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심해트롤 길드조합 의문의 습격! 수원시 치안공백!>
지역치안을 담당하는 길드조합 중 한 곳이 거의 괴멸했다.
조합의 수장, 심해트롤의 길드마스터 하지성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조합에 속한 다른 길드마스터들은 모조리 빈털터리가 됐다.
-뒤풀이를 겸해서 조합원들끼리 등산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몬스터가 튀어나왔습니다. 목숨은 건졌지만 부상을 입고 장비가 모두 파괴됐습니다.
생존자들은 그렇게 말했다. 은성의 협박 탓에 그들은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어떻게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들에게 은성의 존재는 갑자기 튀어나온 몬스터나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사람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 ㅁㅊ 겁나서 수원에서 살겠나. 돈 벌면 남쪽으로 이사부터 간다.]
[세금도 많이 뜯어가면서 아직 위쪽 지방에는 차폐막도 설치 안 된 던전 개 많음. 세금가지고 뭐하는 건지.]
[던전비리 저지르는 새끼들은 전부다 사형시켜야함. 왜 맨날 무죄 아니면 집행유예임?]
인터넷은 난리가 났다.
조합원들은 저마다 쟁쟁한 길드들의 수장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몬스터에게 습격당해 괴멸상태라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다른 도시도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던전의 위험도를 재조사해야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지역 방송매체부터 시작해서 대부분의 언론이 이 사건으로 시끌벅적해졌다.
사실 은성이 일으킨 사건이었지만 거짓말은 점점 부풀어 올라 다른 방향으로 치솟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건은 놀랄 만큼 빠르게 가라앉았다. 은성의 존재를 알고 있는 상위계층의 모임, 헌터회가 나섰기 때문이다.
-재밌네. 더 지켜보죠. 일단 이번 건 묻고 가만히 놔둬요.
회장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이미 대한민국은 헌터회의 것이었니까.
헌터회 회장 유지미의 말에 언론이 조작되고 사건은 축소됐다. 급기야 단순 헌터들끼리의 싸움, 해프닝으로 종결됐다.
몇몇 사람들이 음모론을 들먹거렸지만 소수의 목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펜보다 돈이 강한 시대를 지나, 돈보다 칼이 강한 시대.
진실은 거짓 속에 묻을 수 없지만 칼자루 속엔 묻을 수 있었다.
* * *
사흘이 지났다.
은성은 길드사무실에서 전리품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간 사건의 흐름을 지켜보다가 의아할 만큼 깔끔히 종결되자, 그제야 미뤄놨던 일을 한 번에 처리하는 것이다.
‘아공간만 10개에, 그 안에 들어있는 아이템까지 합치면···.’
획득한 아공간의 규격은 제각각이었지만 가장 작은 사이즈가 4x4에 500kg한도였다.
‘이것만 해도 대충 5억인가.’
아공간을 받는데 약간의 수고가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스스로 상상력을 발휘한 길드마스터들은 은성의 무력과 뒷 배경을 무서워하고는 공손히 가져다 바쳤다.
촤르륵!
은성이 쥐고 있던 마지막 아공간을 끄집어 부었다. 발밑으로 갖가지 아이템들이 쏟아졌다. 꽝이 없는 무료 뽑기를 하는 느낌. 꼭 당첨이 예정된 랜덤박스를 까는 기분이었다.
“아이템이 너무 많아요!”
잡동사니 위에서 은애가 소리쳤다. 그녀는 전리품의 분류작업을 도와주고 있었다.
“일단 빨리 팔 수 있는 것들부터 분류하자. 방금 부은 게 마지막이야.”
“으아아··· 마석만 1억 원이 넘을 것 같은데.”
길드사무실의 한 구석에는 무기부터 시작해 갖가지 스킬 북들까지. 여러 아이템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모두가 아공간 속에서 나온 것들이다.
‘새끼들, 많이도 벌어놨네.’
은성은 만족스러웠다. 각 단체의 수장, 길드마스터들이 들고 있던 아공간들답게 내용물들이 상당히 좋았다.
“귀속 아이템은 어떻게 할까요?”
은애가 커다란 양날도끼를 가리키며 물었다.
하지성으로부터 기부 받은 아이템이었다.
“저기 파티션 옆쪽에 따로 분류해줘.”
“네.”
은애가 종종걸음으로 장비들을 모았다.
은성은 귀속 장비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참에 귀속 해제 포션도 만들어야 겠다.’
