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의 귀환-7화 (7/127)

# 7

* * *

차돌파. 33세 남.

부모님께서 인생의 장애물을 돌파하란 뜻에서 지어준 이름.

출처는 동네점집이었다. 좀 구린데 300만원의 거금을 내고 받은 작명이었다.

‘그래도 이번엔 돌파하기 힘들겠어.’

아이템 납품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강철길드의 길드마스터 차돌파는 시선을 떨군 채 지하철 안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부산한 사람들의 틈에서 그는 생각했다.

이번 위기는 어떻게 돌파할까. 무슨 묘수가 없을까.

‘이젠 길드 사무실을 유지하기도 버겁다.’

처음 길드를 세울 때만 해도 꿈과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미래를 예견해 몬스터가 있는 부지도 싼 값에 구매했고, 차돌파 본인도 헌터능력에 재능이 있어 길드는 금세 중견길드로 커졌다.

그리고 예상한 대로 몬스터가 있는 땅은 ‘언더그라운드’라는 명칭으로 바뀌며 수많은 길드에게 막대한 수익을 안겨줬다.

문제는···

차돌파 본인의 사냥터만 빼고.

‘쓸데없이 몬스터가 너무 강하잖아.’

생각이 떠오르니 또 울컥한다. 차돌파는 구겨진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강철 가시 구렁이.

레벨 150의 헌터가 후려쳐도 쉽게 죽지 않는 미친 몬스터.

그 누가 비싼 수수료를 내고 헌팅을 할 것인가. 두개골 속에 뇌가 있다면 그런 사람은 드물었다. 덧붙여 돈이 썩어나지 않는다면.

‘씨발.’

언더그라운드를 이용하는 주 고객층은 헌터지망생이나 취미로 헌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강한 몬스터가 나오는 사냥터는 대체로 수요가 없었고, 그 중 특히 ‘저항력’이 강한 몬스터는 수요가 완전히 없다시피 했다.

강철 가시 구렁이는 그런 쪽에서 정점을 찍는 몬스터였다.

더럽게 강한 건 둘째 치고, 근접 저항력이 높아서 두들겨 패도 쉽게 죽지 않는다. 게다가 얻을 수 있는 부산물도 없다. 고작해야 하위 등급의 마석 따위 뿐.

끼이익!

역에 도착하자 지하철이 섰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차돌파는 메마른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 던전 공략이 실패하면 진짜 길드 접어야 해.’

관리협회에 로비를 한 끝에 겨우 얻은 기회.

폐던전을 공략하는 것.

폐던전은 관리국의 승인 하에 길드가 나서서 공략을 할 수 있었다. 폐던전의 공략에 성공해서 던전이 활성화되면 해당 길드는 보상은 물론, 던전의 입장료 중 일부를 계속해서 정산 받게 된다. 지속적인 수입원이 생겨나는 것이다.

‘문제는 던전 공략에 누구를 데려 가냐는 건데···.’

문득 길드원의 명단이 떠오르자 낯 위로 짙은 그늘이 드리워진다.

길드의 혜택이 감소하면서 대부분의 길드원들이 탈퇴했다.

급기야 길드를 같이 세웠던 초기 멤버 B급 헌터 두 명도 다른 길드로 떠났다.

탈퇴행렬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차돌파는 신규 길드원으로 박은애를 받았을 때 남은 길드원 중 하나가 했던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중견 길드에서 F급 헌터를 새로 받다니. 우리 길드는 이미 망했네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수고하십쇼.

으드득!

저절로 이가 갈렸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첫 단추부터 잘못 잠근 것일까.

‘너무 보수적으로 지켜보고만 있었어.’

차돌파는 시련이 닥친 지금에서야 과거를 후회했다.

발전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너무도 당연한 자연의 법칙을 망각하고 있었다.

그는 안일했다. 인생을 가볍게 여겼다.

낭떠러지를 걸으면서도 발밑을 보지 않았다. 오직 하늘만 쳐다봤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어떻게든 성공해서 길드를 다시 재건해야해.’

평균 집값이 2억 원인 세상. 관리국 로비에 결혼 자금으로 모아둔 1억 원을 쏟아 부었다. 이제 돌이킬 수도 없는 상황.

‘위기가 큰 만큼 기회도 커. 힘내자.’

차돌파는 굳은 얼굴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휴대폰의 오늘의 운세 어플을 보니 오늘 예고 없이 귀인을 만난다고 했다. 어째서인지 감이 좋다. 지금의 위기가 고스란히 행운으로 바뀔 것 같은 기분이다.

위이잉.

이윽고 문이 닫히자 다시 지하철이 운행되기 시작했다.

