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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의 귀환-26화 (26/127)

# 26

푸스스스!

몸을 풀고 있으니 얼어붙은 땅위에서 연기가 솟아올랐다. 구름 같은 기체가 사방을 메우고 첫 번째 보스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등장 한 번 요란하네.’

커다란 드라이아이스가 승화되는 것 같았다. 눈앞의 연기가 걷히자 그제야 몬스터의 모습이 제대로 식별됐다.

“크취이익···!”

“오크 로드인가.”

보스 러쉬 던전은 단계적으로 난이도가 향상되는 던전이다.

메인이 나오기 전 에피타이저부터 나오는 것이다.

‘첫 몬스터 치곤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은성은 심드렁한 얼굴로 주변을 훑었다. 심지어 한 마리도 아니었다. 무리를 이끄는 족장형 몬스터답게 졸개인 오크들도 몇 마리나 같이 소환됐다.

‘그렇다면.’

손을 튕긴 은성은 아공간에서 스킬 북들을 꺼냈다.

[속성부여 – 서리]

[마나 골렘]

[테이밍]

전리품들 중 미리 추려둔 것들이다. 스킬 북들을 펼친 은성은 차례대로 스킬들을 모두 익혔다. 이참에 스킬들의 효용성을 알아보면 좋을 것이다.

[속성부여 – 서리]

‘가장 먼저 속성부여.’

시동어를 외우자 손에서 푸르스름한 안개가 생겼다. 새파란 연기가 불꽃처럼 주먹을 감쌌다.

“크오오오오···!”

오크 로드가 고릴라처럼 제 가슴 근육을 두들기며 함성을 내질렀다. 주변의 오크들이 손도끼를 응원봉처럼 휘두르며 폴짝폴짝 뛰었다. 은성은 같잖아서 웃었다. 갑자기 변덕이 생겼다.

“아, 쟤들은 좀 너무 약한 것 같다.”

속성부여를 취소하지도 않은 채 은성은 그대로 탄지공을 날렸다. 새하얀 빛의 줄기가 오크 로드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오크 로드는 단말마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목 부위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몸과 머리가 분리돼 있었다.

“크, 크취이익···!?”

“취이익!?”

“취, 취익!?”

광란의 도가니였던 돼지인간들이 일순 석고상처럼 굳었다. 저들의 두목이 일격에 사망해버렸으니 황당할 법도 했다.

“너희들도 따라가야지.”

자고로 보스 몬스터가 죽으면 부하들은 순장을 시켜주는 게 예의다.

은성의 손끝에서 연신 탄지공이 불을 뿜었다. 새하얀 빛의 창들이 오크들의 머리를 정확히 관통했다. 마지막 놈까지 처리하니 레벨 업 표시가 떠올랐다.

‘시체와 아이템은 천천히 주워도 상관없겠지.’

드랍된 아이템은 사라질 일도 없으니 분주할 필요는 없었다.

은성이 뻥 뚫린 하늘을 쳐다보고 있으니 꽤 시간이 지나서 다음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오우거 로드.’

이번에도 내키지 않았다.

에피타이저가 너무 길지 않은가.

“크아아아아아!”

오우거 로드가 괴성을 내지르며 발작했다. 하지만 화려한 등장과 달리 하는 모습은 식상했다. 오크 로드와 마찬가지로 제 가슴을 마구 두드리고 있었다.

‘그래도 방금 전이 고릴라면 이번은 고질라 같은 분위기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은성은 감흥도 없이 탄지공을 사용했다. 순수 마력 능력치만 300이 넘으니 위력이 상당했다. 적당히 마력을 실어서 날리자 오우거 로드의 머리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머리를 잃은 녹색 거체가 쿵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레벨 업을 하셨습니다.>

또 1업을 했다.

레벨 업의 효과로 마력이 완전히 회복됐다. 주먹을 꽉 쥐자 부여해놓았던 서리속성의 푸른색 아지랑이가 흩날리듯 일렁거렸다.

콰직!

은성은 애꿎은 바닥을 학대하고 다시금 앞을 쳐다봤다.

그렇게 또 대기시간. 갈수록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았다.

오크 로드와 오우거 로드의 시체로부터 전리품을 줍고 있으니 지척에서 소환의 연기가 솟구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금까지의 놈들과 조금 달랐다.

스스스슥!

사방을 메운 연기가 천장의 구멍에 닿을 듯 높이 치솟았다. 서서히 드러나는 인형의 실루엣이 거대했다. 무려 10미터. 이번에는 좀 때릴 맛이 나는 놈인 것 같았다.

“크워어어어어!”

