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이튿날 아침.
은성은 눈을 뜨자마자 생각했다.
돈이 움직이면 사람이 움직이고, 사람이 움직이면 물건이 움직인다.
‘처음엔 베이징에 있는 바벨의 탑까지 실크로드를 만들 생각이었는데···.’
와중에 이곳에 있을 지도 모를 각종 영약들과 무구들을 자본으로 독식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천마신공을 보자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르카디아에 있는 대부분의 아이템들이 이곳 세계에도 존재한다면, 특히 에픽 아이템들이 이곳에 존재한다면···.
‘성검과 마검.’
그간 은성은 능력치 조건 탓에 줍지도 못한 에픽 아이템들이 수두룩했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성검 클리브 솔리스(Claiomh solais)와 마검 스톰 브링거(Stormbringer)였다.
아르카디아에서 은성은 만렙을 달성하고도 성검과 마검을 얻지 못했다. 이유는 너무도 명확했다. 찾기도 힘들었을 뿐더러 그나마 겨우 찾은 성검도 습득조건이 일반범주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천마신공도 그렇지만 에픽 등급의 아이템들은 하나같이 습득조건이 병신 같으니까.’
성검과 마검은 본래 하나의 무기라고 들었다. 그러니 두 자루 모두 구할 수 있다면 더 강한 무기로 합칠 수 있을 것이다. 성검과 마검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가정하에서지만.
‘일단 세력이 필요하다.’
모든 일은 손발이 많을수록 이득이다.
기껏 쌓은 모든 것들이 모래성이 되지 않도록, 그 자신만의 인프라를 구축해야한다.
은성은 결심을 다 잡았다.
* * *
시간은 바람처럼 흘러갔다. 2주가 흘렀다. 그간 은성은 가족들과 느긋한 한때를 보냈다.
아이템의 판매대금도 지급받았다. 아랑의 방에서 컴퓨터로 확인하니 개인정보의 정산내역이 갱신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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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B급 헌터 주은성님.
헌터마켓 & 헌터경매장 정산 담당자입니다.
2040년 11월 한 달 동안 판매되신 아이템 금액은 다음과 같습니다.
총 판매 매출 – 38,117,034,000원
예상 세금 안내
└ 정부 소득세 – 1,257,862,122원
└ 헌협 소득세 – 3,811,703,400원
└ 헌협 발전기금 – 1,905,851,700원
└ 헌협 회비 - 1,905,851,700원
└ 헌협 사회유지비용 - 7,623,406,800원
총 예상 정산금액 – 21,612,3 ······ 원
통장으로 정산 요청을 할 시 세금이 부과됩니다.
정산과 관련해서 변경된 사항이 있으시다면 변경 완료 후 정산 요청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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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의 판매수익은 한 달마다 정산 받을 수 있었다.
“216억인가.”
뜯어보니 정확히는 21,612,358,278원이었다. 억 소리 나는 금액은 유니크 등급의 스킬 북들을 제외하고 모든 아이템들을 판매한 결과였다.
‘새끼들, 세금이 양아치 수준이네.’
목록을 확인하니 정부 소득세로 3.3%가 제외되고 헌터협회의 세금으로 40%가 더 빠져나갔다.
협회 이 새끼들은 도대체 뭘 한다고 40%나 뜯어가는 거지?
길드나 매니지먼트가 없다면 협회세금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개인의 헌터등급뿐이다.
B급 헌터인 은성이 40%의 세금이라면 그 밑의 헌터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세금을 뜯긴단 말인가.
‘지랄 맞게 불합리한 세상이야.’
은성은 사용처도 불분명한 세금을 곱게 내줄 생각이 없었다.
정확히는 세금을 적게 낼 합법적인 방법을 알고 있었다.
‘어차피 세금은 내 통장에 돈이 들어올 때 부과되니까.’
그나마 다행인 점이었다. 판매가 완료됐어도 중간업자인 사이트에서 돈을 소유하고 있는 관계로 아직은 세금이 부과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세금을 줄이는 방법은 명확했다.
스스로 길드를 만들면 된다.
드르륵! 드르륵!
때마침 책상 위의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은애로부터 온 전화였다. 은성은 반가운 기색으로 전화를 받았다.
“도착했어?”
-여보세요? 아, 네에. 오빠. 집 앞에 도착했어요.
“출근시간일 텐데 빨리도 왔네.”
-헤헤헤, 오빠 차가 워낙 좋아서요. 사람들이 알아서 길을 만들어 주더라고요.
은애는 강철길드마저 탈퇴하고 은성을 도와주고 있었다.
“고마워. 은호도 챙기기 힘들 텐데 항상 도와줘서.”
-공짜도 아니잖아요. 돈도 다 주시면서. 그리고 이렇게라도 오빠한테 입은 은혜를 갚아야죠. 제가 더 고마운 걸요. 오빠가 아니었으면 정말로······.
“아냐, 정말로 고맙다.”
은성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은애가 있어서 상당부분 피로가 덜했다. 은성이 조금이나마 놓치고 있는 걸 눈치 빠른 은애가 정확하게 잡아주고 있었다.