주먹을 꽉 쥔 차돌파는 더 이상 고민을 떠올리기도 싫어 황망히 창밖을 쳐다봤다.

* * *

길드 사무실.

차돌파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비릿한 피 냄새가 가장 먼저 그를 반겼다.

‘뭐야.’

돌파는 의아했다. 이건 분명히 사람의 피 냄새였다. 숱한 헌터 일을 하면서 생사를 넘나든 만큼 이런 쪽의 감각은 지나치게 예민했다.

“으흐흐흑. 흐흐흑···.”

게다가 책상과 파티션 너머로 괴상한 흐느낌마저 들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누구 없습니까?”

돌파는 어두운 사무실을 헤치고 가장 먼저 형광등을 켰다. 사무실 안은 기묘한 울음소리만이 가득했다.

“차현진씨?”

돌파가 책상을 지나쳐 사무실 구석의 복싱경기장을 쳐다봤다. 그러자 드러나는 사람의 인형. 그곳에는 차현진이 쪼그려 앉은 채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돌파는 경악했다. 도대체 누가 D급 헌터 차현진을 이따위 몰골로 만들었단 말인가.

“으흑, 으흐흑······ 기, 기드··· 마흐터··· 히임.”

“아이고, 현진씨.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돌파는 찬찬히 현진의 모습을 살피며 내심 통쾌해했다.

사실 현진은 그간 변태 같은 일을 자주 저질렀다. 배태랑 길드원인 그는 텃세도 자주 부리고 꼰대질도 심했다. 심지어 여성 헌터가 있으면 발정난 개 마냥 시도 때도 없이 추파를 던지기도 했다. 지금까지 이 놈 때문에 로테이션 돌리듯 나간 길드원만 몇 명인가.

‘어쩔 수 없었지.’

그럼에도 돌파는 참았다. 현진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잘만’매니지먼트와의 거래가 정말 중요했으니까.

지금까지 길드를 유지하는 것에만도 잘만의 도움이 컸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누군지 몰라도 정의구현 제대로 했구나.’

주변에 흥건한 핏자국을 보며 돌파는 상황을 대강 예측했다. 사무실과 책상은 멀쩡했고 복싱경기장만이 사용 흔적이 있었다.

어쩐 일로 찾아온 헌터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되려 작살난 거겠지. 머릿속에서 저절로 상황들이 그려졌다.

“병원에 연락은 했어요?”

“아카저네··· 구그차··· 부러써혀.”

현진이 가까스로 대답했다. 앞니를 포함해서 이빨마저 몇 개나 빠져서 발음이 몹시 부정확했다.

‘음··· 이거 생각보다 심각하다.’

그제야 돌파는 지금의 상황이 절실히 체감됐다.

당장 길드원도 자신을 포함해서 세 명 밖에 없는데 또 한 명이 행동불능에 빠졌다.

이러면 곤란했다. 폐던전의 입장제한이 5인 던전인 만큼 다섯 명을 살뜰히 채워서 갈 생각이었는데···.

‘두 명도 겨우 구했는데 또 새로운 사람을 구해야하다니.’

입안이 바싹 말라왔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믿을 수 있는 인원이 필요했다. 최악의 경우 위기상황에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으니까. 던전 헌팅은 늘 예고 없이 위험이 날아와 후유증을 남기기 마련이었다.

그것을 예방하는 것은 오로지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

그러니 시작부터 이렇게 삐거덕돼서야 결과가 좋을 리 없었다.

삐뽀―삐뽀―!

이윽고 구급차가 왔다. 구급대원들에게 현진을 인계하고 돌파는 멀어져가는 구급차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후, 인생은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 거야. 이게 오히려 기회일 수도 있어.’

마음속으로 그렇게 곱씹어도 표정은 뒤 닦은 휴지마냥 구겨졌다.

가까스로 공략권한을 얻게 된 폐던전의 난이도마저 불확실한 상황. 그래서 되도록 손발이 맞고 아는 사람들과 함께 가려 했는데···.

그때였다.

뻐억!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돌파가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사무실 뒷문 너머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길드사냥터가 있는 쪽이었다.

‘누가 있나?’

돌파가 호기심을 품고 뒷문을 열었다. 사냥터 쪽으로 걸어가니 언더그라운드를 가로지르는 둔덕에서 놀라운 장면이 보이고 있었다.

‘저, 저게 뭐야···!’

순간 돌파는 엄청난 충격에 현기증이 나서 두 다리가 휘청했다.

웬 사내 한 명이 강철 가시 구렁이를 풍선 터뜨리듯이 터뜨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의 상식으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씨발, 미쳤어! 저건 개사기잖아!’

