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화 〉[5권] 188회 - 만찬회
몇 분 뒤에 시튼은 돌아왔다. 그동안 사람들은 대화 없이 쉬고 있었다. 레스는 탁자에 엎드려서 눈을 붙이고 있다. 마을의 대표자들은 시튼이 돌아오자 다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저쪽 일행에게 의논해야겠다며 양해를 부탁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피카니가 엎드려 있는 레스에게 속삭였다.
“아까 추장이 네게 한 질문은 틀림없이 네 속을 떠본 거였어. 네가 우리 쪽으로 편을 바꿨는지 알아보려고. 교묘하게 잘 대답했어. 고맙다.”
“그냥 느끼는 대로 전했을 뿐이야.”
레스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엎드린 체 대답했다. 탁자에 부딪혀 작은 메아리가 울렸다. 그가 재차 물었다.
“무슨 느낌인데?”
“나도 몰라.”
한편 마을의 대표자들과 시튼은 조심스럽게 소곤거렸다. 다들 저쪽이 토론을 마칠 때까지 멍하니 기다리고 있는데 타티아나만 유독 뚫어지라고 저쪽을 노려보기에 루나가 말을 걸었다.
“특이한 점이라도 보이시나요?”
타티아나가 시선을 저쪽으로 못 박은 채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들의 입 모양을 읽는 중입니다.”
피카니가 뒤늦게 그 사실을 떠올리고 다급하게 물었다.
“뭐라고 하는데?”
타티아나는 방해를 받아서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지금 입 모양이 보이는 사람이 시튼 뿐인데 공용어가 아니라 내가 모르는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어. 원주민들의 언어 같아.”
“이런 염병!”
“잠깐만.”
그녀가 굳은 얼굴로 시튼의 입 모양을 노려보다가 시튼이 말을 마치는 순간 한 박자 늦게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투로 발음했다.
“마을의 안전부터 확보해야 그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요. 이것만 방금 공용어로 말했어.”
“확실해?”
“그래.”
레스가 혼잣말했다.
“그들과의 약속?”
루나가 그의 말에 맞추듯 중얼거렸다.
“달리 누가 있겠어요?”
그는 끙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시튼과 마을의 대표자들이 어떤 주제에 대해서 합의를 마쳤는지 같은 순간에 다들 긍정하는 표정과 몸짓을 했다. 그때 레스가 엎드렸던 얼굴을 들어 올리더니 옷깃을 잡아당겨 옷 안쪽을 빤히 바라보았다. 피카니가 물었다.
“지금 뭐 해?”
“방금 목걸이가 흔들린 거 같아서.”
그렇게 말하며 레스가 옷 안에 넣어둔 꿈 덫 목걸이를 꺼내 손에 들어봤는데 다른 사람 눈에는 특별할 거 없이 흔들거리는 거로만 보였다. 레스가 이상하다는 눈으로 갸우뚱 바라보다가 시선을 마을 정문으로 옮겼다. 못 보던 사람이 마을에서 나오고 있었다.
커다란 매부리코와 힘껏 솟은 눈썹이 인상적인 원주민 남성이었다. 길게 기른 머리카락을 앞머리부터 뒤로 넘기고 모아서 어깨까지 땋아 틀었는데 옆머리는 삭발해서 두상이 뚜렷하게 보였다. 한쪽 눈가와 이마에는 고급 액자의 가장자리 장식을 연상시키는 기하학적 문신이 검푸른 염료로 새겨져 있고 입가를 덮은 덥수룩한 수염이 건장한 몸매와 잘 어울렸다. 반소매 셔츠를 걸쳐서 팔뚝의 두드러진 힘줄이 여기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바구니를 들고 있었는데 바구니 위에 깨끗한 천이 덮여 있었다. 루나가 저쪽을 가리키며 속삭였다.
“저 사람 목에 걸린 거 보여요?”
레스가 걸고 있는 것과는 형태가 조금 달랐으나 상대의 셔츠 위에 꿈 덫 목걸이가 매달려 있었다. 상대가 자신의 목걸이를 들어서 이상하다는 듯 잠깐 노려보다가 자연스럽게 레스와 시선이 교차했다. 둘은 반사적으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서로 눈을 돌렸다. 근처에 있던 시튼이 바로 청년에게 물었다.
“사탄타 씨? 왜 그러십니까?”
사탄타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저 남자가 시조 사냥꾼의 토템을 갖고 있습니다.”
같은 순간 레스도 중얼거리고 있었다.
“일이 더 복잡해질 거 같은데.”
피카니가 조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레스. 침착해. 말실수 한 번으로 애쓴 게 허사로 돌아가는 수가 있어.”
레스는 듣는 척도 안 하고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죄송합니다만 아까부터 계속 신경 쓰였는데. 저건 뭐죠?”
