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부재중 전화 108건.
-읽지 않은 메시지 300+.
‘미치겠군.’
집에 막 돌아온 참이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던지고 외투를 벗었다. 시선을 내리깔자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가 보였다. 은애가 쓰던 구닥다리 컴퓨터는 진즉에 최신형으로 바꿔놓았다.
“우와아아, B급 헌터 자격증이라니! 오빠 진짜 대박인 거 알아요?”
침대에서 방방 뛰던 은애가 신나서 말했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는데 오히려 저 혼자서 난리다.
“B급이 그렇게 굉장해?”
“네. 헌터 사회에서 상위 10퍼센트잖아요.”
생각보다 별 거 아니구나.
“그리고 무법지대도 나갈 수 있어요. B급부터.”
“무법지대라면 안전지역 밖을 말하는 거냐?”
“네에.”
은애가 베시시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생각보다 쓸 만할지도.
‘아무래도 무법지대에 뭔가 있을 것 같으니까.’
지금 현재 지구의 아이템 수준은 도대체가 말이 안 됐다. 마치 누가 아이템 시세를 조작하는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쓰레기들이 비쌌다.
그건 난이도에 문제가 있다는 거다. 위험한 곳일수록 좋은 걸 얻을 수 있으니 무법지대에 출입자격이 생긴다는 건 꽤나 잘된 일이다.
“오빠, 뭐해요?”
“이제 들고 있던 매직 아이템들을 경매장에 올리려고.”
내가 의자를 당겨 앉으며 말했다.
‘굳이 장비 빨도 필요 없고 빨리 돈으로 바꾸는 게 낫겠지.’
귀환하며 받았던 매직아이템들.
지금이 과도기라면 사람들의 수준이 발전할수록 분명 아이템 시세가 떨어질 거다. 돈은 돈을 낳지만 아이템은 다르다. 수요가 꾸준히 줄어드는 고정자산이다. 공급이 꾸준하다면 아이템의 시세는 언젠가는 떨어진다. 그러니 빨리 파는 게 낫다.
우우웅!
컴퓨터 본체를 켜자 미세한 소음이 났다.
새로 구매한 컴퓨터는 손바닥만한 크기의 본체를 가진 주제에 성능이 엄청났다. 시대가 발전하긴 했나보다. 무려 3초 만에 부팅이 완료되고 모니터 화면이 떠올랐다.
타다닥! 타다닥!
컴퓨터를 조작해 헌터 경매 사이트에 접속하자 경매목록이 보였다. 그간 은애의 계정으로 겉핥기만 하던 사이트다. 회원가입을 시작하자 헌터자격증의 인증번호를 묻는 기입란이 떠올랐다.
“자격증에 있는 인증번호 필요하대. 자격증 좀 줘봐.”
“넵.”
이윽고 회원가입이 완료됐다. 휴대폰 인증을 하는 것에서 조금 짜증이 났지만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휴대폰이 없으면 회원가입도 못 하는 세상이다.
-B급 헌터 주은성 회원님. 회원가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B급 헌터이신 주은성 회원님은 골드 등급의 회원으로···.
화면에 뭔가 튀어나왔다. 보험가입 팝업 창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스치듯이 쳐다보다가 얼핏 확인하니 멤버등급이 조금 달랐다.
“뭐야? B급 헌터는 처음부터 골드 등급이네?”
최초 등급은 브론즈등급부터 시작해서 실버, 골드를 거쳐 다이아와 VIP, VVIP등급이 있었다.
시작부터 골드등급으로 시작하면 사이트 이용 수수료가 브론즈에 비해 10%나 절감되고 각종 이벤트와 혜택을 보장 받는다.
“상위 10퍼센트라고 했잖아요.”
은애가 옆에서 거들었다.
‘꼭 신용등급 같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아이템 경매 란에 들어갔다. 액티브 X에서 살짝 가로막혔지만 문제될 건 없었다. 컴퓨터 성능이 좋으니 액티브 X도 별 거 아니다.
‘그런데 이건 뭐지?’
배너 아래에 내 시선을 잡아끄는 게 있었다. 가만 보니 경매장이 두 개로 나뉘어져 있었다.
일반 경매장과 고급 경매장.
“아, 맞어. 오빠는 골드회원이니까 고급 경매장에서 아이템을 팔 수 있나봐요.”
