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돌아가는 길.
고개를 허리 끝까지 숙이는 차돌빡을 뒤로한 채 나는 가장 먼저 은행부터 들렀다. 마석과 같이 팔면서 수중에 2090만원의 목돈이 생겼다. 현금을 그냥 들고 다닐 수는 없었다.
‘운이 좋았다.’
설마 일이 이렇게 잘 흘러갈 줄은 몰랐다.
차돌빡이라고 했나? 이름은 특이한데 좋은 사람이다.
돌빡은 연신 고맙다며 길드사무실도 마음껏 이용하라고 했다. 덕분에 사냥터에 남겨둔 가시 구렁이의 시체들도 빠짐없이 냉동보관 할 수 있었다.
“우와, 이렇게 많은 현금은 처음 봐요.”
은애가 내 손 위의 종이봉투를 내리깔며 눈을 빛냈다.
“그래?”
“네.”
베란다에 종이를 다닥다닥 붙여놨을 때부터 알아봤지만 꽤 가난하게 사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집세도 몇 달치나 밀렸다고 했던가.
‘헌터들의 돈 벌이가 그렇게 안 좋나.’
그렇게 보이진 않는데 유독 얘만 유별난 것 같다. 헌터가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일까.
‘어쩌면 이 길이 아닌 것일 지도 모르지.’
그간 알아둔 바로 헌터는 철저히 프리랜서 직업이다.
능력이 있으면 많이 벌고 쥐뿔도 없으면 적게 번다.
사측에 고용돼서 일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이템판매계약 선에서 끝이다. 길드나 파티 같은 경우도 능력에 따라서 벌이가 다른 건 마찬가지다.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
“수고하세요.”
은행에 돈을 저금하고 나오면서 체크카드도 같이 만들었다. 이제 허름한 옷을 벗고 새 옷을 위해 돈을 쓸 차례다.
‘헌터관련 물품도 좀 알아보고.’
나는 시내로 걸음을 옮기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새삼 느낀 거지만 한번 무너졌던 세상치곤 지나치게 멀쩡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10년 전과 거의 변화가 없다.
바람 앞의 등불인 걸까. 진짜 평화로운 한때인 걸까.
* * *
“이제 슬슬 돌아가요.”
어느새 하늘에 땅거미가 내려앉았다.
우리는 적당히 의류와 생필품 따위의 쇼핑을 마치고 발길을 돌렸다. 헌터시험과 관련된 서적을 구매할까 고민도 했지만 역시 아니다.
‘딱히 필요 할 것 같지도 않고.’
그렇게 대로를 걸으며 육교를 지나쳤을 때였다. 문득 육교의 끝자락에 넝마를 걸친 사람이 보였다.
“으흐흑, 도와주세요.”
플라스틱 바구니를 앞에 둔 채 구걸을 하는 거지였다. 두 다리가 잘린 것처럼 바지를 묶어놨는데 뻔한 수작이다.
‘누가 저런 얄팍한 속임수에 넘어가.’
과연 지나가면서 흘낏 쳐다보니 바구니가 을씨년스럽다.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살기 팍팍한 세상에서 그 누가 남을 돕겠는가. 그것도 얄팍한 사기꾼을.
설령 진짜로 장애인이라고 해도 남을 돕는 사람은 몇 없다. 저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것이다.
그런데.
“날씨 추운데 이걸로 따뜻한 곳에서 주무세요.”
“으흐흑,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은애가 거지에게 적선을 해주고 있었다.
그것도 동전이 아닌 지폐.
빳빳한 초록색 종이 두 장.
나는 잠깐 할 말을 잃었다.
자기도 살기 힘든 데 남을 돕는다고?
“음.”
이건 마치 호······ 음, 아니다.
순간 나는 납득했다. 이런 사람이 있으면 저런 사람도 있다. 모두가 천편일률적이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겠는가.
‘순수한 선행이라는 건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지만.’
