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의 귀환-31화 (31/127)

# 31

“잠깐만요.”

“왜?”

휴지가 갑자기 퀭한 눈으로 은성을 바라봤다.

“마력이 부족해요.”

“마력 고갈?”

“네.”

은성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공간에서 마나 포션을 꺼내 건넸다.

“마셔.”

휴지가 칭얼댔다.

“인간들의 회복수단은 저희 쪽에선 안 들어요.”

“아, 그러냐?”

“네.”

그러고 보니 아르카디아에서 요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종 간에도 각종 물품들의 효과가 극명히 차이가 난다고 했었다. 누군가에겐 약이 되지만 누군가에겐 독이 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몬스터들이 내공심법이나 스킬들을 배우지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 오늘 무법지대 출입을 예약해놨는데.”

“저는 먹는 걸로 마력을 회복해요.”

“먹는 것? 음식으로 회복한다고?”

“네.”

은성은 휴지를 데리고 대로로 내려와 상가를 훑었다. 마침 맞은편에 돼지국밥집이 보였다.

“국밥 먹어본 적 있어?”

“저 인간들의 음식은 먹어본 적 없어요.”

“그럼 이번 기회에 먹으면 되겠네.”

국밥집에 들어가 돼지국밥을 시키니 금세 뚝배기 두 개가 나왔다. 휴지가 간을 보지도 않고 한 입 떠먹었다.

“뜨겁고 맛없어요. 밍밍해.”

“새우젓으로 간을 봐야지.”

은성이 새우젓을 가리키자 휴지가 새우젓을 적당히 넣었다. 다시 한 입 먹고 휴지가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우와, 맛있어!”

“그래, 많이 먹어. 부추도 좀 넣고.”

“뭐지? 왜 이렇게 맛있어졌지?”

그러더니 깍두기도 하나 깨물고 감탄했다.

“이것도 맛있어! 새콤하고 달짝지근해요.”

“응. 많이 먹어.”

“정말요?”

“그래.”

얼마 뒤 은성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후회했다. 주인내외가 나와서 연신 고맙다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어이구, 요즘 장사도 잘 안 됐는데 너무 고맙네. 그 요즘 유행하는 포식스킬인가, 뭔가. 그거지?”

“참한 처자가 참 잘 먹네. 웬만한 집에선 식비 감당이 안 되겠어.”

그들은 지금 이 사태를 스킬의 일종으로 보고 있었다.

휴지가 배를 매만지며 껄껄껄 웃었다.

“내가 원래 좀 잘 먹어요.”

이건 좀 잘 먹는 수준이 아니다. 어떻게 국밥집에서 백만 원이 나올 수 있지? 돈이 아까운 건 아니지만 황당했다.

“너 연비가 너무 안 좋아.”

은성의 말에 휴지가 깔깔깔 웃었다.

아, 한 대 쥐어박고 싶다.

“이제 마력은 다 찼냐?”

국밥집을 나와서 은성이 물었다.

“이제 한 30퍼센트 정도 회복된 것 같아요.”

“거, 효율이 너무 좋아서 눈물 나올 것 같다.”

20년 넘은 중고차보다 연비가 안 좋았다.

‘거의 비행기 연비잖아.’

날아다니니 마력소모가 심한 걸까.

“혹시 다른 마력 충전 방법은 없어?”

“다른 방법이 있긴 한데···.”

휴지는 뒷말을 흐렸다.

“아, 몬스터를 먹는 게 효율이 더 좋은 거냐?”

은성이 기억을 더듬으며 물었다. 그간 던전을 공략하며 휴지는 드문드문 몬스터를 섭취했었다.

“그것도 그렇지만요.”

“그래. 일단 혹시 모르니 음식 좀 더 사가자.”

은성은 편의점을 들려 도시락과 삼각 김밥 등 먹을 것들을 싹쓸이했다. 휴지가 군침을 흘렸다.

“이제 가자.”

“어디요?”

“판문점.”

음식들을 아공간에 넣고 둘은 근처에 있는 건물옥상으로 올라갔다. 은성이 휴지의 등에 탑승하자 휴지가 플라이 마법으로 하늘을 날았다. 둘은 무법지대의 입구로 향했다.

* * *

10년 전 대격변이 발생하고 지상전역에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세상은 아비규환이 되고 사람들은 안전지대로 남하했다.

당시 부산까지 밀렸던 전장은 유지미 헌터의 차폐막 작전으로 숨통이 트였다. 차폐막에 갇힌 몬스터들은 적의가 사라지고 움직임이 둔해졌다.

