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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4화 〉[5권] 174회 - 선진 병영 (174/188)



〈 174화 〉[5권] 174회 - 선진 병영



주둔지 외곽 북쪽에는 냇물이 얕게 흐르고 있었다. 주변에는 병사들이 빨래들을 널기 위해 걸어둔 말뚝과 건조대, 그리고 샤워 시설이 있었다. 시설이라고 해봤자 지붕이 있는 천막과 낡아 빠진 스펀지, 그리고 들어가서 앉을 수 있을 만한 크기의 대야가 고작이었다.

천막 안에는 피카니와 레스가 옷을 벗고 한창 목욕하고 있었다. 주둔지의 병사들도 안에 같이 있었는데 그들은 두 남자의 몸에 난 총알 자국을 틈날 때마다 훔쳐보았다. 천막 안에는 구멍 뚫린 옻칠 한 널빤지가 바닥재로 깔려 있었다. 그리고 허공에는 등불이 매달려 있었다. 피카니가 데운 물이 담겨 있는 솥에서 김이 나는 물을 한 바가지 퍼다가 대야에 앉아있는 레스의 머리 위로 천천히 부었다. 레스가 비누 조각을 머리에 대고 벅벅 비벼서 거품을 내는 동안 피카니가 얼굴 앞을 부채질하며 투덜거렸다.

“세상에. 아궁이에서 나는 말똥 냄새가 장난 아니네.”

레스가 머리를 감으면서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말린 말똥하고 낙타 똥은 유목민들에게 귀중한 연료지. 고향에 온 기분이야.”

“접대에 만족하신다니 영광입니다.”


피카니가 혀에 버터라도 칠한 것처럼 매끄러운 발음으로 말하며 한 바가지 또 끼얹어줬다. 다 씻은 레스는 대야에서 일어나 자기가 쓰던 물을 버리고 피카니와 자리를 바꾸자고 손짓했다. 레스가 바가지를 기울여 피카니에게 물을 부어주자 먼지와 기름으로 가발처럼 굳어있던 금발 머리가 실타래처럼 풀어져 얼굴로 흘러내렸다. 피카니가 환호를 지르며 묵은 때를 벅벅 밀었다. 한참을 말없이 씻기만 하다가 피카니가 레스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유목민들은 얼마나 자주 씻어? 진심으로 궁금했던 거야.”


레스는 대답하지 않고 얼굴을 들어 올린 피카니를 향해 물을 퍼부었다. 피카니가 입과 코로 물보라 일으키는 동안 그들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레스는 남자 셋을 바라보며 고갯짓과 함께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대위님. 아비투스 씨와 카르델 씨도.”

하딘이 팔짱을 끼면서 레스의 몸을 위에서 아래로 훑었다. 그리고 기가 찬다는 듯 혀를 찼다.

“세상에. 순진한 사람이 자네 몸을 보면 자네 직업이 사격장 과녁인  알겠군.”


레스는 눈썹만 으쓱거렸다.

“그쪽은 무슨 일이 있으셨죠?”

하딘은 입을 다물고 말하기 싫다는 뜻이 담긴 눈짓만 보냈다. 하딘은 상반신은 강판에 갈린  몸이 갈려 나갔거나 화염에 그슬린 자국으로 가득하여 피부가 멀쩡한 곳이 거의 없었다. 레스가 보기에는 폭탄이 터질 때 반경 안에 있던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카르델이 하딘과 레스를 번갈아 보면서 지나가는 투로 말을 뱉었다.

“우오, 우리 두목만큼 댁도 훌륭하군.”


아비투스와 카르델도 싸움의 흔적이 심심찮게 보였으나  숫자가 하딘이나 레스에게 견줄 수준은 아니었다. 아비투스가 카르델을 향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넌 꺼내야 할 말과 장소도 못 가리냐?”


괜스레 다시 말하지만, 그들은 씻느라 홀딱 벗고 있다. 목욕 가운이나 허리에 두르는 수건 같은 고상한 물건은 이곳에 없다. 카르델이 너스레를 떨고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왜? 이상한 뜻은 하나도 없거든?”

“입 닥쳐 카르델.”

하딘이 한심해하는 목소리로 외치고 나무 바닥에 책상다리로 앉았다. 그를 따라 부하들도 제각기 다른 자세로 자리를 잡았다. 레스가 피카니의 등에 물을 부으면서 넌지시 물었다.


