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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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 되는 길에 꼭 정상적인 방법만 있는 건 아니다.
정도(正道)가 있다면 사도(邪道)도 있다.
“아이고, 몸소 찾아오실 줄이야.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원시 헌협 관리국장사무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두 남자가 소파에 몸을 기대고 있다. 한 명은 젊었고 한 명은 늙었다. 늙은이는 관리국장 최진호. 젊은이는 한국 랭킹 5위의 길드, 죽림의 길드마스터 이시백이었다.
“선물은 잘 받으셨습니까?”
이시백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으허허, 이상 없이 확인했습니다. 큰 거 열장. 우리 애들이 죽림마스터님의 은혜를 잊지 못 할 겁니다. 으허허.”
최진호가 너스레를 떨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시백은 속으로 비웃었다. 어차피 혼자서 다 처먹을 거 왜 꼭 깔끔을 떨어댄단 말인가.
‘헌협 놈들은 이래서 문제야. 언제든 발뺌하고 책임을 떠넘기고, 수가 비틀리면 꼬리 자를 궁리부터 하지.’
오늘 이시백이 몸소 관리협회를 찾은 것은 신입루키들을 선별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게 이유였다면 굳이 관리국장을 만날 필요도 없다. 아래층의 길드 대기실에서 느긋하게 결과만 기다리면 될 것이지.
오늘은 그의 친 여동생 이시현이 헌터고시를 보는 날이었다. 이시백은 지난주에 미리 1억 원을 최진호에게 발라놨다. 이시현의 헌터합격을 위해서.
‘누굴 닮아서 그렇게 게으른 건지···. 참.’
대부분의 상위층들이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매관매직(賣官賣職).
돈을 받고 벼슬을 사고 파는 행위.
많은 상위권의 헌터들이 세상을 뒤집지 않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어차피 사회 시스템은 강자에게 유리한데 왜 굳이 뒤집는단 말인가.
약자가 있어야 강자도 존재하며, 누군가 불편해야 누군가 편하다. 소는 누가 키우고, 농사는 누가 지을 것이며, 닭은 누가 사육할 것인가. 그것은 온전히 노예들의 몫이다.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어봤자 도적과 산적밖에 늘지 않는다. 높은 자리에 앉은 헌터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시스템을 유지하고 뒤에서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
어차피 뒷골목의 지름길은 그들만을 위한 길이니까.
‘지연, 학연, 혈연이 없다면 돈으로 인연을 만들어도 되지.’
이에 반발한 몇몇 양심 있는 강자들은 권력자들과 싸웠다. 하지만 탐욕과 욕심이 더 강했으니 머릿수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공명정대한 이들은 무법지대로 도망쳤지만 남은 이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정의는 이쪽이고 악당은 저쪽이다.
“이번에 나온 B급 헌터자리 확실히 우리 시현이 몫이죠?”
이시백이 웃으며 뇌물의 대가를 재차 확인했다.
“아이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당연합니다. 으허허, 걱정 마십쇼. 필기는 어쩔 수 없이 딱 합격선으로 해놨지만 실기와 면접에서 만점을 주게끔 만들어놨습니다.”
최진호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B급 이하의 헌터는 레벨과 능력이 아닌 실적 우선순위다.
그러다보니 B급 이하의 등급은 자리가 있다면 헌터고시의 성적으로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수석이 B급이면 차석이 C급, 그 이하로 D급과 E급. 나머지 대부분은 F급들이다.
높은 등급으로 헌터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남들이 통통배로 출항할 때 크루즈 호로 바다를 누비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차이다.
헌터등급이 높을수록 더 높은 곳에 출입할 수 있으며, 더 빠른 레벨 업이 가능하고 더 빨리 강해질 수 있다.
민간인과 헌터 간의 레벨 차이가 심한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였다.
‘좋은 세상이야.’
1세대 헌터인 이시백은 지금의 세상이 마음에 들었다. 운과 노력으로 쟁취한 지금의 자리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래선 안 된다. 노력만으로는 쟁취하기 힘든 세상이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유지되고 노예들이 유지되고 자신의 자리가 유지되니까.
똑똑똑!
그때 닫힌 방문 너머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국장님. 시험 관리부 김직고 요원입니다. 급한 용무가 있어 뵙고자 합니다.”
시험 관리부가 급한 용무?
최진호가 손뼉을 짝 치며 소식을 반겼다.
“어이구, 벌써 시험이 끝났나봅니다. 결과를 들고 왔나보네요. 허허허.”
이윽고 최진호의 허락에 김직고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문을 닫기 무섭게 빠른 걸음으로 최진호에게 걸어왔다.
