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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의 귀환-6화 (6/127)

# 6

“준비 철저히 하셔야 해요.”

철로 된 울타리를 지나기 전 은애가 말했다. 그녀는 주섬주섬 장비를 챙겨 입고 있었다.

“길드 기본 장비라도 드릴까요? 하다못해 무기라도 필요할 텐데.”

“아냐, 괜찮아. 난 맨손이 주력이라서.”

“으음, 괜찮으려나···.”

은애는 입술을 질근대며 불안한 듯 뒷말을 흐렸다. 사뭇 진지한 그녀의 표정에 나까지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도대체 길드 사냥터에 무슨 몬스터가 서식하기에 저런 얼굴일까.

“그런데 길드 사냥터는 유료 아냐?”

“아, 원래 입장료를 내는 게 맞는데 저희 길드 사냥터가 보시다시피 인기가 없어서. 뭐, 그래서 길드마스터도 크게 상관 안 해요.”

허리춤에 장검을 묶으며 은애가 말했다.

마치 피아노 학원에 친구를 데려온 듯한 말투.

확실히 사냥터를 이용하겠다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아까 사무실도 차현진 혼자 지키고 있었고.

우리는 울타리를 지나쳐 비탈길에 올라섰다. 넓은 평지가 모습을 드러냈고 군데군데 땅을 파낸 자국도 보였다.

“오빠. 땅 속에 몬스터가 있어요.”

곳곳의 구덩이는 몬스터의 흔적인가.

은애의 충고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표 레벨은 최소 50.

헌터 시험이 1개월마다 있다고 했으니 거기에 맞춰야 한다.

나는 생각을 곱씹으며 사냥터로 걸어갔다.

던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투명한 장막을 사이에 두고 사냥터와 일반지대가 완전히 구분돼 있었다. 장막 안에 들어서자 빛의 글귀가 떠올랐다.

<사냥터에 입장하셨습니다.>

‘언더그라운드는 다 이런 모양새인가.’

의문을 떠올리며 한 발 더 내딛었다. 눈앞으론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보이는 거라곤 그저 산 아래에 위치한 넓은 평지뿐.

확실히 땅 속에 몬스터가 있구나.

그렇다면,

쿵!

내가 제자리에서 발을 굴렸다. 그러자 지면에서 뭔가 튀어 올랐다. 뒤늦게 등 뒤의 은애가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오빠! 조심하세요!”

퍽!

나는 튀어 오른 그것을 단숨에 터뜨리고 뒤를 돌아봤다.

“뭘 조심해?”

“······허.”

은애가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지, 지금 강철 가시 구렁이를 한 방에 죽인 거예요?”

그제야 나는 시선을 돌려 발치를 내려다봤다. 그곳엔 머리가 짓뭉개져 있는 뱀 같은 게 있었다. 잿빛의 비늘에 크기도 크다. 짐작은 했는데 사람 몸집만 했다.

‘역시 아르카디아와 다른 점은 없는 건가.’

그리고 동시에,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목이 아플 정도로 무수한 빛의 문구가 떠올랐다.

내 낯 위로 한줄기 당혹감이 스쳤다.

오, 미친.

‘도대체 몇 업이나 한 거야?’

나는 놀란 숨을 훅 들이켜고 상태 창을 확인했다.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단숨에 레벨이 27레벨로 된 것이다.

‘경험치가 10배라서 그런가.’

강철 가시 구렁이는 나도 익히 알고 있는 몬스터였다.

레벨 80내외.

강철로 된 비늘로 근접공격이 거의 먹히지 않는 몬스터.

독은 없지만 방어력이 높고 몸 자체가 단단해서 여러모로 애를 먹이는 부류였다. 물론 나한텐 예외다.

‘이 냄새는··· 역시 아르카디아의 녀석들과 똑같구나.’

나는 손에 묻은 녀석의 체액 냄새를 맡으며 시체를 쳐다봤다. 땅 속에 사는 몬스터라고 했을 때 짐작은 했다. 예상하는 바가 맞다면 이건 절호의 기회다.

지켜 보던 은애는 다른 의미로 놀라고 있었다.

“으아아닛, 오빠 진짜 사람 맞아요? 어떻게 그걸 한 방에 죽일 수 있는 건데···.”

이제 놀라움을 넘어서 경계심까지 비쳐진다.