애를 써서 간신히 버티고 선 돌파는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집중했다. 괴물 같은 사내의 옆에는 자신의 길드원 박은애도 함께였다. 게다가 놀랍게도···.

‘켁! 맨손이다! 맨주먹으로 가시 구렁이를 죽이고 있어! 이럴 수가, 대체 뭐야. 설마 트리플 S급의 헌터인가!’

보고 있을수록 의문은 더 해졌다.

강철 가시 구렁이가 어떤 몬스터인가.

레벨 150의 헌터들이 때려잡아도 쉽게 죽지 않는 몬스터다.

그런데 그걸 맨손으로 한 방에 터뜨려 죽인다고?

'말도 안 돼.'

한참의 구경 끝에 돌파는 사냥터 입구까지 단숨에 걸어갔다. 의문의 사내는 어느새 사냥을 마치고 마석을 꺼내고 있었다. 돌파는 벌어지지 않는 입을 힘겹게 열고 말했다.

“은애씨. 누굽니까. 그 괴물 같은 분은···.”

* * *

길드사무실 안.

“그, 그러니까 헌터지망생이시라고요? 저희 길드엔 이 아이템들을 팔기위해 오셨고요?”

“예.”

은성의 정체를 알게 된 돌파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송구스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입 밖으로 저절로 존댓말이 튀어나왔다.

게다가 은성이 들고 온 아이템들은 또 어떠한가.

‘미쳤어. 이 사람 대체 정체가 뭐지? 이런 매직아이템은 내 헌터경력에서 처음이야.’

[특수한 자의 면 바지]

등급 – 매직

내구도 - 10

모든 능력치 – 10

방어력 – 28

설명 – 특수한 자에게 지급되는 면 바지.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모든 능력치를 올려준다.

···

1레벨 당 레벨 업 능력치는 1.

그래서 모든 능력치 1이라도 붙은 아이템은 등급을 떠나서 꽤 비싼 편에 속했다.

그런데 은성이 들고 온 매직아이템은 모든 능력치를 10이나 올려준다.

‘거의 고급 경매장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옵션···. 이건 매직아이템을 뛰어넘었어.’

순간 돌파는 숨이 턱 막히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는 아이템에서 시선을 거둬들이고 은애를 쳐다봤다. 은애는 싱긋 웃고 있었다.

“은애씨, 잠깐 나 좀···.”

“네.”

은성을 의자에 앉혀둔 채 돌파는 사무실 한쪽 구석으로 은애를 이끌었다. 은성과 충분히 멀어진 돌파는 호흡을 가다듬고 꼴깍 침을 삼킨 끝에 겨우 입을 열었다.

“은애씨, 저 사람은 대체 누굽니까.”

“굉장하죠?”

“아니, 굉장한 건 둘째 치고··· 도대체 저 사람은···.”

“예전부터 길드마스터님이 길드원이 부족하다고 하셨잖아요.”

“······.”

“기억상실증에 헌터지망생인 오빠인데 금방 헌터시험에 합격할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차현진씨도 저 오빠가 팼음.”

“······.”

은애로부터 은성의 정보를 들은 돌파는 얼굴이 시시각각 새파랗게 질렸다. 오늘의 운세에서 귀인을 만난다는 점괘는 지금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었나.

‘어쩌면 지금 이 상황이 절망 속의 기회구나.’

가까스로 제정신을 차린 돌파가 냉정을 되찾았다.

길 잃은 희망 속에서 위기를 돌파할 절호의 기회.

어째서인지 위기들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냈다. 마치 운명처럼.

그렇다면 저 사람을 어떻게든 잡아야한다.

‘하지만 예로부터 자신의 입보다 큰 건 베어 물지 말라고 했다. 그렇다면 일단 길드가입권유보다···.’

하다못해 다리를 만들어 놓으면 좋을 거다. 헌터업계는 좁다.

판단을 마친 돌파는 즉시 은성에게로 돌아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래서 아이템 가격은 얼마쯤 하나요?”

기다리고 있던 은성이 물었다.

돌파는 목청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그··· 정말 죄송합니다만. 이 정도의 아이템을 제대로 판매하시려면 무조건 경매를 하셔야합니다. 그런데 헌터지망생이시니··· 아무래도 경매로 판매하기는 조금 힘드실 것 같습니다.”

“역시 그런가요. 당장에 큰 돈이 필요한데. 그럼 일단 마석들이라도 팔게요.”

예상했다는 듯 은성이 품에서 마석들을 꺼냈다.

순간 눈이 밝게 트인 돌파가 은성의 손을 맞잡고 말했다.

“저어, 선생님. 혹시 일 하나만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선 입금에 돈도 충분히 드리겠습니다. 헌터가 아니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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