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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의 귀환-33화 (33/127)

# 33

은애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실버스타의 길드원 모집은 조건이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무려 B급 길드. 그러나 일체의 능력을 보지 않고 순수 면접으로 채용. 게다가 월 천만 원의 고수익 보장에 레어 등급 이상의 장비 아이템 무료 지급. 심지어 원하는 사람에 한 해서 수원시 내에 무상 주택까지 제공했다.

“10만 명이면 거의 F급 전체 인구잖아. 쓸 만한 사람은 좀 있어?”

“네. 그래서 그 중에서 오빠가 저번에 말하신 대로 100명 정도 추렸어요.”

역시 은애는 눈치가 빨라서 일머리가 있었다. 그녀가 서류뭉치를 들고 왔다.

“여기서 추리시면 돼요.”

“모두 F급 헌터들이지?”

“네.”

“아직 길드를 거친 적은 없고?”

“네. 확실히 아직 길드에 가입한 적이 없는 사람들만 추렸어요.”

“고마워.”

은애가 자기자리로 돌아가자 아랑이 의자를 끌고 왔다. 그녀는 책상 위의 서류뭉치를 훑으며 물었다.

“근데 왜 F급 헌터만 받는 거야?”

“대부분이 아직 백지 상태니까.”

“백지 상태?”

“키울 거면 헌 것보단 새 것이 좋아. 붓 칠이 많아서 거무죽죽한 도화지보단 백지상태의 도화지가 음흉한 구석이 적거든.”

“흐음. 그래도 명색이 헌터 길드인데 경력직이 더 좋은 거 아냐?”

아랑이 알 듯 모를 듯 입술을 내밀었다. 은성은 탐색스킬로 은애와 아랑의 레벨을 확인했다.

[주아랑 LV 310]

[박은애 LV 277]

자신과 만난 이후 전폭적인 지원 아래, 그녀들의 레벨은 단 기간에 2배 이상 늘어나 있었다. 특히 박은애는 3.5배 정도 증가한 상태였다. 모두가 수억 단위의 템빨 덕분이었다.

“모종을 사는 것보다 씨앗을 사서 심는 게 경제적으로도 저렴하고 친밀감이 있어.”

“하지만 자라는데 오래 걸리잖아?”

“비료만 적당하면 꼭 그렇지도 않아. 너와 은애가 그 증거고.”

은성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서류뭉치를 확인했다. 당연히 모든 신규 길드원을 F급 인원으로 모집할 생각은 없었다. 휴대폰을 열어 연락처를 확인하니 강철 길드의 길드마스터 차돌파가 보였다.

“그보다 너 포션은 어떠냐? 비밀 엄수는 잘 되고 있냐?”

“응. 아직까지 만드는 건 나랑 은애 언니만 만들고 있어.”

“지금까지 찾아온 사람은?”

“아직은 없어.”

“다행이네.”

다른 길드나 국가기관에서 시비를 걸어올 줄 알았는데 기우였나.

은성은 뚜둑거리며 목을 풀었다. 이제 두 번째 단계로 진입할 차례다.

* * *

5일 후, 길드사무실의 이전을 끝내고 은성은 차돌파와 만나기 위해 시내로 나갔다. 약속을 한 커피숍에 들어가니 차돌파가 먼저 와 있었다.

“아이고, 은성씨. 오셨습니까.”

차돌파가 자리에 일어서서 넙죽 고개를 숙였다.

“잘 지내셨어요?”

“예, 예. 물론입니다. 은성씨 덕분에 제가 요즘 너무 잘 살고 있습니다.”

달달한 음료를 시키고 둘은 얘기를 나눴다. 사사로운 대화를 이어가다가 은성은 본론을 꺼냈다.

“부탁이 있어요.”

“뭡니까, 은성씨. 말씀만 하세요. 제가 다른 사람 부탁은 몰라도 은성씨 부탁은 다 들어줄 수 있습니다.”

“차돌파씨를 저희 길드에 영입하고 싶어요.”

“네? 저를 말입니까?”

차돌파가 눈을 부릅떴다.

“예.”

은애는 능력이 있지만 경험이 없고 동생 주아랑은 모든 게 평균치라서 어중간했다. 은성은 유능하고 경험 있는 신하가 필요했다.

