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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의 귀환-34화 (34/127)

# 34

“은성씨. 여기 왜 오셨는지는 아십니까?”

“대충 압니다.”

“그럼 얘기가 빠르겠군요. 아시다시피 은성씨는 사회유지법의 헌터 재능기부 법에 따라 이곳에 왔습니다. 대한민국의 헌터라면 국가를 위해, 국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시 재능을 필히 기부해야하니까요.”

은성은 즉시 본론을 꺼냈다.

“그딴 개소리는 이미 알고 있고 용건이 뭐죠.”

“아시다시피 포션 제조법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서류를 펼쳤다.

“지금까지 5대 길드에서 포션을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은성씨가 혜성처럼 등장해서 포션 값이 유례없이 싸졌고요. 저희 쪽에서는 은성씨의 능력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 최근 포션의 판매 개수를 조사해보니 성소를 이용하는 건 아니신 것 같은데 혹시 능력입니까?”

“능력?”

“예. 포션 제조 스킬이나 뭐 비슷한 고유의 능력인지 궁금하다는 겁니다. 회복계열의 엑스트라 스킬을 가지고 있는 헌터도 있으니까요.”

은성은 웃었다. 포션 제조법을 말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갈 줄 알고 미리 강철 가시 구렁이가 나오는 언더그라운드의 구매를 끝냈다.

‘이제 강철 가시 구렁이는 모두 나를 거칠 수밖에 없지.’

상대가 포션 제조법을 알게 된다하더라도 제작에는 강철 가시 구렁이의 시체가 꼭 필요하다. 그러니 도리어 언더그라운드의 입장수익을 크게 얻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짜로 가르쳐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내가 얻는 이득은?”

구창렬이 목에 힘을 줬다.

“이해를 못 하신 것 같은데 저는 부탁이 아니라 이행을 명령하고 있는 겁니다.”

“명령? 명령은 강한 쪽에서 하는 건데.”

은성은 손가락을 세워 책상을 살포시 눌렀다. 책상에 손가락크기의 구멍이 뚫렸다.

“지금 국가기관을 상대로 협박하는 겁니까?”

“협박은 당신이 하는 게 협박이고.”

“저는 국민의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고 있는 겁니다.”

“나도 소유자로서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고 있어. 대가가 있어야 가르쳐주든가, 말든가 할 거 아냐? 맨입으로 알고 싶다고? 양아치냐?”

구창렬이 타이르듯이 말했다.

“모두가 공익을 위해서입니다. 사회유지법에 따라 저희 쪽의 요구에 불응할 시 무력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대응해 봐.”

은성이 강하게 나오자 구창렬은 실눈을 독사처럼 떴다.

“계속 이렇게 나오시면 무력대응과 더불어 징역형을 사실 수도 있습니다. 헌터 재능기부에 반발할 시 최소 징역 10년입니다.”

“혓바닥만 길군.”

“미친 새끼.”

구창렬이 참지 못 하고 품에서 권총을 꺼냈다.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탄환을 발사했다.

탕!

놀랍게도 은성은 총알을 맨손으로 잡았다.

“확실히 크기도 크고 뜨겁네.”

“어, 어떻게···.”

특수 제작된 총이라더니 탄환크기부터 무식하게 컸다. 은성은 힘을 실어 구창렬에게 그대로 탄환을 돌려줬다. 구창렬의 머리에 구멍이 뚫렸다.

뻐억!

놈은 흰자위만 보이게 눈을 부릅뜨더니 바닥에 쓰러져 발작을 했다. 은성은 그의 이마에 힐링 포션을 꺼내 부었다.

“아직 죽으면 안 되지.”

피가 멎고 상처가 회복됐다. 하지만 머리에 탄환이 박힌 구창렬은 정신을 차리지 못 했다. 탐색 스킬을 사용해 확인해보니 박힌 탄환이 두개골 안에서 산산조각 나있었다. 탄착 시에 내부에서 폭발하는 탄환인 듯했다.

“하, 재밌네. 이딴 걸 사람한테 발사한다고?”

구창렬은 몸을 부르르 떨기만 하고 대답을 하지 못 했다. 은성은 관심을 돌려 거울 앞에 섰다. 딱밤을 때리듯 거울에 손가락을 튕기자 단 일격에 거울이 조각조각 부서지고 숨어있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으윽! 뭐야!”

“이 씨발!”

