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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의 귀환-36화 (36/127)

# 36

“그건 걱정하지마라. 애초에 증거도 없고 전상 상에도 아무 문제가 없다. 보상은 섭섭지 않게 보장해주겠다.”

은성이 마스크를 내렸다. 확실히 몸이 땀에 절어서 피곤했고 무엇보다 저녁식사를 하지 않아서 배도 고팠다. 보상을 받고 이대로 사건을 묻는 게 편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먼저 선빵을 쳐놓고 이제서 사과하는 상대의 오만함이 마음에 걸렸고 선심 쓰는 듯한 말투도 짜증났다. 특히 국가기관을 지들 입맛대로 굴리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은성은 대답대신 가운데 손가락을 세웠다.

“5대 길드의 호의를 무시하다니. 죽고 싶어서 작정했군.”

“죽고 싶은 건 나를 건든 그쪽 아닌가.”

“하, 이딴 새끼가 뭐가 무섭다고 길마님은 호들갑인지······ 모두 공격해!”

강무영이 신호를 보내자 네크로 필리아의 길드원들이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다. 거대 길드답게 길드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잘 움직였다. 총구가 불을 뿜고 탄환이 빗줄기처럼 날아와 박혔다.

탕탕탕! 탕탕탕탕!

매캐한 화약 냄새가 코를 찌르고 화살 세례가 하늘에서 쏟아졌다. 은성은 별 영향도 없이 무사했지만 이경호는 무사하지 못 했다. 그는 피를 토하고 온몸이 벌집과 고슴도치의 콜라보가 되어 쓰러졌다.

“국가단체 놈이 왜 이리 허약해. 이러니까 쉽게 휘둘리는 거 아냐.”

은성은 이경호의 몸에서 화살을 뽑고 고농도의 힐링 포션을 마구 퍼부었다. 가까스로 피가 멎고 상처가 회복되자 이경호를 구석에 집어 던지고 말했다.

“관리관을 함부로 공격하면 즉각 처벌 대상인거 몰라?”

“관리관의 목숨 따위 신경도 안 쓴다.”

“나중에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누구를 몇 명 죽이든 우린 무죄야. 잠깐 귀찮겠지만 그뿐이지. 증거가 있든 없든, 5대 길드의 고위 헌터가 항소하면 무혐의로 끝난다는 불멸의 관습을 모르나?”

“듣기만 해도 좆같네.”

느그 법, 우리 법이 따로 존재하는 건가.

“역시 유사국가였나.”

은성은 소매를 걷어 올렸다. 탐색스킬을 사용하자 적들의 레벨이 고스란히 파악됐다. 천장 위부터는 만년한철 때문에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지만 문제는 없었다.

“전부 다 헌터군. 아주 작정했어.”

“네가 오는 걸 파악하자마자 준비했지.”

“고맙다. 추릴 수고를 줄여줘서.”

은성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탄지공을 날렸다. 새하얀 빛의 줄기가 쏟아져 나와 사방을 잠식했다. 포위하던 사람들이 저항도 못 하고 머리가 꿰뚫려 속속히 쓰러졌다.

“말은 들었지만 미친 새끼군.”

“명색이 5대 길드라며, 내가 이 정도일 줄 몰랐나?”

놈을 향해 걸어가는데 살아남은 사람들이 검을 휘둘러왔다. 은성은 맨손으로 검을 깨부수고 근접한 놈들의 머리를 으깼다.

한 발자국 더 내딛자 땅에서 칼날이 솟구치고 머리 위에서 불덩이가 떨어졌다. 은성은 모기를 내쫒듯 발과 손으로 쳐내서 반격했다. 칼날과 불덩이가 공격한 상대에게 고스란히 되돌아갔다.

“······흡.”

이쯤 되자 강무영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렸다. 은성이 이 정도로 강하다는 말은 듣지 못 했다. 그저 무력을 앞세워 화해를 하라는 말만 들었다.

‘이러다간 위험하다.’

위기를 느낀 강무영이 강령술을 부렸다. 쓰러졌던 사람들이 다시 일어났다. 총구가 불을 뿜고 탄환과 화살이 재차 빗발쳤다. 시체로 살아난 사람들이 은성에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죽어서 되살아나자 본래의 힘보다 훨씬 약했다.

“고인 모독이 심해.”

