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의 귀환-35화 (35/127)

# 35

“더 쏴! 죽여도 괜찮다! 내가 책임진다!”

김수일의 불같은 호령에 탄환세례가 이어졌다. 은성은 몸을 움직여 단숨에 김수일의 앞에 섰다. 김수일의 두 눈이 초점도 없이 세차게 흔들렸다.

“어, 어느 틈에!”

은성은 일격에 그의 머리를 깨부쉈다. 두개골이 갈라지고 피분수가 솟구쳤다. 대상을 바꿔 고개를 돌리니 다른 직원들이 고함을 치며 총을 쏘고 있었다.

“아프진 않은데 간지러워.”

모기에 톡톡 쏘이는 기분이었다. 은성은 날아오는 탄환을 손바닥으로 쳐내며 묵묵히 다가갔다. 뒤에서 이경호가 단검으로 목을 찔렀다.

“뒤져!”

하지만 도리어 칼날이 부서졌다.

“이럴 수가! 내 레어 나이프가···!”

“이름만 레어인 짝퉁인가 보지.”

퍼억!

“갸아아아악!”

이경호를 날려버리고 은성은 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주웠다. 눈대중으로 조준하고 총을 쏘자 탄환이 날아갔다. 날아간 총알은 이경호의 허벅지 사이를 훑고 지나갔다. 이경호가 낭심을 움켜쥐며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아아악! 개자식아!!”

“아, 마취 총이 아니었나?”

생김새를 보고 김수일이 들고 있던 마취총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어쨌든 전투불능은 마찬가지라 이경호에서 관심을 돌려 몸을 틀었다. 이제 남은 놈들은 살려 둘 필요가 없다.

“어?”

발이 안 움직여 아래를 쳐다보니 어느새 발목이 땅바닥에 움푹 먹혀 있었다. 같잖은 수작을. 남은 놈들이 시간을 벌기 위해 발악한 게 분명했다.

“빨리! 빨리!”

“찾았어!”

고개를 들자 김수일의 시체를 뒤지는 놈과 차량 앞에 서 있는 놈이 보였다.

차를 타고 도주할 셈인가?

당연히 가만히 내버려둘 은성이 아니었다. 은성은 탄지공을 날려 둘의 머리를 꿰뚫었다. 뇌를 잃은 시체들이 볼품없이 고꾸라졌다. 은성은 시선을 거둬들이고 이경호에게 다가갔다.

“으, 으, 으아아아···!”

이경호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핏기 없는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낭심에서 흘러나온 피가 길을 만들고 있었다.

“살고 싶나?”

“사, 살려 주세요···! 살려주십시오!”

머릿속에 처절한 생존욕의 본능만이 남았다. 이경호가 엉덩방아를 찧으며 덜덜덜 떨자 은성은 힐링 포션을 꺼내 그의 낭심에 부었다. 피가 멎고 상처가 나았다.

“뭣 좀 물어보자.”

“으으으으···.”

상처가 회복됐지만 공포는 그대로였다.

“위에서 날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고?”

“예, 예···.”

“누가?”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공문이 내려오면 기안만 넘기는 보직이라서···. 위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일 겁니다.”

은성이 그의 눈을 마주봤다.

“아까 헌터회라는 건?”

“허, 헌터회는 1세대 주력 헌터들의 모임을 말하는 건데··· 제가 알고 있는 건 딱히 없습니다. 그냥 그쪽에서 당신을 건들지 말라고 했다는 소문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소문이고···.”

“그래?”

이럴 줄 알았으면 김수일을 살려둘 걸 그랬나. 유약해보여서 이쪽을 선택했는데.

“마지막으로 하나 더 묻는다.”

“예, 예···.”

“네크로 필리아에서 이번 일을 혼자 작당한 걸로 봐도 되나?”

이경호는 눈을 부릅뜨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자신에게 책임이 없다는 구실을 상대가 직접 말해주고 있었다.

“예, 예··· 이번 일은 모두 네크로 필리아에서 강압 쪽으로 시킨 겁니다. 저희는 시킨 것을 한 죄밖에 없어요.”

“좋아, 그럼 옷부터 갈아입어라.”

