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의 귀환-13화 (13/127)

# 13

[기사 카르넬의 십자 투구]

미확인 아이템.

[상급 마석]

종류 – 일반

설명 – 영롱한 보라색 빛깔을 띠고 있는 신비한 돌. 마의 기운을 품고 있다.

‘상급 마석이랑 미확인 아이템이다.’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걸렸다.

과연 정예몬스터.

아이템 수준도 정예다.

미확인 아이템은 일반 아이템보다 대체로 성능이 좋은 편이다.

‘아이템 식별 스크롤이 지구에도 있었나.’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마석과 함께 챙겼다. 메고 있는 배낭에 공간이 없었기에 머리에 착용하는 쪽을 택했다.

끼릭! 끼릭!

나는 목을 이리저리 흔들며 던전 안쪽으로 나아갔다. 다음 방에 도착하자 이번에도 석상이 보인다. 석고상 같은 모양새라 패턴이 대강 예측된다. 카르넬이란 놈과 비슷하겠지.

-넌 이미 죽어 있다.

그렇게 몇 번 반복했다.

* * *

첫 발이 끝 발인지 그 후로 아이템 운이 없었다. 하지만 상급 마석은 두둑히 챙길 수 있었다. 총 다섯 개의 방을 거치면서 레벨도 208로 크게 상승했다.

<보스 룸에 입장하셨습니다.>

막혀있던 마법진이 사라지자 거대한 동공이 눈앞에 펼쳐졌다. 방의 끝자락에는 천장을 찌를 듯한 거대한 석상이 세워져 있었다.

‘또 석상인가. 원 패턴이군.’

다른 점이라곤 덩치가 크다는 것.

거의 5층 빌라만한 크기다. 석상과 거리가 꽤 있음에도 목을 살짝 들어야 녀석의 얼굴이 보였다. 양손에는 대검을 역수로 쥔 채 굳건히 서 있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녀석의 커다란 몸체가 확연히 체감됐다. 이거 한방에 죽일 수 있을까. 살짝 도움닫기를 하자 거리가 명확하게 파악된다.

‘높이는 문제없겠는데.’

그 자리에서 팔짝 뛰어올랐다. 공중에 붕 뜬 나는 즉시 녀석의 얼굴에 철산고를 박아 넣었다.

콰지직! 쿵!

종이 찢는 소리가 나며 녀석의 얼굴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목이 찢어지면서 머리와 몸이 분리된 것이다. 내가 기다리고 있자 이번에도 몸체의 표면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외부의 충격에 비로소 깨어나고 있는 듯했다.

‘이번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머리와 몸이 분리돼 있는 광경은 쉽게 겪을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다. 나는 느긋하게 지켜보며 사태를 관망했다. 곧이어 땅이 흔들리고 석상의 겉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보스 몬스터: 칼라브람의 왕 헤럴드가 잠에서 깨어납니다!>

<공포 저항에 성공했습니다!>

<혼란 저항에 성공했습니다!>

콰아아아아!

쓸데없이 휘황찬란하다.

깨어난 헤럴드가 커다란 목소리로 고함쳤다.

-겁도 없이 왕의 잠을 깨운 자, 누구인가···! 나 칼라브람의 왕 헤럴드가 벌해주겠노라!

땅에 떨어진 얼굴이 한껏 일그러지며 으름장을 놨다. 전혀 위압감이 없다. 녀석의 턱밑에선 새까만 피가 줄줄 흘렀다.

내가 손짓으로 몸체를 가리키자 그제야 시선을 돌린 녀석이 눈을 한껏 부릅뜨며 당황한다.

-이, 이게 무슨···. 내 몸이 왜 저기 있는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럼 이제 또 다시 레벨 업 표시가 떠오를 차례인가.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땅에 떨어진 머리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흐물흐물 기어가서 본체에 흡수됐다. 급기야 거대한 몸체의 목 위로 흉측한 얼굴이 다시 생겨났다.

-왕은 쉽게 죽지 않는다!

“하, 이거 웃기네.”

주제파악을 못하고 또 나불댄다.

