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헌터? 몬스터와 싸우고 있는 건가?’
도와줄 생각은 없었지만 일단 그곳으로 향했다. 몬스터와 조우하고 있다면 던전의 위치를 알고 있을 지도 몰랐다. 은성이 단숨에 걸어가 도착하자 뜬금 없는 게 보였다.
“쿠우우··· 크으으···.”
“뭐야?”
웬 거대한 누더기 괴물이 서 있었다.
좀비였다.
그러나 일반 좀비들과 달리 생김새가 기괴했다. 좀비는 은성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팔을 휘둘렀다. 은성은 피하지도 않고 멀거니 서 있었다.
푸스스슥!
다음순간 좀비가 역으로 으스러져 오체분시 됐다. 휴지가 마법으로 부숴버린 참이었다.
‘새끼가, 나도 못 건드리는데. 어딜.’
근처의 사람들이 그제야 하던 일을 멈추고 은성을 쳐다봤다.
“뭐야? 당신 누구야?”
“뭐 하는 자식이지?”
“어디 소속이야?”
은성은 나직하게 대답했다.
“그냥 지나가는 헌터인데.”
이 새끼들 몬스터와 싸우고 있는 게 아니었나. 생각하고 있는데 그들의 행동이 식별됐다.
“도굴꾼?”
“도굴꾼이라니!”
그들 중 가장 늙어 보이는 사내가 선두에 나서며 소리쳤다. 무리의 우두머리인 듯했다.
“도굴꾼 맞는 것 같은데. 왜 남의 무덤을 파헤쳐?”
은성이 주변을 이리저리 훑으며 물었다. 사람들이 삽으로 무덤들을 파헤친 상태였다. 하나같이 비석이 없는 무연고자들의 무덤이었다.
“음··· 거, 쓸데없이 밤눈이 밝구만.”
선두의 사내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우리는 네크로 필리아 길드의 자원 관리부 소속이다. 나는 박찬희 팀장이고. 선택권을 주겠다. 그냥 모른 척 지나갈 텐가? 아니면 죽을 텐가?”
“뭐?”
은성이 같잖아서 귀를 의심했다.
그가 한 번 더 물었다.
“저기 우리가 파놓은 구덩이 보이나? 조용히 사라져서 지금 일을 함구한다면 우리는 따로 시비 걸지 않겠다. 하지만 오늘 일이 어딘가로 세어나간다면 저기 구덩이가 네 묫자리가 될 거다.”
은성이 스윽 빈 구덩이를 쳐다봤다. 원래 묘의 주인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부서진 나무관의 흔적만 있었다.
“빈 구덩이가 좀 많은데 당신들 묫자리는 아니고?”
“미친 놈.”
박찬희가 손을 흔들자 사람들이 구석에 모아 둔 포대를 땅에 부었다. 이 상황에 비료를 뿌리나 싶었는데 새하얀 뼛조각들과 사람들의 시체가 부위별로 쏟아져 나왔다.
“···네크로맨서?”
그제야 은성은 정황을 파악했다.
이 새끼들 무덤을 파서 사람들의 시체를 모으고 있었다.
“사태가 좀 파악 되나? 슬슬 겁이 나나보지?”
박찬희가 손을 튕기며 중얼거리자 시체 속에서 누더기 좀비가 튀어나왔다. 벌레가 꾸물꾸물 기어가듯 좀비는 시체들과 합쳐지면서 크기가 더욱 커졌다.
“까불지 말고 지금이라도 꺼져.”
박찬희가 위협하듯 으르렁거렸다.
은성은 속으로 저울질을 했다.
‘이 새끼들 시체 모으는 게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데 고인모독이 좀 심한 거 아닌가?’
그때 휴지가 먼저 나섰다.
“턴 언데드.”
그 한마디에 빛이 번쩍 하더니 누더기 골렘이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순식간이었다. 놀란 사람들이 혼비백산해서 소리쳤다.
“뭐, 뭐야!”
“이럴 수가!”
턴 언데드는 언데드를 소멸시키거나 도망치게 하는 마법이었다. 대상을 소환시키는 것 만큼 소멸 시키는 것에도 많은 마력이 필요했다.
“어, 어떻게!”
가장 놀란 것은 박찬희였다. 그는 우두머리라는 책임감 탓에 얼어붙어 있었다.
“도망가려면 빨리 꺼져.”
은성이 판단을 유예하고 말하자 찬희의 얼굴이 대번에 붉게 물들었다.
