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6화 〉[5권] 176회 - 과거형 신천지 (176/188)



〈 176화 〉[5권] 176회 - 과거형 신천지



보안관 표식을 가슴에 달고 모자를 쓴 사내가 가로등이 켜진 거리를 허겁지겁 가로질러 문이 잠긴 카페의 문을 두드렸다. 자물쇠 풀리는 소리와 함께 사복 차림의 남자가 카페의 문을 열고 사내를 보았다. 카페에서 나온 남자가 상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오, 보안관?”

보안관이 모자를 벗고 자기 가슴에 대면서 정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치밀하게 이루어진 범죄가 틀림없어서 도움이 필요합니다.”

남자는 보안관에게 냉랭하게 말했다.


“우리 일만으로도 바쁘니 돌아가시오.”

“나으리! 시신의 머리와 양손이 없습니다! 그런 짓을 저지를 만큼 흉악한 놈이 이 동네에 숨어 있는데 피해자의 신원조차 알 수가 없으니 저와 제 부관만으로는 해결이 힘듭니다!”

남자가 한숨을 쉬고 인상을 쓰면서 열었던 카페의 문을 도로 닫으려다가 묘한 기척을 느끼고 동작을 멈췄다. 보안관도 그 기척을 느꼈다. 발톱이 바닥에 닿는 소리와 구둣발 소리였다. 레오포드가 닫히려던 카페의 한쪽 문을 밀면서 바깥으로 나와 보안관과 마주 보았다. 보안관이 늠름한 늑대와 차림새가 말쑥한 상대의 모습을 보고는 눈빛에 바로 경외감이 깃들었다. 레오포드가 칼날이 숫돌에 갈리는 소리와 느낌이 비슷한 가늘고  목소리로 보안관에게 물었다.


“감식 상황은?”

남자가 레오포드를 노려보며 말을 걸어 대화를 방해했다.

“자는  알았는데.”

“핑커튼 사무소의 선전 문구처럼 일하는 동안 난 계속 선잠을 유지한다네.”

“선생. 들어가. 우리가 나설 일이 아니야.”


“5분 동안 우리의 대화를 방해하지 말게. 그다음에 당신 지시를 따르리다.”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레오포드를 잠깐 노려보다가 자리에서 한 발자국 물러났다. 방해할 사람이 사라지자 레오포드가 눈가를 주먹으로 비비고 보안관을 향해 다시 말을 걸었다.

“당장 알아낸 단서를 알려주시겠소?”

보안관이 목을 가다듬고 신경을 기울여 침착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신이 발견된 곳은 술집 바로 옆에 있는 어둑한 골목이었습니다. 비싼 살롱은 아니고 서민들이 이용하는 곳입니다. 범인이 시체를 그곳의 쓰레기통에 넣으려다가 통 안에 이미 쓰레기가 많아서 숨길 수가 없어서 급한 대로 두고 떠난 거 같습니다. 피해자는 체격으로 보아 40대 중반의 남성으로 앞서 말했다시피 머리하고 양손이 사라져서 신원을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목격자는커녕 소리를 들은 사람조차 없습니다.”

“단서가 될만한 피해자의 소지품은?”


보안관이 고개를 내저었다.


“전혀 없습니다. 시신은 알몸으로 발견됐죠. 집요할 정도로 피해자에게 악감정을 품은 자의 소행이 틀림없습니다. 아니면 ‘잭 더 리퍼’ 같은 정신병자거나.”


레오포드가 상대를 재촉하는 투로 말했다.

“사견보다 알아낸 사실만 최대한 쥐어짜서 말해주시오.”