차폐막을 이용한 사냥으로 성장한 사람들은 헌터로 불리며 전장을 주도했다. 수많은 희생 끝에 끝내 서울까지 수복을 성공했다.

유지미 헌터는 한반도 남한 전역을 차폐막으로 두르는 한편, 곳곳에 생긴 던전에도 차폐막을 설치했다.

그녀는 기존에 있던 휴전선에 차폐막을 이중으로 설치해서 안전을 도모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휴전선 안에서 거주하며 휴전선 밖을 무법지대라고 불렀다.

무법지대로 나가는 입구는 판문점의 널문다리에 위치해 있었다.

“여기가 한국 마석의 30퍼센트를 소모한다는 곳인가.”

은성이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이뤄진 이중 차폐막을 살폈다. 널문다리 앞쪽으로 걸어가자 다수의 헌터들이 보였다. 모두가 무법지대로 나가기 위해 사전예약을 한 헌터들이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관리자가 은성을 맞이했다.

“실버스타요.”

길드 라이센스 카드를 건네자 관리자의 두 눈이 커졌다.

“맙소사. 실버스타의 길마님이 오셨습니까?”

“네.”

“허, 포션은 잘 쓰고 있습니다. 덕분에 요즘 헌터들의 사냥이 얼마나 편해졌는지.”

“별 말씀을.”

주력으로 판매하는 포션 덕에 길드의 인지도가 상당히 커졌다. 관리자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화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그들은 관리자의 행동을 보고 은성을 거물로 인식했다.

“그런데 실례지만 혼자십니까?”

“혼자 다니는 게 편해서.”

“조심하셔야 할 텐데요.”

휴지는 미리 소환해제 해놓았다. 괜히 출입을 거치는데 귀찮아질 것 같아서였다. 차폐막을 관리하는 헌터에게 신분을 확인하고 은성은 적당히 앉아 대기했다.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누가 말을 걸어왔다.

“혹시 5대 길드의 정찰팀이세요?”

예쁘장하게 생긴 젊은 여성이었다.

“아뇨.”

5대 길드는 번뇌, 타이거, 빌런, 네크로 필리아, 죽림이었다.

은성은 당연히 그들 소속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까 관리자 헌터님이 고개를 숙이시던데?”

“아, 같은 동네 동생입니다.”

은성은 거짓말을 했다. 귀찮은 냄새가 났다.

“이상하네. 당신이 더 젊어 보이는데요.”

“제가 좀 동안이라서.”

여자는 꼬치꼬치 캐물었다. 대인관계에 상당한 자부심이 있는 듯했다. 아니면 신경이 굵거나. 그녀는 한참이나 에둘러 말하다가 은성이 계속 툭툭 내뱉자 참지 못하고 핵심을 꺼냈다.

“혹시 저희랑 같이 다니실래요? 저는 미녀길드의 길드마스터 한주희예요.”

한주희가 손을 건넸다. 은성은 손사래를 쳤다.

“싫어요.”

“왜요.”

“혼자가 편해서요.”

은성은 길드원들의 모집 글을 뿌린 후 잠시 숨을 돌릴 겸 무법지대를 구경 왔다. 본격적인 사냥도 아니고 괜히 동료가 있으면 귀찮았다.

‘게다가 딱 봐도 약해보이고.’

탐색 스킬로 확인하니 레벨이 낮았다. 같이 다니면 손해였다. 한주희가 가슴을 쭉 펴고 애교를 떨었다.

“함께 다녀요. 네? 제발. 아잉.”

순간 은성은 속이 울렁거렸다. 참지 못한 그는 속마음을 내뱉고 말았다.

“꺼져.”

“네?”

한주희가 귀를 의심했다.

“꺼지라고.”

“지금 저한테 한 말이에요?”

유체이탈 화법인가.

은성이 한 번 더 인내심을 발휘했다.

“방금 전까지 저와 대화 나눈 사람이 당신 말고 어딨어요. 사람 귀찮게 하지 말고 그냥 가세요.”

“허······.”

한주희는 기가 막혔다. 이런 취급은 태어나서 난생처음이었다.

“지금 저 같은 숙녀에게 제 정신으로 말하는 거예요?”

“그 말 그대로 돌려줄게요. 지금 제 정신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겁니까?”

“미친··· 당신 남자 아니지?”

“아니. 씨발, 진짜.”