“너, 너··· 감히 우리 네크로 필리아 길드를 공격하고도 무사할 줄 알아?”
“살 기회를 걷어차네.”
“이런 미친!”
목숨보다 무시당한 자존심이 더 중요한 듯했다. 찬희의 수신호에 사람들이 장검을 꺼내들었다.
“덤비면 죽을 텐데.”
은성이 슬그머니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런데 휴지가 더 빨랐다.
“감히 이 몸의 주인 앞에서 칼을 빼들어?”
휴지가 은성보다 더 화를 내며 마법을 쏘았다. 날카로운 얼음의 창들이 사람들의 몸을 꿰뚫었다.
“으아아악!”
“갸아아악!”
“캬악!”
머리가 뚫리고 심장이 꿰뚫렸다. 명치에 수박만한 구멍이 난 채 절명한 사람도 있었다. 선두의 다섯을 죽이는데 5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런, 생각보다 족쇄 자랑을 잘하잖아.’
은성은 메마른 입술을 적시며 이마를 되짚었다. 사람목숨 귀하다는 선행학습을 깜빡 잊었다.
“이러면 완전 나가린데. 답이 하나 밖에 없다.”
은성의 말에 남은 네크로 필리아의 길드원들이 굳듯이 섰다.
은성은 입술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냥 다 죽여 버려. 들키지만 않으면 죄가 아니니까.”
마침 묫자리도 있었다. 시체를 처리하는 수고도 덜었다.
“으아아아!”
“도망쳐! 씨발!”
“나, 난 잘못 없어!”
사람들이 도망갔지만 휴지가 더 빨랐다. 새하얀 머리칼을 휘날리며 그녀는 길드원들을 모두 죽였다.
‘되도록 살인은 자제하고 있었는데.’
은성은 습관과 경험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사람을 쉽게 죽일수록 사람 목숨을 가볍게 여기게 된다. 힘이 강할수록 인내심도 강해야한다.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만 되도록 살육에 미치는 걸 스스로 방지하고 있었다.
“일단 시체부터 치우자.”
“네.”
태울 건 태우고 타지 않는 뼛가루는 누더기 시체들과 함께 묻었다. 은성은 휴지에게 인간사회의 법들을 설명하며 기어코 던전입구를 찾았다.
던전을 클리어하며 혹시나 귀찮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다음 던전을 향할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은성은 안도하면서 착실하게 남은 던전들을 클리어 해나갔다.
* * *
폐던전들을 모두 클리어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모두가 낮은 등급의 던전이라서 금세 클리어 할 수 있었다. 은성은 전리품들을 싸들고 길드사무실로 돌아왔다.
“오셨어요?”
사무실에 들어가자 은애가 그를 맞이했다.
“아, 언제 와 있었냐.”
“그냥 간간히 들렸어요.”
그녀는 주인을 기다리던 강아지처럼 해맑게 달려왔다.
“몸은 괜찮아요? 다친 곳은 없죠?”
“나 지금 더러워서 몸에서 냄새나.”
“괜찮아요.”
그녀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오니 사무실이 전체적으로 정돈돼 있었다.
“사무실이 깔끔하네. 청소 했어?”
“네.”
“고생 많네.”
“길드원이잖아요. 이 정도는 해야죠.”
은애는 베시시 웃다가 뒤늦게 들어온 휴지를 보고 뒤로 물러섰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날이 선 얼굴로 물었다.
“이 여잔 누구예요?”
“내 펫이야.”
“펫이요?”
가볍게 말했는데 그녀는 무겁게 받아들였다.
‘펫이라고···!?’
은애가 값을 매기는 시선으로 휴지의 전신을 스캔했다. 하얀 단발에 얼굴도 예쁘고 스타일도 좋았다.
‘엘프 코스프레? 오빠는 이런 취향인가?’
은애는 익숙한 쪽으로 판단을 내리고 은성을 쏘아보았다. 설마하면서 그녀가 물었다.
“무슨 사이예요?”
“주종관계.”
은성은 설명하기도 귀찮아 대충 대답했다. 은애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뒤통수를 오함마로 쳐 맞은 듯한 큰 충격을 받았다.
“아랑이는?”
“······ 자, 잠깐 집 들린다고 집 갔어요.”
“아, 그래.”
은성은 길드사무실의 샤워실로 몸을 돌렸다.
“일단 나 좀 씻자. 그간 대충대충 씻어서 개운하지가 않아.”
“아········· 네.”