귀속된 장비는 귀속이 해제되지 않는 한 평범한 의류나 쇳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착용은 가능하지만 아이템의 효과가 발휘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은성은 귀속 해제 포션의 제작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곳의 헌터들은 다른 방식으로 귀속 해제 포션을 독점하고 있는 것 같지만.
‘발키리의 샘물을 독점하고 있는 거겠지.’
은애에게 듣기로 유명한 상위권 길드, 네크로 필리아길드에서 귀속 해제 포션을 독점하고 있다고 들었다. 아마도 포션을 직접 제작하는 게 아닌 특정한 지역, 성소의 효과를 얻고 있는 거겠지. 은성은 뻔히 짐작할 수 있었다.
“후아, 끝났다.”
“고생했어. 고맙다.”
“으하하하···.”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분류작업이 끝났다. 마치 지저분한 책상을 정리하는 기분이었다.
‘예상보다 많이 걸렸네.’
거의 반나절이 걸렸다.
저마다 아이템을 보관하는 방식이 천차만별이라서 하나하나 꺼내서는 답이 없었다. 그래서 완전히 꺼낸 상태로 분류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이것마저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던 거다.
‘어쨌든 마석이 상급과 중급, 중하급을 합쳐서 400개 정도. 장비들은 무기, 방어구, 액세서리 등을 합쳐서 85개. 스킬 북은 11개 정도인가.’
나머지 잡다한 것들도 있었지만 따로 열거하지는 않았다. 대부분이 일상적인 용품들이었다. 심지어 음식물이나 쓰레기 따위를 아공간에 보관한 경우도 있었다.
‘일단 장비들은 대부분이 귀속된 것이니 지금 확인할 건 스킬 북 뿐이다.’
은성은 스킬 북들을 들고 컴퓨터가 있는 책상 앞에 앉았다.
은애가 사뿐히 걸어가 그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스킬 북들은 삼연격, 내려치기, 강타 같은 근접기 종류부터 속성부여, 테이밍, 마나 골렘 소환 같은 서브 마법 종류예요.”
은성이 확인하기 전, 은애가 선수 쳐서 말했다.
은성은 고개를 끄덕이고 스킬 북들을 확인했다.
[삼연격]
등급 – 레어
효과 – 3연속 타격 시 마지막 타격에 데미지 가산 5
설명 – 3타의 연계 공격을 성공할 시 데미지를 가산을 합니다. 3타 모두 타격에 성공할 시 [기본 20] + [근력 계수 0.1] 확률로 상대를 공중에 띄웁니다.
습득조건 – 체력 40이상
···
[속성부여 - 서리]
등급 - 레어
효과 – 서리 속성 부여
설명 – 마력에 영향을 받는 서리속성을 무기 또는 맨손에 부여합니다. 서리속성으로 공격에 성공할 시 [기본 10] + [마력 계수 0.01] 확률로 상대의 타격 부위를 얼립니다.
습득조건 – 체력 30 이상, 마력 20 이상
[테이밍]
등급 - 유니크
효과 – 테이밍
설명 – 몬스터로 분류되는 종족을 테이밍 합니다. 테이밍의 성공 확률은 능력치의 총합에 달려 있습니다.
습득조건 – 체력 50 이상, 의지 50 이상, 감각 50 이상, 마력 50 이상
[마나 골렘]
등급 - 매직
효과 – 마력에 영향을 받는 마나 골렘 소환
설명 – 소모된 마력의 양에 따라 세기가 달라지는 골렘을 소환합니다.
습득조건 – 마력 30 이상
‘테이밍과 마나 골렘이라···.’
은성은 유난히 두 스킬 북에 관심이 갔다.
이번에 심해트롤길드를 괴멸시키고 그는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보복과 언론의 관심.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무래도 찝찝하단 말이야.’
은성은 소중한 걸 잃은 다음에야 후회할 생각이 없었다.
아랑을 통해 부모님 두 분에게 갖가지 아이템들과 스킬들을 드렸지만 내심 불안했다. 안전에 대한 준비는 아무리 많이 해도 부족한 것이다.
은성은 가족들을 더 안전하게 만들고 싶었다.
“오빠 더 도와줄 일은 없죠?”
휴대폰을 확인하던 은애가 물었다.
“이제 없긴 한데. 왜?”
“저 가봐야 할 것 같아서요.”
“벌써 가려고?”
그렇게 물은 은성은 문득 은애의 존재도 깨달았다.
누군가 자신에게 해코지를 한다면 1순위는 가족보다 은애일지 몰랐다.
“네에. 은호도 요즘 헌터가 되겠다고 난리라서. 제가 도와줘야해요.”