“언제든 부탁 하나 들어줄게. 말만 해.”
-어, 진짜요?
“그래.”
-어··· 그러면 저랑 이번 주 주말에···
은애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뭐야? 벌써 도착하셨대?”
닫힌 방문이 벌컥 열리고 은성의 여동생 주아랑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지금 집 앞에 와 있어.”
“좋아, 얼른 내려가자.”
오늘은 며칠 전 은성이 만든 길드의 승인 날짜이자, 협회의 폐던전 공략의 경매가 있는 날이었다. 마침 아랑도 협회에 볼일이 있어서 동행하는 참이었다.
“근데 오빠가 만든 길드 이름이 뭐였지?”
현관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면서 아랑이 물었다. 부모님의 반대로 그들은 아직 이사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실버스타.”
은성이 나직하게 대꾸했다.
실버스타(Silver Star, 은성 銀星).
자신의 이름을 따서 정한 길드이름이었다.
“진짜 B급 헌터는 좋겠다. 길드신청하고 일주일만 기다려도 길드가 뚝딱 만들어지잖아.”
아랑이 입술을 삐죽 내밀고 부러운 듯이 말했다.
B급 미만의 헌터들이 길드를 만드는 것엔 실적의 증명이 필요했다. 하지만 B급 헌터부터는 그런 증명절차가 생략돼 있었다.
“나는 나름 귀중한 일주일의 시간을 헛 날린 건데.”
“아아, 기만자의 부러운 소리···.”
대문 밖으로 나선 둘은 기다리고 있던 은애에게 인사하고 자동차에 탑승했다.
은성이 보조석에 타고 아랑이 뒷좌석에 탔다. 차량의 내부를 훑어보면서 아랑이 지나가듯이 말했다.
“그런데 오빠 차 좋긴 진짜 좋다. 이거 얼마짜리야? 분명 비싸겠지만···.”
“얼마 안 해.”
“얼만데?”
“7억인가? 8억인가?”
“···아, 기만 쩔어. 부러워, 흑흑.”
이윽고 은성의 차량이 미끄러지듯 출발했다.
목적지는 수원시 헌터협회.
도로 위에서 모세가 바다를 가르는 기적을 체험하면서 일행은 협회로 향했다.
* * *
“등록 완료됐어요. 150만원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협회 길드관리센터에서 길드등록을 완료하고 은성은 비로소 길드마스터가 됐다.
150만원의 등록비를 마저 내고 라이센스 카드를 받으니 카드에 길드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실버스타(Silver Star).
“이제 돈부터 정산 받고.”
휴대폰을 꺼낸 은성은 헌터마켓의 어플에 접속한 후 정산을 완료했다. 개인정보에 길드 인증번호를 적고 수정을 완료하니 정산내역에서 예상 세금이 훅 감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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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판매 매출 – 38,117,034,000원
예상 세금 안내
···
총 예상 정산금액 – 25,424,061,678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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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54억 원.
이제 협회세금이 30%밖에 되지 않았다. 길드를 등록한 것만으로도 10%의 세금을 감면받은 것이다.
‘이러니 낮은 등급의 헌터들이 길드나 매니지에 속하려고 혈안이지.’
심지어 길드나 매니지를 등록하고도, 해당 단체의 등급에 따라서 세금감면 정도가 또 다르다. 은성이 방금 만든 실버스타의 경우 F급 길드라서 세금감면이 10%, 즉 30%의 세금을 내지만, 최고등급인 S급 길드의 경우 협회세금을 1%밖에 내지 않는다.
사회유지에 공헌하는 바가 크고 낮은 등급의 길드보다 벌어들이는 액수가 훨씬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폐던전 경매는 어디서 하지?”
“제가 알아요, 오빠. 이제 곧 시작할 것 같은데 따라오세요.”
은성의 물음에 은애가 대꾸하면서 그를 이끌었다. 아이템의 경매 목적으로 온 아랑도 뒤를 따랐다. 아이템 경매는 폐던전 경매가 끝난 후 진행되었다.
“폐던전 경매에 참가하시는 분들입니까?”
경매장의 입구에 도착하니 진행요원이 앞을 막아섰다.
선두에 있던 은성이 대답했다.
“네.”
“길드마스터 자격증을 좀 확인할 수 있을까요?”
은성이 망설임 없이 지갑에서 자격증을 꺼냈다. 갓 발행된 따끈따끈한 신 카드가 빛을 발했다. 그러자 자격증을 확인한 진행요원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스치듯 지나갔다.
‘F급 길드마스터가··· 폐던전 경매장에?’
황당할 수밖에.
게다가 길드생성 날짜도 바로 오늘이었다.
단순히 관광이 목적일까.
“확인했습니다. 부디 섣불리 입찰하지 마시길.”
묘한 말을 하는 진행요원을 지나치고 은성은 경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은애와 아랑도 같은 일원으로 손쉽게 입장했다.