투자의 개념으로 남을 돕는 건 이해가 됐다. 그러나 나는 이런 선행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관계도 없고 배경도 없다.
무의미한 선행이란 순수성을 따져보자면 결국 자기만족일 확률이 높다. 아니면 취업 때 필요한 가산점처럼 불순한 의도가 있다든지.
조금 더 걷자 버스 정류장이 나왔다. 은애는 내 모습을 멀거니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추자 그녀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궁금한 게 있는데. 너 헌터는 왜 지원한 거야?”
내가 데면데면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입을 열었다.
“네? 헌터요?”
갑작스런 질문에 은애의 두 눈이 커졌다.
“응.”
“그냥 뭐·· 돈이 잘 벌리니까요. 혜택도 많고··.”
은애는 주저하면서 대답했다. 의외로 반응이 영 시큰둥하다. 이런 반응을 기대한 게 아닌데. 내가 빤히 쳐다보자 은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마지못해 입을 연다.
“사실 동생이 아프거든요.”
“동생이 아파?”
“네에. 그런데 가족 중에 헌터가 있으면 의료비 혜택이 있어요. 그래서 헌터에 지원했어요. 사냥에 재능이 없어도 필기시험만 잘 보면 승산이 있으니까. 저 공부는 자신 있거든요.”
그러고 보면 헌터는 공무원보다 혜택이 많다고 들었다. 연금부터 시작해서 각종 의료혜택과 자녀교육혜택까지. 특히 가족들 중 한명이 헌터라면 모든 가족들이 혜택을 받는다. 사후지원마저.
“그렇군.”
“뭐, 그렇죠. 헤헤.”
은애는 씁쓸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마치 비에 홀딱 젖은 강아지 같다. 나보다 연상인데 이래도 되는 건가. 나는 입술을 찡그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물었다.
“너 얼마 전에 헌터 됐다고 했지?”
“네.”
헌터시험에 필기도 중요하다고 했다. 음지에서 놀 게 아니라면 헌터자격증은 필수다.
‘시간도 널널하고 굳이 리스크를 떠 앉으며 급하게 갈 필요는 없지.’
절대자는 고독하고 그 홀로 위대하다.
하지만 나는 정박아처럼 혼자 위대하기 싫다.
기왕이면 후장이 닳도록 현대와 후대의 사람들에게 칭송받고 싶다. 그러니 빌런의 길은 되도록 사양이다.
‘아르카디아와 겹치는 부분이 있어도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 편하겠고.’
준비는 아무리 많이 해도 부족하다고 했다.
나는 한참 전부터 생각해둔 것을 품에서 꺼냈다.
“···어, 어?”
순간 은애의 두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이, 이게 뭐예요?”
은애가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나는 담담한 어조로 대꾸했다.
“숙박비, 정보제공비, 그리고 앞으로의 과외비.”
“과, 과외비··· 라고요?”
“덧붙여 성과금. 솔직히 네 덕분에 길드를 들려서 돈을 얻은 셈이니까.”
300만원. 내게는 별 것도 아닌 금액.
그러나 은애에게는 상당히 큰돈이었다. 당장 자취방 월세도 밀렸다고 했지 않은가.
“저, 정말 이 돈을 저한테 주신다고요?”
은애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마주보고 있어서인지 흐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공짜 아냐. 지금까지 정보비와 앞으로의 과외비, 그리고···.”
“고,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오빠!”
은애가 와락 내 품에 안겨들었다. 역시 돈이 있어서 슬픈 사람은 보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 우중충했던 은애의 얼굴이 밝게 피어올랐다.
“앞으로 헌터시험이 얼마나 남았지?”
“한··· 2주쯤 뒤에 있을 걸요.”
“믿는다, 박은애.”
내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헤헤, 맡겨주세요.”
은애는 맑은 눈망울로 주먹을 꽉 쥐어들었다.
그리고 2주가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