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의 귀환-17화 (17/127)

# 17

“저 밑에 있는 건물이 천마신교 건물이냐?”

“···예에.”

시선을 내리깔고 전경을 내려다봤다. 천마신교 건물은 수원시 외곽의 한산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철옹성 같군.’

교과서에서나 나올법한 거대한 한옥이었다.

5층 높이의 건물에 담장이 높고 내부로 진입할 때마다 담장이 추가로 존재했다. 담장 사이의 복도에는 순찰봉을 든 경비들이 하나씩 배치돼 있었다.

‘귀찮게 시간 끌 필요 없지.’

은성이 탐색스킬을 사용하자 건물 내부의 인원들이 식별됐다.

총 393명. 레벨은 대략 100에서 400사이.

피라미드식으로 인구가 분포돼 있었다. 건물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레벨이 높은 대신 인원이 급감했다.

‘가장 끝 층에 위치한 한 명이 길드마스터인가.’

이곳에서 가장 강한 녀석 한 명.

은성은 단숨에 파악했다.

“저, 저어··· 저어는 이만 가 봐도 되··· 까요?”

뒤에서 버티고 서 있던 김종찬이 바람 빠진 소리로 물었다.

“꺼져.”

“예, 예엡!”

헐레벌떡 사라진 김종찬을 뒤로하고 은성은 즉시 둔덕에서 뛰어올랐다. CCTV와 블랙박스를 피해 산길을 이용하던 참이었다.

탁.

건물의 옥상에 안착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옥상에는 경비가 단 한명도 없었다.

‘아니면 문주가 실력에 자신있나보지.’

스르륵!

주위를 둘러보고 열려있는 창문으로 건물 안에 진입했다. 불이 꺼진 복도는 쥐새끼 하나 없이 조용했다. 은성은 건물 내부를 훑었다.

‘저긴가.’

유독 높은 레벨이 식별됐다. 은성은 대번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책장이 열을 맞춰 서 있고 그 사이 황금색 용포를 입은 사내가 서 있었다.

“뭐, 뭐야···? 넌 누구냐?”

김무정이 놀라서 소리쳤다.

‘오, 이건···.’

은성도 다른 의미로 놀랐다.

탐색스킬 덕에 책장에 꽂힌 것들이 고스란히 파악되고 있었다.

전부 스킬 북. 그것도 대부분이 무공비급이었다.

‘혈라수부터 음양검법, 헌허십성검법, 삼절왕검··· 과연 문파라 이건가.’

심지어 내공심법도 있었다.

새끼들, 컨셉질 한 번 마음에 드네.

은성의 목젖 뒤로 커다란 탐욕이 넘어갔다.

“대체 누구길래 본좌의 허락도 없이 서실에 침입하는가.”

김무정이 근엄한 어조로 말했다. 말투에 실린 감정은 의문이었다. 은성의 기량이 도무지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두들기고.’

은성은 소모적인 질문을 묵살하고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돌진한 다음 그대로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뻐억!

“커, 커헉!”

김무정이 경악해서 두 눈을 부릅떴다. 명치가 너무 아파서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오, 그래도 몸빵이 좀 되네.”

과연 문주라 이건가. 은성이 이죽거렸다. 김무정은 한껏 치켜뜬 눈으로 복부를 움켜쥐었다.

‘우,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오랜 만에 맛보는 통각. 겨우 고개를 치켜든 김무정은 그제야 은성의 얼굴을 뜯어봤다. 그는 비로소 은성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새끼는 내가 눈독들인 녀석이다. 왜 이 녀석이 혼자서 여기에···?’

생각은 채 이어지지 못했다. 은성의 로우킥이 허리를 엄습하고 있었다.

뻐억!

“커, 커헉!”

내상을 입었는지 피와 침이 함께 터져 나왔다.

다짜고짜 사람을 두들기는 놈은 처음 봤다.

도대체···, 이게 말로만 듣던 묻지마 폭행이란 걸까.

때리는 이유라도 있어야할 것 아닌가.

“자, 잠··· 크악!”

김무정이 손을 들어 제지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한 주먹이 턱주가리로 되돌아왔다.

빠각!

“푸, 푸흐흡!”

입술이 다 터졌다. 참지 못한 김무정이 호신강기를 끌어 모았다. 더 이상 맞고만 있을 순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문주로서 체면이란 게 있다.

‘새파랗게 젊은 놈에게 이 무슨···!’

일순 몸 위로 기운이 끓어올랐다. 초록색 기류가 김무정의 몸을 휘감듯이 감쌌다. 은성은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 기운은···. 쓸데없는 걸 배웠군.’