경매장 안엔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홀의 정면에는 대형 스크린이 있었고, 층층이 계단식으로 된 자리엔 좌석마다 컴퓨터와 계산기 같은 게 설치돼있었다.
전체적으로 자동차 경매장과 비슷했다.
“저기 한산한 곳으로 가요.”
“응.”
고개를 끄덕인 은성은 적당히 자리를 찾아 앉았다. 모니터 옆의 계산기 같은 것에 길드마스터 자격증을 넣으니 좌석의 컴퓨터가 켜졌다.
인터넷으로 이용방법을 배워서 조금 낯설었다. 하지만 조작이 단순한 만큼 입찰을 하는 것에 어려울 건 없을 듯했다.
공략되지 않고 봉인된 폐던전은 이렇듯 경매를 통해 공략권한을 길드에 판매하거나, 비공개로 길드에게 넘기거나 둘 중 하나였다. 후자의 경우 해당 담당자의 공문에 달린 것으로 길드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비리가 넘쳐났다.
‘폐던전 공략에 성공만 해도 엄청난 이득이니까.’
승인된 폐던전의 공략에 성공하면 협회로부터 보상금을 지급받는다. 발견된 몬스터의 수준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금이 3억 원.
게다가 던전이 개방된 후, 던전을 이용하는 헌터들로부터 입장료도 10%나 정산 받을 수 있다.
그러니 폐던전 경매가 열릴 때마다 쟁쟁한 길드들이 경매장에 몰려드는 것이다.
‘강철길드의 길드마스터도 폐던전의 공략권한을 승인받고 보상금을 엄청 받았지.’
은성은 오늘 경매물품으로 나오는 폐던전들을 미리 다 알아봤다. 그는 폐던전의 포탈에 적힌 글귀를 읽을 수 있었으니까. 아르카디아의 언어를 알고 있는 혜택이었다. 그가 알아본 바로 오늘 경매장에 나오는 던전 중 유니크 던전은 한 개, 레어 던전은 두 개였다.
‘강철길드가 유니크 던전을 공략 완료 후 받은 돈이 세금을 떼고 약 12억 원이라고 했던가.’
게다가 꾸준히 나오는 정산금도 한 몫 한다고 했다.
은성의 가장 큰 목적은 꾸준히 나오는 정산금이었다.
그야말로 연금 아닌가.
일단 모든 던전들의 낙찰을 목표로 하되, 유니크 던전과 레어 던전은 좀 더 신경 써서 입찰을 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은성을 제외하곤 변화무쌍한 아르카디아의 언어를 아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 누구도 폐던전의 등급을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폐던전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이윽고 사회자가 나와서 경매를 시작했다. 홀의 정면에 있는 스크린으로부터 폐던전의 모습이 보였다.
은성은 피식 웃었다. 스크린에서 비쳐지는 폐던전의 사진을 보니 이거 사전답사도 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았다.
‘처음부터 유니크 던전이 나오다니.’
시작이 절반이라더니, 시작부터 가장 중요한 게 나왔다.
-100만원! - B급 아카시아길드.
-500만원! - C급 페르소나길드.
-3000만원! - B급 심해트롤길드.
스크린에서 입찰가가 빠르게 오르고 있었다.
대부분이 B급과 C급 길드.
A급 길드부터는 내륙에 있는 폐던전이 아닌 무법지대의 폐던전을 공략했다. 무법지대의 던전이 내륙보다 난이도가 높은 만큼 보상도 컸기 때문이다. 같은 등급의 던전이라도 내륙과 무법지대는 난이도가 확연히 달랐다. 은성이 파악하기로 안쪽이 노멀이라면 바깥쪽은 헬이나 하드코어였다.
‘정확히는 마왕이 있는 탑과 가까울수록 몬스터가 강한 거지만.’
-1억! - B급 진동토템길드.
···
-2억! - B급 심해트롤길드.
-2억 2천! - B급 진동토템길드.
-2억 3천! - B급 심해트롤길드.
입찰가가 거침없이 올라갔다. 금방 2억 원을 돌파했다.
어느새 경매는 2인 경쟁구도가 된 듯했다.
폐던전의 공략에 성공하면 기본금이 3억 원. 그래서 보통은 그보다 조금 더 많은 3억 5천 정도에 낙찰되기 마련이었다. 던전의 공략에 보통 1, 2개월 정도가 걸리고, 목숨이 달린 일이었지만 운이 좋아 높은 등급의 던전을 공략하면 일확천금이 보장됐기 때문이다.
‘이제 슬슬 내가 나설 차례인가.’
은성은 그 혼자서만 폐던전의 등급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유니크 던전은 공략보상금만 세전 15억 원.
입찰장치 위의 손길이 거침없이 움직였다.
타다닥! 타닥!
-5억! - F급 실버스타길드.
일순 좌중이 소란스러워졌다.
“켁! 뭐야!”
“뭐? 5억 원!?”
“F급 길드가 미쳤나. 제정신이야?”
앉아있던 사람들이 황당해서 소리쳤다.
하지만 놀라기엔 아직 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