은성은 단숨에 주변을 정리하고 마력을 실어 강무영에게 탄지공을 날렸다. 강무영이 뼈의 벽을 소환했다. 바닥에서 뼈들이 솟구쳐 탄지공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쏘아져 나간 빛줄기는 미끄러지듯 뼈를 관통하고 목표물에 탄착했다.

툭!

가까스로 몸을 틀었지만 오른팔이 날아갔다. 강무영이 소리쳤다.

“끄아아아아아악!”

“조용히 해. 시간이 늦었잖아. 옆집에서 뭐라 하겠다.”

은성은 어느새 그의 눈앞에 있었다. 강무영이 하나 남은 왼팔로 손사래를 쳤다.

“꺼져! 꺼지라고!”

손에서 냉기와 화염이 쏟아져 나왔다. 은성은 가뿐하게 피하고 놈의 왼팔을 잡아당겼다. 뼈와 근육이 투두둑 소리를 내며 뜯겨져나갔다. 양팔을 잃은 강무영이 괴성을 지르며 오뚜기처럼 섰다.

“끄아아아아아악!”

은성은 그가 죽지 않게 상처부위에 힐링 포션을 부었다. 그리고 물었다.

“길마는 어디 있나?”

“위, 위층에···.”

“정확히 말해야지.”

“나, 나도 모른다···. 카메라로 지금 상황을 다 보고 있을 거야. 지금쯤이면 어디 도망쳤을 지도 몰라.”

“새끼, 목숨 흥정할 줄 모르네.”

평생을 위에서 누린 놈인가. 빌어야할 때 비는 법을 모른다.

은성은 발차기로 강무영의 머리를 찼다. 머리가 기괴하게 꺾여 덜렁거렸다. 은성은 손을 탈탈 털고 이경호에게 다가갔다.

“정신이 들어?”

“흐, 흐으윽···. 예에.”

“같이 갈래? 사회유지 해야지?”

은성이 묻자 이경호는 고개를 세차게 좌우로 흔들었다.

“그래. 아쉽네. 그럼 나 혼자 간다.”

은성은 탐색 스킬로 지하에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 위층으로 향했다. 위층은 아래층과 달리 만년한철로 가로막혀 있어서 탐색이 제대로 안 됐다. 수고스럽지만 층마다 일일이 확인을 해야 했다.

* * *

“일이 왜 이렇게 커진 거야?”

CCTV로 화면을 바라보던 하재팔이 손톱을 물어뜯으며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싸울 의사가 없다고 확실히 전했잖아?”

정건우가 대답했다.

“예.”

“그런데 왜 계속 싸우겠다는 거야? 대체 왜?”

정건우의 보고를 통해 은성의 실력을 알게 된 하재팔은 은성과 구국의 영웅 유지미가 친밀한 관계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혜성처럼 등장한 은성을 유지미가 뒤에서 봐주고 있다. 급기야 포션 제조의 방법도 그녀가 가르쳐준 것이라 여겼다.

“다른 길드에 지원요청을 할까요?”

서열 4위의 마제균이 물었다.

“뭣 하러?”

“도움을 요청하면···.”

“아냐, 아냐···. 그건 절대로 안 돼.”

혹시라도 정말로 은성이 유지미의 사람이라면 문제가 컸다. 헌터회에 소문이 퍼지는 순간, 운이 좋아 살아남게 되더라도 지구 어디에도 발붙이고 살아갈 수가 없다. 하재팔은 은성보다 유지미가 더 무서웠다.

‘개 같은 년···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 딴 놈을 감싸는 거지?’

그저 회귀자의 유흥이었지만 그는 결코 그 사실을 몰랐다.

하재팔이 물었다.

“함정은?”

서열 3위의 배영호가 대답했다.

“일단 설치해뒀습니다.”

“놈이 여기까지 올까?”

정건우가 대답했다.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아까 CCTV를 확인해보니 만년한철도 깨부수고 있어서···.”

“씨발. 완전히 미친놈이군. 그러기에 내가 조용히 일 처리하라고 했잖아.”

정건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정체를 밝힌 정건우의 탓이 가장 컸다. 하지만 표면적인 원인은 길드마스터 하재팔 본인이었기에 하재팔은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남은 놈들과 시체들 다 모아. 이렇게 된 이상 죽여서 함구 시키는 수밖에 없다. 나중을 위해 남겨두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지.”

그때 멀리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텅! 텅! 텅!

하재팔이 물었다.

