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 * *
탕!
“아니, 이번에도 길드원 영입에 실패했다는 게 말이 돼?”
수원시 천마신교 길드건물.
한 중년인이 주먹으로 책상을 쾅 두들기며 고함을 쳤다.
그의 앞에는 인사계통 담당자인 다른 중년인이 넙죽 엎드려 있었다.
“교주님. 그것이··· 요즘 젊은이들은 무협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어서···. 저희 길드 같이 성격이 확고한 길드는···.”
또, 또 그 소리다. 교주는 묵살하고 대번에 소리쳤다.
“너 지금까지 누구 돈으로 가족들 먹여 살렸나. 그런 뻔뻔한 소리가 입에서 잘도 나와?”
“죄송합니다.”
“됐고! 이틀 전에 그 새끼는 어떻게 됐어? 내 눈깔에 딱 꽂힌 새끼.”
“아, 그 사람은··· 애들을 시켜서 연락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만. 답장도 없습니다.”
천마신교. 줄여서 마교.
세상이 게임처럼 바뀐 후 항간에는 수많은 마교가 생겨났다.
마교(馬交), 마교(嬤較), 마교(劘嚙), 마교(摩橋)··· 등등.
화산파나 소림사, 개방, 녹림 등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이 게임처럼 변하자 사람들은 굳이 게임에서 자아를 표출하지 않았다. 현실이 게임인데 왜 굳이 게임에서 애를 쓴단 말인가.
수용소를 탈출한 범죄자처럼 몇몇 이들은 현실에서 게임의 컨셉을 즐겼고 나름의 방식대로 변화된 현실을 즐겼다.
특히 그 중에서 중중 컨셉러들은 자아의 표출 정도가 지나쳤다. 지역마다 생긴 수십 개의 천마신교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특히 수원시에 있는 천마신교는······.
꼰대 기질이 심했다.
“그래서 돼? 안 돼?”
황금색 용포를 입고 있는 교주 김무정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다그쳤다. 검은 수염이 길게 명치까지 내려가 있었다.
“저··· 영입이 좀 힘들 것 같습니다.”
인사를 책임지는 강태상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뭐?”
“들으신 대로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아예 무협을······ 커헉!”
뒷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김무정의 발이 강태상의 면상을 후려쳤다.
“새끼야. 안 되면 되게 하라! 몰라? 너 군대 안 다녀왔어? 안 되면 되는 방법을 말하란 말이야!”
“아으윽···.”
항상 이런 식이다.
요즘 같은 시대엔 나이가 무기가 아니라, 레벨이 무기이자 권력이다.
교주 김무정은 강했다.
터진 입술을 움켜쥐고 강태상은 다시 말했다.
“교주님··· 하지만 주은성이라는 그 사람···, 헌터고시 점수만 봐도 아시겠지만 저희 같은 문파에 들어올 사람이 아닙니다. 수석에 점수도 높은 걸 보니 재능이 있는 친군데 뭐가 아쉬워서 저희 문파에 오겠습니까. 이런 무협 컨셉의 길드는 젊은이들이 극도로 혐오하는 경향이 심해서···.”
“알았으니까. 일단 데려오라고!”
강태상은 혀를 내둘렀다.
교주의 방식은 뻔했다.
데려온 다음 반 협박, 반 강제로 가입계약서에 서명시킬 생각이겠지.
현대판 염전노예나 다를 바 없다.
“요즘 시대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대격변 초기 때처럼 사람 막 납치하고, 두들겨 패서 협박하고 그런 거 통하지도 않고 해서도 안 됩니다. 옛날에는 인류를 위해서라는 면죄부가 먹혔지만 요즘은 협박도 간당간당한······ 크억!”
또 발이 날아왔다.
“마! 이곳 수원시 경찰청장이 내 불알친구다. 웬만해선 눈감아주니까 그런 건 문제없다고! 몇 번 말해야 알아듣겠나!”
교주란 놈은 참 뻔뻔하다.
수원시 지역치안의 책임과 관련된 환영회에서 우연히 같은 자리에서 같이 식사를 했을 뿐인데 경찰청장과 불알친구가 돼버렸다. 그 자리에는 김무정을 제외하고도 수많은 수원지역의 길드마스터들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우리 같은 헌터가 세상을 구했는데 그 누가 뭐라 하겠나, 생각을 해봐라. 뭐라 하는 놈 한 명도 없어.”