주목이 자신에게 쏠리자 레스는 번쩍 든 손으로 근처에 놓인 참나무통을 가리켰다. 작은 수레에 놓여있었는데 내용물이 무거운지 바퀴가 땅에 박혀있었다. 회담이 준비됐을 때부터 계속 거기 있었는데 대화가 시작된 이후 누구도 거기에 관심이 없었다. 방금 한 명 빼고.
가브리엘 신부가 뒤뚱 걸음으로 참나무통에 가까이 가며 친절한 말투로 외쳤다.
“내 정신 좀 봐라. 그쪽에서는 선물을 가져오시고 격식까지 다 갖추셨는데 저희가 접대를 까먹었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가 외부인을 크게 맞이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라서.”
신부는 자기 주머니에서 나무통에 꽂는 연결 꼭지를 꺼내고는 바로 쩔쩔맸다.
“아이고 이걸 어째. 망치를 내가 가져왔던가?”
“신부님. 제가 하겠습니다.”
사탄타가 신속하게 다가와 가브리엘에게서 물건을 건네받았다. 그가 꼭지를 통에 대고 손바닥으로 가볍게 때리자 '쾅'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통에 꼭지가 박혔다. 거동이 불편한 투슈가쿡 추장과 가브리엘 신부를 제외하고 시튼과 사탄타, 코랏 원사가 탁자에 있던 잔들을 서둘러서 나무통 쪽으로 옮겼다. 그 모습을 일행들은 미지를 향한 기대와 두려움이 섞인 복잡한 감정이 담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시튼은 꼭지를 비틀어서 맥주의 풍성한 거품이 살짝 흘러나올 정도로 잔에 콸콸 붓고는 조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자랑하듯이 상대에게 들어 보였다.
“저희 마을 명물입니다. 가브리엘 신부님의 형제자매분들이 빚은 거예요.”
그렇게 말하고는 시튼이 먼저 한 모금 시범으로 마셨다. 레스를 제외한 일행들은 금빛 액체와 구름 같은 거품이 일렁이는 잔 속의 작은 천국에 넋이 나가 말을 잊었다. 일행들이 아무 말도 반응도 안 보이자 시튼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불안해하는 기색을 보였다. 코랏 원사가 말했다.
“억지로 드시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만. 맛만이라도 봐주신다면 기쁘겠습니다. 이 술은 모두의 결실입니다. 저희 마을이 어떠한 곳인지 구차하게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이 맥주 한 모금이 훨씬 나을 겁니다.”
“한 잔 부탁드립니다.”
루나가 바로 당돌하게 곧게 편 손을 하늘로 향해 뻗으며 주문하자 사탄타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잔에 맥주를 붓고 신속하게 대접했다. 타티아나는 하딘의 눈치를 살폈고 하딘과 피카니는 부러움과 불안이 미묘한 비율로 섞인 시선으로 루나를 바라보았다. 루나는 양손으로 손잡이가 달린 나무 술잔을 얼굴 높이로 들어 올려 거품 터지는 소리를 잠깐 듣다가 쭉 들이켰다.
한참을 꿀꺽꿀꺽하고 루나가 맥주 마시는 목울대 울리는 소리만 그곳에 흘렀다. 그러다 뜬금없이 기계적인 손동작으로 술잔을 수평으로 들어 입가에서 떼고는 고개를 돌려 점잖게 작은 트림했다. 아주 맑고 높은 목소리로 그녀는 평가했다.
“10점에 10점이요. 전 원래 스타우트가 취향인데 이거라면 얼마든지 마실 수 있겠어요.”
가브리엘 신부가 손을 모아 비비면서 기쁘게 웃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시튼과 사탄타가 서로 눈짓을 교환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잔들에 내용물을 채우고는 일행들 앞에 탁탁탁 차례대로 놓았다. 일행들은 난데없이 음식 평가단이라도 된 거처럼 거부도 긍정도 안 하고 상대의 권유를 멍하니 받고 있었다. 다만 레스 앞에 맥주잔이 놓였을 때 피카니가 질겁하기는 했다.
“잠깐만요! 이 녀석은 술 마시면 안 돼요!”
시튼이 살짝 놀래며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렇지. 사쿠라비 사람들은 계율로 술이 금지되어 있었죠.”
맥주를 신기한 물건처럼 빤히 바라보던 레스가 평범한 어조로 말했다.
“전 딱히 계율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다위윤에게는 장기간 식수 보관과 영양 보급을 위해 술을 소비하는 게 재량껏 허용되기도 합니다. 영역 안에 우물이 넉넉한 부족이 아니고서야 그러지 않으면 사막에서 살아남기가 힘드니까요.”
