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선 입금에 돈도 충분히 주겠다고?
돌파의 말에 은성의 귀가 쫑긋 열렸다.
“뭡니까?”
“다름 아니라 저희 길드가 이번에···.”
돌파는 그간의 사정을 은성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길드상황이 어려운 것부터 폐던전을 공략하게 된 경위, 그리고 현재 당면한 문제까지.
“그래서 폐던전을 공략할 인원이 필요하다··· 이겁니까?”
듣고 있던 은성이 물었다.
“예, 선생님. 아마 사냥터를 이용하시면서 눈치 채셨을 텐데, 저희 길드사냥터는 이용객이 터무니없이 적습니다. 그도 그럴 게 출현하는 몬스터가 지랄 맞을 강철 가시 구렁이니까요. 그래서 길드 자금사정이 빠듯합니다. 현 상황에서 폐던전 공략은 길드를 재건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고요.”
돌파는 말을 하면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언더그라운드에는 관리국으로부터 막대한 세금이 부가된다. 고수익이 창출된다는 기대치 때문에 땅값도 비싼 편에 속한다. 물론 강철길드의 사냥터는 빛깔 좋은 개살구나 다름없다. 수요가 있어야 돈을 벌든가, 땅을 팔든가 할 게 아닌가.
은성이 물었다.
“하지만 저는 헌터자격증이 없는데?”
“예, 알고 있습니다. 관리국으로부터 던전 공략을 승인 받은 만큼 불법으로 갈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
은성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기며 물었다.
돌파는 숨을 훅 들이켰다가 토해내듯이 대답했다.
“포터의 자격으로 저희와 같이 가주십쇼.”
포터(porter).
장비와 아이템을 운반하는 짐꾼.
던전 공략에는 짧게는 반나절, 길게는 한 달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기도 했다. 그래서 때때로 음식과 침낭 등 의식주를 전담할 짐꾼이 필요했다.
아공간은 엄청나게 비쌌기에 대부분의 헌터들은 포터를 이용했고 포터는 던전 공략에 필요한 채비는 물론, 사냥을 통해 얻은 아이템들을 운반했다.
“포터요?”
은성이 내키지 않는다는 듯 시큰둥한 얼굴로 물었다.
“예. 겉으로는 포터지만 저희와 함께 사냥을 하시면서··· 아, 물론 선생님께는 절대 짐을 맡기지 않을 겁니다. 저희 모두 개별군장을 착용하고···.”
은성의 안색이 차츰 굳어지자 돌파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굳어진 은성의 표정은 조금도 펴지지 않았다.
‘조, 좆 됐다.’
뭔가 큰 실수를 했다는 걸 직감한 돌파는 잽싸게 머리를 굴렸다. 헌터생활을 하면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모두 다 겪어본 그였다. 별에 별 사람을 다 만나본 그는 헌터 특유의 자존심을 익히 알고 있었다.
‘포터로 간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거야.’
조금 더 조심스럽게 말했어야 했는데 지망생이라고 방심했다!
돌파는 황급히 여덟 손가락을 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서,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선 계약금 2천만 원에 던전 공략 완료 후 6천만 원을 더 드리겠습니다.”
총 8천만 원.
보통 용병 고용의 2배나 되는 금액!
비록 눈으로 직접 은성의 실력을 확인했다고 해도 말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엄청나게 파격적인 액수인 것이다.
“음···.”
그러나 은성은 어쩐 일인지 고개를 모로 돌린 채 여전히 입술만 찡그리고 있었다.
설마 돈의 액수가 부족한 것일까?
돌파는 가슴이 조마조마해졌다.
‘트리플 S급 헌터가 아니더라도 뭔가 기술을 사용해 가시 구렁이를 한 방에 죽인 실력자다. 게다가 운세에서 말하길 ‘귀인’이라고 했어. 이 사람은 꼭 데려가야 해.’
돌파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점괘를 곧잘 믿는 편이었다. 비록 점괘를 믿고 구매한 이 사냥터가 그에게 막대한 손실을 안겨줬지만 그것은 순전히 점괘가 아닌 자신의 탓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결국 강철길드의 길드마스터님은···.”
한참 만에 은성이 입을 열었다.
“아이고, 말씀 낮추십쇼. 차돌빡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실력으로 말하는 게 헌터업계의 관행이니 나이는 신경 쓰지 마시고··· 으허허허.”
차돌파가 몸소 자리에서 일어나 손바닥을 비볐다. 어찌나 세차게 비비는지 구운 오징어 냄새가 다 났다.
“뭐, 그러면 차돌빡씨는 폐던전 공략이 목적 맞습니까?”
“예, 예. 물론입니다, 선생님.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승인받은 폐던전을 공략하면 보상금은 물론 매달마다 입장료에 대한 정산을 받으니까요.”
보상금은 발견된 몬스터의 수준에 따라 다르게 매겨지지만, 기본금이 3억이다. 게다가 던전 입장료는 10%의 정산비율로 1인당 최소 만원. 던전 공략에 성공만 해도 막대한 부가 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던전 공략까지 남은 기간이 3달 정도 남았고요?”
“예. 관리국에서 지정해주길 내년 1월 말까지로 기간을 정해줬습니다. 저희는 다음 달 말쯤에 출발할거고요.”
돌파가 은성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낯 위로 감출 수 없는 조바심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은성은 잠자코 들으며 입술을 톡톡 두들겼다.
‘헌터시험은 결과가 금방 나온다고 했으니까··.’
이번 회 차의 고시에 신청해서 합격하면 11월 중순쯤엔 헌터자격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포터로 가는 것 보다는···.
은성이 결심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면 그냥 저 혼자서 던전을 공략하는 건 어떻습니까?”
“호, 혼자서요?”
“예. 혼자서.”
은성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돌파의 눈이 한계까지 치켜떠졌다.
도대체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던전을 혼자서 공략하겠다고? 미친 놈 아냐?
더군다나 은성은 헌터자격증도 없는 지망생 신분 아닌가.
놀란 그의 귓가로 은성의 담담한 어조가 이어지고 있었다.
“만약 자격증이 없다고 해도 몰래 공략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관리국에서도 던전 검사를 공략 이후에나 할 거고.”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게다가 저 혼자 시도해서 공략에 실패한다고 해도 기간에 문제는 없을 것 같고요.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은성이 피식 웃으며 가볍게 말했다.
마치 걱정 따윈 개나줘~ 라고 말하는 듯한 모습.
돌파는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체격은 좋은데 피부는 희고 상처하나 없는 얼굴이다. 행색으로만 따지자면 은성은 곱게 자란 십대후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저 놀라울 정도의 자신감은 뭐란 말인가.
특히 저 연륜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는 도대체···.
‘정말 귀인이구나.’
돌파의 목젖 뒤로 침이 꼴깍 넘어갔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뒤늦게 커피를 타고 있던 정수기 앞의 은애에게도 다 들렸다.
은성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돈은 계약금 2천에, 던전 공략 완료 후에는 돈 대신 다른 걸 받겠습니다.”
“다, 다른 거 말입니까?”
돌파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되물었다. 6천만 원 대신 무엇을 요구할까. 머리를 쥐어 짜내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다음순간 은성이 눈동자를 반짝이며 그를 마주봤다. 그런 끝에 천천히 입을 여는 것이었다.
“예, 길드사냥터를 돈 대신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