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의 귀환-20화 (20/127)

# 20

“차는 집 앞에 세워둘게요.”

“형님. 구매한 것들은 제가 들어드릴게요.”

“고마워.”

집이 가까워지자 심장의 두근거림이 커졌다.

행여나 걱정할 가족들을 생각해 입은 미리 맞춰 놨다. 은애와 은호는 유령회사의 직원이 되기를 자처했다. 은성으로부터 입은 은혜를 생각하면 그 정도의 수고는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10년 전보다는 낫구나.’

주소가 적힌 종이와 눈앞의 건물을 비교하면서 은성의 눈시울이 차츰 붉게 물들었다.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은 예전과 달리 지하 단칸방이 아니었다. 1층에는 작은 상점이 있고 2층은 주택으로 이루어진 주상복합형 건물이었다.

띵동!

주택의 대문 앞에서 은성이 초인종을 눌렀다. 낡은 버튼이 삐걱대자 흥겨운 벨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한참을 기다려도 응답이 없었다.

‘집에 아무도 없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수신음과 함께 잠이 덜 깬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

은성은 일순 숨이 턱 막혔다. 수년 만에 듣는 목소리였지만 목소리의 정체를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뭐야···. 누구세요?

초인종 저편의 목소리가 짜증 섞인 기색으로 또 다시 물어왔다.

은성은 목젖을 가다듬고 겨우 토해내듯이 대답했다.

“저예요, 엄마. 은성이에요. 주은성.”

-······.

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혹시 장난으로 여긴 걸까, 아니면 제대로 듣지 못한 걸까.

들썩이는 입으로 무언가를 더 말하려는 찰나, 대문 너머의 계단에서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익!

50대를 넘어섰지만 주름도 없는 고운 얼굴.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삼십대 후반으로 밖에 보지 않을 은성의 어머니 한혜리가 놀라서 소리치고 있었다.

“어, 어어어···!”

그녀의 동공에 대문 앞에 서 있는 아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이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자식의 모습이었지만 거실 한 켠을 자리하고 있는 가족사진에서 막 튀어나온 것 마냥 달라진 게 조금도 없었다.

“은성아!”

한혜리는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버선발로 계단을 내려왔다. 대문을 열고 은성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그녀는 벌컥 은성을 끌어안았다.

“아이고! 내 새끼! 어디서 뭘 하다가 이제 왔어!”

“엄마.”

“얼굴이 반쪽이 됐어! 너 죽은 줄 알고 엄마가 얼마나···, 얼마나······.”

그녀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은성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품에 안겼다.

서른 살을 문턱에 둔 나이.

아르카디아를 구하고 세계를 호령한 영웅이었지만 그런 은성도 어머니 앞에선 그저 작은 꼬마에 지나지 않았다. 물가에 내놓은 아기마냥 눈 밖에만 나도 한 없이 걱정이 되는 가녀린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수 년 간이나 감감무소식이었으니 그 걱정이 오죽할까.

“보고 싶었어요.”

은성은 맺혔던 가슴이 비로소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 * *

“맙소사! 아들!”

“잘 지내셨어요. 아버지.”

“오빠! 살아있었어!”

“아랑이는 많이 컸구나.”

은성의 가족들도 난리가 났다. 실종되었던 은성이 사지 멀쩡히 돌아온 것도 모자라 엄청나게 성공해서 돌아왔다.

부모로서, 가족으로서 이보다 기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어··· 저희는 은성이 형님과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윽!”

“아하하하, 주은성 사장님 밑에서 일하는 직장 부하예요. 안녕하세요.”

버벅거리는 은호를 대신해 은애가 팔꿈치로 툭 치며 인사를 대신했다.

“우리 은성이는 잘 지내고 있는 건가요?”

“아하하하, 넵! 주은성 사장님은 성격도 시원시원 좋으시고, 리더십도 있으시고, 항상 모든 일에 솔선수범을 해서 부하직원들의 귀감이 되며···.”

눈치 빠른 은애가 은성의 배경을 조작해서 가족들에게 전달하는 사이, 은성은 감회에 젖은 눈으로 집 안을 둘러보았다.

‘그래도 잘 살고 계셨구나.’

어렸을 적 뇌리에 박힌 가난의 냄새는 더 이상 맡아지지 않았다.

거실은 넓었고 방도 세 칸에 부엌과 화장실이 분리돼 있었다.