타티아나가 눈을 껌뻑이고 고양이 귀를 쫑긋거렸다.
“의외의 지식이 늘었네. 그래서 마실 거야?”
피카니가 목소리를 낮게 깔고 손짓까지 더하며 대단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녀석이 술을 마시면 항상 일이 터져!”
레스가 목만 돌려서 피카니를 향해 눈살을 찌푸렸다.
“그 일들이 다 나 때문인 거처럼 말한다?”
하딘이 말했다. 그는 입에 고이는 침을 너무 삼켜서 속이 쓰리기 시작했다.
“자네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모처럼이니 건배하자고. 저 친구가 주정 부릴까 걱정인가 본데 누가 맥주 한 잔에 취하겠어?”
루나는 태연히 손가락을 튕기며 바텐더에게 부탁하듯이 사탄타를 향해 재보충을 요구했다. 타티아나가 아직도 맥주와 눈싸움을 벌이는 레스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빨리 결정해.”
레스는 휘파람처럼 가늘게 숨을 뱉고는 잔의 손잡이를 쥐는 대신 밑부분을 받쳐 들었다.
“맥주라면 괜찮겠지.”
피카니는 중얼거렸다. 될 대로 되라지. 일행은 함께 잔을 들고 사람들과 함께 시선을 나눈 다음 입을 모아 점잖게 외쳤다. 건배. 그리고 마셨다. 일행들의 반응은 마을 사람들이 기대한 것 그대로 혹은 그 이상이었다. 하딘은 미지의 존재라도 접한 학자 같은 표정으로 살짝 한 모금 들이킨 잔 속의 맥주를 바라보았다.
“이런 세상에.”
루나가 자기 몫을 절반 들이키고 하딘을 향해 짓궂게 말을 걸었다.
“입에 맞으시나요?”
“이거 얼마면 됩니까?”
하딘은 대답 대신 자기 맞은편에 앉은 마을 대표자들에게 질문했다. 가브리엘 신부가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며 뜸을 들이다가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였다.
“어, 한 병에 얼마냐는 뜻인가요? 저희는 돈 안 받아요. 그냥 한 분마다 한 병씩 챙겨….”
그는 말허리를 끊었다.
“그쪽하고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싶습니다. 저희 가문이 후원하겠습니다.”
한창 맛있게 맥주를 마시고 있던 피카니는 그 소리를 듣고 머금은 걸 뿜을 뻔했다.
“대위? 취했습니까?”
“난 지금 완벽하게 이성적이야. 저번에 우리나라 음식이 어쩌니저쩌니 엄청나게 놀려댔던데 내 입맛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설령 그럴지 몰라도 난 술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전문가야. 왜인지 알아? 우리 가문이 대대로 양조장들을 운영하거든.”
루나는 잔에서 손을 떼고 저쪽을 향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들어본 사실인 건 둘째치고, 그때 그 이야기 아직도 속에 담아두고 있었어요?”
하딘이 힘을 조절해서 탁자를 손바닥으로 때리고 가브리엘 신부에게 화살을 돌렸다.
“아무튼! 가능하겠습니까? 진지합니다.”
신부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아뇨. 이 술은 저희가 마시려고 만드는 겁니다. 바깥세상에 팔려면 공급과 단가를 고려하면서 만들어야 하는데. 욕심이 담긴 마음으로 빚으면 술이 탁해진답니다.”
“그럼 비결이 뭡니까?”
상대는 어깨를 으쓱였다.
“만년설이 녹아서 산으로부터 흘러오는 물, 직접 길러 바로 수확한 신선하고 질 좋은 재료를 아끼지 않고 쓰는 것, 그리고 주님의 감사를 담아서 하는 꾸준한 노동과 관리요. 참고로 저 통에 담은 건 겨우내 먹으려고 장기간 보존을 위해 홉을 많이 넣고 도수를 높게 잡은 건데, 군인분들이시니 맛이 강한 걸 좋아하실 거 같아 골라봤습니다. 괜찮으셨는지요?”
하딘은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 맛을 이곳이 아니면 영영 누릴 수 없다니. 전술적 비극이다.”
루나가 한쪽 손을 턱에 괴고 술기운 탓에 생긴 비웃음을 오묘하게 담아 말했다.
“유서 깊은 지방 수도원들은 특산물이 하나쯤은 있죠. 비누, 사탕, 버터, 치즈 등등. 품질이 공산품과 비교가 되겠어요?”
“이거에 비하면 우리 군에 보급되는 건 구정물이야. 다른 놈도 아니고 대령의 대대가 이걸 누리게 될 걸 생각하니 분해 죽겠군.”
그 말을 듣고 마을 대표자들은 뒤늦게 뜻을 완벽히 이해하고 얼굴을 환히 폈다. 코랏 원사가 양손을 탁자에 올리고 윗몸을 이쪽으로 내밀며 급하게 물었다.
