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의 귀환-10화 (10/127)

# 10

* * *

수원시 헌터관리협회 본관.

“아, 제발 이번에는 합격이어야 한다.”

“오늘은 감이 좋아. 잘 찍었어.”

수많은 사람들이 본관 대기실에서 필기시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필기시험은 컴퓨터로 문제를 푸는 만큼 점수를 바로 알 수 있다. 합격 컷은 모든 이들의 점수를 합산한 후 공개된다. 상대평가다.

‘잘 만들었는데.’

나는 은애가 싸온 샌드위치를 으적대며 디지털 보드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빠. 시험 망쳤어요? 표정이 왜 그래요.”

“샌드위치가 너무 맛있어서.”

은애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나는 지나가듯이 대꾸했다. 그녀는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듯했다. 단지 결과가 너무 뻔해서 무덤덤한 것일 뿐인데.

파밧!

이윽고 디지털 보드에 합격자 명단이 떠오르자 사람들의 탄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으아아! 합격! 붙었다!”

“씨발, 안 돼! 불합격이다! 으아아아아!”

“3년째라고··· 흐으윽! 크흐윽!”

천국과 지옥. 환호와 좌절.

사람들의 인파가 양분되며 저마다 있는 힘껏 목젖을 토해낸다. 서로가 다른 결과를 품에 쥐고서.

그리고 내 동공에도 내 결과가 고스란히 담겼다.

수험번호 40 - 44390293

점수: 100 / 1등. 수석.

당연했다. 너무도 당연한 결과. 그것도 만점이다.

‘은애의 도움도 컸지만···. 애초에 경험치 차이가 얼만데.’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책상머리에서 책을 읽는 것과 직접 몸으로 경험한 것은 완전히 천지차이다. 나는 아르카디아에서 몸소 겪은 만큼 문제를 이해하는 게 더 쉬웠고 암기에도 유리했다.

말도 안 되는 지엽적인 문제마저 내게는 별 문제가 안 됐다.

‘몬스터의 눈알 색깔을 묻는 문제였나.’

필기 43번 문제.

도대체 그런 문제가 헌터능력에 무슨 영향을 끼친다는 건지.

어쨌든 식량이 부족할 적엔 몬스터의 눈알도 먹었던 나다. 그렇게 절박한 상황은 몇 없었지만 그런 경험들로 인해 지엽적인 문제도 가볍게 풀 수 있었다.

“으으음, 이상하네.”

옆에서 은애가 내 수험번호를 훑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오빠 수험번호가 안 보여요. 분명 불합격일리는 없는데···. 모의 평가에서도 고득점이었잖아요.”

나는 피식 웃었다. 무수한 명단 속에서 찾으니 쉽게 보일 리가 없다. 수석과 차석은 명단의 가장 위에 발견하기 쉽게 나와 있다.

그리고 잠시 후.

“허, 오빠! 수석이에요!”

뒤늦게 발견한 은애가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앗, 거기다 만점이잖아요!”

이크, 목소리가 너무 큰데.

사람들의 얼굴이 내 쪽으로 모아졌다.

부러움과 경계, 그리고 선망의 눈빛들.

노골적인 시선들이 나를 꿰뚫을 듯 쳐다본다. 눈총들이 따끔따끔 따갑다.

“와, 미친 만점이란다. 나랑 같이 밥 먹고 똥 싸는 인간 맞냐.”

“도대체 얼마나 공부를 한 거야?”

“한 1, 2년 빡세게 공부한 거 아냐?”

2주간 하루 두 시간.

나는 느긋하게 공부했다. 때때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강철길드의 길드사냥터도 들리면서 할 건 다하고 보냈다.

‘10년 짬밥이니까.’

책상머리가 아닌 경험에서의 10년이다. 그러니 느긋해도 경험치 차이가 날 수밖에.

“와, 몸도 좋고 생긴 것도 훈훈하게 잘 생겼다. 딱 내 타입 인데. 옆에는 여자친구일까?”

“그냥 아는 누나 아냐? 남자가 좀 아까운데.”

“번호 따 봐?”

이어진 수군거림에 은애의 얼굴이 뒤 닦은 휴지마냥 처참하게 구겨진다. 분위기가 냉랭하게 얼어붙었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네. 죄송해요, 오빠. 제가 괜히 말해서 오빠만 고생을···.”

아니, 고생은 네가 하고 있는데.

샌드위치를 거의 다 먹었을 무렵이었다.

-아아.

때마침 천장의 스피커에서 방송이 나왔다.

-헌터관리협회 본부에서 알려드립니다. 필기시험 합격자분들은 현 시간부로 모두 본관 지하로 내려와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10분 후, 오후 2시부터 실기시험이 있을 예정이오니···.