은성의 기억 속 옛 집은 부엌과 화장실이 현관과 합쳐져 있는 모양새였다. 집만 봐도 가족들이 얼마나 바쁘게 살아왔을지 대략적으로 예측이 됐다.

“우와아··· 진짜 안 믿긴다. 오빠 옛날이랑 똑같아.”

은성의 여동생 주아랑이 베시시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너도 똑같아. 쬐끄매 가지고.”

“아씨. 나 많이 컸거든.”

한 살 터울의 여동생. 어렸을 적 얼굴이 고스란히 살아있었다. 그래서인지 대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다. 틀림없이 오랜 만에 보는 얼굴이 분명한데도 매일 봐왔던 것처럼 정겨운 기분이 들었다.

“은성아. 우리 아들.”

가장 껄끄러웠던 존재인 아버지, 주명철은 세월의 무게를 혼자서만 직격으로 맞은 듯했다.

‘아버지.’

이마와 눈가엔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턱밑의 흰 수염은 덕지덕지 규칙 없이 붙어 있었다. 탤런트 하나빈을 닮은 잘생긴 외모는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한 번 안아보자. 내 아들.”

“아버지.”

은성은 가슴이 미어졌다. 두 팔에서 느껴지는 아버지의 몸이 너무도 가볍고 왜소했다. 그는 무엇 때문에 그간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었을까.

‘아냐, 나는 아버지를··· 가족들을 원망한 게 아니었어.’

은성은 가족들의 얼굴을 보자 마침내 스스로도 알 수 없었던 원망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의 가족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를 짓누르던 과거의 정체는 단순했다.

‘가난.’

그는 가난한 삶을 원망하고 있었다.

* * *

은성은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그간 못 다한 회포를 풀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뭘 하면서 지냈는지··· 등등.

은성은 적당히 에둘러 말했다. 거짓말을 하는 것엔 거리낌이 없었다.

“허허, 그래서 지금은 수원에 유통회사를 차려서 먹고 살고 있다고?”

“네. 아버지.”

은성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굳이 아르카디아에서의 일들과 헌터로 일한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차원을 넘나들었다는 얘기는 정신병자 인증을 받기 딱 좋은 얘기였고 헌터와 관련된 일은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기 싫었으니까. 그러니 사실대로 말할 필요는 없었다.

“우와, 업진살 살살 녹는다.”

“천천히 먹어. 누가 안 뺏어먹으니까.”

은성이 사온 한우를 날름 먹으며 주아랑이 감탄했다.

그 외에도 식탁은 다양한 음식들로 가득했다. 연어 회부터 초밥, 치킨, 피자, 깐쇼새우, 족발, 심지어 스테이크까지. 요즘은 시대가 좋아져서 마트에서 웬만한 음식들을 다 판다. 은성은 종류별로 모두 구매해왔다.

“그간 고생이 많았겠구나.”

“아니에요.”

아버지 주명철이 따라주는 술잔을 받으며 은성이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정말 고생이 많았다. 하지만 그런 고통을 굳이 부모님께 말할 필요는 없었다.

“와, 근데 나 진짜 오빠 처음 보고 깜짝 놀랐어. 옛날이랑 똑같잖아.”

“너도 마찬가지야.”

가족들은 술잔을 나누며 소소한 대화를 나눴다. 은애와 은호도 은성의 거짓말을 거들며 자리를 함께했다. 빈 술병이 하나, 둘··· 늘어날수록 대화는 점점 활기차졌다.

“그런데 집이 옛날보다 좋네요.”

소맥을 원샷하고 은성이 괜히 집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높은 의지 능력치 탓에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보드카를 10L 생수통 정도로 들이 부으면 겨우 취할 수 있을 듯했다.

“으허허, 이것도 전세야. 우리 집은 아니고.”

“전세요?”

“그래. 빚 있는 거 겨우 다 갚고, 힘들 게 얻은 집이지. 요즘은 안전지대 땅값이 비싸다보니 예전보다 집 사기가 힘들어. 여기도 안전보다는 돈을 생각해서 구한 집이고···.”

“이것도 다 아랑이 덕이야.”

술을 마시면 부쩍 말이 많아지는 주명철을 대신해 한혜리가 끼어들었다. 닭다리를 뜯어먹던 주아랑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멋쩍은 듯하면서도 할 말은 다 했다.

“내가 헌터거든.”

“헌터?”

“응. 작년에 합격해서 벌써 D급 헌터야.”