“제가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자네만이 아니라 자네들에게 용건이 있네.”


피카니가 눈치껏 얼굴을 들고 머리카락을 머리 뒤로 넘기면서 고개를 하딘에게 돌렸다.

“뭡니까.”


“세리던 대령의 집에서 훨씬 고상하게 씻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러 이런 말똥 냄새나는 곳으로 왔나?”


피카니가 실눈을 뜨면서 말했다.


“당연한 걸 뭐하러 묻습니까.”

하딘은 코웃음을 쳤다. 목을 가다듬은 다음 그가 연달아 말했다.

“아까 시크릿 서비스 요원하고 만났네. 파스낙이 연락했다고?”


레스가 대답했다.

“잡담만 했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는데, 녀석이 저한테 관심이 많군요.”


피카니가 비누로 몸을 문지르면서 거들었다.

“그 자리에 저도 같이 있었습니다. 보안에 문제 될 대화는 오가지 않았습니다.”

“나도 알아. 요원에게도 그리 들었지. 그런데….”


그때 피카니가 손에  비누가 미끄러지며 대야 바깥으로 날아갔다. 피카니가 혀를 차고 레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 비누 좀 주워줘.”


레스는 별생각 없이 비누 쪽으로 걸어갔으나 다른 남자들은 텅스텐처럼 무겁고 싸늘한 기운에 짓눌리고 있었다. 피카니도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는  눈을 부릅뜨고 자기 입에 손을 댔다. 레스는 비누를 발끝에 걸어서 가볍게 위로 올려 차 자기 손바닥 위로 착지시켰다. 그대로 피카니의 대야 안으로 비누를 도로 던져주고 자기 자리로 돌아왔는데 레스는 그제야 뜬금없이 바짝 긴장된 분위기를 눈치챘다. 레스가 평범한 어조로 물었다.


“왜요?”


카르델이 헛기침하고 급하게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냐.”


“문명인들이란….”

레스가 솥에서 물을 한 바가지 퍼서 피카니에게 부어주려 하자 피카니가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괜찮아.”

“왜? 비누칠한 거 닦아야지.”


“그냥…. 괜찮아. 지금은 그저 나한테 배려를 하지 말아다오. 제발.”


피카니가 얼굴을 내린 채 애걸하는 투로 그렇게 말했다. 레스는 바가지를  안에 대충 집어 던지고 투덜거렸다. 첨벙.


“이런 일을 겪는데도 다들 나만 이상한 놈이래.”

시간이 흐른 후, 마저 다 씻은 일행은 천막 바깥에서 면도와 이발을 했다. 나무통 위에 올려놓은 거울을 보면서 말끔하게 면도한 피카니가 셔츠 단추를 채웠고, 레스는 수염을 아주 살짝 다듬기만 했다. 피카니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근처에 기웃거렸다.

“누누이 말하는 건데 그 관상에는 기르는 것보다 미는 편이 나아.”

레스는 피카니의 말을 무시하고 면도칼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껴두었던 새 셔츠를 입고 주머니가 달린 검은색 조끼를 걸쳤다. 아자리와 같이 들른 잡화점에 산 조끼다. 레스는 그 기억이 한참 전이자 최근처럼 느껴졌다. 그가 부츠를 신고 솔질만으로 힘겹게 먼지를 털고 있는데 그에게 하딘 대위가 깡통에 담긴 구두약을 내밀면서 말했다.

“아까 하던 얘기를 마저 하지.”


하딘은 레스가 발을 올려서 먼지를 털고 있던 벤치에 앉았다. 레스는 그에게 먼지나 구두약이 묻지 않게 발을 조금 옆으로 옮겼다. 피카니는 눈치껏 자리에서 비켜났고 주변에는 풀벌레 우는 소리밖에 없었다. 부츠를 닦으면서 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시죠.”


“요원이 말하기를, 파스낙이 도중에 수화기를 레오포드에게 넘겼다던데. 무슨 일이 있었지?”


레스는 부츠 하나를 완전히 다 닦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대편 발을 벤치에 올리고 솔을 갖다 대기만   레스는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전 놈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맹세를 타협하는 건 약자들이나 하는 짓인가? 모든 것이 변한다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인가?’ 파스낙은 시간을 들여서 생각을 마치고는, ‘의문의 해답은 이미 너의 마음속에 있다.  해답을 내 입으로 직접 말해줘서는 의미가 없으며, 똑같은 진실이라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설득력과 깊이가 다르지.’라 하고는 레오포드 씨를 불렀습니다. 물론 슌카와칸도 함께. 전 고양이를 선호하지만 개도 좋더군요.”