저 혼자 완벽한 사람은 무엇 하나 완성시킬 수 없다. 부족한 부분은 과감성 있게 더 잘하는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 그리고 지금 은성에게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저번에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헌터생활을 관뒀습니다. 지금은 길드도 간판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고요. 저 자신도 던전 하나를 연금처럼 믿고 생활하고 있는데, 흐음.”

의지가 없어보였다. 불씨가 꺼진 것이다. 죽은 불씨를 피우는 건 간단하다. 은성은 아공간에서 007가방을 꺼냈다.

“허··· 이것은···.”

가방을 펼치자 차돌파가 기겁했다. 그의 동공이 황금색 인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래도 안 됩니까?”

차돌파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길마님! 당장 가입하겠습니다.”

거절하기엔 너무 많은 돈이었다.

* * *

신규 길드원의 모집이 끝났다. 그들에게 줄 아이템들은 휴지로부터 충당하기로 했다.

“내 아공간이 텅텅 비었어요.”

길드건물 근처 은성의 집. 지하창고에 휴지의 아공간을 모두 비우니 규모가 엄청났다. 갖가지 아이템들로 창고가 가득 찼다.

“이것도 분류하려면 한 세월이겠다.”

“배고파요.”

“그래. 일단 뭐 좀 먹고 하자.”

출출한 김에 치킨을 시키고 기다렸는데 10분쯤 지났을 때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초고속 배달인가 싶어 인터폰과 카메라로 확인해보니 대문 앞에 웬 검은 양복의 사내 두 명이 서 있었다.

‘치킨이 아니잖아.’

아니, 하나의 홍보 이벤트일 수도 있다. 은성이 의문스러워 하고 있는데 초인종이 또 다시 울렸다. 더 참고 있기도 힘들어 일단 인터폰을 쥐고 물었다.

“누구세요?”

-서울시 헌협본부에서 나왔습니다. 관리부 소속 김수일 관리관입니다.

전혀 뜻밖의 말이 나왔다. 남자가 카메라에 대고 신분증을 보여주고 있었다.

서울시 헌터협회 본부? 거기서 왜 수원까지 왔을까.

“무슨 일이시죠?”

-사회유지법과 관련해서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일단 문 좀 열어주세요.

은성은 비로소 깨달았다.

역시 국가기관에서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성소도 없는 길드가 포션들을 무지막지하게 판매하니 그 진의가 궁금하겠지. 은성으로선 기다리던 바였다.

“휴지.”

“왜요.”

“돈 줄 테니 치킨 먹고 기다리고 있어.”

휴지를 남겨두고 은성은 대문으로 나갔다.

“무슨 일입니까?”

김수일이 말했다.

“주은성씨 본인 되십니까?”

“예.”

들고 있던 서류로 확인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사회유지법의 헌터 재능기부 법에 따라 현 시간부로 저희와 함께 동행해주셔야 되겠습니다.”

“재능기부 법이요?”

“예.”

그러고 보니 은애에게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은성은 웃음을 참고 물었다.

“제가 무슨 재능이 있다고 기부를 받겠단 거죠?”

“시치미 떼셔도 소용없습니다. 요즘 어딜 가도 실버스타 길드를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현재 포션 시장을 꽉 붙잡고 계시지 않습니까.”

“역시 포션 때문이었나.”

“억울하다는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이게 다 국가의 공익을 위해서입니다.”

은성은 말아 쥐었던 주먹을 풀었다. 만약 자신의 능력과 관련이 있다면 묵사발을 만들었겠지만 포션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이 기회에 부른 놈 얼굴을 봐야지.’

지금의 상황은 예상하던 바였다.

옆에서 다른 관리관 이경호가 물었다.

“순순히 응하시겠습니까?”

“순순히 안 응하면요?”

궁금해서 물었다.

“사회유지법에 따라 요청에 불응 시 저희 쪽에서 무력대응이 가능합니다.”

순간 은성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풉 하고 크게 웃었다. 김수일과 이경호의 얼굴이 성난 불독처럼 한껏 일그러졌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틱 장애가 있어서. 어릴 때 뭘 잘못 먹었는지 헛소리만 들으면··· 흐흠.”

김수일과 이경호는 무의식적으로 담벼락에 설치된 CCTV들을 쳐다봤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응하시겠습니까?”

“응하죠. 뭘 하면 됩니까?”

“일단 저희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은성은 순순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 어두운 골목길로 걸어가자 검은색 승합차가 있었다. 자동차의 뒷좌석에 탑승하니 검은 양복의 사내 두 명이 은성의 팔을 붙잡았다.