“고급 경매장?”
“골드회원부터 보이는 건데 공급되는 아이템 수준부터 일반 경매장과 다르고 부자들이 많이 쓰는 곳으로 알고 있어요.”
은애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어쨌든 일반보다는 고급이 좋겠지.
내가 고급 경매장에 들어가자 아이템 목록이 우수수 펼쳐진다.
‘아, 이건··· 이런 거였나.’
나는 저절로 눈매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살펴보던 아이템들이 하나같이 후진 이유가 이거였나.
‘헌터사회도 빈부격차가 엄청난 거였구나.’
그간 은애의 계정으로 보던 아이템들과 전혀 달랐다.
아르카디아에서 보던 수준의 아이템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 * *
경매등록을 마치고 향한 곳은 강철길드의 사무실이었다.
‘구렁이 시체도 냉장고에서 꺼냈고···.’
나는 사무실의 한쪽 구석에서 가방을 싸고 있었다.
내 앞에는 등산용 가방과 침낭, 식수와 건조음식, 구렁이 시체 등, 다양한 물품들이 놓여있었다. 아공간이 비싸다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100kg 제한에 2칸짜리가 1억이라니···.’
몇몇 아이템은 아르카디아와 비교해서 제대로 하향평준화였다. 머리에 구멍이 뚫리지 않고서야 그 가격에 그딴 아공간을 살 일은 결코 없다.
“오늘 당장 가시려고요?”
은애가 물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야지. 약속은 빨리 지키는 게 좋아.”
길드마스터와 약속한 폐던전 얘기였다. 은애의 물음에 간단히 대꾸하고 나는 가방을 짊어졌다. 안에 들은 게 많으니 확실히 꽤 묵직했다.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
은애가 간절한 어조로 물어온다.
“응. 안 돼.”
나는 단칼에 거절하고 몸을 돌렸다. 며칠 전 던전 포탈의 표식을 먼저 확인했다. 던전의 난이도를 대략적으로 예측할 수 있었다.
같이 가도 상관은 없지만 내 실수 한 번이면 은애는 목숨이 날아간다. 인생은 픽션이 아니다. 한 번 죽으면 그걸로 끝이다.
“다녀올게.”
“조심히 다녀오세요. 오빠.”
은애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젖먹이 강아지를 저 혼자 놔두고 떠나는 기분이다. 누가 보면 죽으러 가는 줄 알겠다.
‘은애의 동생이 아프다고 했으니 가는 김에 그것도 캐야겠지.’
나는 생각을 곱씹으며 사무실을 나섰다. 비탈길을 내려가자 초겨울의 찬바람이 온몸을 세차게 때렸다.
* * *
폐던전에는 울타리가 세워져 있었다. 울타리의 정중앙에는 입구와 초소건물이 있었고, 초소에는 경비병 두 명이 입초와 동초의 복초 형태로 대기하고 있었다.
“정지! 멈추십시오!”
내가 지척까지 다가가자 서 있던 경비병이 총구를 들이밀며 위협한다.
던전 안에서는 사용도 안 되는 화약무기가 던전 밖에서는 아직도 쓰이고 있다. 총기와 탄환을 바꿨다고 들었다. 5.56mm에서 7.62mm로.
“오늘 연락한 강철길드 공략 팀입니다. 확인해보세요.”
내가 길드마스터로부터 받은 허가증과 헌터자격증을 흔들자 서 있던 경비병이 다가와 확인한다. 잠시 후 확인이 끝나자 입구를 막던 가림막이 올라갔다.
“실례지만 동행 분들은?”
“혼자입니다.”
“···예?”
경비가 얼빠진 표정으로 되묻는다.
뭘 저렇게 놀라는 건지.
던전은 솔플을 하는 게 편한데 여기는 문화가 잘못 박혔다. 마치 혼밥을 하면 이상한 사람을 보듯이 꼭 불쌍하고 아련한 시선으로 쳐다본다.
“으음, 알겠습니다. 확인했습니다.”
“네.”
문을 지나서 들어가자 반듯한 길이 보인다. 길의 끝에는 투명한 막을 두고 던전 입구인 푸른색 포탈이 일렁이고 있다. 그것은 커다란 바위에 구멍이 뚫린 모양새였다.