휴지가 은성을 뒤따라가자 은애는 입술이 아프도록 꽉 깨물었다.
대체 뭐지? 갑자기 튀어나온 이 연적은?
“저 여자 이상해. 살기가 느껴져요.”
“안 좋은 일이 있나보지.”
은성과 휴지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샤워시설로 들어갔다. 분명 남녀 샤워실이 구분돼 아무 일도 없을 테지만 은애의 얼굴은 분리수거함의 깡통마냥 형편없이 찌그러졌다.
‘하아아··· 으아아아.’
그녀는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 * *
“드래곤이요?”
“그래. 하프 드래곤. 던전에 있길래 길들였어.”
샤워를 하고 나왔다. 은성의 간략한 설명에 은애의 무너졌던 세상이 단숨에 복구됐다.
‘오예!’
어느새 사무실로 온 아랑이 어처구니가 없어 소리쳤다.
“말도 안 돼! 이 여성분이 드래곤 일리가 없잖아!”
“말 돼. 휴지 아무거나 보여줘 봐.”
은성이 신호를 보내자 휴지가 한쪽 손만 드래곤으로 변화시켰다. 어깨 아래부터 기괴하게 커진 파충류의 앞발이 그대로 드러났다.
“미쳤어! 이제 드래곤을 펫으로 부린다고!?”
아랑이 경악해서 소리쳤다.
대한민국 5대 길드 번뇌, 타이거, 빌런, 네크로 필리아, 죽림.
그 어느 길드에서도 드래곤을 길들였다는 소식은 없었다. 구국의 영웅 유지미 헌터마저 하지 못 한 일을 지금 눈앞에 있는 자신의 오빠가 한 것이다.
“드래곤이 아니라 하프 드래곤.”
“그거나 이거나 굉장해. 아, 그런데···”
“왜?”
“드래곤은 노리는 사람이 많잖아. 알다시피 드래곤은 각종 영약의 재료니까. 게다가 오빠가 드래곤을 길들였단 사실이 세상에 퍼진다면···.”
아랑이 지레 겁을 먹고 말을 이었다.
“정부에서 재능기부를 요구할지도 몰라.”
“재능기부?”
은애가 아랑 대신 말을 받았다.
“사회유지법에 속한 법률이에요, 오빠. 정부가 국가적인 위급상황 혹은 필요사항이라고 판단할 시 우수한 헌터를 차출해서 활용할 수 있다는 법인데, 전시에 소집되는 예비군과 비슷하지만 좀 더 강제력이 있는 편이에요.”
“이상한 법 되게 많네.”
“대격변 당시 멸망의 문턱까지 갔으니까요.”
귀찮은 일 안 휘말리게 조심해야겠다.
은성은 화제를 돌려 다른 얘기를 꺼냈다.
“포션은 어때?”
아랑이 1.5L 페트병에 담긴 액체를 보였다. 푸른 빛깔의 액체, 마나 포션이었다.
“일단 가르쳐 준대로 만들어서 지금 창고에 쌓아놨는데 물에 희석해서 등급 맞추는 거 맞지?”
“그래.”
페트병에 담긴 포션의 색깔을 확인하니 만족스러웠다. 이 정도 농도면 중상급 혹은 상급 정도로 볼 수 있었다.
“잘 만들었네. 수고했어. 고맙다.”
“고맙지? 그럼 용돈 두둑하게 챙겨 줘.”
“알았어.”
은성은 모바일 뱅킹으로 그녀의 계좌에 돈을 이체했다. 이번에도 꽤 거금을 이체했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아랑은 바쁜 은성을 대신해 항상 부모님에게 이것저것 챙겨드리고 있었다.
은성이 휴대폰을 책상에 두고 물었다.
“엄마아빠는 아직 이사 가기 싫다고 하시지?”
“응. 돈이 충분하다고 보여드려도 안전지대에 가면 장사를 새로 시작해야 해서 싫으시대. 요즘은 단골손님도 부쩍 늘어서 더 그러신 것 같아.”
은성의 부모님 두 분은 시내에서 국밥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괜찮겠지. 불안하면 휴지를 바둑이처럼 부리면 되고.’
사실 이제 이사를 갈 필요도 그다지 없었다. 은성이 위험한 폐던전을 모두 처리해버렸으니까.
“포션은 언제부터 팔 거야?”
아랑이 물었다.
“일단 벌레들이 안 꼬이게 덩치부터 키우고.”
“벌레?”
“힘이 있어도 이름이 없으면 귀찮은 일에 많이 휘말릴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