한주희는 은성이 가장 싫어하는 부류였다. 자신이 가진 장점을 전 세계 통용의 비자카드처럼 여기는 부류. 사람마다 가진 강점이 다르듯 선호하는 것도 다르다. 당연히 은성은 웬만한 여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그 간단한 상식을 무시하고 있었다.

“꺼져.”

은성이 한 번 더 말했다.

“이, 이······ 너 두고 봐! 나중에 후회할거야!”

한주희가 씩씩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멀어져 갔다.

두고 보라는 사람치고 겁나는 사람 한 명도 없던데.

내면에서 휴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인은 인간여자를 화나게 만드는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저번에 박은애라는 사람도 살기를 뿌리게 만들더니.

‘시끄러. 그리고 주인이 아니고 은성.’

-호칭은 소환수의 강제력 때문에 고치기 힘들어요.

‘에효, 너 좋을 대로 해라.’

액땜한 걸로 치자.

침을 퉤 뱉고 시간을 확인하며 애꿎은 땅바닥을 학대하고 있는데 얼마 뒤 관리자의 안내가 나왔다.

“1분 뒤 차폐막을 개방하겠습니다. 대기해주세요.”

휴전선에 있는 이중 차폐막은 사고를 대비해 하루 두 번만 개방했다. 헌터들이 사전예약을 하고 기다렸다가 몰려서 입장하는 것도 미연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관리자가 말했다.

“빠르게 입장해주세요. 1차 차폐막 30초간 개방하겠습니다.”

위이잉!

1차 차폐막이 걷히고 헌터들이 입구인 널문다리로 향했다. 다리 끝에는 2차 차폐막이 있었다.

“1차 차폐막을 닫겠습니다. 30초 뒤 2차 차폐막을 개방하겠습니다. 대기해주십시오.”

시간이 흘러 1차 차폐막이 닫히자 헌터들은 이중 차폐막을 사이에 두고 다리 위에 갇힌 꼴이 되었다. 이윽고 두 번째 차폐막이 걷히자 입장하는 헌터들과 퇴장하는 헌터들이 교차됐다. 다리에 있던 헌터들은 다리를 건너 무법지대로 향했다.

“모두 무사귀환을 바랍니다. 고생하십시오, 인류의 영웅들이여.”

형식적인 관리자의 인사를 끝으로 은성도 입구에서 멀어져 갔다. 무법지대는 밀림처럼 나무와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이곳이 한국이 맞나, 의심이 될 정도였다.

* * *

무법지대에 막 입성한 한주희는 대발 튀어나온 입으로 투덜거리고 있었다.

“뭐, 저런 사람이 있지? 저 사람이 진짜 맞아?”

“진짜 맞아.”

그녀의 친구이자 길드동료인 최소영이 대꾸했다.

“분명 저 사람이야.”

“어처구니가 없네. 별로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데.”

“내 능력이 이렇게 강한 기운을 발한 건 처음이야. 저 사람이 분명해. 이제 선택권이 없어.”

“후우, 이게 다 내 잘못이지만.”

한주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과소비가 문제였다. 돈 문제만 아니었어도 이런 소규모 인원으로 무법지대를 향할 생각은 하지 못 했을 거다.

최소영이 말했다.

“지금까지 다 맞았어. 이제 따라가면 돼.”

한주희가 은성을 쳐다보다가 놀라서 소리쳤다.

“저 사람 이상한 곳으로 가는데? 어이! 그쪽은 지옥이다!”

“괜찮아. 모든 건 그분의 뜻대로 되는 거니까.”

“아, 그래.”

둘은 은성을 쳐다보며 걸음을 옮겼다.

* * *

‘휴지 소환!’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휴지를 다시 꺼냈다. 휴지가 허리를 튕기며 나타났다.

“으아으으으···! 답답했어요!”

“답답했어?”

“네.”

“소환해제하면 특정한 아공간으로 가나?”

은성도 펫을 키우는 건 처음이라서 잘 몰랐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캄캄한 곳으로 가는데 주인의 오감이 다 느껴져서 기분 나빠요.”

“그건 나도 기분 나쁜데. 너 되도록이면 항상 소환해놔야겠다.”

감정도 공유하고 사생활도 공유한다. 하지만 크게 불쾌하지는 않았는데 테이밍 스킬의 특성 탓인지, 휴지가 자신의 손바닥 위에 있기 때문인지 이유를 특정할 수가 없었다.

“오오!”

그때 휴지가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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