“개는 사람의 가장 친한 친구라지.”


하딘은 그렇게 말하고는 레스에게서 솔을 빼앗고 그의 부츠를 닦아주었다. 레스는 당황해서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뭡니까?”

“내일이 마지막일지도 모르잖아. 마무리가 제일 중요하지.”

그의 힘과 기술이 담긴 가죽의 결을 살리는 솔질 덕에 부츠의 광택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레스가 숨을 가다듬고 고개를 힘겹게 저으면서 중얼거렸다.

“내일이 되면.”


잠시  하딘이 혀를 차면서 한쪽 면만 깔끔해진 부츠에서 손을 떼고 헛기침을 했다.


“낯간지러워서 더는 못  먹겠군. 반대쪽은 직접 하게.”


레스는 솔을 돌려받고 마저 닦았다. 솔에 구두약을 묻히면서 그가 말했다.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 일찍 일어나서 종일 그곳으로 향하겠죠.”


“그래.”

“밤을 지새울 수도 있고요.”

“그래.”

레스는 조금 뜸 들였다가 말했다.

“사실 제가 먼저 당신들에게 말을 걸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딘은 그의 말을 듣고 눈을  번 깜빡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속 말해보라는 뜻으로 하딘이 손짓하자 레스가 말했다.

“지금 당장 대화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서로  이야기가 될 테니, 긴 이야기는 내일을 위해 아껴두고 오늘은 일찍 자죠.”

하딘은 고개를 기울여가며 눈으로도 의문을 표했다.

“무슨 바람이 들었지?”


레스는 바로 대답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곰곰이 생각한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요 며칠간 같이 다니면서 그쪽은 절 굶긴 적이 없었고, 위해를 가하지 않았고, 같이 불가를 나누었으며 덕분에 제가 안전하게 잠도 잘 수 있었죠. 고로  손님으로서 충분히 대접을 받았습니다. 곧 마지막 날이 다가올지도 모르는데 잠깐이나마 사적인 감정은 잊는 게 바다위윤의 명예이자 손님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넨 사쿠라비에서 추방당하지 않았나.”


“제 영혼은 아닙니다.”


레스는 목소리를 강조하면서 눈을 부릅떴다. 하딘은 무표정과 표정을 참는 얼굴 그사이의 어중간한 상태에 계속 머물다가 자신의 콧수염을 검지로 눌러 쓸었다. 눈을 한  깜빡이고 그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가자고 손짓했다. 레스와 하딘은 같이 걸었다.


“자네를 마차 짐칸에 가두러 가려면  걸어야 하거든. 아무 말도 없이 걸어가긴 심심하니 긴 이야기 말고 짧은 이야기  듣겠나?”

“좋은 생각이군요.”


레스는 터번을 머리에 두르지 않고 주머니에 꽂아두었다. 폰초는 앞섶을 옆으로 젖혀서 케이프처럼 양어깨에 걸쳤다. 오랜만에 몸을 씻었으니 바람을 느끼고 싶었다. 하딘이 목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해가 떠 있을 때 나하고  부하들은 여기 꼬락서니를 둘러봤네. 이 주둔지에 11대대의 깃발이 꽂혀 있기는 한데 직접 눈으로 머릿수를 확인해보니 아무리 봐도 중대 수준이야.”


“그럼  명이죠?”


하딘이 검지와 중지를 펼치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200명 미만. 아무리 예비역 부대라고 해도 대대라고 부르기엔 너무 빈약하지. 동시에 총지휘관의 수준을 그럭저럭 반영하고.”


주둔지 한복판에 대령의 자택에만 불이 켜져 있으니 등대가 따로 없었다. 레스는 환하게 밝혀진 창문을 먼저 보았고, 그리고 저쪽에 펼쳐진 초원과 언덕을 번갈아 보았다. 하딘이 그 모습을 보고는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안다는 양 대뜸 말했다.

“참고로 120mm 견인 박격포의 사거리는 1km는 남짓이야. 그런데 야밤에 모습을 숨기기 알맞으면서도  받침대를 단단하게 박을 수 있는 저 언덕은 여기에서 700m 이내에 있군.”

