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지구는 아르카디아와 달리 은성의 취급이 상당히 평가절하 되어 있었다. 되도록 문제없이 순탄하게 일을 하고 싶은 은성으로선 앞으로 닥칠 시비들을 미끄러지듯 피하고 싶었다.
‘약한 놈들이 죽여 달라고 아우성이라면, 처음부터 못 덤비게 만들어야지.’
길드의 덩치만 제대로 키워도 분노조절장애자들의 절반은 거를 수 있을 것이다. 길드나 단체를 앞세워 지랄하는 놈들을 하도 많이 만나다보니 하게 된 오랜 생각이었다.
“그럼 길드원들을 모집하려고?”
“그래.”
그리고 둘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가정사, 시시콜콜한 농담, 앞으로의 일에 대한 얘기. 아랑은 그 중에서 포션에 가장 관심이 많았다.
* * *
은성은 옷을 쫙 빼입고 행복 부동산으로 향했다. 적당한 건물 옥상에 휴지를 착륙시키고 부동산 건물로 가니 업자의 얼굴이 활짝 만개돼 있었다.
“아이고, 사장님 오셨습니까. 어서 오십시오.”
사전에 얘기했던 건물구매 건이었다.
“땅도 매물을 알아보셨다고 했죠?”
“예예. 이미 다 알아봤습니다.”
업자가 주는 커피를 마시고 은성은 계약서를 작성했다. 머릿속으로 대금을 계산하니 돈에 여유가 있어서 폐던전 인근의 땅들도 구매하기로 했다.
“돈 확인하세요.”
“으허허, 액수 이상 없이 확인했습니다.”
대금을 치르자 업자의 얼굴이 만개하다 못 해 열매까지 맺을 지경이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매물 적당히 또 모이면 얘기해주세요. 수원시에 있는 건물이라면 가리지 않고 전부 구매할 테니까.”
“예,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살펴 가십시오.”
그간 발로 뛰며 살뜰히 매물 정보를 모았는지 이제 수원시에 있는 건물 십 분지 일이 은성의 소유가 됐다. 대부분이 폐던전 근처에 있다고 상대적으로 값이 쌌던 매물들이었다.
‘내가 위험한 폐던전들을 다 공략했으니 이제 입소문만 타면 되겠지.’
가공은 모두 끝냈다. 이제 기존의 가치가 수십 배에서 수백 배 이상 불어날 것이다.
옆에서 휴지가 물었다.
“주인. 건물이랑 땅은 왜 그렇게 많이 사는 거예요?”
“주인 말고 은성.”
“은성. 어쨌든 궁금한 것이에요.”
호칭은 주변을 의식해 이름을 부르도록 미리 가르쳤다.
은성이 말했다.
“수원시 전역을 내 길드 영역으로 만들려고. 내 강함을 보여주기 위함이지.”
물리적인 힘만으로는 간판을 보여주는 것에 한계가 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지만 육체적 힘만으로는 결코 사람들을 많이 모을 수 없다.
‘하지만 돈은 달라.’
재력은 쉽게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힘이다. 돈이 많으면 사람을 쉽게 모을 수 있다. 돈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있다. 그런 세상이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 같아요. 강함을 보여주기 위함이면 그냥 때려 부수는 쪽이 더 편할 것 같은데요.”
“기브 앤 테이크야. 때려 부수면 이쪽도 쳐 맞을 각오해야 해.”
맞아도 아픈 건 아니지만 이쪽은 한 명이고 저쪽은 수가 많다.
게다가 은성은 악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
사람들의 신뢰를 사려면 악인이 돼선 안 된다.
모든 건 은성의 목적과 지금의 사회를 바꾸기 위함이었다.
‘사회유지법? 헌터고시 필기시험? 게다가 헌터와 민간인을 구별하고, 헌터등급으로 헌터들을 차별하는 건 또 무슨 짓거리인지···.’
주먹으로 윗대가리를 협박해 사회를 단시간에 바꿀 수도 있지만 그러면 자신이 아르카디아로 돌아갔을 때 필연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은성은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자신이 없어도 세상이 제대로 굴러가길 원했다.
‘바꾸려면 근본적으로 다 바꿔야 해.’