은성이 아공간에서 옷가지를 꺼냈다. 던전을 순회할 때 넣어두었던 여분의 옷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시체들을 뒤지니 차키와 신분증이 나왔다. 은성은 그것들을 챙겼다.

“이제 이곳 현장을 치워야 하는데.”

생각해둔 바는 있었다. 은성은 집에 남겨져 있을 휴지를 소환해제하고 기다렸다가 다시 재 소환했다. 마나가 훅 감소하면서 휴지가 나타났다.

“쓰으으읍······ 뭐야?”

휴지가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은 사람처럼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잠을 자다가 소환을 당했는지 눈은 풀려있고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속옷차림이었다.

“···뭐예요, 주인? 여긴 어디에요?”

“시체 좀 처리해줘.”

“에엥···?”

휴지가 황당해서 굳듯이 섰다. 입술이 송곳니처럼 삐쭉 튀어나왔다. 치킨을 먹고 잔 탓에 입가는 기름으로 번질거리고 있었다.

“치킨은 맛있게 먹었어?”

휴지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또 사줄게. 시체 좀 치워줘.”

은성은 휴지를 남겨두고 차량에 탑승했다. 이경호가 운전석에서 운전을 하자 자동차가 숲속으로 사라졌다. 휴지는 멀어져 가는 자동차를 멀거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 * *

“헉!”

정건우가 눈을 떴다. 은성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그는 살아있었다.

“쿨럭! 케헥! 켁! 켁! 씨발!”

그는 기침을 하며 피를 한 움큼이나 토했다. 시체에 자신의 의식을 투영하는 사자빙의술(死者憑依術)의 후유증이었다.

“후욱후욱, 진짜 이 지랄 맞을 고통만 아니면 자주 쓰는 건데.”

시체에 빙의한 상태로 은성을 만났기에 살아남았다. 그의 본체는 길드 건물에서 자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새끼 대체 정체가 뭐야.”

정건우는 입가의 피를 훔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대한민국 5대 길드는 인류의 최상위권에 속한 그룹이다. 그 중 네크로 필리아는 4위로 평가받는 길드로, 길드의 2인자 정건우는 나름 실력에 자부심이 있었다.

‘아무리 빙의 상태에선 능력이 감소한다지만 이 내가, 그 정도로 밀릴 수가 있나?’

솔직히 이해가 안 됐다. 상대가 손가락을 몇 번 튕기자 시체들이 다 죽었고, 주먹 한 방에 목이 꺾여서 빙의가 풀렸다. 심지어 공격을 맞을 때까지 움직임도 제대로 파악 할 수 없었다.

‘이럴 게 아냐. 당장 알려야 해.’

세수를 하고 입가의 피를 닦은 정건우는 곧장 전화를 했다. 시간이 늦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주은성이란 놈이 생각보다 위험한 놈이란 걸 한시바삐 알려야 했다.

* * *

네크로 필리아의 길드 건물은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해 있었다. 도심 한 가운데 쭉 뻗은 건물은 지상보다 하늘이 더 가까울 듯 엄청나게 높았고 옆으로 퍼진 덩치도 어마어마했다.

늦은 시간에도 일하는 사람이 많아서 건물 창가는 환했고 건물의 입구도 활짝 열려있었다. 건물지하에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오프라인 매장도 있어서 1층 데스크 앞까지는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었다.

“믿는다. 사회유지법.”

은성이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이건 실패할 겁니다. 성공할 수가 없어요···.”

이경호가 죽으러가는 사람처럼 힘없이 대꾸했다.

“왜?”

“네크로 필리아의 수뇌부들에게 사회유지법으로 재능기부를 요구하라뇨. 위에서 받은 공문도 없는데 재능기부를 요구할 수가···.”

은성이 말을 잘랐다.

“나는 공문이 있어서 재능기부를 요구했나? 상부에서는 날 건들지 말라고 했는데, 네크로 필리아 쪽의 요구를 듣고 날 야산의 폐건물로 데려간 거 아냐?”

이경호는 할 말이 없었다.

“일 크게 만들기 싫다. 도시 한복판에서 건물 몇 개를 부술 순 없어. 나쁜 새끼들만 잡아서 족치면 돼.”

“네크로 필리아와 싸우실 생각입니까?”

“싸우긴. 일방적으로 데려가서 학살하는 거지. 그것도 곯아터진 놈들만 추려서.”

