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개개인의 나약함을 머릿수로 메우는 팀인가.’
암영진이라니, 다시 곱씹어도 웃겼다.
주변을 살피자 방망이를 들고 있는 무림인들 뒤로 야트막한 산과 비탈길이 보였다.
언더그라운드 인근답게 외딴 산기슭.
CCTV도 없고 차량의 블랙박스도 없다.
저 멀리 녀석들이 타고 온 검정색 승합차가 있긴 하지만 거리가 꽤 있다.
‘그렇다면 뭐 손속을 아낄 필요는 없겠네.’
잘 됐다.
손을 돌리며 풀고 있는데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외쳤다.
“우리 암영단이 암영진을 펼친 이상 몸 성히 갈 생각을 버리는 게 좋을 거다! 감히 대 천마신교의 성의를 묵살하고 연락을 무시한 죄. 게다가······.”
메시지도 길더니 혓바닥도 길다.
‘미친놈들 새벽 3시에도 문자랑 전화로 테러질을 해놓더니···.’
무음으로 해놨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휴대폰이 남아나지 않았을 거다.
그보다 맨 처음 대표로 나섰던 놈이 우두머리인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나.
과연 솔선수범하는 리더는 드물다. 더럽고 귀찮은 일일수록 똘마니들 몫이지.
팟.
은성은 그대로 뛰어올라 우두머리에게 접근했다. 머리를 쥐어박으면 몸은 알아서 고꾸라진다. 우두머리가 먼저다.
둘러싼 무림인들은 미처 막지도 못할 빠른 속도였다.
“하지만 본교의 규율은 자비로우니 지금이라도······ 어, 어억···?”
화들짝 놀란 단장 김종찬이 다급히 두 팔로 얼굴을 감쌌다. 은성의 주먹이 직격으로 두 팔을 내려찍었다.
뻐억! 뿌드드득!
“끄아아아악!”
뼈 부러지는 소리가 기괴했다. 김종찬의 몸이 버티지 못하고 뒤로 넘어져 땅바닥을 굴렀다.
“으갸아아아악! 내 팔! 내 파아알··· !”
몰골은 더 처참했다. 두 팔이 팔꿈치 밑으로부터 완전히 으스러져 덜렁거리고 있었다. 피부 아래에서부터 뼈가 뾰족뾰족 튀어나와 내부가 산산이 부서졌음이 짐작됐다.
“아, 흥분하면 힘 조절이 안 돼서.”
은성이 지나가듯한 어조로 나직하게 말했다. 마치 길가의 빈 깡통을 밟은 것 마냥 너무도 스스럼없는 말투. 이미 그에게 천마신교의 족속들은 같은 인간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미, 미친 이 괴력은 대체···!’
김종찬은 본능적으로 몸이 덜덜덜 떨렸다.
그 누가 사람을 이렇게 무작정 팰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단 일격에 자신의 팔이 으스러진 건 또 무엇이고!
“자, 잠깐······으갹!”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은성의 발이 김종찬의 턱을 후려쳤다. 핏줄기가 튀고 강냉이 수 개가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을 날았다.
“으, 으어어억··· 커헉, 커허어억.”
갈대처럼 흔들리는 두 팔 사이로 피를 한 움큼 토했다. 그간 조폭행세를 하며 협박질을 일삼고 남을 두들겨 팰 줄은 알았지만 자신이 그 꼴이 날 줄은 몰랐다.
인과응보.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떠올랐다.
‘아, 아, 안 돼···! 저 눈빛은 진짜다. 잘못하면 죽는다!’
딱 두 대를 맞았을 뿐인데 결론이 나왔다.
눈앞의 사내는 자신보다 훨씬 강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자신이 쥐라면 상대는 호랑이다. 차이가 너무 아득했다.
폭력의 잣대가 부러지자 비로소 그는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
“자, 잠까··· 커억! 마, 마로··· 으갹!”
하지만 상대는 말을 꺼낼 틈을 주지 않았다.
무작정 주먹과 발이 날아왔다.
“혀, 형님!”
“형님을 놔줘라! 이 사이코 새끼야!”
뒤에서 다른 무림인들의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은성은 내심 놀랐다.
‘호오, 의리가 제법···.’
예상 밖이었다.
이 꼴을 보고도 덤벼들 정도면 녀석들의 관계가 제법 두텁다는 것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에누리해줄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은성은 아르카디아에서 별에 별 꼴은 다 겪어봤다. 그래서인지 이상하리만치 솜방망이가 없었다. 그곳에선 강한 자가 법이었으니까.
기만과 속임수가 가득한 세상이었다. 그래서 적으로 규정되면 인정사정을 두지 않았다. 한 번 이빨을 꺼낸 놈은 나중에 반드시 다시 배신을 한다. 그러니 자비를 베풀기보다 힘을 보여주는 게 먼저다. 착한 놈은 배신당해도 무서운 놈은 배신당하지 않으니까. 경험에서 터득한 진리였다.