힘은 충분히 있으니 이제 필요한 건 돈과 사람밖에 없었다. 물론 이것은 그가 가진 목적의 겉치레에 지나지 않았다. 은성은 모든 것들이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움직이길 원했다.
시간이 흘러 던전 보상금을 지급받고 B급 길드의 심사에도 합격했다. 실버스타 길드는 B급 길드가 됐다.
은성은 길드원들을 모집하는 한편, 포션 판매를 개시했다. 저렴한 가격에 각종 포션을 판매하자 대번에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실버스타라고? 처음 들어보는 길드인데?
-힐링 포션, 마나 포션, 심지어 스태미나 포션까지 팔잖아.
-포션을 이 가격에 판다고? 사기 아냐?
처음엔 사람들이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점점 입소문을 타고 민간인부터 헌터사회까지 널리 퍼지면서 사람들은 실버스타 길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은성은 헌터마켓에서만 포션을 팔지 않았다. 포션과 관련해선 제한되는 법이 없는 만큼 독자적인 사이트를 운영해서 민간인에게도 포션을 팔았다.
기존 포션 값의 1/1000도 안 되는 가격에 포션을 판매하니 독점을 하고 있던 길드들은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성소의 샘물에서 포션을 만들어 팔던 다른 길드들은 즉시 대응책을 강구했다.
특히 귀속 해제 포션과 마나 포션을 독점하고 있던 네크로 필리아 길드는 은성의 행보를 처음부터 주의 깊게 보고 있었다.
“큰일 났습니다.”
“또 뭐야.”
부 길드마스터 정건우가 들어와서 소리쳤다.
“저번에 포션을 팔던 게 가짜가 아니라 진짜랍니다.”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야?”
길드마스터 하재팔이 목을 벅벅 긁으며 짜증을 냈다.
자원 관리부의 인원들이 전원 실종 되고 신경이 예민하던 차였다. 쓸 만한 헌터들을 따로 구하지 못해서 임시작전팀을 꾸려 시체들을 구하고 있었다. 경비를 비롯한 엄한 돈이 상당부분 길드금고에서 지출되고 있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주은성 헌터가 운영하는 실버스타 길드 건입니다. 그쪽에서 판매하는 마나 포션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랍니다.”
“뭐? 그게 말이 돼? 그쪽에서 마법사의 성소라도 찾았단 거냐?”
하재팔은 기가 차서 고함을 쳤다. 그들이 아는 포션 제조방법은 오직 성소에서 샘물을 희석시키는 것 밖에 없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효과가 저희 쪽 포션보다 월등하고 가격은 천분의 일 수준입니다.”
“미치겠군. 안 그래도 무법지대 때문에 돈이 많이 들어가는데.”
네크로 필리아 길드는 길드원 전원이 네크로맨서였다. 그래서 무법지대를 정벌하는 데에 시체가 많이 필요했다. 38선 이북의 모든 무법지대에선 고가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으니 정벌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무법지대와 차폐막 안의 안전지대는 아이템 수준이 천지차이였다.
“혹시 우리 쪽 새끼들 중에 내통한 놈이 있어서 포션을 빼돌린 거 아냐?”
“그건 절대 아닙니다. 샘물의 공급량은 지난번과 동일합니다. 실버스타에서 확실히 독자적으로 포션을 만들고 판매하고 있습니다.”
“길마가 주은성이라고 했지?”
“예.”
하재팔은 관자놀이를 톡톡 두들겼다. 그는 헌터회에 속한 1세대 헌터였다. 불과 두 달 전 쯤 회장 유지미로부터 은성을 건드리지 말라는 엄포를 받았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더니. 나라가 망하겠어.’
정건우가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밑에 애들 시켜서 나설까요?”
“다른 길드 놈들은?”
하재팔이 책상을 톡톡 두들겼다. 사실 그게 가장 중요했다. 혼자서 괜히 나댔다간 혼자서 덤터기 쓰기 딱 좋다.
“죽림 쪽에선 무시하고 있고 빌런 쪽에선 짜증내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하지만 나서진 않지?”
“예. 이러다간 포션 시장을 완전히 잃게 생겼는데도 마치 남의 일처럼 가만히 보고만 있습니다.”
