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
던전에서 나오니 이틀이 지나있었다. 휴대폰에는 질리지도 않고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잔뜩 와 있었다.
-부재중 전화 493건.
-읽지 않은 메시지 300+.
‘열일 하는군.’
은성은 묵살하고 강철 길드의 사무실부터 찾아갔다.
“허, 정말로 유니크 던전을 혼자서 클리어 했단 말입니까?”
“예.”
강철길드의 사무실. 멀쩡히 돌아온 은성을 보고 차돌파가 경악했다.
이게 말이 되나?
점괘를 믿긴 했지만 마음 한구석엔 조금의 의심이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던전공략에 성공하다니.
게다가 그냥 던전도 아니고 유니크 던전이란다. 덧붙여 솔플!
‘정말로 말이 안 되는 사람이다. 강철 가시 구렁이를 맨손으로 죽이더니, 이제는 유니크 던전을 혼자서 클리어 했어? 이 사람은 대체 정체가 뭐란 말인가.’
은성이 오기 전, 관리국으로부터 클리어 확인전화를 받은 참이었다.
유니크 던전. 5인 파티를 살뜰하게 채워가도 클리어 여부가 미지수인 곳이다. 그런데 그곳을 혼자서 클리어 하다니. 눈앞의 이 청년이 정녕 자신과 같은 인간이란 말인가.
‘헌터시험도 수석으로 합격하고··· 더군다나 던전 클리어에 이틀 밖에 지나지 않았다. 옷차림은 또 어떤가. 어떻게 저렇게 깔끔할 수 있단 말인가.’
낯 위로 땀을 흘린 흔적은 있지만 상처는 작은 생채기마저 없다. 차돌파는 혀가 바싹바싹 말라왔다. 순수한 경탄에서 나오는 반사적인 행동. 그러다가 문득 무례를 깨닫고 다급히 감사인사부터 꺼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 덕분에 저희 길드가 존속하게 됐습니다. 정말로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할지···.”
머리를 넙죽 숙이며 쩔쩔매듯이 말했다.
은성은 가볍게 웃으며 품에서 계약서부터 꺼냈다.
“약속한 대로 이제 길드사냥터는 제 겁니다.”
“아이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선생님. 허··· 그런데 유니크 던전이라니···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으허허허.”
차돌파는 은성의 두 손을 꽉 잡으며 연신 껄껄껄 웃었다.
공략한 폐던전은 난이도에 따라 협회로부터 보상을 지급받는다.
기본금은 3억 원. 공략 던전의 난이도가 유니크 등급이라면 5배를 더 받는다. 무려 15억 원! 로또 당첨이나 다름없다!
‘세금을 떼고도 12억 원 이상! 게다가 앞으로 꾸준히 정산금도 있다. 역시 귀인이다. 점괘를 믿길 잘했어.’
인생은 이렇듯 한 방에 보상받는단 말인가.
남들이 미신이라고 비웃을 때도 묵묵히 버티던 그간의 보상이 한순간에 손아귀에 들어왔다.
차돌파는 내친 김에 은성에게 뭔가 더 보상을 주기로 생각했다. 그도 양심이 있었다. 받은 만큼 베풀어라. 오늘의 보상이 우직하게 운명을 믿은 자신의 덕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눈앞에 서 있는 곱상한 청년의 덕이 훨씬 컸다.
“저, 선생님···. 혹시 길드사무실은 필요 없습니까?”
“길드사무실이요?”
귀가 쫑긋 섰다.
“예.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받은 것에 비해서 선생님이 너무 손해만 보시는 것 같아서··· 으허허허. 이거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뭐라도 더 챙겨드리고 싶습니다.”
차돌파는 겸연쩍게 웃으며 사무실의 한쪽벽면을 가리켰다. 그곳엔 커다란 지도가 붙여져 있었다. 대략적인 강철길드의 영역을 나타내는 약도였다.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이곳 부지를 모두 선생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사무실부터 사냥터 뒷산까지.”
외딴 곳에 있다고 해도 산 하나와 건물 하나다. 적은 값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이곳을 모두 주겠다고?
“으허허, 이 정도는 드려야 손익이 맞지요.”
차돌파가 연신 손바닥을 비비며 은성의 비위를 맞췄다. 꼭 황제를 알현하는 신하의 자세다. 그는 은성과의 인연이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금칠을 좀 해놔야 한다.
“뭐, 주신다면야.”
은성도 구태여 거절하지 않았다. 공짜로 주는 건 본래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다.
게다가 마침 잘 됐다.
길드사무실이 자신의 소유라면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쓸 수 있으니까. 그도 사람이었기에 남의 것을 쓰는 것보다 자신의 것을 쓰는 게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은애는 어디 갔습니까? 전화도 안 받던데.”
“아··· 금요일이라면 병원에 갔을 겁니다.”
병원?
‘동생 병문안을 간 건가.’