드디어 실기시험 차례다.

나는 은애의 어깨를 토닥이고 몸을 돌렸다.

“이따 보자.”

마치 소풍을 가는 듯한 나긋나긋한 목소리. 확실히 거의 호기심 전부다. 긴장은 전혀 되지 않는다.

“오빠, 이번에도 잘 보세요.”

뒤에서 은애가 소리쳤다. 나는 심드렁하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걸어갔다. 엘리베이터는 복도 끝에 위치해 있었다.

* * *

실기시험은 세 가지 테스트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은 레벨 측정. 레벨 50이 안 되는 지망생이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두 번째는 전투력 측정. 갖가지 환경에서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전투력을 측정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실제 전투능력 측정. 특수 제작된 타이즈 복을 입은 채 홀로그램과 전투를 한다. 운전면허시험에 있는 모의운전과 비슷하다고 들었다.

‘그리고 면접이 있지.’

솔직히 면접도 별 걱정되지 않는다. 대개 그렇듯 질문과 답변의 매뉴얼이 존재하고 상식적으로만 대답하면 합격이니까.

“합격자분들은 10열로 줄을 서 주세요. 수험번호 순서대로 레벨 측정을 실시하겠습니다.”

관리국 산하 공무원들이 나서서 사람들을 이끌었다.

합격자들은 수험번호에 맞게 줄을 서기 시작했다. 나는 ‘주은성’이라는 이름 탓에 번호가 뒤에 위치해 있었다. 열 번째 열에서 꽤 뒤로 밀렸다.

“이남일씨. 레벨 55, 통과. 다음 분.”

“이선우씨. 레벨 59, 통과. 다음 분.”

그러나 줄은 금세 줄어들었다. 공무원들은 일처리가 꽤나 능숙했다.

‘일 잘하네.’

협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은퇴한 헌터들이다. 돈에 욕심이 없거나 목숨 아까운 줄 알거나 둘 중 하나다. 행여나 있을 분노조절장애자들의 불만을 막기 위해서 존재했다.

“이한일씨. 레벨 61, 통과. 다음 분.”

이윽고 내 차례가 왔다.

“주은성씨. 레···.”

측정기를 든 공무원이 고개를 갸웃 숙인다. 그러더니 다시 한 번 측정기를 내 몸에 들이댔다. 꼭 편의점 물품에 바코드를 찍는 듯한 자세다.

“허어··· 이상하네? 이건 현역 수준의···.”

몇 번이나 확인한 끝에 공무원이 입을 열었다.

“저어··· 주은성씨. 실례지만 한국인 맞으시죠?”

“네.”

내 대답에 공무원이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은성씨. 레벨 131. 통과. 다음 분···.”

어째서인지 눈에 띄게 얼굴이 굳어 있다. 마치 무언가에 놀란 것 같은 표정이다.

‘반응이 영 찝찝한데.’

듣기로는 가끔 지망생신분임에도 레벨이 높은 사람들이 드물게 있다고 들었다.

대격변 이후 고립된 곳에서 살다가 아직까지 자격증 없이 살아왔거나 무법지대 혹은 멸망한 나라에서 망명한 자들이 그렇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애초에 국가시스템을 무시하거나, 불법 또는 포터의 신분으로 돈을 버는 사람도 많았다.

공무원의 반응을 보자면 날 그런 무법자 부류로 본 거겠지.

“와, 레벨 131이면···. 저 사람 아까 그 수석이지?”

“대격변 시절의 헌터인가. 왜 헌터고시가 불리하게 바뀌고 나서야 시험을 치는 거야?”

“아냐, 그런 것 치고는 레벨이 어정쩡해. 무법지대에서 살아남은 사람인지도 모르지. 어쨌든 굉장하네.”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다음으로 2차 실기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수험번호 순서대로 측정기 앞에 열을 맞춰서 서주세요.”

레벨 측정이 끝나자 공무원이 다른 곳으로 사람들을 안내했다. 그를 따라 도착한 곳은 커다란 기계가 여러 대 놓여 있는 넓은 강당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2차 실기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2차 실기 테스트는 측정 장치로 전투력을 측정하는 것이었다.

몸의 밸런스, 근력한계, 탄력성, 마력량, 의지력 등 종합적인 요소를 측정하는 것이다. 사람의 신체를 갖가지 환경에서 극한까지 쥐어짜낸 다음 한계를 수치화하는 테스트였다.

‘저곳에 들어가서 버티기만 하면 건가?’

전투력 측정 장치는 꼭 작은 수영장 같은 모양새였다. 높이는 2m가 조금 넘고 너비는 성인 남성 두 명의 어깨를 합친 정도였다.

