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와, 진짜 외제차가 좋긴 좋네.”
운전대에 앉아있는 은애가 핸들을 꽉 잡으며 감탄했다.
파르쉐 파나메라 MX.
시대가 발전해서 전기차를 뛰어넘어 마석으로 굴러가는 자동차였다. 연비효율은 물론, 승차감과 안전성까지 기존차량을 압도하는 차세대 자동차였다.
“그런데 오빠. 한 번에 그렇게 많은 돈을 써도 괜찮아요?”
은애가 뒷좌석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은성은 싱긋 웃으며 대꾸했다.
“괜찮아. 돈이야 또 벌면 되지.”
7억 4천만 원. 은성이 구매한 자동차의 가격이었다.
은성은 자동차를 구입할 당시 매장에서 일시불로 구매하고 보험까지 가입했다. 점원은 은성의 젊은 외모를 의식해 홀대하다가 일시불로 긁겠다고 하자 180도로 행동이 돌변했다. 그 누가 7억 4천만 원을 일시불로 결제하겠는가. 점원은 단숨에 은성의 뒷 배경을 두려워했다.
“면허 빨리 따셔야겠어요.”
“생각해보고. 어차피 금방 필요한 것도 아닌데.”
자동차는 운전과 소유가 별개의 개념이라 구매하는 것에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차를 타고 다닐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바쁘면 건물 사이로 뛰어다니는 게 더 빨라.’
그럼에도 굳이 차량을 구매한 것은 가족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자동차는 가장 보여주기 쉬운 계급장이니까.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에게 지금까지 잘 살고 있었다라는 걸 무난하게 증명하고 싶었다.
“근데 아까 전에 일시불로 결제 할 때 승인거부 뜨길래 좀 놀랐어요.”
“맞아. 직원 표정이 갑자기 싸하게 굳어서 얼마나 웃기던지.”
은애가 말하자 보조석의 은호가 거들었다. 은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체크카드에도 한도가 있을 줄이야.’
일시불로 결제를 할 당시에 조금의 트러블이 있었다.
은성은 체크카드에도 한도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카드를 긁고 결제승인이 거부되자마자 은행에서 전화가 와서 상담원이 안내했다.
결론적으로 문제는 금방 해결됐다. 일일 한도를 50억으로 늘려버렸으니까.
‘쉽게 번 돈이니 쉽게 나가는 걸까.’
고급경매장에 올려둔 아이템은 아직 판매되지 않았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돈은 모두 천마신교로부터 기부 받은 합의금이었다.
‘천마신공···.’
문득 한 가지 상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은성은 아공간에서 천마신공을 꺼냈다. 30억이 넘는 합의금보다 더 큰 이득이 바로 이 천마신공이었다. 은성은 천마신공을 강탈하자마자 익힐 결심을 했다.
‘진짜 밸런스 개판인 세상이야. 아무리 에픽 등급의 무공서적이라지만 이런 내공배율이라니.’
에픽 등급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이템을 뜻했다.
최고의 무공은 없고 최강의 무투가만 있다는 게 은성의 지론이었지만 천마신공은 정말 말도 안 되게 내공배율이 높았다.
병신 같은 습득 조건을 감안하고도 배울 가치가 충분했다.
[천마신공]
등급 – 에픽
효과 – 내공배율 300%
설명 – 천마신교의 교주가 만든 내공심법. 마력 능력치를 비약적으로 증가시켜 마력한도를 늘립니다.
습득조건 – 순수 마력 능력치 500이상.
‘순수 마력 능력치 500이상. 하지만 습득하자마자 내공배율이 3배로 늘어난다.’
마나 연공법 즉, 내공심법 없이 스킬을 사용하면 순수 마력능력치에서 마력이 소모된다.
하지만 내공심법을 배우면 마력이 뻥튀기가 된다.
은성의 순수 마력 능력치는 100.
체득한 내공심법의 내공배율이 300%라면 마력의 사용한도가 300으로 증가하는 것이다.