주먹을 꽉 쥔 내가 녀석의 오른쪽 허벅지를 때렸다.

뻐억!

강렬한 폭발음이 공동전역을 울렸다. 녀석의 허벅지가 구멍이 뻥 뚫린 채 다진 마늘처럼 짓이겨졌다. 이거 타격감이 생각보다 좋다. 마치 밀가루 반죽을 때리는 기분이다. 다리가 엿가락마냥 휘어지자 녀석이 새된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악!

“합리적이지 못하네. 그딴 몸인 주제에 고통은 잘도 느끼잖아.”

무심한 얼굴로 다시 한 번 주먹을 내질렀다. 이번에는 반대쪽 다리다.

퍼억!

-갸아아아악!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녀석은 두 다리에 구멍이 뻥 뚫리자 더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다시 녀석의 두 다리가 복구됐다.

-가만두지 않겠다!

“이거 골렘과 비슷한데.”

마법으로 만들어진 생물 골렘은 몸체의 어딘가에 있는 핵을 부숴야만 소멸하는 몬스터다. 녀석도 비슷한 부류로 보였다. 이러면 귀찮아지는데.

-왕의 명예를 실추시킨 죄! 죽음으로 사죄하라!

헤럴드가 거대한 대검을 수직으로 내리 꽂았다.

“약한 건 내가 아니라 네 잘못이지.”

가볍게 대꾸하고 붕권을 사용했다. 맨주먹과 대검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파지지직!

쇠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대검이 계란껍질처럼 균열을 내며 산산이 부서졌다.

-마, 말도 안 돼! 보검 살리아스가···!

“말 돼.”

이어서 내가 땅을 박차고 그대로 엄습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붕권이나 철산고는 일대일에 특화된 점형 스킬. 상대가 핵을 숨기고 있는 골렘류라면 점형이 아닌 선형이나 장형으로 쏘아내는 범위형 스킬이 필요했다.

‘그러면 나머지 체술들도 체득해야 하는 건가.’

그간 다른 체술들의 체득을 미루고 있었다. 강철 가시 구렁이를 죽이는 데엔 딱히 스킬이 필요 없었으니까.

한 방 쥐어박으면 펑 하고 터지는데 스킬이 필요할 리가···?

딱히 체득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이참에 모든 체술들을 다 체득하자.’

내가 다리근육에 힘을 주자 뚜두둑 뼈마디가 울린다. 한 방에 안 죽으면 귀찮아진다. 지극히 효율의 문제다.

가장 먼저 로우킥을 떠올렸다. 대상은 눈앞에 있는 거대한 샌드백.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뛰어오른다. 허리의 탄력을 머금은 내 정강이가 헤럴드의 몸을 사선으로 훑는다. 오른쪽 어깨부터 왼쪽 허벅지까지.

꽈지지지직!

기괴한 소리가 들렸다. 이거 능력치 차이가 너무 심하니 완전히 절삭돼버린다. 육중한 고깃덩이가 말끔히 두 동강이 났다. 육즙대신 검은 핏줄기가 간헐천처럼 쏟아졌다.

‘큭, 역겨운 피 냄새.’

몬스터들의 피는 하나같이 역하다. 휘발유 냄새와 비슷했다. 인간형이라고 다를 건 없다.

<스킬: 로우킥을 터득하셨습니다.>

반으로 찢겨진 녀석을 두고 빛의 글귀가 떠올랐다.

스킬 체득 알림이다.

[로우킥: 레어 1]

효과 – [기본 1.5] + [근력 계수 0.15]

설명 – 허리의 탄력을 이용해 한쪽 발에 무게중심을 실어 정강이로 공격합니다. 타격 성공 시 상대방이 [기본 35] + [근력 계수 0.15]의 확률로 쓰러집니다.

땅에 착지한 직후 내가 몸을 훌훌 털며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양분이 된 몸체에서도 핵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생각보다 핵 크기가 작은 건가.’

참 질긴 놈이다. 그렇다면 다음 체술이다.

‘질풍각.’