대열의 앞을 쳐다보니 가장 먼저 측정을 받는 사람이 보였다.

장치 안에 덤덤히 서 있는 그는 가슴근육이 유난히 돋보이는 거구의 사내였다.

“준비 되셨습니까?”

공무원이 묻자 사내는 가슴을 탕탕 치며 우렁차게 대답했다.

“거, 한참 전부터 준비 완료 상태입니다. 빨리 시작하시죠.”

“측정 시작하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치가 차폐되고 작동이 시작됐다.

투명한 유리를 사이에 두고 장치 안에 있는 사내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이고 있었다.

“와, 몸 봐라. 저 정도 체력이면 전투력 높게 나오겠는데?”

“아냐, 체력만 높아선 안 돼. 측정 장치는 모든 능력치를 다 종합적으로 테스트하는 장치니까. 오히려 동일한 레벨에서 체력만 높으면 마력관련 측정에서는 불리하지.”

은성의 뒤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가 끝나는 순간.

“으, 크으으윽! 크아아악!”

사내가 버티지 못하고 오른손을 들었다. 측정의 중지를 요청하는 수신호였다.

“고생하셨습니다. 괜찮으십니까?”

공무원이 장치를 조작하자 차폐된 유리가 열리고 장치 안에서 사내가 나왔다.

사내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벌벌 떨고 있었다.

“크, 흐으윽···.”

그리고 이내 인상을 잔뜩 찌푸리더니 제자리에서 풀썩 쓰러졌다.

저러면 점수가 어떻게 나오든 불합격이다.

“와. 진짜네. 저 덩치가 쓰러졌어.”

“그래서 능력치도 전략적으로 올려야 해. 측정에 쓸데없이 욕심 부려서도 안 되고.”

맞는 말이었다. 저건 만용의 대가다.

점수를 덜 받더라도 더 빨리 포기했다면 불합격은 면했을 것이다.

이윽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무대원들이 와서 사내를 싣고 갔다. 그 과정이 충분히 체계화 되어있어 그런 와중에도 테스트는 잠깐의 지체 없이 정상 진행됐다.

“다음 분. 장치 안으로 들어가 주세요.”

그렇게 한 명, 두 명 서서히 줄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자 사람들의 기대어린 시선이 느껴졌다.

“아까 수석이지? 레벨 131.”

“저 사람은 얼마나 버틸까?”

“아까 레벨 150인 외국인도 있었잖아. 그 사람은 한 3분 버텼나?”

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쏟아진다.

그러나 나는 전혀 긴장되지 않았다. 오히려 즐겁다. 나도 내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 막연히 궁금하던 참이었으니까.

“시작하겠습니다.”

장치 안에 들어가자 공무원이 말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내 장치가 움직였다. 후면의 유리가 차폐되고 뒤이어 주변의 공기가 턱 무겁게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은 중력부터인가.’

장치는 능력치에 알맞게 각 단계별로 테스트를 거쳐 간다.

예를 들어 감각 능력치의 측정 같은 경우는 스산한 감각이 느껴지면 몸을 비틀어 피하면 된다. 피하지 않으면 고스란히 데미지를 입는다. 간단한 규칙이다.

‘하지만 굳이 안 피해도 되겠지.’

능력치를 전사 형으로 투자한 나다. 체력은 자신 있다. 힘을 숨길 생각도 없으니 성심 성의껏 테스트를 받으면 된다.

“괜찮으십니까?”

한참 동안 멀거니 서 있으니 공무원이 갑자기 물어온다.

뭔가 조금 압박감이 느껴지는데 아직까진 괜찮다.

“네, 뭐. 아직은 괜찮네요.”

내가 무덤덤히 말하자 공무원이 콧대를 킁 찌푸린다.

분명 뭔가 감촉은 있다. 마치 물속에 떠 있는 듯한 부유감이 온몸에서 느껴진다.

“음··· 정말 괜찮으세요?”

잠시 후 공무원이 또 물어왔다. 나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응대했다.

그러자 그의 낯 위로 의아함이 떠올랐다.

‘너무 밋밋한데.’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나는 아예 그에게 요청했다.

“최고 단계로 올려주세요. 지금은 너무 밋밋하네요.”

그러자 그는 메마른 입술을 적시더니 인상을 살짝 찌푸린다.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건 덤이다.

마치 그렇다면 엿 한 번 먹어보라는 심산.

위이잉!

이윽고 주변의 공기가 확실히 무겁게 변했다.

순간 나는 놀랐다.

‘허, 이럴 수가.’

이건 거의 전신 안마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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