“저희의 요청을 받아주시는 겁니까?”
하딘은 참을성 있게 맥주를 한 모금만 마시고 일행들의 동의나 눈치도 살피지 않고 주저 없이 굵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시튼 빌리지는 결백합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저는 양조에 대해서 좀 아는 편입니다. 훌륭한 술을 빚으려면 재료와 노력, 전문지식은 물론이고 설비 건축에도 대단한 공이 들어가죠. 여러분들이 침략자이거나 무법자, 도망범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겁니다. 앞으로도 여러분들이 지낼 수 있도록 설득을 돕겠습니다.”
하딘 대위의 정열 넘치는 모습에 피카니는 웃음 밖에 안 나왔다. 맥주를 아껴가며 조금씩 홀짝이다가 피카니가 생각 없이 말을 툭 꺼냈다.
“안주가 없는 게 아쉽네.”
그 말을 듣자마자 사탄타가 자기 이마를 때리고 자기가 들고 왔던 바구니를 탁자로 가져왔다. 그가 바구니에 씌워진 천을 벗기자 여러 가지 모양의 고깃덩어리가 나타났다. 여태껏 말없이 물 마시듯 잔을 천천히 비우고 있던 레스가 그걸 보고는 덤덤히 말했다.
“페미컨이군요.”
레스를 제외한 일행들은 다들 신기해하는 눈으로 바라보며 감탄과 경탄이 섞인 소리를 냈다. 투슈가쿡이 자기 차례가 왔다는 양 바로 나서서 설명했다.
“가문과 사람마다 만들어지는 맛이 다르지. 본디 보존 식품이지만 오늘은 귀한 손님들이 오셨으니 맛에 신경 쓰는 사람이 만든 거로 골랐네. 기름진 음식이니 잘 어울릴 거요.”
루나가 혀까지 내밀면서 입맛을 다시고 바구니로 손을 뻗으려는데 갑자기 나타난 손길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루나가 손길의 주인을 알아보고는 놀라서 질겁했다.
“레스 씨?”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그의 눈가를 터번의 그림자가 가렸다. 레스는 설명도 없이 루나의 팔을 놔주고는 바구니에 가까이 다가갔다. 피카니가 조금 날 선 목소리로 물었다.
“너 취했냐?”
“쉿.”
레스가 한 번 피카니를 향해 째려보자 터번 속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리고 바구니의 페미컨을 하나씩 자세히 관찰했다. 눈으로 관찰하고 나면 손끝으로 살짝 매만졌다. 굉장히 무례한 짓인데도 마을 대표자들조차 항의 한마디 없이 레스의 행동을 바라만 보았다. 레스의 눈길이 유난히 깔끔한 직육면체 형상으로 빚어진 페미컨에 멎자 시튼과 사탄타는 바짝 긴장하고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레스는 그 페미컨을 살짝 조각내어 입에 넣었다. 씹어가며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집중했다. 먹던 걸 삼키고 그가 말했다.
“크랜베리, 단풍 설탕, 사슴 지방, 토끼고기, 호두, 산딸기.”
자신의 터번을 고쳐잡고 레스가 사탄타에게 얼굴을 들이댔다. 그리고 그에게만 들릴만한 크기로 목소리를 깔았다.
“어디 있어?”
사탄타는 말없이 그와 눈싸움을 했다. 사람들은 이 상황이 어디로 이어질지 몰라 초조해하며 지켜보았다. 긴장의 실이 점점 팽팽해지려는데 레스가 딸꾹질로 분위기를 깨버렸다.
“히끅!”
실이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자기 자리에서 털썩 자빠지고는 레스는 땅으로 진동이 전해질 정도로 거칠게 코를 골았다. 하딘이 레스를 노려보며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맥주 마시고 곯아떨어지는 놈이 진짜 있다고? 한잔으로?”
루나가 술기운이 가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레스가 마음고생 때문에 밤을 꼬박 지새웠다고 했잖아요.”
타티아나가 끼어들었다.
“레스가 오늘 아침밥 먹는 거 본 사람?”
피카니가 말을 받았다.
“그 녀석 식욕 없다며 빈속에 커피만 마셨어. 그것도 건강에 좋은 짓은 아니지.”
타티아나가 가브리엘 신부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거 내년 봄까지 보존할 생각으로 도수를 높게 잡았다고 하셨죠? 맛이 워낙 달아서 티가 잘 안 났지만.”
“예. 빈속에 마시면 탈 납니다. 그런데 평생 술 마셔본 경험이 손에 꼽는 분이셨으니.”
곧 일동은 한가지 난제에 처했다. 피카니가 말했다.
“이 자식 어디에다 치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