로우킥이 몸을 양분시킬 정도면 연달아 공중발차기를 하는 질풍각은 녀석을 가루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헤럴드의 몸체가 완전히 수습되기도 전에 내가 쇄도했다. 그리고 질풍각을 사용했다. 공기를 가르며 찢어발길 기세로 내 발차기가 녀석의 몸을 연달아 터뜨린다.

퍽! 퍼벅! 퍽! 뻐억!

연신 타격 음이 터져 나온다. 연달아 얻어맞은 헤럴드의 몸이 이리저리 시계추처럼 흔들렸다. 동시에 내 고개도 세차게 흔들린다. 낯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뭐야, 왜 데미지가 이것 밖에 안 돼.’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땅에 착지하고 「세계의 목소리」를 기다렸지만 스킬 체득 또한 되지 않았다. 분명 마나가 소모되지 않는 격투술인데.

‘왜 체득이 안 되는 거지.’

눈앞으로 헤럴드의 몸이 수습되고 있었다. 그 커다란 몸체를 보며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뭔가 놓치는 게 있나. 스킬 체득 조건이 마력이 필요 없는 스킬에 한정된 게 아니었어?

‘오질나게 불친절한 건 이세계나 지구나 다를 바 없구나.’

명예 어쩌고저쩌고 했던 헤럴드는 몸이 완전히 수복된 뒤에도 감히 덤비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튕기며 생각했다. 대체 놓친 게 뭘까.

‘스킬이라··· 스킬.’

그러다 문득 내 뇌리에 벼락이 쳤다.

‘하, 설마 그거였나.’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쳤다. 너무 황당해서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간 위기감이 없었다. 절대자의 향취에 너무 취해있었다.

‘스킬 체득은 숙련도를 모두 채운 스킬들만 된다.’

생각해보면 그래서 마법이 체득되지 않았다. 나는 어떠한 마법도 결코 숙련도를 모두 채우지 않았으니까.

하물며 남을 치료하는 메가 힐이나, 운석 여러 개를 소환해 직격으로 지상에 내리꽂는 메테오 스트라이크는 두 말할 것도 없다.

‘확실히 아귀가 맞아 떨어져.’

검술이나 일부 격투술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습관처럼 익숙한 것에 손이 먼저 간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 전투에서는 말하기도 입 아프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스킬들을 항상 먼저 사용한다.

그렇다면.

‘숙련도를 모두 채운 건 붕권, 로우킥, 철산고··· 강권, 패리, 탐색과 식별 스킬 정도인가.’

무공은 완전히 성취하지 못했다. 다른 스킬들은 숙련도가 100에서 끝났지만 무공은 아니었다. 숙련도가 100을 넘어서도 계속해서 올랐다. 수련에 끝이 없는 스킬이었다.

‘확인해본다.’

근거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하나의 추측.

막연한 내가 고개를 돌려 헤럴드를 쳐다봤다.

탐색 스킬은 익힌 이후로 거의 매일 같이 사용했다. 아이템 감정에 필요한 식별스킬과 마찬가지로 있으면 꼭 사용하게 되는 스킬이었다. 아이템의 정보나 적의 전투력을 빨리 파악할수록 생존에는 크게 유리했으니까.

헤럴드를 마주한 내가 탐색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역시나!

<스킬: 탐색을 터득하셨습니다.>

세계의 목소리가 나타나 스킬 체득을 알렸다.

[탐색: 엑스트라 1]

효과 – 상대방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모 – 지속 초당 마력 1.

설명 – 지상과 지형 및 자신보다 약한 상대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스킬 레벨에 따라 허용 폭이 넓어집니다.

눈이 밝게 트였다. 내 동공에 녀석의 각종 정보 수치와 핵의 위치가 고스란히 비춰졌다. 탐색은 상대의 레벨과 능력치는 물론 약점까지 세세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술이다.

‘아, 저기는···. 골 때린다.’

핵이 있는 위치를 알아낸 내가 이마를 되짚었다.

이거 생존하는 방식이 존나 합리적인 새끼다. 황당하게도 녀석의 핵은 두 다리 사이 낭심 부근에 있었다.

그것도 2개. 커다란 몸집에 알맞게 핵도 2개다.

