었다. 타티아나는 수건에 알코올을 적셔서 방금 붕대를 벗은 카르델의 악취 나는 팔을 깨끗하게 씻었다. 그리고 혈관을 따라서 섬세하게 손을 더듬거리다가 지압할 곳을 찾아서 꾹꾹 눌러주었다. 카르델이 지압을 받을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야릇한 신음을 뱉다가 상대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까  스트라이크라고 했지. 왜? 그리고 삼진 아웃이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데?”


“무법자라면 스스로 답을 찾아봐. 팔은 어때? 뼈에 통증은 있어?”


“하나도 안 아파, 그냥 살짝 삐끗한 거였나 봐. 마법사님이 너무 호들갑을 떠셨어.”

루나가 뚱한 표정을 지으며 투덜거렸다. 근처에 돗자리를 깔고 무릎을 껴안으며 앉아 있었다.

“호들갑은 캐시디 씨가 하셨죠.  죽는다고 아우성치실 때는 언제고.”


“캐시디라고 하지 마요. 여자 이름 같아서 신경 쓰여요.”

“캐시디!”

루나가 유치하게 외치자 카르델이 정색하고 루나를 노려보았다.

“저 진지합니다. 제발.”
루나는 상대의 눈동자로부터 뿌리 깊이 박혀있는 공포를 엿보았다. 그래서 루나는 그만두었다. 카르델은 다시 지압을 받으면서 망측한 신음을 흘리다가 눈을 감으면서 중얼거렸다.


“하으으응. 역시 고양이라 그런지 꾹꾹이 솜씨 끝내주네.”


“투 스트라이크.”

타티아나가 차갑게 외쳤다. 카르델이 눈을 뜨고 한쪽 눈썹을 까딱거렸다.

“허? 고양이에 비유하는 농담이 문제였어? 까탈스럽기는.”

“삼진 아웃 걸리면 평생 길이길이 남을 교훈을 가르쳐줄 테니 잘 처신해.”

그녀는 루나가 깔아놓은 돗자리에 누워있는 레스를 바라보았다. 레스의 얼굴에는 햇빛 가리개 용도로 하얀 손수건이 덮어져 있었다. 손수건이 조금씩 들썩거리는 거로 보아 숨은 쉬는  확실한데 몸뚱이는 시체처럼 꿈쩍도 안 했다. 루나가 타티아나의 시선을 의식하고 말했다.


“하자르 씨는 대체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잠도 편히 못 주무시다니.”


카르델이 끼어들었다.

“일단 저 수건을 치워줘야 두 번 죽는 꼴은 면할 거 같습니다만.”


“눈부시니까 그대로 두세요.”


레스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신음하듯이 말하자 손수건이 박자에 맞춰서 들썩거렸다. 타티아나는 이상한  봤다는  표정을 살짝 찡그리며 레스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녀가 카르델에게 저격용 조준경이 달린 소총을 건네주면서 말을 걸었다.


“재활 훈련 시작. 100m 표적부터 시작해봐.”

“100m? 그걸 말이라고.”


카르델은 흙바닥에 엎드려서 양손으로 소총을 붙잡고 숨을 한  마시고 살짝 뱉은 다음 호흡을 참았다. 시선은 총몸의 왼쪽 위에 단 망원조준경 대신 가늠자에 두었다. 루나가 자신의 귀를 양손으로 덮는 순간 카르델이 방아쇠를 당겼다. 저 앞에 거리별로 세워진 나무판 중에서 가장 가까운 것의 머리 부분에 구멍이 뚫렸다.

“불스아이. 예이.”


나른하게 기운 빠지는 환호성을 지르며 카르델은 노리쇠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가장 먼 곳에 있는 나무판도 겨누고 쏘았다. 총성마다 루나는 귀를 틀어막고도 온몸을 움찔 떨었다.

“400m도 불스아이. 예이. 소총 상태 이상 무.  실력도 이상 무.  해봤자 총알 낭비야.”


그는 노리쇠를 연달아 당기고 약실을 확인한 다음 땅을 밀어서 일어났다.

“확실히 맞출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거리가 어디까지야?”


타티아나의 질문을 받고 카르델이 방금 주운 따끈따끈한 탄피를 손안에 굴리며 머리를 굴리다가 들어 올렸던 시선을 다시 내렸다.

