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던전 밖으로 나왔습니다.>
30분쯤 지났을 때 던전 출구에 도착했다. 포탈 밖으로 나가자 관리건물과 그 너머의 경비초소가 보였다.
“철저하네. KS표준 규격으로 개떡같이 돼 있을 줄 알았는데.”
던전은 생각 외로 잘 관리되는 듯했다.
내 혼잣말에 은애가 반응했다.
“요즘은 헌터 전성시대니까요. 아무래도 그 영향이죠.”
우리는 대화를 나누며 초소 밖으로 나왔다.
관리실과 경비초소는 주로 몬스터를 감시하는 역할인 듯했고 헌터의 경우 들어갈 때만 자격증을 확인하고 있었다.
“나갈 때는 따로 자격증을 확인 안 하는 건가?”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은애가 걸음을 옮기며 나긋나긋하게 설명했다.
“아무래도 사람 일이니까요. 높은 등급의 던전은 철저히 자격증을 확인하는데 낮은 등급의 던전은 융통성이 있는 편이죠.”
그렇다면 나중을 위해서라도 일단 헌터자격증을 따두는 게 먼저인가.
입구를 벗어나 산길을 내려가자 버스 정류장이 나왔다. 표지판에 다다를 무렵 문득 은애가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아, 그런데 오빠 기억상실증이라면서요.”
“예.”
“집은 기억나요? 집도 기억 안 나죠?”
“당연히 기억 안 납니다.”
당연히 기억난다.
구체적인 위치는 기억나지 않더라도 찾아가는데 문제는 없다. 단, 가족들이 이사를 가지 않았다면.
‘10년이나 지났는데 이사를 안 갔을 리가···.’
소환되기 전 살던 집은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서 일가족이 도피하다시피 얻은 집이었다.
좁고 냄새나고, 햇볕도 들지 않는 허름한 곳.
벽지에 곰팡이가 하도 많아서 처음엔 검은색 물감이 칠해진 건가 착각한 곳.
여름엔 벌레가, 겨울엔 쥐가 들끓어서 따로 애완동물을 키울 필요도 없이 언제나 북적거렸던 곳.
‘생각해보니 나 거기서 어떻게 산거냐··· 대체.’
10년이나 지났는데 가족들이 거기서 계속 살고 있을 리는 없다.
나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 그럼 어떡하지··· 헌터 자격증도 없죠? 지갑도 없으신 것 같은데···. 이러면 경찰서에 가야하나?”
은애가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제야 나는 다른 문제가 확연히 떠올랐다.
사라진지 10년.
아마도 실종신고가 돼 있을 거다. 어쩌면 사망처리가 돼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좀 더 뻔뻔해지기로 했다.
“은애씨.”
“네?”
“하루만 신세집시다.”
“···예?”
내 요구에 은애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처음엔 못 들은 척. 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얼굴 표정은 감출 수 없었다.
“저··· 으음. 하루만 신세지겠다는 게···?”
“잘 곳이 없어서요.”
“아···.”
은애는 단번에 거절하지 못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이미 해는 저물고 주위는 어둠에 잠긴 시간.
생명의 은인에 기억상실증인 사람을 경찰서에 맡기고 떠날 만큼 모진 사람은 아닐 것이다.
“저 혼자 사는데···.”
“저도 혼잡니다. 지금은 둘이지만 은애씨가 절 버리고 가면 혼자 남겠죠.”
내 대꾸에 은애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의 귀가 빨갛게 물든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입김은 안 나오는데 날씨가 벌써 쌀쌀한가.
“···아, 알았어요.”
은애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허락이 떨어졌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훅 내뱉고 메마른 입술을 적셨다. 당분간 그녀를 통해 바뀐 세상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윽고 버스가 오자 그녀를 따라서 버스에 올랐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버스 안은 한적했다. 그녀는 내 몫까지 계산하고 나를 뒷좌석으로 이끌었다.
“일단 내일 경찰서부터 가요.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까. 인터넷 검색하니까 대격변 특별실종 이후로 이런 건 경찰서에서 금방 해결 된대요.”
은애가 스마트폰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격변 특별실종이라···.’
나는 듣는 척 마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하루만 신세 질 생각은 전혀 없었다.
* * *
“조심히 들어오세요. 저 집세가 좀 밀려서···. 들키면 큰일 나요.”
아까부터 쭈뼛거린 이유가 이거였나.
그녀의 자취방은 변두리에 있는 시골마을 근처였다. 본래 농지였는데 인근에 던전이 생겨나면서 빌라가 지어졌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휴우, 먼저 들어가세요.”
은애가 현관문을 열고 내 등을 떠밀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들어가자 가장 먼저 부엌이 보였다. 부엌을 지나쳐 미닫이문을 열자 한 칸짜리 방으로 된 원룸이 있었다.
“집이 아담한 게 좋네요.”
