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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의 귀환-4화 (4/127)

# 4

다음날 경찰서에 가니 신분회복에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았다. 가족들의 연락처와 주소도 알 수 있었다.

“가족들에게 연락 안 하시겠다고요?”

“예. 따로 할 생각이라서.”

나는 굳이 연락해주겠다는 여경의 선의를 거절하고 경찰서를 나왔다.

아무렴, 지금 이 꼴로 재회할 순 없지.

“와··· 거의 10년을 잃어버린 거잖아요.”

옆에서 은애가 호들갑을 떨었다. 나는 별 감흥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실종 생존자라니. 그럼 그 동안 던전에서 사셨던 거예요?”

“음.”

“아이템들도 그렇고. 여러모로 굉장하세요!”

어제 매직아이템을 보여준 이후로 선망의 눈빛이 부담스럽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가진 것과 동일한 옵션의 매직 템은 찾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게 옵션 차이가 너무 났다.

귀환 특전으로 얻은 흰 티와, 면바지, 신발 세트가 통상적인 매직아이템들보다 20배 이상 옵션 수치가 높았다. 지금까지 발견된 이곳의 레어 아이템을 압도할 만큼 성능이 좋은 것이다.

‘지구의 아이템들이 너무 터무니없이 구려.’

그뿐만이 아니다. 귀속해제 포션이나 대용량 힐링포션, 마나포션, 각종 버프물약 등등···. 그런 걸 파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아무래도 만드는 방법 자체를 모르는 것 같았다.

“어···.”

가만.

‘그러면 내가 만들어서 팔면 대박 아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눈이 밝게 트인다.

싼값에 재료 아이템을 구매해서 제조한 후 되 판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자면 귀속해제 포션이나 대용량 포션, 버프 물약들이 수요가 없을 리는 없다. 만드는 순간 게 눈 감추듯 판매되겠지.

‘요정의 말과는 달리 세상이 엄청 위험해 보이지도 않고.’

융통성 있는 부분이 꽤 있지만 안전과 관련된 사항은 철저한 것 같다. 민간인들의 레벨 수준도 꽤 높아서 헌터도 따로 뽑는 판국이니.

‘그럼 일단 헌터가 되는 게 먼저인가.’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생각했다. 지금 모든 상황들이 가리키고 있는 것을.

헌터자격증.

심지어 내가 가진 아이템들을 파는 데에도 일반적으로 판매하려면 헌터자격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마켓과 판매업체 이용에 헌터자격증이 필수라는 이유에서였다.

아, 그러고 보니···.

“레벨 50부터 헌터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고 했지?”

내가 은애를 보고 물었다. 말은 이미 놓은 상태였다.

“네에. 세상이 안전해지고 나서는 많은 사람들이 헌터가 되고 싶어 해서, 3년 전부터 정부가 정한 최저조건이에요. 헌터시험은 또 다른 말이지만.”

은애가 베시시 웃으며 말했다. 얼핏 감출 수 없는 자부심이 엿보였다. 레벨 50을 찍는 게 그렇게 어려운건가.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은애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헌터가 되고 싶은 마음가짐이 있으면 독학으로 1년만 노력해도 레벨 50은 찍어요. 민간인들만 해도 레벨30에서 40쯤은 되니까요.”

“그럼?”

“헌터시험에 합격하는 게 어렵죠. 공무원시험보다 더 어려운 게 헌터시험이에요.”

은애의 말에 갑자기 불안해진다. 설마···.

“설마 시험항목에 필기도 있냐?”

“그럼요. 필기가 합격점에 50퍼센트나 들어가는걸요.”

기다렸다는 듯이 말하는 은애를 보고 나는 저절로 얼굴이 구겨졌다. 뭐? 필기가 50퍼? 씨발.

“그럼 필기시험 같은 걸 가르치는 학원도 있겠네?”

“네에. 그래서 독학으로는 헌터 되기 힘들어요. 보통은 학원 다니고 시험 쳐서 합격해요. 지엽적인 문제들이 많아서 혼자서 암기해서는 도저히 합격이 불가능하니까요.”

은애가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역시 이놈의 나라는 잘 가다가 불필요한 게 하나씩 끼어있다. 꼭 필요 없는 과정 탓에 마진이 더 붙는 물건들처럼.

인류의 존망이 걸린 문제다. 그럼에도 상술이 먼저다. 사람들의 목숨보다 돈이 먼저인 거다.

누가 로비를 했는지 몰라도 헌터관련 법안 참 기똥차게 만들어 놨다.

‘액티브 X같은 놈들.’

인류가 완전히 망하지 않는 한 그런 것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확실했다.

나는 짜증 섞인 숨을 훅 들이켜고 본론을 꺼냈다.

“자격증 없이 사냥할 수 있는 곳도 있다고 했지?”

“네. 협회나 관리국에서 관리하지 않는 폐던전이나 오픈형 필드를 이용해야죠. 근데 그것보단 길드나 매니지먼트에서 운영하는 사냥터가 더 안전해요.”