그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진법을 펼쳐라! 암영진 제 1수! 매타작!”
컨셉질 참, 이름도 저렴하다. 매타작이 뭐냐.
사내들이 대열을 구축한 채 은성에게 쇄도해왔다.
사방에서 몽둥이가 날아왔다.
“죽어라!”
선두의 사내가 방망이를 수직으로 내리꽂고 있었다.
뻐억!
“갸아아악!”
은성의 정강이가 그의 허벅지를 스쳤다. 로우킥. 사내의 발이 무릎에서부터 180도로 완전히 꺾였다. 그는 볼품없이 고꾸라졌다.
‘다음.’
이어서 뒤에 있는 다른 놈의 몸을 주먹으로 때리자 뿌드득!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갈비뼈가 으스러진 것이다.
“키, 키이익, 쿠웍···.”
쓰러진 사내가 음식물을 게워냈다. 역한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음··· 땀이 슬슬 나기 시작하는데.’
시선을 돌린 은성이 주변을 살폈다.
남은 인원은 네 명. 빨리 끝낸다.
“이 새끼가!”
“패버려! 녀석은 혼자잖아!”
“너, 너, 너부터 나가!”
아하, 겁을 상실한 건 머릿수를 믿고 있던 거였나.
저쪽에서 안 오면 이쪽에서 가면 된다.
은성은 주먹을 고쳐 쥐고 가장 가까운 놈에게 돌진했다. 몽둥이를 들고 주저하는 녀석이 보였다. 근접하자마자 일직선으로 곧게 주먹을 내리꽂았다.
뻐억!
“갸아아악!”
처절한 절규소리.
‘이제 세 명.’
쉬지 않고 단숨에 달려가 다른 놈을 발로 짓이기고 옆에 놈은 주먹으로 부쉈다. 곳곳에서 뿌드득! 뼈 부서지는 소리가 터졌다. 그리고 마지막 놈은 어퍼컷. 입가에서 터져 나온 강냉이가 공중에서 춤을 췄다.
불과 수십 초였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새 전원이 반 불구가 된 상태로 여린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이제 좀 들을 태도가 됐네.”
은성이 손을 탈탈 털며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괴, 괴물이다···. 인간이 아니야.’
누워있던 김종찬은 기가 찼다.
설마 소문으로만 듣던 에픽 등급의 인간형 보스 몬스터가 아닐까.
순간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천마신교 인사부의 암영단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레벨 200에서 300사이의 헌터들.
게다가 입고 있는 장비들은 또 어떠한가.
레어 급 몽둥이와 갖가지 장신구들을 착용한 상태다.
방어구의 경우만 가벼운 무림복의 차림새지만 지금의 이 꼴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때 은성이 소리쳤다.
“야, 거기 너, 이리와 봐!”
“어······ 예엡!”
눈이 마주친 게 죄일까.
김종찬이 벌떡 일어나 기어갔다. 잘 몰랐는데 한쪽 발도 삔 상태였다.
“암영단이라고 했나?”
“예, 예에.”
“천마신교 소속이고···.”
“예, 예에 마씁니다.”
이빨 없는 부러진 턱에서 바람 빠진 소리가 났다. 그럼에도 한 대 더 맞을까 고통을 가까스로 참으며 제대로 말했다.
“잘 들어라. 여기는 언더그라운드라서 뭣도 없어. CCTV도, 블랙박스도, 완전히 법의 테두리 밖이지. 던전이랑 얼핏 비슷해. 까짓 거 너네들 저기 내 소유의 사냥터에서 죽었다고 해도 상관없고 말이야.”
무슨 말을 하는 걸까. 김종찬의 목젖 뒤로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생존욕의 소리였다.
“하지만 시체 치우기도 귀찮고 오늘은 괴상하게도 내가 기분이 좋다. 그래서 목숨값만 받고 살려줄게.”
“어, 얼마나···.”
“한 명당 1억만 내놔라.”
억지였다. 하지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이 있었다.
결국 눈물을 삼키며 협상이 이행됐다. 거부해도 괜한 목숨만 날아간다. 죽이고 뺏든, 그냥 뺏든 은성의 기분차이 밖에 없으니까.
‘얼추 맞네.’
놈들이 소지하고 있는 현금을 비롯해 문파로부터 지급받은 아이템과 장신구들을 모두 모으자 얼추 두 당 1억쯤 됐다.
하지만 은성의 내면에 있는 분노의 저울은 아직 수평이 되기에 부족했다.
게다가 이런 일은 뿌리까지 싹 잘라내야 한다.
악인이란 썩은 생선과도 같다. 시각적으로도 불편하지만 후각적으로도 괴롭다. 날이 따뜻해져 해동이 되면 썩은 내가 더 진동한다. 그래서 가만히 놔둘 수 없었다. 쓰레기를 치우지 않으면 멀쩡한 곳도 쓰레기통이 돼버리니까.
“안내해.”
주변이 어둠에 먹힌 야심한 시각.
은성은 천마신교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