“죄송합니다. 시신에 몸싸움의 흔적과 총상, 칼자국이 전혀 보이지 않은 거로 보아 제가 보기에 사인은 교살로 추정됩니다. 머리가 목을 포함해서 통째로 사라졌으니 목이 졸린 자국을 보진 못했습니다. 그리고 몸에서  냄새가 살짝 나기에 죽기 직전에 술집을 이용했는지 확인해봤죠. 바텐더는 손님이 워낙 많아서 사람들을 일일이 전부 기억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범행 추정 시간 내에 맞이한 손님 중에 인상이 낯선 사람이 가게에 없던 건 확실하다고 장담했습니다.  바텐더는 저도 아는 사람인데 믿을만합니다. 수사 명단에는 올려놨지만.”

레오포드는 어느 틈엔가 쓰고 있는 중절모의 리본에 끼워두었던 성냥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엄지로 성냥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깊이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가 물었다.

“여기 주민들의 지문 정보는 갖추고 있소?”


지문을 사건 수사에 도입한 역사는 20세기 초부터 시작됐다.

“이미 거주한 주민들은 물론 새로 입주한 사람들까지 빠짐없이 명단을 작성할 때 지장을 찍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레오포드가 상대의 말을 끊고 잽싸게 다시 물었다.

“피해자가 사망한 장소가 야외 변소 근처인가?”

보안관이 눈을 크게 뜨며 놀랬다.

“그걸 어떻게? 그곳에서부터 골목을 향해 혈흔과 질질 끌린 흔적이 있었습니다.”

“피해자에게 몸싸움을 벌인 자국이 안 보이고 사인은 교살로 추정된댔지. 피해자는 기습당했어. 서민들이 이용하는 술집은 변소를 다 야외에 놓지. 사람이 가장 마음을 푸는 순간도 변소에 들를 때니 범인은 그때를 노렸어. 왕래가 잦은 곳이니 발자국을 뜨는 것도 불가능한 데다가 특정할 만한 지문도 못 찾지. 그러니 화장실에서 살해당하는 사람은 흔해.”


보안관이 자신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에 레오포드는 계속 말을 이었다.

“지문은 피부 위에 보통 1시간에서 2시간 이내까지 남네. 피부 위에 곱게 간 쇳가루를 뿌리면 자국이 나타나니 그걸 사진으로 찍어두게. 휴대형 사진기는 있나?”

보안관이 말했다.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 피해자의 머리와 양손을 가져갈 정도로 치밀한 놈이니 범인은 분명 장갑을 꼈을 텐데.”


“변소에 들렀다 나왔잖아. 피해자가 자기 몸을 맨손으로 이곳저곳 만졌을 거야.”

“아!”


보안관이 감탄했다. 레오포드가 성냥의 머리를 자기 눈높이로 들어 올리면서 목소리에 힘을 줬다.


“상대가 지독한 놈이니 죽은 피해자를 알몸으로 만들고 온몸에 걸레질까지 했을 수도 있겠지.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성기까지 빠짐없이 조사하게.”

“예?”

보안관이 자기도 모르게 단말마를 냈다. 레오포드가 한쪽 눈을 살짝 찡그렸다.


“보통 남자들은 작은 볼일을 볼 때 자기 성기를 검지와 엄지로 붙잡고 누잖나. 선명한 지문을 얻을 수 있는 부위지. 술집에서 변소에 갈 때도 보통 작은 볼일이 대부분이고.  경험상 거기까지 흔적을 지우려는 놈은 아직 못 봤네.”

“세상에!”


보안관이 또 감탄했다. 레오포드가 서둘러서 말했다.

“시간이 촉박하니 서두르게. 할  있는 조언은 여기까지요. 내가 필요해지면 다시 오고.”


“감사합니다!”


상대는 급하게 고개를 숙이고 가슴에 대고 있던 모자를 머리에 누른 채 바람처럼 자리를 떠났다. 레오포드는 하품을 하는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가 카페의 문을 도로 닫고 다시 자물쇠를 채우면서 회중시계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5분도 안 지났어.”