연기가 완전히 걷히고 표효 소리마저 만족스러웠다. 급기야 천장의 고드름 몇 개가 버티지 못하고 지면을 향해 추락했다. 주변에서 얼음 깨지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이번엔 두들길 맛 좀 나겠는데.’

은성은 주먹을 꽉 쥐고 놈을 노려보았다.

붉은 눈알이 시선을 마주보고 있었다.

거대한 백곰.

덩치가 어찌나 큰지 손바닥의 크기만 해도 사람보다 훨씬 컸다. 입을 벌리면 은성을 단번에 삼키고도 남을 듯했다.

“크어어어어어!”

붉은 눈을 번뜩인 거대 백곰이 달라붙었다. 어깨를 한계까지 꺾은 녀석은 단숨에 위협적인 발톱을 휘둘렀다.

빠가가가각!

둘 사이에 있던 빙벽이 산산이 부서졌다. 발톱은 은성을 찢어발길 듯 멈추지 않고 그대로 쇄도해왔다.

‘새끼, 힘 봐라. 꽤 위협적인데.’

흉흉한 발톱에 맞서 은성이 주먹을 내질렀다. 작은 주먹과 거대한 손바닥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뻑! 빠지지직!

순간 타격음과 함께 종잇장 찢는 소리가 났다. 거대 백곰의 두 눈이 한계까지 치켜떠졌다.

“끄어엉?”

역치 값을 훨씬 넘어선 고통이 점점 전해져오면서 거대 백곰이 놀라서 울부짖었다.

“끄어어어어어어!”

백곰의 거대한 앞발은 완전히 역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은성의 주먹과 맞부딪히자 그 데미지가 고스란히 백곰에게로 되돌아간 것이다. 심지어 백곰의 손바닥 가죽은 완전히 터져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거대 백곰은 놀라서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끄어엉!”

쩌저저저정!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상처부위까지 얼어붙기 시작했다.

서리속성의 공격이 일정확률로 타격부위를 얼린 것이다.

“깨앵! 끼잉, 끼잉···!”

질겁한 거대 백곰은 앓는 소리를 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이 작은 인간은 대체 뭐란 말인가. 생전 처음 맛보는 엄청난 고통에 백곰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타격감은 나쁘지 않고.’

은성은 기다리지 않고 그대로 달려가 주먹을 내질렀다.

뻐억!

“끄어어어엉!”

얻어맞은 백곰이 구슬픈 울음소리를 냈다. 덩치가 덩치인 만큼 두꺼운 지방질에 막혀 구멍이 뚫리거나 하진 않았다.

고품질의 샌드백.

은성은 만족하며 쉬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을 내질렀다.

‘강권, 강권, 붕권, 붕권, 로우킥!’

뻐억! 뻐걱! 빠악! 뻑! 빠각!

“크어어어어엉! 끄어어엉!”

타격감이 상당히 좋았다.

역시 두들기는 맛이 있어야 때리기가 즐겁다.

“끄어억! 끄어어엉!”

그러나 역시 오래 버티진 못 했다. 손속을 충분히 뒀음에도 쥐어터진 부위가 서서히 얼어붙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울음소리가 뚝 멈췄다. 거대 백곰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 깨어나지 못했다.

‘새끼, 웅담도 존나 크겠네.’

은성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또 다시 레벨 업 표시가 떠올랐다. 이번 놈은 좀 강했다. 단번에 많은 레벨이 올랐다.

‘당분간은 마력에 올인이지.’

천마신공을 떠올리며 능력치를 모두 마력에 투자했다.

그리고 꽤 시간이 흘렀다. 그 뒤로도 수많은 보스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아이스 골렘, 가고일, 심지어 외눈박이의 거인족 사이클롭스도 있었다.

“으어어···! 맛있는 인간고기다···!”

“징그럽게 생겼네. 넌 그냥 죽어.”

마력을 잔뜩 머금은 탄지공 한 방에 죽어버렸지만 말이다.

‘슬슬 마지막 놈이 나올 차례가 됐는데.’

겨울의 기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듀라한마저 묵사발내고 레벨 업 포인트를 모두 마력에 투자했다.

이거 갈수록 강한 놈들이 나와서 흥미진진했다. 정신적으로도 상당히 성숙해져서 대화를 나누는 재미도 있었다.

‘마지막 보스는 어떤 놈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소환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황금색 연기.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드디어 마지막 보스 몬스터인 듯했다.

‘음?’

그런데 연기가 걷히자 저절로 눈이 밝게 트였다.

과연 보스 중의 보스란 말인가.

‘드디어 메인인가.’

은성의 입가에 미소가 스치듯 지나갔다. 주먹에 저절로 힘이 실렸다. 눈앞으로 양 날개를 펼친 거대한 체구가 이빨을 번뜩이며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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