“옥상 바로 밑이라서 요즘 같은 날엔 덜 추운 편이에요.”
은애가 겉옷을 벗으며 헤헤 웃었다.
“아무 대나 편하게 앉아계세요. TV를 보셔도 되고.”
“네.”
“아, TV는 볼륨 좀 줄여주셔야해요. 혹시 모르니까요.”
고개를 끄덕인 나는 시선을 돌려 베란다를 쳐다봤다. 창문이 있는 그곳엔 두꺼운 종이 같은 게 다닥다닥 붙여져 있었다.
설마 열이 새어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인가.
‘헌터라는 직업도 벌이가 시원찮은가···.’
나는 적당히 앉고 생각에 잠겼다. 은애는 먼저 씻겠다며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저 다 씻었어요. 오빠도 씻으세요.”
은애가 욕실에서 나왔다.
물에 젖은 긴 생머리에 흰 티와 반바지.
뭇 남자라면 요염한 자태에 불끈 했을 광경이었지만 나는 스스로 놀랄 만큼 감흥이 없었다.
‘역시 과유불급인가.’
경국지색의 아내들과 너무 많은 밤을 보냈다. 웬만한 미인은 눈에 차지도 않는다. 이거 시신경이 완전 달라져 버린 걸까. 거의 유전자 수준의 변화다.
“욕실도 깔끔하네요.”
나는 입에 발린 소리로 대꾸하고 그녀를 지나쳐 욕실로 들어갔다. 은애가 친절한 목소리로 바지를 건넸다.
“수건은 찬장에 있으니 꺼내서 쓰시면 되고. 갈아입을 옷은 반바지 밖에 없어요. 남동생이 입던 건데 이거라도 갈아입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욕실 문을 닫았다.
쏴아아아!
벗은 옷을 찬장에 두고, 샤워기를 틀자 뜨뜻미지근한 물이 나왔다. 세차게 내리치는 온수를 맞으며 나는 생각했다.
‘일단 법적인 신분부터 회복하자. 그 다음에 가족들도 만나고.’
10년이 지났어도 가족들은 아마 가난하게 살고 있을 거다. 그렇다면 빈털터리에 거지꼴로 만나고 싶진 않다.
금의환향.
이왕 일이 이렇게 된 거 돈 좀 싸들고 만나면 좋을 것이다. 그래야만 오랜만의 재회가 순수하게 기쁠 테니까.
뚝.
샤워를 끝내고 옷을 갈아입기 전, 나는 찬장에 개어놓은 흰 티와 면바지를 확인했다.
귀환 특전으로 보상 받았던 아이템들.
[특수한 흰 티]
등급 – 매직
내구도 - 10
모든 능력치 – 10
방어력 – 28
설명 – 특수한 자에게 지급되는 흰 티셔츠.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모든 능력치를 올려준다.
[특수한 자의 면바지]
등급 – 매직
내구도 - 10
모든 능력치 – 10
방어력 – 28
설명 – 특수한 자에게 지급되는 면바지.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모든 능력치를 올려준다.
이것들도 다 매직아이템들이다. 현관문에 있는 신발까지 포함해서.
‘팔면 비싸겠지?’
매직 아이템 하나에 목숨을 거는 것도 그렇고 막연하게나마 추측이 가능했다. 사람 목숨이 오가는 정도면 엄청나게 비쌀 거다.
수중에 돈이 한푼도 없는 만큼 우선 이것들부터 팔아야 할 것이다.
옷을 입고 욕실에서 나가자 은애는 이부자리를 펴고 있었다. 이불을 정돈하고 침대에 걸터앉은 은애가 말했다.
“저어··· 새벽되면 쌀쌀할 텐데 난방비가 좀 그래서 켜기가 애매해요. 그래도 침대 위에 올라오시면 절대 안 돼요.”
꼭 강아지 같다. 목소리에 무언가 원망이 섞여 있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역시 여자 혼자 사는 곳에 막 들이닥쳤으니 찝찝하겠지.’
높은 레벨. 기억상실증. 생명의 은인.
많은 요인이 지금의 상황을 이끌어냈다. 아마도 그녀는 내 강함 탓에 무언가 불이익을 받을지도 몰라 저도 모르게 승낙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중에 확실히 갚아주자.’
그렇게 생각하고 침대의 발치로 걸어갔다. 그곳엔 작은 책상과 컴퓨터가 위치해 있었다.
나는 책상 위의 모니터를 가리키며 물었다.
“컴퓨터 좀 써도 되나요?”
은애는 커다란 눈망울로 날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의자에 앉았다.
‘10년이 지났어도 생김새는 그대로네.’
감회에 젖은 눈으로 컴퓨터를 흘겨보다가 부팅 버튼을 눌렀다.
딸깍!
그러자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모니터 화면이 들어왔다.
드르륵!
···는 착각.