그리고 포탈 위에는 새하얀 빛의 글귀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ⵐ’
아르카디아의 언어. 유니크 던전이란 뜻이자 일종의 봉인 표식이다. 개봉되지 않은 병뚜껑 라벨과 비슷하다.
‘유니크 던전···. 오랜 만에 보니까 반갑기도 하고.’
요정의 말이 맞았다. 세상은 위험하다. 이곳의 사람들이 그 위험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는 유구한 전통이자 관습인 것 같다.
‘어떻게 유니크 던전이 도시 근처에 떡하니 있는 건지.’
마석을 제물로 삼는 차폐막이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이런 던전은 최대한 빨리 공략해놔야 안전하다.
“그럼 차폐막을 10초간 개방하겠습니다. 빠르게 입장해주십시오.”
초소 안의 병사가 말하자 투명한 막이 걷힌다.
우우웅!
가방을 고쳐 메고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주변의 풍경이 빠르게 변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습하고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동굴형 던전인 건가.’
뒤이어 빛의 문구가 현란하게 떠올랐다.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유니크 등급의 던전 입니다. 최초발견 토벌 퀘스트를 부여받습니다.>
<1인 플레이입니다. 던전 클리어시 특수보상을 지급받습니다.>
[왕의 무덤]
등급 - 유니크
적정 레벨 – 250이상.
적정 인원 – 5인.
설명 - 고대의 왕국 칼라브람, 왕과 그 기사들의 무덤.
추가 보상 – 추가 경험치, 칼라브람 왕의 보석
1인 추가 보상 – ???
빛의 글귀 너머로 일직선으로 된 넓은 공동이 보인다. 내 입가로 미소가 스치듯 지나갔다.
“금방 끝나겠네.”
문지기 형태나 무덤 형태의 던전은 장점과 단점이 확고했다.
던전을 지키는 몬스터가 정예 몬스터인 대신 수가 많지 않다. 던전의 방도 적고 무엇보다 방향도 일방통행이라 헤맬 일도 없다. 보스 룸은 모든 방을 클리어 했을 때 열리는 시스템이다.
나는 마법으로 막힌 방의 끝에 다가갔다. 육망성으로 된 마법진 앞에는 풀 플레이트를 입은 석상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규칙은 단순해보였다. 석상을 깨부수면 문이 열리는 거겠지.
자세를 고쳐 잡은 내가 단숨에 주먹을 내질렀다. 붕권이었다.
뻐걱!
강렬한 굉음이 났다. 석상의 명치에 내 주먹 모양으로 구멍이 뻥 뚫렸다. 석상은 마치 도넛 인간 같은 모양새가 됐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길을 막고 있는 마법진은 사라지지 않았다.
“뭐야, 이게 아닌가?”
내가 고개를 갸웃 숙였다. 이거 설마 석상을 가루로 만들어야 하나. 만에 하나라도 함정형 던전 같은 거면 곤란해진다. 그러면 빠른 클리어가 불가능하니까.
그런데 다음 순간.
빠드드득!
회색빛의 석상이 외피를 벗듯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투구의 열십(十)자 틈새 사이로 붉은 안광이 빛을 발했다.
-인간이여··· 겁도 없이 이곳에 발을 디디다니··· 나 초입의 기사 카르넬이 벌해주겠노라.
오호라, 외부충격에 깨어나는 몬스터인가.
게다가 말도 한다.
하지만 녀석은 주제파악을 못하는 것 같다.
내가 녀석의 명치를 가리키자 녀석이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그러더니 내 손짓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내리깐다.
그러자 녀석의 동공에 고스란히 보이는 커다란 구멍.
정확히는 내 주먹 모양으로 꿰뚫어진 명치의 구멍이었다.
-뭐야, 이 상처는···.
“너 이미 죽어 있어.”
그 순간 녀석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일부 몬스터는 시체를 남기지 않는다. 동시에 빛의 글귀가 떠올랐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지긋지긋한 레벨 업 알림이다. 몬스터보다 이게 더 문제다. 사냥 좀 했다하면 활동이 힘들 정도로 레벨 업 알림이 너무 많이 뜬다.
‘단숨에 170레벨이 됐나.’
과연 길을 막고 있던 마법진도 사라졌다. 녀석이 사라진 곳을 확인하니 마석과 아이템이 보였다. 나는 허리를 숙여 그것을 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