“가만있어!”

“움직이지 마!”

그들은 양옆으로 팔짱을 껴서 은성을 구속했다.

은성이 황당해서 물었다.

“이건 뭡니까? 환영식?”

운전석에 앉은 김수일이 말했다.

“지금까지 저항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저희 직원들이 좀 예민한 편입니다. 이해해주십시오.”

은성은 쓰게 웃고 팔에 힘을 줬다. 뚜두둑 뼈 부러지는 소리가 차량 안을 메웠다. 별로 힘을 주지도 않았는데 팔을 붙잡았던 사내들이 세상 떠나가라 울부짖었다. 엄살이 심했다.

“갸아아아악! 내 팔! 팔! 팔!”

“아아악! 자, 잠깐! 잠깐만! 손가락! 손가락!”

슬쩍 힘을 풀자 양옆의 사내들이 기겁하며 잡았던 팔을 뗐다. 은성은 지나가듯이 말했다.

“제가 수줍음이 많아서 모르는 사람이 몸에 손을 대면 저절로 힘이 들어갑니다. 이해해주세요.”

김수일이 돌아보며 말했다.

“이해합니다.”

김이 팍 샜다. 뭔가 시비를 더 걸어올 줄 알았는데 김수일은 담담하게 넘어갔다. 역시 부하의 고충은 상사가 알 바 아니란 건가.

부우웅!

이윽고 차가 미끄러지듯 도로 위를 달렸다. 수원시를 지나서 고속도로를 한창 통과하고 있는데 김수일이 말했다.

“상당히 의외시네요.”

“뭐가요?”

김수일이 전방을 확인하며 뺨을 긁었다. 도로 위에는 개미새끼 하나 보이지 않았다.

“보통 재능기부 요청 시에 반항도 하고 쌍욕도 내지르고 심한 경우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은 너무 순순히 응해주셔서요.”

김수일이 호주머니에서 장전해놨던 권총을 꺼냈다. 헌터 마취용으로 특수 제작된 총이었다.

“그래서 문제가 있을 때마다 이 총으로 탕! 하고 쏩니다. 웬만한 헌터도 이 마취 총 앞에선 맥을 못 추리니까.”

그러더니 차를 멈추고 은성을 향해 총을 겨눴다. 은성이 웃었다.

“쏘려고?”

“그럴 리가.”

김수일은 싱겁게 호주머니에 총을 도로 집어넣었다.

“쐈으면 당신 죽었을 거예요.”

은성이 웃으며 말하자 김수일은 그 웃음을 농담으로 여겼다.

멈췄던 차가 다시 도로 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 * *

도착한 곳은 낡은 산골짜기에 위치한 폐건물이었다.

“여긴 서울이 아닌데?”

“원래 군 시설이 있던 곳입니다. 대격변 이후 이렇게 건물 하나만 남았지만.”

차에서 내리니 김수일과 이경호가 안내했다. 건물 안에 들어가자 곳곳에 폐자재와 부서진 책걸상, 쓰레기 따위가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한 것과 취급이 많이 다른 것 같은데.”

“일단 따라와 주십시오.”

긴 복도를 지나서 맨 마지막 문을 열자 좁은 사무실이 보였다. 사무실의 가운데에는 책상과 의자가 있었고, 그 뒤에는 문과 커다란 직사각형 거울이 있었다.

“저 사람들은 누굽니까?”

은성이 거울을 보며 물었다. 특수처리된 거울이라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없었지만 은성의 감각은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

김수일은 전혀 다른 말을 했다.

“여긴 CCTV같은 일체의 감시 시스템이 전혀 없습니다. 경기도 외곽의 산골짜기라서 휴대폰도 터지지 않고요. 심지어 몇 년 전까지 군사시설로 쓰인 덕에 일반 인공위성에서도 식별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오래 살고 싶으면 말조심하십시오.”

은성이 설마하면서 보고 있을 때 사무실 벽면의 문이 열렸다.

“실버스타의 길드마스터 주은성씨?”

선이 옅고 푸근한 인상의 남자였다.

“그런데요?”

“반갑습니다. 서울시 헌터협회본부 관리부 소속 구창렬 관리장입니다.”

구창렬은 은성을 책상이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은성을 의자에 앉히고 자신도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김수일, 나가서 기다리고 있어.”

“예.”

김수일이 문을 닫고 나가자 사무실엔 은성과 구창렬만 남았다. 구창렬이 서류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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