“삼시 세끼 잘 챙겨 먹고,   자고, 커피까지 진하게 마셔두면 바람 좀 불어도 500m 이내는 거뜬하지.”

“실전에서 맞춘 최고 거리는?”

카르델은 갑자기 여태껏 능글맞으면서도 유쾌하게 굴던 태도를 싹 거두고 표정이 얼었다. 불안한 눈으로 엉뚱한 곳을 바라보면서 그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아마 800m.”

제법 대단한 기록인데도 목소리에서 자랑하는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의 기록에 대해서 추가로 더 설명하려는 기미도 느껴지지 않아 타티아나는 고개를 끄덕여주고 말했다.

“알았어. 이제 내 차례군.”


그녀는 자신이 가져온 묵직한 서류 가방을 열고 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었다. 카르델이 내용물을 보고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그게 대체 뭐야?”

타티아나가 자신의 나강 리볼버에 총기 부품들을 장착하면서 대답했다.


“탈부착 개머리판, 연장 총열, 2배율 조준기, 소음기.”

나강 리볼버에 모든 부착물이 달리자 리볼버형 무소음 카빈총이 나타났다. 카르델이 레스의 발을 자기 발로 건드리면서 말을 걸었다.

“어이 사쿠라비. 저것 좀 봐. 안 보면 후회한다.”

레스는 눈이 부셔서 미간을 찌푸리며 팔꿈치로 땅을 밀어서 일어났다. 근육통으로 얼얼한 팔뚝을 스스로 주무르면서 레스는 리볼버 카빈총을 쥐고 있는 타티아나를 바라보았다. 레스는 그녀의 총을 보다가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처음 보는 거네.”


“나도 조립해본 건 지금이 처음이야.”

루나가 말했다.


“체격에 맞춰서 주문 제작된 부품들이군요. 비싸지 않나요?”


“리차트라 밑에 있으면 돈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타티아나가 앉아 쏴 자세로 표적을 겨누었다.  번 호흡을 반복하면서 그녀의 몸이 들썩거리다가 잠깐 굳더니 철컥하고 공이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총성은 거의  났다. 카르델이  앞을 째려보면서 외쳤다.

“왼쪽 위로 탄이 스쳤어.”

“확인.”

잠시  그녀가 방아쇠를 당기자 카르델이 표적을 확인하고 외쳤다.

“오른쪽으로 튀었어. 너무 옮겼다.”

타티아나가 이를 악물면서 침착해지려고 마음을 다스렸다. 그대로 남은 다섯 발을 모조리 쏘고 총을 내려놓았다. 참고로 나강 리볼버의 장탄량은 일곱이다.

카르델이 물었다.


“그 권총의 유효 사거리가 얼마나 돼?”


“약 50m.”


“구석에 한발 겨우 박혔어. 그 소음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

타티아나가 탄피 마개를 열고 탄피를 꺼내면서 창피한 듯 입술을 오므리다가 소극적인 태도로 말했다.

“소음기에는 잘못이 없어. 위력이 약해지긴커녕 안에 파여 있는 강선 덕에 명중률이 더 높아지지.”

“도구가 아깝군.”


“나도 알아. 삼진아웃.”


타티아나가 약실에서 탄피를 꺼내다 말고 민첩하게 카르델의 겨드랑이 한가운데를 손끝으로 가차 없이 찔렀다. 그는 꽥하고 숨넘어가는 단말마를 지르며 뒤로 자빠졌다. 루나가 쓰레기 보는 눈으로 경련하는 카르델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바다 건너의 의술에서는 신체의 혈액 흐름을 매우 중요히 여겨서 혈관이 겹치는 주요 부위를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문서화 했죠. 방금 타티아나 양이 찌른 겨드랑이 림프샘은 독소가 많이 쌓이는 곳이라 안마받을  안마사님에게 제발 살살해달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죠.”

“겨드랑이에 유난히 땀이 많이 나오는 이유도 독소 배출을 위해서 땀샘이 모인 건가.”