보통 정파의 내공심법들이 110%, 사파의 내공심법들이 130%,마교의 내공심법들이 150%인데 반해서 천마신공의 내공배율은 황당할 정도로 높았다. 물론 스킬레벨이 증가함에 따라 배율의 증가치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처음부터 300%라면 압도적인 수치다.
‘보통 정파가 심법의 레벨 당 1%, 사파가 0.8%, 마교가 0.5%니까···.’
내공심법의 레벨 당 0.5%씩만 증가해도 어마어마한 이득이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습득 조건에 순수 마력 능력치가 있다는 것.
순수 마력 능력치 500 이상.
1레벨부터 500레벨까지 모든 능력치를 마력에 투자하면 레벨500에서 비로소 익힐 수 있는 조건이었다. 생존과 담을 쌓은 자에게만 허락되는 병신 같은 조건이었다.
‘만렙의 근처에서 겨우 익힐 수 있을까, 말까한 스킬이야.’
각 능력치는 저마다 장점이 있다.
체력이 높으면 근육량이 증가해서 생명력과 행동력이 빨라진다.
감각이 높아지면 기감이 발달해서 불시의 공격과 위협을 쉽게 파악하고 피하기도 쉬워진다.
마력이 높으면 마력의 최대치가 증가함은 물론 마법공격력과 마법방어력이 증가한다.
의지는 모든 공격에 대한 내성과 저항, 회복력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무작정 마력만 올려서는 답이 없다.
한 우물만 파서는 무심코 맞은 돌에 개구리처럼 죽기 딱 좋으니까.
천마신공을 익히기 위해선 타고난 마력이 엄청나게 높든지, 장비와 아이템의 도움을 받아 마력만 집중할 환경이 되든지 둘 중 하나다. 그렇게 하면서 레벨을 무려 500까지 올려야 한다. 누구든 쉽게 배울 수 없는 조건이다.
‘나도 레벨이 초기화 되지 않았으면 익힐 생각도 못 했을 거야.’
은성도 윤회 특전을 받지 못했다면 결코 익힐 수 없었다.
이런 얼토당토하지 않은 조건 탓에 비급을 가지고 있던 천마신교의 문주조차 습득하지 못하고 이상한 마공을 대신 배운 거겠지.
‘어차피 나중에서 천마신공을 새로 익혀도 더 이득이니까.’
내공심법은 다른 스킬들과 달리 중복이 되지 않는다. 새로운 심법을 익히면 기존에 익히던 심법의 성취가 모조리 사라진다.
은성은 자신의 상태 창을 확인했다.
현재 그의 레벨은 230.
미 분배 능력치는 229를 가지고 있고 순수 마력 능력치는 100이다. 앞으로 171업을 더 해야 천마신공을 익힐 수 있다.
‘유니크 던전 좀 클리어 하면 금방이야.’
어쩌면 마력이 부족해서 사용하지 못했던 스킬들 혹은, 아이템들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은성은 막연했던 미래에 한 발자국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 * *
덜컹!
자동차가 큰 대로로 들어설 무렵이었다.
“장난 아니네. 와, 이거 완전 땅에 찰싹 붙어서 미끄러지는 느낌이야. 폭신폭신해.”
은애가 과속방지턱을 넘자마자 호들갑을 떨었다. 보조석의 은호는 조금 걱정스러운 눈치였다.
“시대가 정말 많이 바뀌었구나. 우리 누나가 운전을 다 하다니.”
“야. 내가 이래봬도 면허 딴 지 꽤 됐어. 장롱면허지만.”
“윽··· 잘못하다가 사고라도 나는 거 아냐?”
“걱정 마셔. 몬스터가 튀어나오지 않는 한 문제없다 이거야.”
뒷좌석의 은성은 두 남매를 지켜보며 추억을 회상했다. 그에게도 어린 여동생이 있었다. 지금은 다 컸겠지만.
‘나도 저렇게 가족들을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을까.’
빈손으로 갈 수 없어서 구매한 1++등급의 한우와 갖가지 먹거리들이 눈에 담겼다. 앞좌석과 무릎 사이의 서류가방에는 수억 원의 현금다발이 들어있었다.