은성이 물었다.

“여기서 머리가 누구냐?”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날 부른 새끼가 누구야?”

“내가 불렀습니다.”

“협회장이냐?”

은성이 사내를 보고 물었다.

“아닙니다. 정건우라고 합니다.”

앞의 상대들과 달리 눈앞의 상대는 소속을 말하지 않았다. 이름조차 은성의 으름장에 얼떨결에 말한 듯했다.

“네가 날 불렀냐?”

“그렇습니다.”

“궁금한 게 있어.”

“뭡니까?”

“이딴 개 같은 법이 어떤 체계로 시행되는지 일단 궁금하고, 누가 내 재능을 국가에 필요하다고 판단했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정건우는 대답 대신 곁눈질로 구창렬을 쳐다봤다. 구창렬은 뇌가 완전히 찢겨졌는지 저능아가 돼 있었다.

“이건 정당방위다. 쳐 맞을 짓해서 쳐 맞은 거야.”

은성이 끼어들었다. 정건우는 고개를 돌리고 생각에 잠겼다. 길드마스터가 말하길 은성을 자극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고민 끝에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끊긴 대화를 이어가죠. 대가를 지급하겠습니다.”

“대가?”

“예. 포션 제조에 대한 비밀과 권한을 넘겨주시면 여기 이 자리에서 1000억을 지급해드리겠습니다. 물론 지금의 소란들도 잠재워 드리고요.”

“1000억? 고작?”

은성이 고개를 흔들고 검지를 치켜세웠다.

“최소 1000조는 받아야겠는데.”

정건우는 대번에 뜨거운 숨을 훅 들이켰다.

“미친 새끼. 말이 안 통하는 놈이었군.”

그는 지팡이를 꺼내 쥐었다. 주변의 사람들도 그를 따라 전투태세를 취했다.

“사실 우린 네크로 필리아 길드 소속이다.”

“네크로 필리아? 헌협 관리부 소속이라며?”

은성은 스스로 묻고 스스로 깨달았다.

“아, 어쩐지 서로 붙어먹고 있던 거였나.”

“그래.”

“너무 순순히 알려주는 거 아냐?”

“어차피 넌 여기서 죽을 테니까.”

정건우가 마법을 외쳤다. 여성 중 한 명이 탄산수처럼 끓어올랐다. 전신의 뼈가 튀어나오고 속살이 울긋불긋 솟더니 흉측한 모습으로 변했다. 튀어나온 뼈들이 고슴도치 같은 형태를 만들고 있었다.

“악취미로군. 같은 동료를 제물로 삼다니.”

“애초에 죽은 시체였다.”

“사이코 새끼. 그럼 더 병신이잖아. 평소에 시체를 데리고 다닌다는 거 아냐?”

정건우가 소리쳤다.

“모두 저 새끼 족쳐!”

사람들이 은성을 덮쳤다.

은성은 탄지공으로 괴물부터 승천시켰다. 그리고 탄지공을 기관총처럼 난사했다. 빛의 줄기가 소나기처럼 쏟아져 사람들의 몸을 속속히 관통했다. 정건우 혼자 남는데 5초도 걸리지 않았다.

“너희들은 여기서 죽는 게 인간사회에 이득일 것 같다.”

정건우는 뼈로 만든 갑옷을 두르고 있었다.

“씨발··· 건들지 말라는 게 이런 이유였나. 꼰대 새끼 가르쳐주려면 제대로 가르쳐줄 것이지.”

“병신.”

은성의 주먹이 정건우의 머리를 강타했다. 머리가 맥없이 직각으로 꺾이고 코에서 코피가 세차게 흘렀다.

“썩은 생선 같은 새끼들.”

은성이 복도로 나와서 창밖을 보니 김수일과 이경호가 보였다. 그들은 차 앞에서 다른 사내들과 히죽거리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공익을 들먹이더니. 결국 지들 뱃속 채우려던 거였나.”

흔적을 남기면 안 된다. 은성은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 * *

“저희가 잘 하는 걸까요?”

이경호가 담배연기를 내뿜고 물었다.

“이제 못 먹어도 고다. 어차피 그대로였으면 정년쯤에도 만년 7급 관리관이야. 낙하산 새끼들만 진급 좆나 하니까.”

김수일이 애꿎은 땅바닥을 학대하며 침을 뱉었다. 희끗한 세치머리카락이 유난히 돋보였다.