나는 은애로부터 어제 들었던 정보들을 다시 복습했다.

“그리고 너희 길드가 그런 사냥터를 운영한다고?”

“네에. 아마 오빠가 들고 계신 아이템들도 판매할 수 있을 거고요.”

은애는 F급 헌터로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얼마 전에 헌터가 됐다고 했다. 그럼에도 운이 좋아 지역에서 꽤 유명한 길드에 가입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길드이름이 강철이었나? 중견 길드란다. 뭔가 단단한 느낌이다.

그렇다면,

“좋아, 그럼 일단 너희 길드로 가자.”

* * *

도착한 곳은 야트막한 산을 등지고 있는 폐건물이었다.

이런 곳이 길드 사무소라니. 생각 외로 초라하다.

“오픈형 사냥터가 있는 곳은 어쩔 수가 없어요. 언더그라운드는 거의 모두가 야산에 있는 편이라서···.”

은애가 내 표정을 읽고 중얼거렸다.

언더그라운드는 몬스터가 출현하는 곳을 말했다. 필드에 출현한 몬스터는 일정지역 밖으로 나갈 수 없기에 안전상에 큰 문제는 없었다.

“일단 들어가요.”

나는 은애를 따라 문을 열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 들어서자 먼저 파티션들과 책상들이 눈에 담겼다. 구석에는 몸을 단련하는 기구나 샌드백 따위도 있었다. 생각 외로 내부가 넓구나.

그런데···

저 반짝이는 건 뭐지?

“어이구, 뭐야?”

파티션 너머로 중년사내가 얼굴을 배꼼 내밀고 있었다. 자글자글한 주름에 각진 턱선. 콧방울까지 흘러내린 안경은 유들유들하고 느끼한 인상을 한층 더 돋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신수가 훤하네. 건물 안에 불이 안 켜져 있는데 대낮인줄 알았잖아.’

이마에 개기름이 반사돼 마치 바퀴벌레약을 뿌린 듯했다.

사내는 단숨에 자리에서 일어나 은애에게 아는 척을 했다.

“오오. 은애씨 어쩐 일입니까? 오늘은 길드 사냥 날도 아닌데?”

“아, 볼일이 있어서요. 아이템 감정이랑 사냥터 좀 이용하려고.”

“옆쪽에 계신 분은 누굽니까? 처음 보는 얼굴인데, 뉴 페이스?”

묘한 시선이 느껴진다.

-누구야?

내가 중얼거리듯 묻자 은애가 고개를 모로 숙인 채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차현진이라고 D급에 길드 베테랑 헌터예요. 재수 없는 놈이에요. 참고로 저 얼굴에 오빠랑 동갑임.

나는 순간 경악할 뻔했다. 세상은 정말 불공평하구나.

“길드마스터는 안 계신가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은애가 물었다. 아이템을 판매하려면 길드마스터와 상의하는 게 하이패스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사무실엔 저사람 외에 아무도 없구나.

잠자코 있던 차현진이 몸소 이쪽으로 다가와 대답했다.

“잠깐 아이템 납품 때문에 어디 나가셨습니다. 그나저나 남자친구에요?”

그는 밀착하고 있는 나와 은애의 사이가 궁금한 듯했다.

거, 쓸데없는 호기심인데.

“아뇨.”

내가 먼저 대답했다. 틈을 주지 않는 단호한 어조로.

그러자 은애가 묘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본다.

“아, 그러시군. 저는 차현진입니다. D등급 헌터고요.”

차현진이 사람 좋은 얼굴로 악수를 청했다.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아무렴, 사람을 외모로만 평가해선 안 되지.’

나도 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주은성입니다. 헌터지망생이고요.”

적당한 표현을 찾다가 대충 에둘러 대답했다.

그러자 순간 놀라울 정도로 차현진의 얼굴이 굳어지는 게 아닌가. 낯 위로 입 꼬리가 게슴츠레 올라가는 건 덤이었다.

‘뭐야,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마치 한 순간에 얼음으로 변하는 물을 본 기분이었다. 기분이 나쁘다기보다 신기했다. 사람 표정이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바뀔 수 있다니.

“아, 헌터가 아니셨구만. 으허허, 헌터지망생이라···.”

바뀐 건 표정만이 아니었다. 말투도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투로 바뀌었다. 은애가 왜 재수 없다고 하는지 절실히 알겠다.

-재수 없죠?

-그러네.

나와 은애가 중얼거리듯 소곤거리자 현진이 큼큼 기침을 했다.

“흐음··· 요즘은 개나 소나 헌터가 되겠다고 판치고 다니니까,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나대는 놈들이 많은 거지.”

그런 끝에 또 말을 잇는다.