은성은 아무런 의미도 없이 창문 밖을 내다봤다.
하늘은 푸르고 날씨는 좋았다. 오랜만에 햇빛이 쨍쨍해서 별로 춥지도 않은 겨울이었다.
‘아버지는··· 많이 변했겠지?’
이세계로 끌려가서 고생을 할 당시에도 은성은 가족들의 생각을 그다지 하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은성은 가난한 집이 싫었고 이해를 할 수 없는 아버지가 싫었다. 은성의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다. 멍청할 정도로 착해서 여기저기 다 퍼주고 삼촌들, 고모들, 심지어 제 3국의 어린이들까지 다 도와줬다. 가장 문제가 많은 작은 삼촌에겐 보증까지 서줬다. 그 보증이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씨발.’
옛 기억이 떠오르니 또 억한 감정이 뇌리를 스쳤다.
잘 살던 은성의 집이 무너지자 매일 같이 손을 벌리던 친척들은 갑자기 연락을 뚝 끊었다.
단 돈 만 원이 없어서 버려진 신발을 주워 신고 헌옷 수거함에서 이불을 훔쳐 덮던 옛일을 은성은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수년이 지났어도 그 당시의 일들은 도저히 잊혀지지가 않았다.
중학교를 입학할 당시엔 교복을 살 돈이 없어 옆집 아줌마의 아들로부터 교복을 물려받았다. 소매와 목 부분이 다 해지고 낡은 데다 색까지 바래져 있어 헌 옷인 티가 너무도 확연했다.
은성은 낡은 교복 때문에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다. 정부의 복지사업으로 받은 컴퓨터마저 없었다면 그 당시의 시기를 버티기가 힘들었을 거다. 컴퓨터 게임은 답답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도구였으니까.
‘결과적으로 그 모든 것들 때문에 이세계를 다녀오게 됐지만···.’
스스로도 알 수 없었던 과거의 원망과 증오는 많이 희석됐다. 지금의 결과가 좋으니 과거도 좋게 덧칠된 것이다. 그러니 가족들을 만날 결심이 섰다.
지금에선 과거의 일들이 아무렇지 않았으니까.
결국 살아가는 것은 과거가 아닌 현재다.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미래의 것들이다. 그래서 과거의 상처는 흔적이 됐다. 마음속에 딱지가 내려앉았지만 별 것도 아니었다. 누구나 커 가면서 생채기 하나쯤은 있지 않는가.
‘······.’
은성은 멀거니 창밖의 풍경에 집중했다.
놀라울 정도로 변하지 않은 세계.
수년간의 공백이 있었지만 소환됐을 당시와 변한 게 거의 없었다. 은성은 어째서인지 자신의 가족들도 변한 게 거의 없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끼이익!
붉은 신호에 차가 멈춰 섰다.
“어? 뭐야?”
운전대를 꽉 잡은 은애가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인상을 구겼다. 갑자기 주변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끼이익! 부르릉! 부아앙!
뒷좌석에서 창밖을 바라보던 은성도 기묘한 광경을 식별했다.
창 너머의 다른 차선에서부터 자동차들이 급격히 유턴을 하고 있었다. 한 두 대가 아니었다. 열차처럼 수십 대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유턴을 하고 있었다.
의아한 은성이 자연스레 앞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뭐야? 무슨 일 있어?”
“어, 이런···. 근처에서 레이드형 던전이 깨졌나 봐요.”
은애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던전이 깨졌다고? 은성이 즉시 반문했다.
“무슨 말이야? 던전이 깨졌다니?”
“레이드형 던전은 공략 할 시기를 놓치면 차폐막을 뚫고 몬스터가 튀어나오거든요. 던전의 일부 몬스터들이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어서···. 그런데 이 근처에도 그런 던전이 있었나 봐요.”
은애는 고개를 숙이면서 내비게이션을 조작했다. 다른 방향으로 가는 길을 알아보는 것이다.
“이상하네. 차폐막이 깨졌을 텐데, 헌터들도 안 보이고···. 돌아가려면 1시간 정도 더 걸릴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당연히 안 괜찮다. 은성은 자신의 옷차림을 내려다봤다.