“음···. 영악한 새끼들.”
지금껏 발견된 성소는 모두 헌터회의 5대 길드 안에서 분배를 끝냈다. 힐링 포션이 나오는 전사의 성소는 빌런, 스태미나 포션이 나오는 모험가의 성소는 죽림, 마나 포션이 나오는 마법사의 성소는 네크로 필리아에서 소유하고 있었다.
‘그 새끼들도 유지미의 눈치를 보고 있는 거겠지. 아무리 계집이라도 구국의 영웅이니까.’
하재팔은 유지미의 위용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서열 2위 타이거 길드의 길드마스터 김강호가 나서지 않는 것만 봐도 짐작은 갔다. 차폐막이 생기기 전, 혼란스러운 시기에 유지미는 그의 가족들을 죽였다. 하지만 김강호는 복수는커녕 똥강아지마냥 굽실거리고 꼬리를 흔들었다.
“···무서운 계집애.”
“예?”
“아니, 혼잣말이다.”
하재팔은 의자에 몸을 묻고 생각에 잠겼다.
‘그래도 가만히 놔둬선 답이 없다. 눈 감고 있다간 당해. 게다가 주은성, 그 새끼가 성소를 가지고 있는 거라면···.’
한참 만에 하재팔이 입을 열었다.
“건우야.”
“예.”
“나는 손 안 대고 코 풀고 싶다.”
하재팔이 하는 말은 뻔했다.
“알겠습니다. 알아서 준비하겠습니다.”
“이번엔 조용히 가자.”
“조용히요?”
“그래. 아무한테도 안 들키게.”
조심히 움직일 필요가 있나?
의아한 정건우를 보고 하재팔이 웃었다.
* * *
은성은 휴지를 타고 강원도에 와 있었다.
“이곳 대지가 평당 얼마죠?”
은성이 야트막한 산과 넓은 평지를 보며 물었다.
“이곳 말입니까?”
“예.”
업자가 솔직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진입할 도로가 없는 맹지고, 근처에 절벽이나 돌산이 많아서 좀 거시기 합니다. 게다가 사전에 말씀드렸다시피 땅의 노른자 위치에 강철 가시 구렁이가 나오는 언더그라운드가 있어서 솔직히 추천은 안 해드리고 싶고요.”
“그래서 평당 가격이 얼만데요.”
“5천원도 안 합니다.”
은성은 언더그라운드를 구매하기 위해 강원도에 들린 참이었다. 대전과 광주, 부산에 있는 언더그라운드를 구매하고 이곳이 마지막이었다. 하나같이 강철 가시 구렁이가 나오는 땅이었다.
“언더그라운드를 중심으로 모두 구매할게요. 합쳐서 몇 평이죠?”
“예?”
업자가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구매하신다고요?”
“예. 저기 산부터 여기 평지까지.”
“정말 구매하시려고요?”
“예.”
“어디다 쓰시려고요?”
은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궁금한 게 너무 많으신 것 같은데.”
“아하하··· 죄송합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땅을 구매하신다니까 이상해서 걱정이···.”
듣고 있던 휴지가 말을 잘랐다.
“호기심은 단명의 지름길이다. 인간.”
“죄, 죄송합니다.”
업자의 차를 타고 사무실로 돌아온 은성은 그대로 매매계약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업자가 말했다.
“돈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좀 찝찝해서.”
구린 냄새가 난다는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은성은 턱짓으로 휴지에게 명령했다. 휴지가 아공간에서 007가방을 꺼내 책상 위에 펼쳤다.
“귀찮게, 의심이 쓸데없이 많네. 목숨은 하나뿐일 텐데.”
“아··· 죄송합니다. 이상 없군요.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쓸모가 없는 땅을 수천 평이나 구매한다니 의아할 수밖에. 언더그라운드를 배경삼아 전원주택이라도 지을 생각일까? 하지만 전기와 수도부터 모두 새로 설치해야할 텐데? 궁금했지만 업자는 더 캐묻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좋은 하루 되십시오.”
계약을 끝내고 은성과 휴지는 사무실을 나왔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휴지를 탑승하려는데 휴지가 멈칫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