“무슨 소리 안 들리나?”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하재팔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텅! 텅! 텅!

스으윽! 툭!

“없네?”

은성은 만년한철을 두들기고 있었다. 건물의 내벽 몇 군데가 만년한철로 둘러져 있었다. 급기야 출입을 하는 문이 만년한철로 막힌 경우도 있었다.

“돈 지랄이 쩌는 건지, 조심성이 특출난 건지.”

본래 사람의 시체를 사용하며 악행을 일삼다보니 길드내부의 보안이 극심한 편이었다. 네크로 필리아는 언론과 외부인사가 방문할 때마다 만년한철로 특정한 공간 자체를 숨겼다.

텅! 텅! 텅!

스으윽! 툭!

“여기엔 없네?”

텅! 텅! 텅!

스으윽! 툭!

“여기도 없네?”

은성은 만년한철을 깨부수고 고개를 내밀어 내부를 확인했다. 한참을 반복하다보니 몸이 찌뿌둥하고 피곤이 몰려왔다.

“이러다간 끝이 없겠어.”

몸이 찝찝해서 아래를 훑으니 옷이 땀으로 흥건했다. 이제 일반 사무실을 모두 살피고 만년한철로 막힌 방도 얼마 남지 않았다. 땀을 닦고 퍼질러 앉아있는데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졌다.

“······.”

은성은 숨을 죽이고 소리의 근원지로 다가갔다. 벽에 기대어 고개를 살짝 내미니 하재팔과 나머지 놈들이 보였다. 은성은 단숨에 그들에게 달려갔다.

“음?”

그런데 순간 몸이 모래 속에 파묻힌 것처럼 무거워졌다. 팔과 다리가 석고상처럼 굳고 시야가 어지러워졌다. 다급히 발밑을 확인하니 피로 그려진 육망성의 마법진이 있었다.

“뭐야?”

“으하하하하!”

보고 있던 하재팔이 나서며 웃었다.

“몸이 안 움직여지지?”

“네 놈 짓이냐?”

“그래. 천 명분의 피를 제물로 상대를 죽이는 ‘산자의 장례식’이란 기술이다. 본래 기회를 봐서 다른 년에게 먼저 사용하려고 했는데 네 놈이 이 기술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됐구나.”

탐색 스킬을 사용해 가늠하자 은성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네 놈이 네크로 필리아의 길드마스터군.”

“크큭, 알아봤자 뭐하나? 이제 곧 죽을 텐데.”

“그래?”

하재팔이 말을 이었다.

“살 기회를 주지.”

“기회를 준다고?”

“그래. 네 놈 유지미 헌터와 무슨 관계냐? 설마 이 모든 것들이 처음부터 날 속이려는 함정이었나?”

“무슨 관계냐니. 유지미가 누군데?”

은성의 반응에 하재팔이 손짓했다. 뒤에 서 있던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마력을 쥐어짜냈다. 그러자 시야가 어두워지고 압박감이 한층 더 해졌다. 동시에 졸음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다 알고 있다. 네 놈은 유지미 헌터의 숨겨놓은 연인이라도 되는 거냐?”

“유지미라···. 그런 애는 만난 적이 없던 것 같은데.”

은성은 머릿속을 더듬고 대꾸했다. 어디서 들은 것 같기도 하지만 본래 남의 인생에 하도 관심이 없어서 기억하지 못했다.

하재팔이 말했다.

“시치미 떼도 소용없다.”

“진짜 모르는 사람이야.”

강한 부정은 오히려 강한 긍정의 효과를 낳았다. 하재팔이 확신에 차서 말했다.

“역시 네 놈은 죽여야겠어.”

하재팔의 명령에 남은 길드원들이 마력을 쥐어짜냈다. 하재팔 본인도 마력을 쏟아 부었다. 마법진 안의 공기가 착 가라앉으면서 은성은 숨을 쉬기가 더 힘들어졌다.

“너무 위기감이 없는 건가.”

전신에 부항을 뜨는 느낌이라 기분이 좋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기엔 불안했다. 은성은 힘을 쥐어짜내 몸을 움직였다. 그러자 마법진의 투명한 장막에 균열이 일어났다.

“어어!”

놀란 하재팔이 기겁해서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말했다.

“그래봤자 벗어나진 못 한다!”

하지만 다음순간 유리가 깨지듯 마법진이 산산조각 났다.

쩌저저저정!

“덕분에 피로가 싹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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