부모님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인 은호는 헌터가 되겠다고 완전히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 기저에 은성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지만 정작 본인은 모르고 있었다.
“먼저 가볼게요.”
은애가 은성을 지나쳐 사무실 문으로 갔다.
“잠깐만.”
은성이 은애를 불러 세웠다. 그는 아이템이 모인 파티션으로 간 후, 적당한 장비들을 주워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것을 은애에게 던졌다.
“이거 받아.”
“어어···?”
공중으로 날아든 건물 한 채 값에 은애가 화들짝 놀라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이건···?”
은애가 아공간을 열어 확인하니 미처 귀속되지 않은 상급 레어 장비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착용 조건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그거라도 착용해. 아니면 팔고 다른 장비를 맞추든가.”
“저, 저 주시는 거예요?”
“그래.”
“으아아···! 오예, 감사합니다!”
은애가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며 기뻐했다.
싱긋 웃은 은성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대신 너 내 길드에 가입해.”
“···네?”
며칠 전부터 은성은 생각해둔 바가 있었다.
그건 길드의 첫 번째 길드원으로 은애를 받아들이는 것.
동생인 주아랑은 아직 다른 길드에 가입된 관계로 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은애는 아니었다.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 강철 길드마저 탈퇴했지 않은가.
‘분명 나를 염두해 둔 행동이겠지.’
어느새 은성은 은애를 자신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간 신뢰를 주고받으면서 은성은 충분히 은애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왜 말이 없어? 싫어?”
은성의 재촉에 은애가 숙였던 고개를 팍 들었다.
“너, 너무 좋아서요···.”
한 발자국 더 다가선 느낌. 답답했던 가슴이 갑자기 울컥 치솟았다. 이건 무슨 감정일까.
“저 이만 가볼게요.”
“그래, 갈 때 내 차 몰고 가. 저번처럼 놔두고 가지 말고. 어차피 나 면허도 없어.”
“아, 네에···.”
은애는 그대로 고개를 꾸벅 숙이고 다급히 몸을 돌렸다.
더 있다간 기쁨의 눈물이 왈칵 나올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귀엽긴···.’
그녀가 나간 후, 은성은 사무실 문을 응시하다가 시선을 돌렸다.
이제 던전 공략을 준비할 차례다.
* * *
헌터 커뮤니티 사이트는 각 계층의 헌터가 자유롭게 정보를 주고받고 대화를 나누는 곳이다.
마켓을 거치지 않고 직거래로 아이템을 거래함으로써 탈세를 하기도 했고, 신생 길드가 길드원을 모집하거나 반대로 신규 헌터가 길드를 구하기도 했다.
익명으로도 게시 글을 올릴 수 있었고 닉네임을 고정으로 파서 게시 글을 올릴 수도 있었다.
유명한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실명을 내걸었지만 대부분의 헌터들은 익명으로 커뮤니티를 즐겼다.
그편이 더 의사표현이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심지어 표현을 한 후 책임을 질 필요도 없을뿐더러 자유까지 보장됐다. 그러니 익명으로 커뮤니티를 즐기는 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것이다.
그런 헌터 커뮤니티 사이트에 이상한 게시 글 하나가 올라왔다.
[각 던전 보스 룸에 있는 빨간색 풀, 파란색 풀, 초록색 풀, 사람머리모양 풀······ 등등 모든 종류의 풀들 삽니다.]
사람들은 단순 어그로 꾼으로 생각하고 욕했다.
그도 그럴 게 던전 보스 룸에 있는 풀들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오히려 먹으면 몸 상태가 나빠지거나 기분만 더러워진다.
그런데 그런 잡풀들을 뭣 하러 구매한단 말인가.
[김샷별 : 어그로 꾼인 듯 먹이주지 말죠.]
[ㅇㅇ : 병먹금]
[너무작아요 : 병신ㅋㅋ 컨셉 재밌네.]
[소드브레인 : 노잼 어그로 하차합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여론은 글 게시자의 자격증 인증으로 단번에 역전됐다.
[실버스타 길드. 길드마스터 B급 헌터 주은성.]
은성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통장잔고까지 인증했다.
억 소리가 나는 통장잔고가 빛을 발하자 의심이 많던 사람들도 놀라 기겁했다.
[김샷별 : 모든 풀들 다 구매하신다는 거죠, 고객님?]
[너무작아요 : 감사합니다. 주은성 헌터님.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소드브레인 : 충성충성^^7]
댓글들의 반응을 본 은성은 희미하게 웃었다.
포션들이 넉넉하다면 던전 공략 속도도 월등히 빨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