김무정이 익힌 내공심법이 단숨에 파악됐다. 마력 즉, 내공은 익힌 심법의 종류에 따라 성질이 바뀐다. 내공의 색깔만 봐도 익힌 심법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초록색이면 마공이다.’

마공은 초반 내공배율이 다른 심법들보다 월등히 높은 대신 성취가 높을수록 수련자의 정신을 갉아먹는다. 마공을 익히니 성격이 점점 괴팍해져서 병신 짓을 일삼고 다니는 것이다.

‘그래서 마공을 수련할 땐 정신교육을 철저히 해야 하는데.’

은성은 주먹을 꽉 고쳐 쥐었다. 하지만 이 정도 성취면 이미 늦었다. 지금에서 물리치료를 좀 한다고 해서 인성이 나아질 리는 없다. 그렇다면 주제파악이라도 하게끔 만들어주자.

‘강권.’

결심한 은성이 무차별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김무정의 몸이 밀가루 반죽처럼 푹푹 패이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해머로 내려찍는 것 같았다.

퍽! 뻐억! 퍼걱! 퍼벅!

“어억, 끄아아아악!”

몸 안의 뼈와 장기가 산산이 부서지는 고통. 김무정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호신강기로 몸을 둘렀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뼈마디 하나하나가 다 아팠다.

‘커헉, 이 무슨··· 괴물이···!’

단순히 자신의 마음에 드는 뜨내기인줄 알았는데 이 정도로 강할 줄은 차마 몰랐다. 도대체가 말이 안 됐다. 유치원 입학식에 갑자기 어른 한 놈이 훅 입학한 꼴 아닌가.

부정입학이다! 이건 사기다!

“허어억, 허어어···.”

김무정의 낯 위로 눈물과 콧물, 핏물이 줄줄 새어나왔다. 온몸이 세차게 떨려왔다. 그는 더 버티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벌써부터 정신을 잃으면 안 되는데.”

눈이 뒤집힌 김무정을 보고 은성은 아공간에서 회생귀를 꺼냈다. 지난 번 포션을 제작하고 남은 몫이었다. 당연히 정제하지 않아 독성이 그대로 들어있었다.

“우, 우읍! 우우웁! 쿠억, 쿨럭!”

회생귀를 강제로 입에 넣고 삼키게 만들었다. 피를 한 움큼 토해낸 김무정이 캑캑거리며 정신을 차렸다.

은성은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너희들은 사람 잘못 건드렸어. 며칠 동안 씨발, 가입하라고 지랄지랄을 그렇게 해?”

“끄윽, 흐윽···.”

“부재중 전화 180건, 메시지 씨발 190통, 실화냐? 쓰레기 같은 짓거리를 벌이니까 나 같은 놈이 찾아오는 거 아냐.”

딱히 전화할 때가 많지는 않았지만 신경이 거슬렸다. 그도 그럴 게 천마신교로부터 온 메시지는 대부분이 협박과 욕설이었으니까.

“이봐.”

“끄윽···!”

은성이 김무정의 긴 수염을 잡아당기며 깔아봤다. 김무정이 차마 시선을 맞추지 못하고 눈알을 돌렸다.

‘역시 짐승은 몽둥이가 답이네.’

줘 패니까 긴 말없이 고분고분해졌다.

“후― 상태 좋네. 이봐, 문주님. 이제 대화 좀 나누죠.”

“후, 후읍, 후으읍···.”

태도는 마음에 드는데 어째 얼굴이 좀 파리했다.

“아, 회생귀가 목에 걸렸나?”

퍽!

“캐핵! 캑캑!”

은성이 머리를 발로차자 사람 머리 모양의 약초가 김무정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침에 범벅돼 반쯤 녹아내린 형체. 은성은 연신 기침을 하는 김무정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입을 열었다.

“이봐요, 문주님. 세상 좁아요. 개처럼 나대다간 언젠가 나 같은 사람한테 개처럼 두들겨 맞는다고요.”

“흐, 흐읍··· 예, 예에.”

김무정이 울음을 꾹 삼키고 겨우 말했다. 문득 세상이 바뀐 직후 헌터 일을 막 시작했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머더러를 만나서 목숨을 구걸하고 알몸이 된 채 겨우 살아남게 된 잿빛 추억이었다.

“거, 싹싹한 행동은 마음에 드네. 그럼 본론부터 꺼내겠습니다.”

“흐읍··· 예에?”

김무정의 두 눈이 왕방울 만하게 커졌다. 본론이라니.