레오포드는 손가락 사이에 끼워둔 성냥을 중절모의 리본에 도로 꽂고 상대에게 건성으로 고갯짓만 해주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탁자에 자리 잡은 파스낙 리차트라는 동전을 계속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가지고 놀았고, 그 모습을 캘러헬이 눈만 껌뻑이면서 꿈쩍 않고 계속 노려보고 있었다. 라카키는 옆에 있는 탁자에 누워서 담요를 덮고 자고 있었다. 빈센트 피에르 중위도 그곳의 의자에 앉아서 눈을 붙이고 있다. 레오포드가 다가오자 파스낙이 그를 향해 능글맞게 물었다.


“왜 범죄 소설에서는 항상 탐정이 나타나는 곳마다 흉악범이 나타나는 걸까?”

레오포드는 대꾸하지 않고 지친 숨을 내쉬며 얼굴을 중절모로 덮으며 다리를 길게 뻗어 의자를 살짝 기울이며 몸을 누였다. 파스낙이 동전을 엄지로 튕겨서 경쾌한 소리를 내며 허공으로 던졌다가 도로 받으며 또 말했다.

“다들 어차피 밤샐 생각이잖아. 이 늙은이의 말 상대 좀 부탁해요.”


캘러헬이 낮은 목소리로 은근한 살기를 담아 말했다.

“사람 대부분은 나하고 만나면 꼭 입을 다물라고 하던데, 이제야 다른 사람들 심정을 알겠네. 부디 닥쳐주겠나?”


파스낙은 자기 팔에 연결된 링거대를 앞으로 옮기고 탁자에 양팔을 올렸다.


“들어봐 친구. 난 사적인 감정 품은 거 없어. 그쪽이 나더러 내 패션 감각이 끔찍하다고 했던 거만 빼고. 그리고… 강요한 적도 없어. 다들 자신들의 의지로 나한테 왔을 뿐이야. 지도자라면 애초에 그럴 일이 없도록 있을 때 잘했어야지.”

캘러헬의 입에서 이빨 갈리는 섬뜩한 소리가 울렸다. 파스낙은 검지와 엄지 사이에 끼워둔 동전의 앞면을 바라보며 점잖게 말을 이었다.


“나도 알아. 시대가 댁들을 원치 않게 됐으니 운명을 받아들였을 뿐이라는 거. 하지만 자네를 위해서 남아준 이들을 위해 노력하는 시늉이라도 했어야지. 제자들에게 보수가 높은 수상쩍은 의뢰는 받지 못하도록 했다며? 그래선  됐어. 그쪽이 한 사람 몫의 투사로서는 훌륭할지 몰라도 집단을 이끌 그릇이냐면 미묘하다는 평밖에  내리겠군.”

캘러헬이 눈을 질끈 감으며 뜨거운 숨을 억눌러서 천천히 내쉬었다.

“‘카우보이’는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게 아니었다. 그랜드 마스터라는 이 낙인도 언론과 국가가 마음대로 붙인 거다. 그저…. 세상과 정신없이 맞서 싸웠을 뿐이지.”

파스낙은 측은히 여기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는  문명 사이의 야생에서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괴물로 만들어 괴물과 맞서 싸운 사냥꾼이며, 황무지를 그 어떤 탐험가보다도 가장 많이 개척해낸 집단의 수장이지. 살 곳이 없어진 원주민들을 위해서 야생 괴물들을 쫓아냈었던  시작이었고. 그것이 개척시대의 광풍을 부채질해서 이 땅의 진짜 주인들 신세가 어떤지는 모두가 다 알지. 그리고 이 땅을 사람의 것으로 만들어준 주역들의 신세가 어떤지도.”


캘러헬이 상대를 게슴츠레 노려보며 손깍지를 탁자 위에 올렸다.

“내 제자들에게서 주워들은 이야기 가지고 나에 대해서 아는 척하지 마라.”