레스는 소금이 뿌려진 지렁이처럼 땅을 기는 카르델을 바라보며 남 일처럼 말했다. 곧 카르델은 기절해버리고 숨만 쉬었다. 루나가 자기 팔을 들어 올리면서 자기 겨드랑이를 다른 손으로 톡톡 두드렸다.

“이렇게 두드렸을 때 많이 아플수록 몸 상태가 안 좋다는 뜻이에요.”

“이렇게? 어 그러네. 좀 아프네요.”

타티아나는 약실에서 탄피를 다 꺼내고 장전을 하려다가 자기 겨드랑이를 두드리고 있는 레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레스. 쏴.”

그는 들어 올렸던 팔을 내리고 타티아나를 바라보다가 눈을 게슴츠레 감았다.

“제안도 아니고 그냥 쏘라고?”

“내 사격 솜씨가 좋지 못하다는 걸 아니까. 빨리 익히려면 전수해줄 사람이 있는 게 좋지.”


레스가 한 호흡 뜸을 들이다가 눈을 크게 뜨고 뒤로 살짝 물러났다.


“나한테 사격을 알려달라고?”

“왜 안 돼?”


“난 포로잖아!”

타티아나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지금 와서 의미가 있나?”

루나도 자기 어깨에 머리를 갸우뚱 기대면서 거들었다.

“하자르 씨가 저희와 지낸 시간도 이제는 저쪽 분들과 지냈던 시간이랑 비슷해지지 않았나요?”


레스가 한탄하는 투로 중얼거렸다.


“내가 어쩌다 이런 신세가  건지.”

“닳는 것도 아니고 서로 친해지면 좋잖아요.”

루나가 그의 등을 부드럽게 톡 밀자 레스는 떠밀려서 앞으로 비틀거렸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사격장에 있는 타티아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아직 장전되지 않은 총을 앞에 두고 레스가 팔짱을 끼면서 상대에게 물었다.


“사격을 배우고 싶다면 다른 사람도 많잖아. 다들 특등사수인데.”


“용사 나리하고 저 뺀질이는 그냥 곁에 두기 싫고. 대위님이야 출중하시지만 바쁜 분을 하찮은 일로 방해하고 싶지는 않아. 남은 선택지가 아비투스와 너인데 너라면 누굴 고르겠어?”

레스는 한숨을 쉬었다.


“나 지금 피곤해 죽을 거 같은데, 보답으로 내가 받을 거라도 있으면 생각해볼게.”


그 순간 레스는 함정에 걸렸다는 직감이 들었다. 타티아나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근접전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아? 총잡이?”


 말을 듣자마자 레스는 갑자기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가 옛 시절을 생각하는 듯   바라보는 표정으로 한참을 집중했다. 잠시 후에 눈가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그가 말했다.


“그 빌어먹을 양반이 나한테 많이 가르쳐주기는 했는데, 결과는 그저 그랬어.”


“몸에 이미 어느 정도 기본기가 배어 있다는 거야? 잘됐네. 내가 네 몸속에 사그라든 그 불씨를 되살려서 활활 태워주지.”


“넌 뭐가 그렇게 즐겁냐?!”

루나가 어느 틈에 돗자리까지 이쪽으로 옮겨서 자리까지 가까이 바꾸고는 뒤에서 재촉하는 투로 외쳤다.


“됐으니까 어서 시작해요. 어서~ 어서~ 어서~”


“나잇값 못하는 사람 같으니….”

당연히 레스는 루나한테 들리지 않을 크기로 중얼거렸다. 타티아나는 그것 때문에 웃음을 참아야 했다. 레스는 왜가리처럼 고개를 한번 뒤로 휙 젖혔다가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여서 어깨와 목을 풀었다. 심호흡과 함께 손목도 돌려서 관절 꺾는 소리를 내며 풀어주고는 그가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 자세를 잡았다. 타티아나가 총을 건네주자 레스는 총을 받고 이리저리 다양하게 자세로 잡아서 감촉과 무게를 몸에 새겼다.


“일단 100m부터 시작하자.”


타티아나가 총알 하나를 그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레스가 탄피 마개를 열고 총알을 집어넣으려다가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지금 시작이라고 했어? 이 총 사거리가 50m인데 더 먼 것까지 맞춰보라고?”


“부착한 연장 총열과 소음기 덕에 사거리가 그것보다는 훨씬 늘었어. 불가능하지 않아.”