은성은 턱을 쓰다듬으며 납득했다.
“혹시 탕비실 좀 써도 됩니까?”
“아이고, 마음껏 쓰십쇼. 으허허허, 이제 여기 사무실의 모든 것들이 선생님 것들이니까. 계약서는 오늘 당장 써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은성은 몸을 돌려 탕비실로 향했다. 되도록 안 보이는 곳에서 혼자 만들어야 한다. 정보는 나눌수록 손해다.
“만들어질지 좀 긴가민가하긴 한데.”
아르카디아와 비슷한 환경이니 아마 문제는 없을 거다.
문을 잠근 은성은 던전에서 캐낸 회생귀와 가시 구렁이의 시체를 꺼냈다. 가시 구렁이의 시체는 두꺼운 비늘 하나 없이 미리 잘 손질 돼 있었다.
‘회생귀를 그냥 쓰면 독초지만 강철 가시 구렁이가 있으면 말이 달라지지.’
회생(回生)귀. 다른 말로는 소생귀라고도 불리는 약초. 완전 회복 포션과 상태이상의 치료제이자 정신계 마법의 회복제로 사용된다.
은성이 찬장에서 커다란 냄비를 꺼내 물을 받았다.
쏴아아아.
그리고 강철 가시 구렁이의 시체를 회생귀와 함께 넣고 끓였다.
강철 가시 구렁이는 그 자신이 독이 없는 대신 다른 것의 독을 빨아들인다. 삼계탕의 대추이자, 약방의 감초처럼 포션 제작에 빠질 수 없는 재료다. 게다가 장어와 닮은 외견답게 정력에도 좋다. 스태미나 회복에 그만이다.
‘여기 사람들은 그 효용성을 모르는 것 같지만.’
아르카디아에선 비아그라대신 가시 구렁이의 고기를 먹는 경우가 허다했다. 몇 점 먹으면 척추가 안 좋은 아재도 다음날 아침에 텐트를 벌떡벌떡 잘 세웠다.
하지만 지구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당연했다. 제 정신이라면 그 누가 몬스터를 먹을 생각을 하겠는가. 그 자체로 독성이 있는 게 대부분인데.
그러니 강철 가시 구렁이의 인기가 없는 것이다. 아마 소문이 퍼지면 인류발전에 엄청난 기여가 될 것이다. 매일 밤 침대가 들썩들썩 할 테니까.
‘멸종의 위기가 있는 세상에 출산율만큼 중요한 게 없지.’
보글보글.
얼마 지나지 않아 냄비에서 뿌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새하얀 가시 구렁이의 살이 회생귀의 독을 빨아들여 보랏빛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가시 구렁이를 건져내고 10분.
회생귀가 완전히 녹을 때까지 기다리고 불을 껐다.
은성의 낯 위로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됐다.’
걸쭉한 초록빛깔의 액체. 이상 없이 완성 됐다.
딸깍.
미리 준비해둔 유리병들에 붓고 마개를 닫자 제법 포션 같은 모양새가 났다.
‘이제 병문안을 가볼까.’
탕비실의 흔적을 지운 은성은 길드사무실을 나섰다.
이제 약효를 확인할 차례다.
* * *
오후 5시.
은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은애는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역시 무사하셨구나. 그런데 왜 여기로 오신다는 거지?’
그녀는 침대에 누워있는 동생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동생 박은호는 의미도 없이 천장 한구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벌써 10년이 흘렀다.
어느새 은애의 나이 스물아홉 살.
그간 숨 한 번 돌리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왔다.
태생은 모난 것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랐다. 원만한 가정환경의 자녀가 대개 그렇듯 성격도 쾌활하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하지만 불행은 예고가 없었다.
10년 전 대격변이 일어났을 당시 그녀의 나이 19살.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어느 날인가 야간자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더니 집 건물이 통째로 사라져 있었다. 부모님은 시체도 없이 증발했고 학교에 남아있던 한 살 터울의 동생은 학교가 무너져 식물인간이 됐다. 그녀는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뒤늦게 부모님을 잃은 슬픔을 깨달았지만 슬퍼할 틈도 없었다. 유일한 혈육인 동생의 병원비는 어마어마했고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생리욕구의 생계비는 그녀의 목을 고문하듯이 졸랐다.
머리가 명석해 성적이 우수하던 은애는 대학교 대신 공장을 갔다. 그곳에서 청춘을 다 보냈다.
가난은 사람을 현명하게도 처절하게도 만들었다. 은애는 모진 풍파 속에서 눈치를 익혔고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본래 자존감이 강해서 자존심을 버리는 것은 쉬웠다. 이유 없는 질시와 구박에도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항상 더 쉬운 방식을 택했다.
삶에 대한 애착과 희망은 조금도 없었다. 다만 자신이 죽고 나면 혼자 남을 동생이 걱정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삶을 압박하는 동생의 존재가 삶을 지탱하는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아무것도 이룬 것 없는 스물일곱 살이 됐다.