그녀의 시선은 내 주먹에 고정돼 있었다. 아무래도 맨손으로 가시 구렁이를 패 죽인 게 굉장한 컬쳐쇼크였나 보다.

‘하긴 칼로도 잘 안 베어지는 걸 다진 감자처럼 으깨버렸으니.’

나는 은애를 무시하고 다시 발을 굴렸다. 가시 구렁이가 튀어나오자 또 다시 한방에 피죽으로 만들었다. 레벨 업 표시가 연신 눈앞에 떠올랐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

‘오늘 하루만에 100레벨도 넘게 올리겠는데.’

문득 은애가 했던 말이 뇌리에 스쳤다.

독학으로 헌터시험을 준비하면 1년이면 레벨 50을 찍는다고 했던가.

‘레벨 50까지 한 시간도 안 걸리겠어.’

피식 웃은 나는 튕기듯이 몸을 움직여 행동을 반복했다.

발로 찍고.

튀어나오면 때리고.

쿵! 퍽! 쿵! 퍽!

“삐익!”

“삑!”

가시 구렁이들이 연신 비명을 지르며 경험치로 산화했다.

금세 레벨 50을 만든 나는 잠깐 숨을 돌렸다.

‘메테오 스트라이크 같은 걸 사용하면 금방일 텐데.’

일일이 죽이는 것도 귀찮아진다.

한 방에 모든 걸 쓸어 담고 싶다.

혹시나 싶어 중얼거리듯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영창해보지만···.

‘역시 마력이 필요한 건 체득이 안 되네.’

메가 힐과 같은 반응이었다.

체득이 되는 건 마력이 필요 없는 격투술 종류뿐이었다.

‘생각해보면 이게 페널티인가.’

나는 손을 내려다보며 입맛을 쩝 다셨다. 새삼 아쉽다. 하다못해 범위 형 마법만 사용할 수 있어도 더 빠른 레벨 업이 가능할 텐데.

‘아니면 제대로 된 무공이라도.’

그렇게 두 시간이 더 지났다.

<주은성>

레벨: 64(윤회+1) [경험치 0/56338]

···

[미 분배 포인트: 63]

레벨 64에서 손을 턴 나는 가시 구렁이들의 시체를 한곳에 모았다.

지금은 레벨을 올리는 것에 큰 욕심이 없었다. 모든 일에 순리가 있는 것처럼 이곳에 적응하는 게 가장 먼저다.

“뭐예요? 가시 구렁이의 시체는 또 왜 모으시는 거예요?”

경악해서 굳어 있던 은애가 내게 물어왔다. 그늘 진 얼굴에는 또 무슨 짓을 할지 궁금해 하는 묘한 호기심을 품고 있었다.

“다 쓸모가 있어.”

나는 지나가듯이 대꾸하고 묵묵히 시체에서 마석을 빼냈다. 마석은 보통 몬스터의 심장부근에 있었다. 이마의 정중앙에 마석을 붙이고 있는 놈들도 있지만 인간형 외에는 그런 몬스터는 거의 없었다.

‘중하급 한 개, 하급 세 개, 최하급 마석 열 개 인가.’

나쁘지 않았다. 시세가 얼마일지는 모르겠지만 마석의 특성상 돈으로 환전하기가 용이할 것이다. 일단 무일푼의 위험에서는 벗어난 듯했다. 조금 안심된다.

“보자, 50만원··· 30만원··· 10만원이네요. 우와, 우리 길드 사냥터에서도 이런 고수익이 가능하구나.”

불쑥 고개를 내민 은애가 눈대중으로 계산하며 감탄했다.

그러면 총 90만원인가. 역시 한시름 놨다.

‘2시간에 90만원이면 시급 45만원인 셈이네.’

나는 마석을 품에 넣고 뒤이어 본격적인 작업에 나섰다.

가시 구렁이의 비늘을 벗기고 들고 다니기 편하게 부피를 줄이는 것이다.

“그건 왜 하시는 거예요? 오빠. 가시 구렁이의 시체는 돈이 안 돼요.”

은애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나는 당연히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확신은 했지만 근거도 없고, 무엇보다 나는 나 혼자 알고 있는 정보를 공유할 생각이 없었다.

부스럭!

그때 사냥터의 입구 부근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살피니 차현진은 아니었다.

웬 우람한 체격의 산적 같은 사내가 물끄러미 이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은애씨. 누굽니까. 그 괴물 같은 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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