“전 저격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이미 제 스승의 영향으로 군인의 삶은 관심 없었는데 여기 오니 이제는 혐오스럽네요.”

하딘은 다시 걸음을 재촉하자는 손짓을 하고 앞장을 섰다. 그리고 솔선해서 운을 뗐다.


“원래  주변에는 제법 초목이 있었다더군. 덤불에는 산딸기도 있었고. 예전에 숲을 모조리 불태워버리고 버펄로를 학살해버렸던 곳인데 말이야. 자연의 재생력은 경이롭지. 하지만 지금은 아궁이에 땔 장작조차 모자라게 됐어.  이 지경이 됐을지 짐작 한 번 해보겠나?”


“그야 필요 이상으로 벌목해서 그런 거겠죠.”


“그럼  벌목된 나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레스는 장단에 맞춰주려고 일부러 깊게 생각하는 척했다.


“울타리랑 건물에?”


“장작이 됐어.”


레스는 눈을 반쯤 감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여기 있던 초목들의 규모가 얼마나 됐을지는 모르겠어도. 4년 만에 생태계 하나가 통째로 장작이 되는 게 분명 흔한 일은 아니겠죠?”

하딘은 가늘게 길게 한숨을 쉬고 검지를 위로 쳐들면서 걸음을 멈췄다.

“어느 날 대령이 병사들에게 참호 파기 훈련을 시켰어. 땅개들한테는 일상이지. 아, 이건 자네를 바보 취급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집중하라고 해주는 설명이네. 땅을 깊게 파면 밑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얼음에 맞먹고, 흙벽에서 기어 나오는 벌레는 5월의 하루살이를 능가해. 이를 가엽게 여긴 대령은 기발한 발상을 추진했지.”

레스는 다시 장단에 맞췄다.

“그게 뭐였죠?”


“벽돌을 쓰는 거야. 벽돌을 바닥재로 쓰고, 남은 벽돌로 참호 내벽의 보강재로 쓴다. 이번에는 실전에서도 두고두고 쓸 수 있을 정도로 제대로 된  만들어보자는 거였어. 일단 자네가 문제점을 하나 골라서 말해봐.”

“벽돌들은 어디서 구하는데요? 아니 잠깐만. 그게 진짜 일어난 일인 겁니까?”

하딘은 한 번 아주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대령은 구워서 벽돌을 만들라고 시켰어.”

레스는 자기 일이 아닌데도 현기증이 느껴져   자기 눈가를  손으로 감싸 쥐었다. 하딘이 레스를 향해 점잖게 손짓하며 말을 이었다.

“자네는 유목민이니까 구워서 만든 벽돌이 습기에 얼마나 취약한지 알겠지.”

레스는 머리에서 손을 떼고 긍정하는 눈짓을 했다.

“바다위윤은 계절마다 장소를 옮겨가며 유목을 합니다. 각 부족이 자신의 영역 안에서 순환하죠. 그래서 지역마다 잠깐 머무는 용도로 쓰는 시설도 갖췄습니다. 집이나 다 같이 쓰는 공용 화덕과 화장실 같은 거요. 진흙에 지푸라기 섞은  틀에 채워서 말린 벽돌이 주재료인데 워낙 건조한 곳인지라 그것만으로도 냉기와 바람을 막기에는 충분하죠. 하지만 어쩌다 비가 내리면 마을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거에 대비해서 날씨가 심상치 않으면 천막을 치거나 미리 대피하기도 합니다만 그건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고. 그래서요?”


하딘은 괜히 외투 안주머니에서 담뱃대를 꺼내고 손안에 이리저리 굴렸다.

“누군가는 대령을 말렸을 거야.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대령에게 병사들을 위한 아주 자비롭고 현명하며 전략적으로 훌륭한 발상이며 여태껏 아무도 시도하지 못 한 일이라고 극찬했지. 내가 이곳의 중대장 둘을 직접 만나봤는데 하나는 저번 전쟁에 참여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대령하고 수준이 비슷했어.”

레스는 갑자기 느껴지는 피로 때문에 머리가 어질거렸다. 그들은 다시 걸었다. 걷는 동안 현기증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고 레스가 물었다.

“그래서 그 벽돌들이 제대로 만들어지기는 했습니까?”