“그냥 그쪽이랑 친해지고 싶을 뿐이야. 우리 같은 놈들은 서로를 알아두는 편이 좋아. 좋든 싫든 우리가 평범한 사람보다 수명이  건 사실이니까. 또 내가 편하고 빠르게 죽을 운명은 아니잖아. 댁도 쉽게 죽을 생각은 없을 거고.”


“포기했다. 마음대로 지껄여. 모르스 리, 그 염병할 자식이 이딴  내게 떠넘기다니….”


“말이 나와서 말인데 모르스 리, 아니 이성령이 약속을 지킬 거라고 믿나?”


그는 눈을 감고 말했다.

“계약은 서로를 믿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가 필요하다는 상징이지. 요지가 뭐야?”

파스낙이 그와 레오포드를 번갈아 가리켰다.

“그쪽 둘에게 묻지. 이곳, 아메리카라 이름 붙여진 황무지는 그 넓이가 2천 제곱킬로미터야. 인간들의 제국이 가진 영토를  합친 만큼 되지. 마족들의 영토와 비교해도 땅값은 아메리카가 가볍게 이겨.”

파스낙이 손바닥을 평평하게 펼치고 머리 높이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차츰 손바닥을 아래로 내렸다.

“오로라까지  수 있는 북쪽 툰드라 지대에는 금과 석유가 나오고, 남쪽의 광활한 땅에는 수원을 개간하고 질소비료만 뿌려주면 풍부한 일조량을 통해 농작물을 자갈보다 흔하게 수확할  있어. 골드러시  금 찾던 사람들이 허탕이라고 부르던 광맥에는 철질 광석이 가득해. 인구? 두 문명의 썩어빠진 지배자로부터 양민들이 신천지를 향해 구름처럼 몰려오고 있지. 그러나 신천지는 이제 없어, 태어날 최강의 국가만 있을 뿐. 지금 인간과 마족의 전쟁은 막을  없는 미래를 막으려는 발버둥에 불과하지.”


레오포드가 얼굴에 덮었던 중절모를 치우고 말했다.


“우리로부터 무슨 답을 얻겠단 건가?”

“궁금증. 새로 태어날 국가에 대비해서 그쪽은 어쩔 계획인지 알고 싶어서.”


캘러헬이 말했다.


“관심 없는 일에 내가 왜 대비를 해야 하는데?”

“너는 관심 없어도 저쪽은 다르거든. 그럴 수밖에 운명이란 거 알잖아. 아폴례크처럼 쫓아오는 사람들  썰어버리면서 방랑이라도 할 거야?”


“됐어. 더는 못 참겠다.”

캘러헬이 한숨을 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자 파스낙이 동전을 탁자에 대고 팽이처럼 돌렸다.

“참지 못하면 뭐? 날  고통에서 해방해줄 건가?”

멀찍이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남자가 끼어들었다.

“파스낙은 아직 살아 있어야 해. 이유는 말 안 해도 알 텐데.”


캘러헬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런 야만적인 짓은 안 해. 그냥 내 최종병기를 꺼낼 뿐이지.”


남자가 미간을 찡그렸다.


“최종병기?”


캘러헬은 라카키가 잠든 탁자로 조용히 다가가서 상대를 살살 흔들어 깨웠다. 라카키가 눈가를 비비면서 하품을 하고 그에게 앳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캘러헬이 라카키의 귓가에 손을 감싸고 뭐라 소곤거렸다. 라카키는 담백하게 고개만 끄덕이면서 들어주는 시늉을 해주고 상대에게 말했다. “알았어.”


라카키가 파스낙에게 소리 없이 다가갔다. 마치 깃털이 걸어 다니듯 마루가 전혀 삐걱거리지 않았다. 파스낙이 팽이처럼 돌리고 있던 동전의 가운데를 쿡 찌르면서 세웠다. 미소와 함께 그가 말했다.

“안녕.”

라카키는 상대의 인사를 받아주지 않고 헛기침과 함께 말했다.


“요로결석 걸려본 적 있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