강태상은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구겼다.
앞에서는 그렇지, 뒤에서는 욕 오질나게 먹을 거다.
요즘만 해도 당장 헌터고시의 조작문제로 소란스럽지 않은가.
‘몸을 사려야할 시기인데···.’
그다음은 이곳 헌터들이 속한 길드다.
지금은 잠잠하더라도 바람 앞의 등불이다.
“아이고, 답답해! 네 새끼 일 하는 거 보면 내가 화병 나서 뒤지겄다. 나이가 들수록 왜 이렇게 쫌스러워지냐. 오늘 당장 내 눈앞에 그 새끼 데려와!”
김무정이 고릴라처럼 제 가슴을 퍽퍽 두들기며 소리쳤다.
일어선 강태상은 몸을 돌린 채 눈을 질끈 감았다.
괜히 화만 돋게 만들었다.
불타는 기름에 어중간한 물을 끼얹었으니 오히려 더 지랄발광인거다.
‘원래 저런 사람인 건지, 자리가 사람의 성격을 버리는 건지.’
교주의 방에서 나온 강태상은 그리웠던 때를 회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현실이 게임처럼 변한 이후로 참 재밌었다.
불과 몇 해 전만해도 교주와 함께 사선을 넘나들며 목숨을 걸고 싸웠다. 위험했지만 그만큼 스릴이 있었다.
‘예전에는 문파에 가입하겠다는 신규헌터들도 많았던 것 같은데.’
하지만 요즘에는 없다.
아공간의 등장으로 인한 유통의 간소화.
레벨과 게임시스템으로 인한 개개인의 능력 가시화.
장비 아이템과 각종 스킬로 인한 개인의 역량 증가.
대격변이 일어나고 10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사회는 놀라울 만큼 빠르게 변했다.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듯이, 한번 폭삭 망했더니 성장속도가 장난 아니다.
눈만 감아도 훅훅 지나간다. 1년이면 강산만 바뀌는 게 아니라 세상 온천지가 바뀐다.
요즘 같은 시대에 무협 컨셉의 문파는 과거의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 덧붙여 손에 땀을 쥐는 전투마저도.
‘후우.’
가슴을 쓸어내리고 강태상은 수련관으로 갔다.
그래도 교주에게 더 얻어터질 순 없으니 시킨 일은 해야 했다.
“암영단!”
"예!"
검은 무복을 입은 사내 여럿이 모였다.
“교주님께서 그 사람 오늘까지 데려오라고 하신다. 여기 그 사람 주소다.”
당연히 이런 일은 자신이 나서지 않는다.
천마신교 인사부 직속의 가입대응 팀, 암영단.
아직은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는 애들이 있었다.
* * *
타닥! 타다닥!
은성의 소유가 된 길드사무실.
컴퓨터로 천마신교의 정보를 검색하던 은성이 손을 거둬들이고 혀를 찼다.
‘루키영입에 협박을 서슴지 않고 전화, 메시지 테러는 물론 집까지 찾아온다고···?’
골 때린다.
이건 뭐,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도 일자무식한 놈들인 게 훤히 파악됐다.
[수원시에서 헌터고시 겨우 합격했더니 길드 가입하라고 막 협박문자가 오던데 ‘천마신교’인가? 완전 미친놈들임. 일주일동안 전화오고 메시지 오고 지랄 쩔음. - 익명]
└ [ㅇㅈ ㅆㅇㅈ 수원에서 시험 보면 조심해야함. 나도 당해서 귀찮은 일 겪음. 다른 지역은 안 그런데 수원에 있는 천마신교만 유독 이상함. 그래도 고향집까지는 안 찾아와서 다행. - 익명]
└ [길마가 돈이 많아서 신규 회원 데려올 때마다 돈 봉투 뿌려서 그런 거 아닐까. 분위기 안 좋은 대부분의 길드는 다단계 아니면 사이비 종교라는 말도 있던데. - 익명]
제대로 똥 밟았다.
아니, 이건 거의 설사다.
헌협에서 은성의 정보를 알아냈다면 시험점수를 모르진 않을 텐데.
머리에 구멍이 뚫린 걸까. 아니면 그만큼 자신 있다는 걸까.
‘지구에 오고부터 인생의 컨텐츠가 끊이질 않는구나.’