그러던 와중에 헌터제도가 개편되면서 그녀에게도 희망이 생겼다. 헌터가 되면 동생의 병원비를 의료혜택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 육체적인 재능은 없지만 머리를 쓰는 일은 자신 있었다. 단지 레벨이 문제였다. 시간이 꽤 걸렸다. 그리고 그녀는 기어코 헌터시험에 합격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돈을 버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성격과 재능이 문제였다. 자취방의 월세를 못내 보증금을 다 까먹고 라면으로만 삼 세끼를 버티는 나날이 이어졌다. 좌절된 희망 앞에서 그녀는 뭘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러던 중 기적이 찾아왔다.
‘주은성.’
무언가에 홀렸는지도 모르겠다. 미신을 믿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혼란스러운 상황과 주은성의 존재는 이따금씩 운명을 믿게 만들었다.
그녀는 살아오면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 누가 남을 위해 이유 없는 선행을 베풀 것인가. 그런 사람은 없었다. 각박한 사회 속에서 사람들의 인성은 메말랐다. 헌터사회는 더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았다.
사람에 대한 신뢰는 바닥에 선행의 감정은 무저갱이었다. 선행은 그 자체로 많은 힘이 필요했기에 그 누구도 이유 없이 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은성은 달랐다.
자신의 목숨을 살려줬음에도 큰 요구가 없었고 밀린 방세까지 다 내줬다. 심지어 라면으로 삼 세끼를 버틴다는 걸 알고는 생필품까지 사다줬다. 살아오면서 처음 겪어본 이유 없는 선행이었다.
“이상한 사람이야···.”
게다가 끝이 보이지 않는 강함. 하나같이 의아했다. 대체 정체가 뭘까. 같은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은애는 연분홍빛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303호실··· 여기네.”
익숙한 목소리에 은애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등 뒤에는 어느새 은성이 서 있었다.
“오, 오빠.”
“동생한테 이거 먹여 봐.”
도착하자마자 은성이 무언가를 건넸다. 뜬금없었다.
“이게 뭐예요?”
“약이야.”
“약이요?”
“네 동생을 깨울 약.”
은애의 고개가 저절로 갸웃 숙여졌다. 긴 속눈썹 사이로 초록빛을 띠는 플라스크 병이 보이고 있었다.
저명한 의사도 깨어날 가망이 낮다고 단언한 동생이다. 그런데 동생을 깨울 수 있다고···?
‘하지만 오빠라면······.’
의문도 잠시.
은애는 그간 은성의 행보를 알고 있었다. 플라스크 병을 받아 든 은애는 망설임 없이 동생의 입가에 가져다 부었다.
주르륵―.
이윽고 플라스크가 텅텅 비자 동생, 박은호의 목젖이 꿈틀거렸다. 이럴 수가. 은애의 두 눈이 한계까지 치켜떠졌다.
“어, 어어···!?”
놀라운 일이었다. 10년간 식물처럼 지내던 동생 아닌가. 헌데 약을 먹인지 10초도 채 지나지 않아서 벌써 효과가 있다고?
‘맙소사!’
기적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박은호의 눈꺼풀이 서서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은호의 두 눈이 밝게 뜨였다.
“뭐야, 으윽···.”
깨어난 은호가 겨우 입술을 뗐다. 갑자기 정신이 들어 적응이 안 되는 것이다. 놀란 은애는 울면서 동생을 와락 안았다.
“은호야!”
“어···? 누나, 뭐야?”
훈훈한 광경이었다. 지켜보던 은성도 가족을 떠올렸다.
‘매직 아이템이 팔리고 나면 나도 그때 부모님을 봬야겠지.’
드르륵! 드르륵!
그때 때마침 진동으로 바꿔놨던 휴대폰이 울렸다.
설마 경매 사이트에 올린 매직아이템이 벌써 낙찰된 것일까.
하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경매마감에 최소 1주일이 걸린다고 했으니까.’
그래도 혹시나 몰라 은성은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러자 조금 거슬리는 문자가 보였다.
-문자를 왜 자꾸 씹나. 문자를 봤으면 답장이라도 해야할 거 아냐. 이 정신머리 없는 새끼야. : 오후 5시 11분.
-은성씨. 수원은 저희 손바닥이나 다름없습니다. 본교를 거치지 않고서 수원에서 던전이나 제대로 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지금 은성씨 주소도 다 알아냈고······ : 오후 4시 41분.
-지금이라도 본교에 가입하신다면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본교에서는 후기지수 양성에 최선을 다하고 있고······. 하지만 정당한 명분도 없이 가입을 거절할 시에는 본교에도 척살령이라는 말이······. : 오후 4시 24분.
“음···.”
가만 보니 최근 발신이력의 발신처가 모두 같았다.
천마신교라는 길드에서 온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