“국장님. 큰일 났습니다.”
“허허허, 뭐야··· 불안하게.”
최진호가 이시백의 눈치를 살피며 김직고에게 인상을 찌푸렸다.
큰일이라니.
설마 시험결과의 조작이 잘못되기라도 한 건가.
그러면 안 된다. 이미 받은 돈 1억 원은 부동산 투기로 사용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김직고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감찰 떴습니다.”
“···뭐?”
최진호의 두 눈이 한계까지 치켜떠졌다. 어찌나 세게 떠졌는지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모양새였다.
“가, 감찰이라고? 분기 감찰은 이미 지난달에 끝났잖아?”
“비정기 감찰인 것 같습니다. 저번에 공문으로 온···.”
“뭐!? 난 그런 공문 못 받았는데?”
최진호의 커다란 목소리에 김직고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기안은 분명히 넘겼다. 서명까지 완료됐다. 이 새끼 분명 전 날 술 처먹고 업무를 대충대충한 거겠지. 확실했다.
“어쨌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잘못하면 필기시험 전산조작한 것부터 걸릴 것 같은데···. 실기시험은 조작 못 할 것 같습니다.”
“허, 그럴 리가 있나. 감찰이라니···.”
최근 언론에서 헌협을 물어뜯다보니 꼬리 자르기식으로 내쳐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그 꼬리의 역할을 자신이 맡게 되다니.
‘저번 달에 분기 감찰이 끝났는데. 또 왔다고?’
중간업자를 끼지 않고 혼자서 독식한 죄일까. 윗선에 발이 있었다면 비정기 감찰에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확실해?”
최진호가 재촉하듯이 되물었다. 이거 잘못되면 모가지 댕강에 징역까지 산다. 집행유예로 끝나더라도 차곡차곡 쌓은 곳간이 우수수 비게 될 것이다. 자를 꼬리가 있어도 조심해야 한다.
“레벨 131 한국인 헌터입니다. 이름은 주은성. 정보를 검색 해봐도 10년간 공백이고 지금까지 점수들이 말이 안 됩니다. 필기 만점에 2차 실기 199,800점. 지금 실기 3차 시험을 보고 있는데 지망생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습니다. 홀로그램에서 나온 몬스터를 1280마리 넘게 잡고 있습니다. 그냥 대놓고 '내가 감찰이다'식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김직고의 말에 최진호가 이마를 탁 쳤다.
레벨 131 밖에 안 되는 헌터가 그 정도 성적을 내는 건 하늘이 두 쪽 나도 불가능한 일이다.
‘대놓고 보여주기라···. 이번에도 레벨을 속이는 장치를 이용한 건가.’
감찰부에선 시험이 공정하게 치러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신분과 레벨을 속이고 헌터시험을 보는 경우가 있었다. 기계로 레벨을 측정하는 만큼 기계로 레벨을 속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최고점을 찍으며 깽판을 부린다는 것은···.
“일단 서류부터 내놔봐.”
김직고가 서류를 건네자 최진호가 신경질적으로 빼앗았다. 감찰에 대한 불안으로 최진호의 손길이 빠르게 움직였다. 서류를 넘기던 최진호가 욕설을 내뱉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씨발. 감찰 맞네. 기계 리미트 값까지 결과를 얻었잖아. 최소 A급 이상의 베테랑 헌터야.”
2차 실기시험에 이용되는 측정 장치는 한계 값이 있다.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지 않듯 당연한 설계다. 그런데 그 측정의 한계점수까지 득점했다면 감찰부의 앞잡이, 그것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어떻게 할까요?”
“후우, 뭘 어떻게 해. 감찰하러 나온 놈이 이렇게 보여주기식으로 무력시위하면 하나 밖에 더 있겠나.”
최진호가 짜증 섞인 숨을 훅 내뱉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대놓고 ‘나 감찰이다.’라고 표출한다면 그래도 살 궁리는 있다는 거다. 그건 상대가 융통성이 있다는 무언의 신호였으니까.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이따가 흰 봉투에 돈 좀 박아서 넣어줘. 겉으로 깨끗한 척 하는 놈이니 티 안 나게 주고. 시험 결과는 규정대로, 잊지 말고.”
“예. 시험 관리부 인원들에게 미리 언질 해놓겠습니다.”
규정대로만 하면 문제될 건 없다. 이번 감찰인원이 수석이라면 성적에 맞게 합격시키면 된다. 감찰을 위해 허수로 만든 결과는 그쪽에서 알아서 없애니까.
