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0.
<클로즈 베타 테스트에 합격하셨습니다.>
스팸메일을 정리하던 중 시선을 잡아끄는 메일이 있었다.
게임이름은 아르카디아.
나는 무심코 메일을 클릭했다가 뒤늦게 바이러스를 의심했다. 그러나 바이러스 메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게임스크린 샷이 예쁘고 캐릭터들의 피부 질감이 좋았다.
‘잘 만들었네. 이게 게임 그래픽이라고?’
나는 재빨리 게임 사이트에 접속했다. 날짜를 확인하니 바로 접속이 가능했다. 나는 사이트에서 게임을 다운 받고 아무런 의심도 없이 게임을 실행했다.
생각해보면 그것이 문제였다.
왜 스크린 샷이 놀랍도록 현실적인지. 왜 게임을 즐겨하는 내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게임 타이틀인지. 그런 걸 의심해봤어야 했다.
나는 게임을 실행하자마자 이세계로 끌려왔고 선택권도 없이 그들의 계획에 합류됐다. 요정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집에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기어코 나는 세상을 구했다. 날 소환시킨 요정이 말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용사님!
미친 개소리였다. 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꺼져라. 해로운 곤충.
의외의 대답이었는지 요정은 입을 헤 벌린 채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 어,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안 되기는. 너 빼고 다 잘 돼.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빨리 안 꺼져?
분노가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그간 나는 생고생을 다 했다. 엄한 곳에 끌려와서는 죽을 뻔 한 적도 많았고 죽을 결심을 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질겼다. 결코 죽지 않았다. 노예상인에게 잡혀 검투사가 됐을 때도 버텼고 전쟁포로로 잡혀 목에 칼이 들어왔을 때도 버텼다. 원정대의 보급부대가 전멸해서 먹을 게 없었을 때도 악마의 고기와 눈알을 파먹으며 살아남았다.
그렇게 아등바등 기어코 생존했다. 끝이 있고, 희망이 있고, 보상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는 나날이었다.
나는 가난한 삶이 싫었다. 희망 없는 현실이 싫었다. 빌어먹을 최하층 흙수저의 삶에서 벗어나 이세계로 와서 천고의 노력 끝에 비로소 얻은 보상이었다.
마왕을 죽인 후 나는 행복했다. 무엇보다 생활수준이 높고 경제적으로 만족스러웠다. 나아가 권력도 강하고 능력도 정점이었다. 나보다 강한 생물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언젠가 위기의식을 느낀 황제가 내게 칼을 빼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될 건 없었다.
-황제? 그래서 황제께선 레벨이 몇이십니까?
-······.
내 레벨을 알게 된 황제는 오히려 사과하며 내게 귀족계급의 감투와 천문학적인 보상을 내렸다. 나는 무소불위의 무법자이자 절대자가 되었다.
게다가 이곳의 내 가정환경은 또 어떠한가.
국보급 미모의 아내가 다섯 명에 애첩만 수십 명이 넘는다. 세상을 구한 고강한 정력으로도 부족할 만큼 수많은 여자를 후릴 수 있었다.
덧붙여 이곳에선 나이도 먹지 않는 영생(永生).
그런데 내가 왜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제정신이라면 돌아가겠다는 말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용사님! 당신께서 계셨던 지구가 지금 굉장히 위험해요. 용사님이 봉인하신 마왕이 다시 부활한 다음 지구로 도망가 버려서··· 용사님의 도움이···.
그제야 요정이 이실직고를 했다. 마왕이 부활했다고? 하지만 난 아무래도 좋았다. 성공한 현실이 더 중요했다.
-응, 상관없으니까 꺼져.
그 뒤로도 요정은 질척질척 나를 괴롭혔다. 안 도와주면 자기의 목이 물리적으로 댕강 잘린다느니, 세계를 구할 사람은 당신 밖에 없다느니.
-네. 잘 들었고요. 너네들이 잘하는 납치해서 새로 키우세요.
그렇게 10년이 더 흘렀다. 강산이 변하고 풍속이 변해도 내 마음은 돌과 같이 변함이 없었다. 오래 살면 고향이 그립다던데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곳 생활이 더더욱 만족스러워졌고 날마다 행복이 더해졌다.
그런데 저기 하늘 위의 높으신 분은 나와 생각이 달랐나보다.
-필멸자 주은성이여.
꿈결이었다. 갑자기 신이 나타났다.
새하얀 빛이 나를 잠식했고 그는 내게 일방적으로 말했다.
-너는 더 성장해야한다. 더 강해져야 한다. 지구로 돌아가서 다시 한 번 마왕을 봉인해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권한은 내게 허용되지 않았다.
미친놈들.
도대체 사람을 뭐라고 생각하는 건가.
신이란 놈이 어째서 한낱 피조물을 이리도 괴롭히는 건가.
순간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결심했다.
그래, 마왕이 거기 있다면 오히려 잘 됐다.
복수한다. 다시 돌아와서 기필코 복수한다.
마왕 패거리를 모두 모집한 다음 내 손으로 구한 이곳을, 내 손으로 망쳐주겠다.
신이라고? 두고 봐라. 병신새끼.
<레벨제한이 해제되었습니다.>
<귀환 특전을 보상받았습니다.>
<5초 후 지구로 귀환합니다.>
이윽고 빛의 글귀가 떠오르고 세상이 암전됐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세상이 뒤바뀐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