‘음···.’
모처럼 맞춘 정장이다. 몬스터의 체액으로 더럽히기 싫었다. 값이 문제가 아니라 시간이 문제였다. 은성은 되도록 빨리 집에 도착하고 싶었다.
‘옷을 버리기도 싫고, 차를 굳이 돌려서 가는 것도 내키지 않은데.’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앞쪽을 쳐다보자 전경이 제대로 식별됐다. 저 멀리 쓰러진 사람들과 도망치는 사람들이 보였다. 가장 끝에는 소동의 원인으로 파악되는 거대한 괴물이 서 있었다.
‘탐색.’
그다지 강한 녀석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주변의 사람들은 무차별적으로 학살을 당하고 있었다. 세상이 게임처럼 변했지만 민간인들과 헌터들 간의 레벨 간극 차이는 꽤 컸다. 정부에서 민간인들의 사냥터와 아이템구매 등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은성은 아공간을 뒤적거렸다. 천마신교로부터 기부 받은 무공비급들이 꽤 있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영향으로 남을 돕는 것엔 그다지 취미가 없었지만 최소한의 인류애는 가지고 있었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멀거니 지켜볼 만큼 그는 비정하지 않았다.
[탄지공]
등급 – 유니크
효과 – [기본 데미지] + [마력 소모 10% 당 데미지 가산]
소모 – 마력 10.
설명 – 무형의 마력을 원형으로 끌어 모아 적에게 날립니다. 마력을 많이 소모할수록 더 강한 타격이 가능합니다.
습득조건 – 순수 마력 능력치 100이상.
옷을 버리지 않고 최대한 빨리 적을 죽이는 것엔 원거리 스킬이 제격이다. 내공심법과 달리 무공은 아무리 많이 익혀도 중복이 허용된다. 은성은 즉시 탄지공을 익혔다.
‘마력 당 데미지가 더 올라가니까.’
내친 김에 분배하지 않은 미 분배 포인트 229도 모두 마력 능력치에 투자했다. 미지의 기운이 전신을 휘감았다.
“기다리고 있어봐. 금방 처리할게.”
“아, 네에.”
은애에게 일갈하고 은성은 차 밖으로 나왔다.
저 멀리서 건물을 부수는 괴물의 모습이 보였다.
‘한방에 죽이자.’
괜히 어설픈 공격을 했다간 고통의 몸부림으로 더 큰 피해를 만든다. 그러니 한 방에 죽이는 게 낫다.
스슷!
은성이 탄지공을 사용하자 손가락 끝에서 마력이 모이기 시작했다. 전신의 기운이 손끝에 압축되자 주변의 기류도 더 버티지 못하고 함께 일렁였다. 마치 작은 블랙홀이 생긴 듯했다. 어마어마한 기운이 손끝에서부터 느껴졌다. 은성은 충분히 마력이 모이자 그것을 그대로 괴물에게 발사했다.
파밧!
거센 반발력에 몸이 반발자국 뒤로 밀렸다.
새하얀 빛의 광선이 손끝에서부터 일직선으로 쏘아져 나갔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빛은 괴물의 머리를 정확히 관통하고 그대로 한참이나 더 나아갔다. 괴물은 머리에 구멍이 뚫린 채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하늘에 있는 구름까지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레벨은 1업을 했네.’
은성은 손목을 탈탈 털었다. 현재 레벨보다 낮은 레벨의 몬스터를 죽였으니 적은 경험치는 어쩔 수 없다. 종국에는 경험치를 아예 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직 그 정도 차이는 아닌 듯했다.
“우와, 저게 뭐야. 쩐다···!”
차 안에서 은성의 모습을 지켜보던 은호가 감탄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광경을 실제로 보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헌터는 모두 저런 거야? 저런 게 가능하다고?”
은호가 흥분해서 호들갑을 떨었다. 은애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냐, 저 오빠만 특별한 거야.”
은성이 대수롭지 않게 차에 타자 멈췄던 자동차가 다시 미끄러지듯 출발했다.
이제 앞길을 가로 막는 장애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