‘때리기 영 안 좋은 곳인데.’

그래도 죽이고 보상은 얻어야겠지.

이어서 강권마저 체득한 내가 패리와 식별 스킬만 남겨두고 녀석에게 다가갔다. 무기도 없어진 헤럴드는 주먹으로 거칠게 반항했다. 거대한 주먹이 풍압을 이끌며 내 뺨을 연신 스치고 지나갔다. 이 새끼 이거 일부러 안 맞히는 것 같은데.

‘강권.’

붕권이 상대를 밀어 넘어뜨리는 식이라면 강권은 부숴버리는 식이다.

호흡을 들이키면서 주먹을 고쳐 쥐자 거센 악력이 느껴진다. 꼭 불덩이를 쥐고 있는 기분이다.

다음순간 다리에 힘을 주고 튕기듯이 땅을 박차 쇄도했다. 목표지점에 이르러서 허리를 비틀고 한 번 더 무게중심을 싣는다. 나는 그대로 곧게 주먹을 내질렀다.

빠악! 뻐억!

-갸아아아아아아악!

비명소리와 함께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녀석은 세상 다 잃은 표정으로 의미도 없이 동굴 한 쪽을 쳐다본다. 가랑이 사이에선 검은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촉감 한 번 지랄 맞네. 알사탕을 깨부수는 느낌이야.’

나는 구겨진 얼굴로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핵은 제대로 파괴했다. 주저앉은 녀석은 더 이상 일어서지 못하고 그대로 잿더미가 됐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눈앞에 레벨 업 알림이 찬란하다. 도대체 몇 업이야. 확인해 보니 230레벨이 됐다. 동시에 퀘스트 알림 말도 떠올랐다.

<최초발견 토벌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추가 경험치와 칼라브람 왕의 보석을 얻었습니다.>

<1인 플레이 특수보상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아, 특수보상이 있었지.’

공중에 생겨난 보석을 품에 넣고, 내가 손을 탈탈 털자 투명한 창이 앞을 가로막는다. 던전을 클리어하고 얻는 특수보상은 일종의 선택지 형식이다. 보상목록에서 마음에 드는 보상을 선택하면 된다.

그런데 떠오른 보상 중에 내 시선을 끌어당기는 게 있었다.

‘···아공간?’

놀란 숨이 훅 터져 나왔다.

역시 유니크 던전이다 이건가.

다른 목록을 둘러봐도 아공간보다 좋은 보상은 없다.

나는 슬며시 웃으며 보상을 선택했다. 손바닥 크기의 동그란 손가방이 허공에서 툭 떨어졌다.

[아공간 4x4]

등급 – 일반

설명 – 500kg 한도 내에 물건을 저장할 수 있는 아공간이다.

‘100kg 한도에 2칸짜리가 1억이었으니까.’

단순 계산해 봐도 5억 원은 넘을 것 같다.

와, 오늘 최고 득템은 특수보상인 것 같은데.

뒤늦게 잿더미의 흔적으로 가니 커다란 대검도 눈에 담겼다. 상급마석 두 개와 함께 덩그러니 내팽겨져 있었다.

[칼라브람의 왕 헤럴드의 대검]

미확인 아이템.

[상급 마석]

종류 – 일반

설명 – 영롱한 보라색 빛깔을 띠고 있는 신비한 돌. 마의 기운을 품고 있다.

“이것들도 챙기고.”

아공간에 쑥쑥 잘도 들어간다.

‘역시 첫발이 운이 좋네.’

초심자의 행운마냥 득템 운이 좋다. 오랜 만에 땀을 흘리니 기분도 상쾌했다. 역시 돈은 땀 흘리고 벌어야 제격이다.

“하아···.”

카르넬의 십자투구를 벗고 목을 풀었다.

뚜두둑! 뼈마디가 비명을 지른다.

‘그럼 다음 차례는···.’

한참 활개를 편 나는 보스 룸의 구석을 향해 다가갔다.

유니크 이상의 던전, 그 보스 룸에서만 나오는 약초.

회생귀를 캐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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