“다 알면서 묻는군. 그래도 대답해주지. 좋은 벽돌을 구우려면  손실을 최소화하고 높은 압력을 버틸 수 있는 가마가 필요한데, 그런 가마를 만들려면 뭐가 필요하겠나?”

레스가 눈을 질끈 감으면서 말했다.

“좋은 벽돌과 점도 높은 회반죽이죠.”

“엉터리 가마로 그들이 벽돌을 만들기는 했는데 그 벽돌에 사용한 진흙도 문제였어. 여러 기후에 견딜  있는 점토 벽돌은 그냥 아무 진흙이나 퍼다가 구운다고 만들어지지 않아. 풍화된 암석 성분이 풍부하게 포함된 여러 흙을 적절한 비율로 혼합하고 점성까지 조절해야 그제야 재료가 준비되지. 그런 전문 지식을 아는 사람이 군대에 있었겠나?”

“그렇게 대량의 장작이 낭비됐군요.”

하딘이 자신의 담뱃대를 살짝 위로 던졌다가 다시 받으면서 가지고 놀았다.


“애당초 제대로 만든 점토 벽돌을 바닥재로 썼다 치더라도, 아무리 배수로를 파도 물이 계속 고이는 참호의 가혹한 환경에서 오래 버틸 수는 없었을 거야.”

레스가 냉소적으로 읊조렸다.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

저 앞에 레스의 숙소로 쓰이는 마차 짐칸이 보이기 시작했다. 짐칸 근처에  피우는 곳이 있었는데 루나와 타티아나가 모닥불을 피워놓고 꼬챙이에 마시멜로를 꽂아서 구워 먹고 있었다. 루나가 이쪽을 눈치채고 손을 크게 들어서 흔들며 인사하자 레스도 손짓으로 마주 인사했고 하딘은 깍듯한 자세로 경례했다. 그리고 하딘이 발끝과 발꿈치로 몸의 방향을 그에게 돌렸다.


“하던 이야기 말인데. 들을  더 있어.”

레스가 경악했다.

“아직도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흥미를 느낀 두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은근슬쩍 이쪽으로 다가와 귀를 기울였다. 하딘이 말했다.

“점토 벽돌이 만들어지는데 필요한 온도가 어느 정도냐면, 최소한 1100도 이상이야. 가마도 문제였지만 장작의 질도 중요하지. 풀무도 필요하고. 그런데 이 병사들은 갓 베어낸 나무들을 대충 말리고 생나무나 다름없는 걸 불쏘시개로 써버렸지.”


“야밤을 지내기 위해서 피우는 모닥불은 생나무를 쓰는 편이 불도 오래가고 나무가 숯이 되어서 잉걸불도 오래 남지만, 벽돌을 구우려면 순간 화력이 더 중요한데….”

“애당초 여긴 초원이나 다름없는 곳이야. 이렇게 습한 곳에서 장작을 제대로 말리려면-”

루나가 끼어들었다.

“거의 반년이죠. 계속하세요.  자라는 인사하러 아비투스 씨와 카르델 씨가 한 번 저희를 들렀다 갔는데 그 벽돌 이야기를 살짝 언급하고 갔었어요.”


하딘은 침을 삼키고 목을 가다듬은 다음 다시 화제를 이었다.

“그런 꼴이었으니 아무리 병사들이 장작을 집어넣고 풀무를 밟아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질 않았지. 보고를 받은 대령은 항상 똑같은 소리만 반복했어. 화력이 모자라면 나무를 더 넣으면 되잖아. 결국에는 비축분을 건드릴 지경에 이르게 됐지. 아무리 호소해도 대령은 아주 대단한 일관성을 보였어. 군인의 미덕은 복종이거늘. 차마 연료 비축분을 건드릴 수는 없었던 담당 부사관과 병사들은 억지로라도 엉터리 벽돌을 만들어야만 했고. 어떻게 해결했게?”


타티아나가 말했다.

“군종 마법사에게 부탁이라도 했나요?”

“여기 군종 마법사 알렉산더 크로네는 화염구 하나 만들 줄 모른다고 많은 병사가 증언했다네 소위. 본론으로 돌아와서, 담당자들은 의무병들의 필수품인 목발을 보급 창고에서 긁어모아 장작으로 썼다고 하는군.”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던 레스는 물론 중간에 끼어든 두 여자까지 너무 어이가 나가서 두 여자는 하마터면 들고 있던 마시멜로가 꽂힌 꼬챙이를 떨어트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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