은성은 입맛을 다셨다. 자신은 얌전히 목적대로 살고 싶은데 세상이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수고 없이 자살을 하고 싶다는 자살 예정자들이 이다지도 많다니. 사회가 다른 의미로 위험했다.
드르륵!
또 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확인하니 이번에도 천마신교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밤잠도 없는 놈들이다.
-너 새끼. 일부러 전화 안 받고 문자 쌩까는 거 알고 있다. 지금 당장에 찾아가서······ : 오후 10시 13분.
손가락이 길다.
은성이 짧게 답장을 했다.
-길드사무실에 있다. 찾아와. : 오후 10시 14분.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 사람간의 문제는 물 흐르듯이 놔두면 물고문 하듯이 압박해온다. 그러니 그냥 빨리 처리하는 게 서로에게 좋다.
‘웃긴 새끼들.’
은성은 시선을 내리깔고 관심을 돌렸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템 판매였다.
어느새 통장 잔고는 1억 원이 훌쩍 넘어섰다.
하지만 더 벌어야한다. 돈이 돈을 낳을 수 있도록.
타다닥! 타닥!
경매 사이트에 로그인하자 올려놓은 매직아이템들의 경매진행이 보였다.
[특수한 자의 흰 티]
[특수한 자의 면 바지]
[특수한 자의 신발]
··· 현재 입찰 진행 중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
‘이것들을 모두 팔고나면 최소 수십 억쯤 벌리겠지.’
매직아이템이라도 모든 능력치 10이다.
일반 판매처에서는 절대 볼 수 없고 상류층들이 이용하는 고급 경매장에서나 겨우 있을까 말까한 수준의 아이템.
은성은 그간 아이템을 눈으로 훑어보며 시세파악에 힘썼다. 변수가 꽤 있지만 눈대중으로 시세를 대강 예측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다른 아이템들의 판매에도 문제가 없었다.
[칼라브람의 왕 헤럴드의 대검]
[기사 카르넬의 십자 투구]
[칼라브람 왕의 보석]
상급 마석은 차돌파를 통해 진즉에 팔았고, 얻은 아이템들은 식별 스킬을 이용해 식별을 완료한 상태였다.
‘이것들도 비싸게 팔리겠고.’
턱을 쓰다듬었다. 역시 성실하게 돈을 버니 돈 벌기가 힘들다.
‘하지만 땀 흘리고 버는 돈이 낫지.’
은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수기 앞으로 갔다. 파티션 너머의 책상에서 커피믹스를 하나 꺼내 종이컵에 털어 넣고 물을 부었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빈 커피봉지로 종이컵을 휘휘 저으며 그는 텅 빈 길드사무실을 둘러보았다.
후루룩―.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머리를 되뇌었다.
‘돈이 많이 필요해. 1억, 2억으론 안 돼. 억을 넘어서 최소 조 단위 정도는 있어야해.’
돈이 움직이면 사람이 움직이고, 사람이 움직이면 물건이 움직인다.
그가 생각해둔 목적을 위해선 돈이 많을수록 좋았다.
아르카디아로 돌아가서 신에게 엿 먹이는 것.
와중에 지구를 구한다는 목적은 이 행위의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혼자서 한계가 있다. 지극히 상대적인 효율의 문제다. 혼자서 할 걸 여럿이 하면 쉽고, 동일한 목적을 두고 머릿수와 개개인의 노력은 반비례한다.
당장에 유니크 던전을 클리어 하는 데만도 이틀이나 걸렸지 않은가.
그래선 안 된다.
‘하지만 급할 필요는 없지. 뭐든지 순서대로.’
일단은 인간관계 트러블부터 해결하자.
은성이 시선을 돌려 창밖을 쳐다봤다.
수 명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사무실을 나와서 비탈길을 내려가자 검정색 무협복을 입은 사내들이 보였다. 누가 보면 사극이라도 찍는 줄 알겠다.
“네가 주은성이냐?”
“그래.”
대표로 누군가가 나섰다.
“이봐. 좋은 말로 할 때 순순히 본교에··· 끄억!”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사내가 은성의 주먹에 맞고 수 미터나 나가떨어졌다.
“어, 어어··· 뭐야?”
“암영진을 펼쳐라!”
이 꼴통 새끼들. 제대로 컨셉 잡았네.
사내들이 은성을 포위했다.
‘하, 골 때리네.’
생각과는 달리 낯 위로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이제 땀 흘리고 돈을 벌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