공포가 옅어지고 이성이 차츰 돌아오면서 이경호는 계속 딴지를 걸었다.

“네크로 필리아는 한국 4위의 길드예요. 사회유지법이 먹힐 수가 없습니다. 특히 헌터의 인권을 묵살하고 강제로 국가를 위해 이용하는 재능기부는···.”

은성은 들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재능기부에 불응 시 무력대응이 가능하다.”

“반발이 있을 겁니다.”

“애국심이 있으면 반발을 못 하겠지. 딱 봐도 대격변 이후로 나라 돌아가는 꼴이 지들 입맛대로 만든 유사국가 수준인데 애국심이 없겠냐?”

“영장도 없고··· 게다가 지금은 시간이 늦었어요.”

“나도 마찬가지였어. 치킨 기다리고 있는데 영장 없이 아홉시에 쳐들어왔잖아.”

더 이상 반박할 근거가 없자 이경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살고 싶어요. 네크로 필리아를 건드리면 이 땅에서 살아갈 수가 없어요.”

“살고 싶어?”

“예.”

“그럼 처음부터 무고한 시민을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하아···.”

이경호가 한숨을 내쉬었지만 은성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들어가자마자 재능기부 법으로 길마놈부터 소환해봐. 반응이 궁금하니까.”

은성은 미리 준비한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하아··· 알겠습니다.”

둘은 대화를 끝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1층 로비에 진입을 한 후 주변을 훑자 안내데스크가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경호가 말했다.

“분위기가 이상한 것 같아요.”

상황을 살피기 위해 한 걸음 더 걸어가자 갑자기 천둥치는 소리가 들렸다.

쩌저저저정!

다급히 뒤를 돌아보니 건물입구가 닫혔다. 두꺼운 철판이 셔터처럼 내려와 출입구와 벽을 감쌌다.

“역시 알고 있었어! 우리가 올 걸 미리 알고 있었다고요!”

이경호가 격한 어조로 소리쳤다. 은성은 근처의 벽면으로 걸어가 철판을 내리쳤다.

텅!

주먹으로 두들기니 감이 잡혔다.

“만년한철인가.”

천마신교의 금고를 털 때 봤던 만년한철이었다. 한 층 전체를 만년한철로 감싸 봉쇄한 것이다. 은성이 만년한철의 크기와 두께에 감탄하고 있는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리고 있었다.”

은성이 뒤돌아서 대꾸했다.

“뭐야?”

“네가 실버스타의 길드마스터 주은성이군. 길드 서열 5위의 강무영이다.”

“내가 올 걸 미리 알고 있었나?”

“명색이 대한민국 5대 길드다.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로비의 구석진 곳에서 사람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동시에 바닥의 타일이 깨지고 땅속에서 사람들이 시체처럼 솟구쳤다. 강무영이 은성을 보고 말했다.

“겁을 상실했군. 우리 길드에 단신으로 쳐들어오다니.”

“쳐들어온 거 아닌데? 재능기부를 요구하러 온 거다.”

“미친놈.”

은성은 대답대신 이경호를 내세웠다. 이경호가 은성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사···, 사회유지법의 헌터 재능기부 법에 따라 현 시간부로 저희와 함께 동행해주셔야 되겠습니다.”

“병신이냐. 거절한다.”

강무영이 묵살하고 손바닥을 펼쳤다. 손에서 시뻘건 불덩이가 날아와 이경호를 노렸다. 은성은 불덩이를 맨손으로 쳐내고 말했다.

“재능기부에 불응 시 무력대응이 가능하다는 거 모르냐?”

“미친 새끼.”

강무영이 손짓하자 사람들이 전투태세를 취했다. 총과 화살, 검, 지팡이가 은성을 향했다. 강무영이 목을 세우고 말했다.

“이쯤하자. 주은성.”

“뭐?”

“우리는 싸우는 걸 원하지 않는다.”

“웃기네. 이제 와서 그만하자고?”

“우리의 실수를 인정한다. 보상은 원하는 대로 지급하겠다. 사건은 여기서 묻도록 하지. 모든 건 우리 쪽에서 책임지겠다.”

“어떻게 믿고? 덕분에 살인도 저질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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