레스는 한쪽 뺨을 입속에서 잘근잘근 깨물다가 그녀에게서 받은 총알을 유심히 관찰했다.

“아까 쏘는 모습을 보니 총알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안 나더라고. 아음속 탄이지?”

“맞아.”

“아음속 탄이면 바람의 영향을 심하게 받지. 강선이 길어졌어도 장약량은 권총탄 그대로이니 소총처럼 생각하고 쏘면 명중률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고.”

“백 마디 말보다  번의 실천이 낫다는  알지?”

레스는 한 번 크게 심호흡하면서 총알을 약실에 집어넣었다. 자세를 잡기에 앞서서 그는 땅에 손을 뻗어 흙을 한 움큼 움켜쥐고 허공에 손을 펼쳐 날려보았다. 레스는 흙먼지가 날아가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자기 체격에는 다소 작은 리볼버 카빈총을 몸에 견착했다. 다시 한번 심호흡 뒤에 그의 몸이 조각상처럼 굳어버리자 어느 틈엔가 철컥하고 방아쇠와 공이 움직이는 소리가 경쾌하게 났다. 총성은 소음기에 묻혀서 거의 안 들렸다. 타티아나와 루나가 입을 크게 벌리면서 같이 외쳤다.

“불스아이!”

레스가 총을 내려놓고 머리 쪽에 새로 구멍이 뚫린 표적을 가리키며 말했다.

“말 안 해도 알겠지만, 그냥 나무판이니까 머리에 쏜 거다.”

타티아나는 대꾸하지 않고 다음 총알을  내밀었다. 레스가 탄피를 꺼내고 장전한 다음 약실을 휘릭 돌려 탄환을 공이에 걸었다. 레스가 실눈을 뜨고 저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음 단계에 세워진 표적은 150m라고 적혀있어.  감으로는 130m 같은데.”

레스는 다시 총을 견착하고 조준을 아주 살짝 위로 옮겼다. 그대로 방아쇠를 당기려다가 뒤늦게 느껴지는 인기척 때문에 돌아보니 저 뒤에 할  없는 주둔지의 병사들이 어느새 구경하러 잔뜩 몰려 있었다. 레스가 타티아나에게 말했다.

“정신 사나우니까 저것들 쫓아낼  없어?”

“싫어.”

아주 새침한 목소리로 그녀가 굵고 짧게 대꾸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레스도 더 군말 않고 다시 자세를 잡고 쏘았다. 탄환에 맞은 표적은 관리가 잘   탓에 뒤로 퍽하고 쓰러졌다. 레스는 별것도 아닌 거에 환호성을 지르는 구경꾼들의 소란 때문에 심란해져서 인상을 찌푸렸다. 탄피를 꺼내면서 그가 여인들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가슴에 맞췄어.  총의 사거리는 150m 이내가 한계라고 생각해. 그나저나 마족들이 만드는 총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네.”

타티아나가 레스에게서 총을 돌려받으며 말을 받았다.

“인간들의 세상에 조나단 브라우닝이 있다면 마계에는 나강 형제가 있지. 자 이제 준비운동부터 시작해볼까?”

레스는 코웃음을 치고 자신의 오른손을 매만졌다.

“웬 준비운동? 뭐, 네 마음이지.”

“일단 팔을 들어 올려서 귀에 붙여봐.”


잠깐의 침묵 뒤에 레스가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격한 운동 전에 준비운동은 필수야.”


레스가 불만스러워하는 몸짓으로 양어깨를 위로 올리며 두 손을 위로 향하며 뭐라 말하려는 순간 타티아나가 잽싸게 양손으로 그의 겨드랑이를 푹 찔렀다.


“너 처음부터  가지고 놀 생각… 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한참 떨어진 곳에 있던 세리던 대령이 집 바깥에서부터 들려오는 비통한 소리에 하던 수다를 순간 멈췄다.


“방금  잡는 소리 같은  들리지 않았나?”


크로네가 끄덕였다.

“오늘 저녁은 닭고기 소테가 좋겠습니다.”


피카니는 비명의 출처를 알아채고 진심으로 행복해져서 다 죽어가던 그의 표정에 활력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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