끼이익!
이윽고 김직고가 문을 닫고 사무실을 나가자 최진호의 얼굴이 흐물흐물 풀어졌다.
“아, 하하하··· 아이고, 참. 이게 비정기 감찰이 떠서··· 이거 원.”
잠자코 있던 이시백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최진호의 행동이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시험성적을 조작할 수 없다는 뜻이겠지.
“이시현양 합격은 그, ··· 다음 헌터고시라도 괜찮습니까?”
“감찰이 왔다면 어쩔 수 없죠.”
“아하하··· 죄송합니다. 엄한 거 먹다가 배탈 나면 저희는 모가지가 단숨에 잘리기 때문에. 그래도 다음시험에선 크게 혜택을 드리겠습니다.”
“음. 알겠습니다.”
용무를 마치고 인사를 나눈 이시백은 사무실을 나왔다. 문 밖에는 그의 비서이자 같은 길드원인 한준수가 서 있었다.
“준수야.”
“네. 형님.”
“몇 명 시켜서 오늘 시험 본 주은성이라는 사람 좀 확인해봐. 감찰 일정 다 확인했는데 뒤통수 맞았네.”
“알겠습니다.”
한준수가 고개를 끄덕이고 사라졌다. 멀어져 가는 그 커다란 등을 보며 이시백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주은성이라고?’
1세대 헌터답게 발이 넓은 그였다. 하지만 주은성이란 이름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다.
* * *
“B급 헌터 자격증입니다. 수석 축하드립니다.”
공무원이 자격증을 건네며 말했다. 어째서인지 그는 가늘게 떨고 있었다.
‘수전증이라도 있나.’
나는 대수롭지 않게 자격증을 받아들었다. 카드에는 간단한 신상정보와 헌터등급이 새겨져 있었다.
“이번 수석은 B급부터 인가요?”
내 물음에 공무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이번에는 B급 자리가 남아서 성적순으로 자리를 채우다보니 그렇게 된 겁니다. 수석이더라도 보통은 C급인 경우가 많습니다. 지역마다 TO에 차이가 있으니까요.”
뭔가 교과서적인 답변이다.
그때 옆에서 헤실헤실 웃던 다른 공무원이 품에서 흰 봉투를 꺼낸다.
“이건 약소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봉투를 받아보니 무수한 지폐다발이 있다.
뭐야, 이 돈은. 나는 고개를 갸웃 숙였다.
“이건 뭡니까?”
“아, 하하하···. 잘 봐달라는 작은 성의의 표시입니다.”
잘 봐달라는 표시라고?
수석으로 시험에 합격하면 상금도 있었던가. 생각해보지만 그런 말은 전혀 듣지 못했다. 하지만 주는 돈을 거절할 이유도 없다.
“뭐, 잘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살펴가십시오.”
고개를 꾸벅 숙이는 공무원들을 뒤로한 채 나는 조심스럽게 건물을 나왔다. 대기하고 있던 길드들과 매니지들에게 홍보할 기회도 있었지만 나는 거절했다. 자선사업을 할 게 아니라면 지금은 혼자가 유리하다.
‘은애한테는 건물 뒤쪽으로 오라고 해야겠군.’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자 갤럭시 더블S 8이 모습을 드러낸다. 얼마 전에 구매한 휴대폰인데 화면도 크고 성능도 좋다. 역시 비싼 게 돈 값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휴대폰을 확인하니 뭔가 이상한 게 많이 왔다.
-반갑습니다. 네크로 필리아 인사부 담당 이선우 팀장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 주은성 헌터님께서 계약된 곳이 없으시다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굿럭 매니지먼트를 운영하는 이한선이라고 합니다. 저희는 S급 헌터 김철한님을 비롯한 수많은 개인 헌터들과 계약을 하고 있으며 주은성님의 성장 역량을 보고 굉장하다고 생각해 연락을 드립니다. 저희는 헌터마켓을 포함한 각종 마켓에 아이템 판매의 마케팅을······.
-대한민국 무림인들의 집합소! 천마신교 길드에서 연락드립니다. 본교에서는 떠오르는 신성을 선별하던 중······.
-사나이라면 사나이 길드! 당신이 고자가 아니라면 저희 사나이 길드에···.
네크로 필리아부터 굿럭매니지먼트, 천마신교, 사나이 길드까지.
무음이라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외에도 수많은 메시지가 와 있었다. 심지어 부재중 전화도 몇 개나 찍혀 있었다.
“음···.”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과연 내 고향 한국. 10년이 지나도 변한 게 없었다.
개인의 신상정보는 공공재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