“헌터도 재능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요즘 레벨 올리기가 쉬워졌다고 재능도 없는 것들이 헌터가 되겠다고 나대는데 헌터는 단순히 레벨만 충족해선 안 됩니다. 재능이 없으면 바로 죽음과 직결되니까.”

“아, 뭐. 그렇죠.”

나는 지나가듯이 대꾸했다.

뭐지? 초면이잖아. 그런데 저런 말을 해도 되는 건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이거 설마···.

“제 주변에서도 헌터 되겠다고 허송세월 보내는 사람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1년, 2년··· 심지어 5년을 노력해도 면접까지 가보지도 못하는 놈들이 있어요. 그래서인지 제가 슬쩍 흘겨보기만 해도 합불 여부를 좀 볼 줄 아는데···.”

현진이 목청을 가다듬고 가슴을 쫙 편다.

“제가 볼 때 은성씨는 헌터가 되기엔 좀 많이 부족해 보이는데, 흐음··· 아무래도 재능이 없다고 할까. 저는 뭐, 반 년도 안 돼서 합격했지만.”

그 말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설마 동갑내기한테 꼰대 질을 당할 줄이야. 마지막에 자기자랑은 화룡점정이다. 나는 차현진이라는 사람을 단숨에 파악할 수 있었다.

‘재수 없고 무례한 놈이네.’

아르카디아에서의 경험이었다.

가끔 몇몇 사람들은 자존감을 자신이 아닌 다른 것에 두기도 했다. 계급이라는 감투에 존재의의를 덧붙이는 귀족의 경우가 그 예였다.

문제는 올바르지 못한 선민사상에 있었다. 자신과 같은 특권계층이 아니면 동등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비슷하게도 눈앞의 차현진 또한 ‘헌터’라는 계급에 사로잡힌 듯했다. 그에게 헌터란 직업은 존재가치의 증명이자 남들보다 잘난 잣대였다. 그는 오로지 그 잣대 하나만으로 사람을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또라이는 상대하지 않는 게 제격이지.’

똥은 굳이 찍어먹지 않아도 아는 법이다.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고 무시했다.

그런데 이놈이 제대로 미쳤는지 또 시비를 걸어오는 것이었다.

“눈빛을 보아하니 뭔가 납득을 못하는 눈치신데. 흠, 그러면 제가 합불여부 좀 봐드립니까?”

“뭐···?”

“하하하. 예. 연습삼아 대전 어떻습니까?”

현진이 노골적으로 비웃으며 사무실의 한쪽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엔 최근까지 사용한 흔적이 있는 복싱경기장이 있었다.

“제가 또 사람인생 헛 날리는 걸 가만히 놔두는 성격이 아니라서···. 오지랖으로 보이실 수도 있는데 나중에 저한테 큰절 하실 겁니다. 아이고, 현진씨. 그때 현진씨 말씀 들어서 인생 헛 날리지 않았다고. 헌터 됐으면 까닥 잘못했으면 장애인 됐을 건데 감사하다고. 후후후.”

현진은 히죽히죽 느끼한 웃음을 흘리면서 은근히 은애를 쳐다봤다.

머리가 빈 놈들은 이래서 문제다. 어떻게든 강한 놈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이 사람을 망친다.

‘단순하게 사는 놈이네.’

녀석의 으름장에 내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미친놈을 두들겨 패는 건 항상 즐겁다. 짐승은 몽둥이가, 미친놈은 물리치료가 제격이지.

“뭐, 까짓 거 못할 것도 없죠. 합불여부 좀 봐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오, 오빠···.”

그런데 뒤에서 은애가 내 어깨를 붙잡고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뭐지? 내 실력을 의심하는 건가?

-살살 하셔야해요. 저 녀석 유명 매니지먼트의 사장아들이란 말예요. 헌터업계 생각보다 좁아요.

아하, 그제야 녀석의 성격이 완전히 이해된다.

돈과 권력. 그리고 재능.

삼박자를 모두 갖췄다. 그래서 세상 무서운 걸 모르는 군.

아쉬운 건 외모 쪽인가. 역시 세상은 공평하다니까.

“어··· 보호장비들 착용 안 하시려고요?”

내가 맞은편 코너에 올라서자 현진이 비웃으며 말했다. 심지어 내가 목검 같은 무기도 쥐지 않자 현진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 숙였다.

“허어, 무기도 사용 안 하시는 건 좀 그런데···. 으허허, 그럼 뭐, 저도 무기 안 들고 하겠습니다. 까짓 거 검이 제 주력이긴 한데 페널티라고 생각하죠.”

“···음.”

숱한 전투와 사선을 넘나들며 기어코 만렙을 찍으면서 나는 깨달은 사실이 있다.

최고의 장비는 육체.

육체의 한계, 그 끝에 다다르면 장비들이 장비가 아니라 몸치장 정도로 바뀐다. 그래서 나는 맨손이 더 편했다.

그러면 몇 대 정도 때리면 될까.

“3수 양보해드리죠. 먼저 오십쇼.”

좋아, 3대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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