하드 긁는 소리까지 들리다니.
SSD도 아닌 건가.
한참을 지나도 검은 화면에 영어만 가득했다.
‘와··· 돌아버리다 못해 공중제비를 돌겠네. 설마 이거 10년도 훨씬 더 된 컴퓨터인가.’
노인 학대를 넘어서 화석을 굴리는 급이다. 하지만 빌려 쓰는 입장에서 군소리를 할 순 없다.
이윽고 모니터 화면이 제대로 들어왔다.
타닥! 타다닥!
마우스를 이끌고 키보드를 두들겼다. 인터넷까지 느리면 어떡하나 불안했는데 다행히 인터넷은 빨랐다. 나는 지금 시대의 정보들을 검색하며 머릿속에 새겨나갔다. 사람 사는 동네가 대개 그렇듯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세계가 게임처럼 바뀌었다는 것 빼고는 바뀐 게 거의 없구나.’
당장 신분회복과 관련된 정보를 검색하니 ‘대격변 특별실종’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은애로부터 들었던 정보다.
10년 전 세상이 뒤바뀐 후로 실종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져서 실종자의 신분회복 절차도 간편하게 바뀌었다는 내용이었다.
‘이건 다행이네.’
한창 컴퓨터에 열중하며 세상을 이해하고 있을 무렵.
“저기, 오빠. 컴퓨터는 어떻게 사용하는지 기억나시나 봐요?”
어느새 은애가 불쑥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아,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의심을 산건지 조마조마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녀는 혹시나 내가 컴퓨터를 고장 내지는 않을까 불안해하는 눈초리였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급기야 그녀는 마우스를 낚아채고 내게 물어왔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헌터들이 아이템을 거래하는 곳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아이템의 시세를 알면 대략적으로 이곳 사람들의 수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공간도 사야하고.’
아공간은 인벤토리 역할을 하는 가방이다. 아공간이 있으면 귀찮은 걸 들고 다닐 필요가 없으니 여러모로 필수품목이었다.
“헌터 마켓이 가장 대중적인데 보여드릴게요.”
은애가 키보드를 두들기며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러자 모니터 화면 위로 헌터마켓이 보였다.
사이트 배너부터 실시간 구매와 판매목록까지.
‘역시 예상했던 대로네.’
실제로 보니 놀랄 정도였다.
에픽 아이템은 당연히 거래가 완전히 없고 유니크 아이템이 최소 억 단위부터 수백억을 호가하고 있었다.
레어 아이템은 보통 수 천만 원 수준. 이러니 매직 아이템도 몇 백만 원이나 하는 것이다.
‘와, 커먼 아이템들이 몇 십만 원이라고?’
보면 볼수록 기가 찰 노릇이었다. 저쪽 세계의 아이템들을 조금만 들고 왔어도 여기선 세계적인 부자가 되는 게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하니 울적해진다.
“아이템 구경하시게요?”
“네. 알아볼 게 있어서.”
은애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직접검색에 나섰다.
하지만 사이트가 복잡해서 원하는 옵션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어코 찾은 게 모든 능력치 +1의 방어구들.
‘모든 능력치 +10짜리는 어떻게 검색하는 거지?’
가지고 있는 매직 템들의 옵션을 떠올리며 한참을 헤맸다. 하지만 더럽게 찾기 힘들다. 사이트 참 개떡같이도 만들어놨네.
액티브 X? 이건 뭐지? 뭘 설치하라는 거야?
허, 씨발. 이 새끼들 장사하기 싫나.
“······.”
결국 나는 스스로 검색하길 포기했다.
시선을 돌려 은애를 쳐다보니 은애가 고개를 갸웃 숙이고 있었다.
나는 당장에 윗옷을 벗었다. 아이템의 정보를 공유하려면 오로지 착용하지 않은 상태여야만 한다.
그러자 은애가 기겁해서 소리쳤다.
“우와아앗! 히이익! 가, 갑자기 뭐에요···! 싫어! 처음이라고!”
“······.”
예상외의 호응이라 내 쪽이 더 당황스럽다.
은애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손가락 틈새로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이 제대로 반짝였다. 볼 거면 제대로 보든가.
“이거랑 같은 옵션으로 검색 좀 해주세요.”
내가 윗옷을 건네며 말했다. 아이템 정보를 공유하자 그제야 그녀의 시선이 내 가슴근육에서 멀어졌다.
“···예?”
발갛게 달아올랐던 그녀의 낯빛이 점차 새하얗게 질렸다. 안 그래도 하얀 얼굴 톤이 더욱더 하얗게 변했다. 마치 마네킹처럼.
“허어어···. 이, 이, 이건···?”
은애가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경악했다.
반응만 보자면 무슨 지존급 아이템이다. 나는 입이 떡 벌어진 은애를 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매직아이템이 비싸봤자 매직아이템이지.
뭐, 저런 반응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