아랑이 가슴을 쭉 펴면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검은 반팔 티에 묻혀있던 거대한 가슴이 크게 출렁거렸다. 맞은편에서 한우를 굽던 은호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것도 아랑이가 해준 거야.”

“으허허, 맞아.”

명철과 혜리가 왼손의 검지를 쭉 펴보였다. 금색으로 빛나는 민무늬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자동방어가 새겨진 마법반지야. 혹시 모르니까.”

“내가 없는 동안 효녀노릇 톡톡히 하고 있었구나.”

“그냥, 뭐······ 그렇지.”

아랑은 은성의 진지한 칭찬에 금세 조용해졌다. 그녀는 칭찬에 대한 면역력이 부족했다.

그렇게 술자리는 한참동안 계속 됐다. 명철이 기분 좋게 취해서 완전히 드러눕자 그제야 끝났다.

“얘기들 더 나눠. 우리는 이만 들어가 볼게.”

어머니가 아버지를 모시고 큰방으로 사라졌다.

“어··· 저희는···.”

“아, 오빠. 저희도 자고 가야할 것 같은데···.”

술에 거나하게 취한 은호를 대신해 은애가 말했다.

“제가 안내해드릴게요.”

“앗, 고마워요.”

아랑이 자리에서 일어나 둘을 손님맞이 방으로 이끌었다.

잠시 후, 이제 거실엔 은성과 아랑 둘밖에 남지 않았다.

“보고 싶었어, 오빠. 잘 돌아왔어.”

데면데면한 분위기를 깨는 청아한 목소리.

아랑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말했다.

은성은 어렸을 적 꼬마시절의 동생을 보는 것 같았다.

“너 D급 헌터라고 했지?”

“응. 대단하지? 어디 가서 자랑해도 돼.”

아랑이 장난스럽게 말하며 눈을 말똥말똥 치켜떴다.

은성은 피식 웃었다. 정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동생이다.

“너 내공심법은 배웠어?”

“내공심법?”

“그래.”

아랑은 입술을 빼쭉 내밀었다.

“내공심법 비싸서 어떻게 배워. 그리고 심법이나 스킬종류는 B급 헌터부터 마켓에서 구매할 수 있잖아. 나 D급이라서 그런 건 구경도 못해.”

구하려하면 못 구할 것도 없다. 하지만 암거래는 불법에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쌌다.

대격변 이후 만들어진 사회유지법이 문제였다. B급 미만의 헌터들이 스킬 북을 익히는 방법은 기부 받거나 구하거나 둘 중 하나 밖에 없었다. 대격변 이전에 있었던 단통법이나 셧 다운제, 야동 금지법처럼 일반 대중들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법률이었다.

“그럼 너 무기는 뭐 써?”

“검 쓰는데···. 그런 건 왜 물어보는 거야?”

아랑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되물었다. 은성은 아공간을 뒤적거려 내공심법과 검법서를 꺼냈다.

“이거 받아.”

순간 아랑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뭐, 뭐야?”

내공심법에, 검법서, 게다가 아공간까지···?

심지어 내공심법과 검법서 모두 유니크 등급이다. 평범한 스킬 북들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한 두 개도 아니고 여분의 내공심법과 검법서까지 꺼내 보이는 게 아닌가.

“앞으로도 부모님 잘 부탁한다. 여분의 스킬 북들은 부모님 익히게 드려. 세상이 흉흉하니까 스스로 강해지셔야 할 것 같아.”

“뭐, 뭐야··· 이것들은···.”

아랑이 놀라서 뒷말을 더듬거렸다. 스킬 북들과 은성을 몇 번이고 번갈아 쳐다보던 그녀는 뒤늦게 눈치채고 놀랐다.

“서, 설마 오빠도 헌터인 거야···?”

“그래, B급 헌터야.”

“허, B··· B급이라고?”

순간 아랑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대체 뭘까. 누가 두꺼비집을 내린 걸까.

눈을 뜨고 있는데 시야가 암전됐다.

말도 안 돼. 이거 뭐냐, 몰래 카메라? PPAP?

불현 듯 주마등이 스치고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B급이라니···!’

일반적으로 헌터등급을 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혈연, 지연, 학연이 없다면 돈이라도 바쳐야 빠른 진급이 가능했다. 당연히 헌터등급이 올라갈수록 그런 경향은 더 심해진다.

노력과 능력으로 승급을 하는 건 그야말로 레드오션.