“저도 위에 있던 경험이 있어서 체면이란 거 잘 압니다. 밑에 놈들 알아봤자 괜히 시끄럽고, 또 이런 일로 소란 일으켜 봤자 서로 좋을 일 없잖습니까.”

“마, 맞습니다.”

섬뜩한 은성의 목소리에 김무정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가까스로 맞장구를 쳤다.

“저희 선에서 뒤끝 없게 딱 끝냅시다. 제가 피해자니까 당연히 합의금은 제가 받고···.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떻게 생각하긴.

은성의 말에 김무정은 황당해서 입을 꾹 다물었다. 온몸이 세차게 떨려왔다. 눈앞의 놈은 진정 악마란 말인가.

“대답.”

은성이 머리 위로 팔을 훅 올렸다. 그것만으로도 김무정의 어깨가 지진이 난 것처럼 크게 들썩거렸다.

“아, 흐으읍··· 예, 물롭 입니다.”

세상이 지옥처럼 변하니 정말로 악마가 산다.

이런 억지가 세상천지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살아야했다. 돈이 아깝긴 하지만 죽을 순 없었다.

은성의 눈망울은 더없이 맑고 진지했다. 저건 진짜로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눈빛이었다.

“좋아요. 그럼 합의금은 제가 알아서 적당히 들고 가겠습니다.”

“···예?”

김무정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이거 칼만 안 들었지 완전 날강도 아닌가.

“불만이면 지금 말하세요.”

“아, 아, 아닙니다.”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말하는 순간 뒤질 것 같은데.

손사래를 치는 김무정을 뒤로한 채 은성은 몸을 일으켰다. 주변을 둘러보자 수많은 무공비급들이 눈에 담겼다.

“흐음, 일방적으로 테러를 당한 피해보상비 치고는 적은 느낌인데···.”

육체적 피해도 중요하지만 정신적 피해도 중요했다. 몸과 정신은 빼놓을 수 없는 거니까. 물론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다.

스윽!

은성이 아공간에서 배낭을 꺼냈다. 지난 번 던전을 공략할 때 넣어둔 커다란 배낭이 모습을 드러냈다.

‘쓸모없는 건 모두 빼고.’

잡동사니를 바리바리 싸둔 배낭인 만큼 용량이 꽤 됐다. 눌러서 담는다면 꽤 많은 것들을 들고 갈 수 있을 거다.

은성은 쇼핑을 하는 기분으로 무공비급들을 선별해서 배낭에 넣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비싼 것들이었다.

‘음?’

그러던 중 시선을 잡아끄는 게 있었다.

“저건 뭡니까?”

저 멀리 구석 벽면에 딱 붙어 있는 금고.

열어달라고 애원하는 듯했다.

“아··· 저건··· 별 거 아닌···.”

김무정이 다급히 말하다가 뒷말을 흐렸다.

은성이 탐색스킬을 사용했지만 내용물이 보이지 않았다.

특수 제작된 금고. 검은 냄새가 물씬 풍겼다.

“열어봐요.”

“아··· 이건 제가 열쇠가 없어서···.”

새끼, 또 쳐 맞을 짓을 하네.

하지만 더 두들겼다간 진짜로 죽을지 몰랐다.

은성은 다소 수고스럽지만 힘을 쓰기로 했다.

콰직!

“······허.”

일순 김무정의 낯 위로 황당함이 스쳤다. 웬만한 헌터들도 부수지 못하는 만년한철로 만든 금고라더니. 무슨 엿가락처럼 부서지지 않는가.

‘음, 조금 얼얼하네.’

은성은 가볍게 손목을 풀고 금고 안을 확인했다.

5만원권 지폐다발 수십 개. 찬란하게 빛나는 금괴들.

내용물이 화려했다.

“이것들은 좋은 곳에 쓰겠습니다.”

내 인생 좋은 곳에.

“아, 아아···.”

김무정의 낯빛이 시시각각 새파랗게 질렸다.

그리고···.

‘무공 서적?’

무작정 배낭에 쓸어 담다보니 웬 스킬 북이 떡 하니 있었다.

“아, 그···! 그건 정말로 안 됩니다! 저희 본교의···!”

김무정이 격렬하게 반항했다.

놈의 반응을 보니 이 서적이 금고 안의 노른자였나 보다.

은성은 김무정을 밀치고 서적을 꺼냈다.

순간 은성의 두 눈이 커졌다.

‘하, 설마 진짜로 천마신교였나.’

사용하지 않은 멀쩡한 무공 스킬 북.

서적의 정체는 바로 천마신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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