“저는 좀 불안합니다.”

“왜.”

“분명 공문으로 내려오길 절대 손대지 말라고 한 인물 아닙니까. 아무리 대한민국 5대 길드라지만 믿고 탈만한 동아줄일까요?”

“걱정이 많으면 아무것도 못 해. 기회는 두 번 오는 게 아냐. 얼른 손 털고 빨리 진급하려면 어쩔 수 없어.”

“맞는 말이지만 그래도 찝찝합니다.”

“이번 일만 잘 되면 이런 더러운 꼴도 마지막이다.”

수개월 전 유지미 헌터의 엄포에 따라 협회 뒷 라인을 통해 은성에 대한 공문이 이미 내려온 상태였다.

<절대 건드리지 말 것.>

그런데 며칠 전 네크로 필리아 길드에서 관리부에 몰래 접선을 해왔다. 상부의 지시와 상충된 의견이라 고민하고 있는데 네크로 필리아에서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관리장은 뒤늦게 은성의 배경을 조사하고 뒤탈 없는 건이라 여겨 덥석 물었다.

“한 두 번 하는 것도 아니잖나. 대상이 바뀌었을 뿐이야.”

“소문으로는 헌터회가 직접 관여돼 있다는 말이 있어서···. 혹시 주은성 그 사람이 그쪽 라인이 아닐까요?”

“소문이 왜 소문인 줄 아나?”

김수일은 추측을 일축하고 담배꽁초를 던졌다.

“개소리라서 소문인 거야.”

그리고 품에서 다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그도 말은 무심하게 했지만 마음은 초조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아, 라이터가 없다.”

바지 주머니와 외투의 앞섬을 톡톡 두들겼다.

“경호야, 나 불 좀.”

그런데 옆에 선 이경호는 말이 없었다.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니 새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벌벌 떨고 있었다.

“뭐, 왜?”

“어, 어, 어······. 뭐야.”

급기야 뒤에서 다른 직원들도 얼빠진 소리를 냈다. 김수일이 몸을 틀자 이경호 뿐만이 아니었다. 직원들 모두가 파리한 낯짝으로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하, 뭐야? 개꿀잼 몰카냐?”

황당해서 이경호를 툭툭 치는데 뒤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된 거였나. 내부가 곯아 있을 줄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데.”

김수일이 즉시 등을 돌리자 은성이 서 있었다.

“뭐야. 네크로 쪽에서 벌써 일을 끝낸 거야?”

그런데 시선을 내리자 은성의 오른손에 덜렁거리는 게 보였다. 어두워서 잘 안 보였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관리장 구창렬의 머리였다.

“이! 이런 미친 새끼! 그건 뭐야!”

“뭐긴 당신 대장 머리지.”

은성이 축구공을 차듯 구창렬의 머리를 찼다. 이경호가 날아온 머리에 코를 맞고 기겁했다.

“으, 으아아아아아···!”

“설마 당신이 그런 거야?”

담배를 뱉고 김수일이 물었다.

“그래. 내가 그랬다.”

“당신 제 정신이야!? 협회소속 관리장을 죽였다고?”

“죽이면 안 되나? 왜?”

너무도 태연하게 물 흐르듯이 물어서 순간 김수일은 자신의 상식을 의심했다. 하지만 정의는 이쪽이고 범죄는 저쪽이다.

“죽이면 안 되는 게 당연하잖아!”

“시끄럽게.”

은성이 다가오자 김수일이 소리쳤다.

“네크로 필리아 놈들은 어딨어? 설마 네놈이랑 네크로 필리아랑 한통속이었나?”

“뭐래.”

“멈춰! 움직이지 마!”

하지만 은성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다가왔다. 김수일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사회유지법 3조 4항! 헌터가 관리관에 상해를 입힐 시 즉각 처벌이 가능하다! 모두 사격준비!”

김수일의 신호에 직원들이 총을 꺼냈다. 보유한 스킬들도 있었지만 특수 제작된 총이 더 믿음직했다.

“죽여!”

권총들이 불을 뿜었다. 벼락같은 총성이 산골짜기를 울렸다. 은성은 날아오는 탄환에 맞서 탄지공을 점점이 날렸다. 허공에서 총알들이 폭죽처럼 터졌다.

“웬만한 헌터는 맥을 못 추린다더니. 그냥 보통 총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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