그런데 자신의 오빠가 B급이라고?

‘B급은 부잣집 자제분들이나 엄청난 기만자들만 될 수 있는 거 아니었어?’

재능과 노력으로만 B급 헌터가 됐다는 누군가의 얘기를 들은 적은 있었다. 놀 것 다 놀면서 판검사가 됐다는 개소리만큼이나 재능 있는 기만자들의 부러운 얘기였다.

그런데 자신의 오빠가 그런 기만자였다니.

“지, 진짜 B급이야?”

“이거 봐봐. 자격증.”

“우와··· 말도 안 돼.”

은성이 지갑에서 헌터자격증을 꺼내보이자 아랑의 입이 턱밑까지 떡 벌어졌다. 황금빛 테두리의 자격증. B급 라이센스 자격증을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 이거··· 왜 엄마아빠한테 솔직하게 말 안 해?”

“너도 헌터인데 이제 와서 어떻게 사실대로 말해.”

헌터는 목숨을 거는 직업이다. 자식이 위험한 일을 하는 걸 좋아할 부모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B급이라면···.’

옛날이었으면 마을입구부터 현수막을 단 채, 온 동네에 떡을 돌리고 마을잔치까지 벌였을 상황이다.

질겁한 아랑은 은성의 눈을 마주보다가 깊이 모를 진중함을 읽고 오빠의 생각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이것도 받아.”

그때 은성이 거실 구석에 뒀던 서류가방을 들이밀었다.

“이건 또 뭐야?”

아랑은 또 스킬 북일까 생각하면서 서류가방을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다음순간 그녀의 동공이 황금색 빛깔로 물들기 시작했다.

“허, 허, 허···.”

바람 빠진 소리가 연이어 났다.

“8억이야. 아직 아이템이 안 팔려서 적은 돈인데 이걸로 안전한 쪽에 주택 좀 알아봐. 여기 싼 곳이라며.”

“저···저, 적은 돈이라뇨!”

저도 모르게 이상한 말이 튀어나왔다.

“8억이잖아. 무려 8억이잖아.”

일반적인 사람이 일반적으로 보일 수 있는 반응이라서 은성은 도리어 새로웠다. 그간 억 단위로 돈을 벌면서 금전감각에 어두워져 있었다는 걸 통감했다.

“와, 진짜 B급 헌터는 다르구나. 나는 한 달 열심히 벌어봤자 3, 400이 평균인데···. 운이 좋아 득템이 있을 때도 500을 넘기기가 힘든데···.”

이후로 대화가 더 오갔다.

은성은 아랑으로부터 많은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이 근방에 레이드형 던전이 많다는 것부터 그래서 집값이 꽤 싼 편이라는 것까지.

상위 헌터와 하위 헌터 간의 차별도 절실히 알 수 있었다.

고급 경매장과 일반 경매장 때부터 느낀 거지만 은성은 사회가 뒤틀려 있다는 생각이 굳게 들었다.

‘나 혼자 밖에 있다가 들어와서 그런가.’

사람들이 차별에 순순히 순응하는 것이 이상했다. 사람은 역시 환경에 지배를 받는 생물인 걸까.

“이제 자자. 내 방에 이불 하나 더 있어.”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아랑이 말했다.

“생각 좀 하고 잘게.”

“뭐야, 청승은··· 추우니까 빨리 들어와.”

아랑이 은성을 지나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혼자 남은 은성은 거실에 멀거니 앉은 채 생각에 잠겼다.

‘역시 가족들을 보니 평범하게 살고 싶다.’

은성은 신이 비겁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가족들을 보자마자 아르카디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부모님을 모시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선 안 돼. 안주하는 것도 지금은 아냐.’

모든 걸 다 끝내고 나서 그 뒤에 쉬어도 늦지 않다. 지금에서 복수를 포기하는 건 은성의 자존심이 용납 못한다.

아니, 어쩌면 꼭두각시 인형처럼 휘둘려지는 운명에 반발하고 싶은 청개구리 심보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복수한다. 기필코 돌아가서 신에게 복수한다.

‘천마신공이 여기 있다면 다른 것들도 여기 있다는 거다.’

신에게 다가설 방법. 희미했던 모든 것들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앞으로의 목표를 곱씹으며 은성은 아랑의 방으로 들어갔다. 일단 밤이 늦었다. 침대를 양보하는 아랑을 묵살하고 바닥에 누운 은성은 곧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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