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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의 귀환-37화 (37/127)

# 37

은성은 발을 구르며 단숨에 달라붙었다. 질겁한 하재팔의 동공 위로 은성의 꽉 쥔 주먹이 고스란히 담겼다.

뻐억!

“캬아아아악!”

하재팔이 주먹을 맞고 입이 찢어지도록 비명을 질렀다. 은성은 그의 내구성에 감탄하며 강권과 붕권을 연이어 명치에 먹였다.

피를 토한 하재팔은 볼링공처럼 날아가 다른 놈들에게 처박혔다. 얼핏 세어보니 동시에 열 명이 쓰러졌다.

“스트라이크네.”

손을 풀고 이제 어떻게 요리할까 고민하는데 정건우와 배영호가 공격해왔다. 허공에서 뾰족한 뼈의 창들이 날아와 몸 곳곳을 노렸다.

텅! 텅! 텅!

몸에 맞은 창들이 튕겨져 나가 땅바닥에 꽂혔다.

은성은 손수 바닥의 창들을 하나하나씩 뽑아서 그대로 돌려줬다. 적당히 힘을 줘서 날리자 미처 피하지 못한 놈들이 꼬치구이처럼 창에 꿰뚫렸다. 심지어 창 하나에 세 명의 머리가 꽂힌 경우도 있었다.

“으아아아! 악마 같은 새끼! 네가 사람이냐!”

마제균이 경악해서 소리쳤다.

“내로남불 쩌는데.”

마제균이 장검을 휘두르며 다가오자 맨손으로 그의 장검을 깨부쉈다. 그리고 있는 힘껏 따귀를 때리자 귀와 뺨이 찢어지면서 핏줄기가 흩날렸다. 마제균은 공중에서 몇 바퀴 돌더니 땅에 착지한 후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영면을 취했다.

“공격해! 공격하라고!”

하재팔이 상체를 일으키고 소리쳤다. 그러자 소극적이던 길드원들이 될 대로 되란 심정으로 공격을 해왔다. 사방에서 칼이 엄습하고 마법과 화살이 빗발쳤다.

은성은 칼을 부수고 마법을 쳐내면서 그들의 머리를 다진 고기처럼 으깼다. 피와 뇌수가 터지고 몸이 비를 맞은 것처럼 축축하게 젖었다.

기회를 봐서 틈틈이 탄지공을 날리자 날아간 빛줄기가 놈들의 머리를 관통했다. 머리에 구멍이 뚫린 놈들이 마치 도미노처럼 순서대로 쓰러졌다.

3분쯤 지나자 복도에는 시체가 가득했고 살아남은 사람은 하재팔밖에 없었다.

“그, 그만하자.”

하재팔이 말했다.

“싫어.”

“협상하자. 돈 줄게.”

“돈 많아.”

하재팔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복도전체에 울려 퍼졌다.

“내가 죽으면 큰일 난다. 한국 치안에 공백이 생길 거야. 무법지대 개척이 늦어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을 거야.”

“내가 널 대신하마.”

“안 돼. 제발 살려줘.”

“싫어.”

은성이 단호하게 말하자 하재팔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개 같은 새끼! 악마 같은 새끼!”

“그러게 왜 애꿎은 사람을 건드려서 자살을 하나.”

“날 죽이면 헌터회가 나설 거다. 그럼 너도 죽게 돼.”

“응, 아냐. 난 안 죽어.”

하재팔은 은성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죽었던 사람들이 일어섰다.

“허참, 질리지도 않게 또 강령술인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창으로 몸을 이등분시키는데 난데없이 시체가 폭발했다. 얼굴과 눈알이 부풀고 내장과 장기들이 터졌다. 부하들의 시체까지 폭발시키다니 지독한 놈이었다.

그럼에도 은성이 끄덕도 하지 않자 하재팔은 시체들을 이용해 누더기 좀비들을 소환했다. 촉수형 기술로 은성을 포박하고 피와 뼈로 만들어진 마법의 창들을 마구잡이로 난사했다. 하지만 은성은 멀쩡했다. 타격이 거의 없었다.

“이번은 제법이었다.”

“크으, 으으으으!”

은성은 단숨에 좀비들을 처치하고 피가 범벅인 채로 하재팔에게 다가갔다. 주먹으로 그의 머리를 강타하자 입에서 피거품과 함께 강냉이가 후두둑 떨어졌다.

“으어어어어······!”

하재팔이 울먹거렸다. 이빨이 모두 뽑히자 바람 빠진 소리가 났다.

은성은 그의 따귀를 연이어 날렸다. 고개가 저항도 없이 휙휙 수차례 꺾였다. 마지막으로 뒷머리를 잡고 만년한철에 처박자 두개골이 뿌드득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코와 귀에서 핏물이 줄기차게 흘러내렸다.

“후아아아. 끝이다.”

은성은 길게 숨을 몰아쉬고 그 자리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피곤해서 죽을 것 같았다. 시체들을 곤죽으로 만들며 전투를 하니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피로가 컸다. 게다가 배가 너무 고파서 등가죽이 달라붙는 것 같았다. 그는 아직 저녁 식사도 못 했다.

“아, 비위 떨어져. 퉷!”

뒤늦게 시체를 의식하며 은성은 몸을 털고 아래층으로 향했다. 내려가면서 컴퓨터와 서버 실을 비롯한 전산시스템을 잊지 않고 부쉈다. 공권력이 알게 되면 상당히 귀찮아질 것이다.

1층 로비까지 내려와서 이경호를 찾자 녀석은 시체더미 안에 숨어 있었다. 그는 은성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살고 싶어 하는 눈치로 손바닥만 싹싹 비볐다.

텅! 텅! 텅! 텅!

은성이 만년한철을 부숴 건물 밖으로 나갈 통로를 만들자 이경호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으흐흐흑, 살았다.”

은성은 이경호가 나가기 직전, 긴말을 하지 않고 짧게 말했다.

“만약 경찰이 날 찾아오면 다 네 책임이야.”

“아, 예···.”

이경호가 굽실거리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유약한 인상을 보니 걱정은 되지 않았다. 죽기 싫으면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겠지.

그런데 밖으로 나오니 경찰차 수십 대와 무장한 경찰들이 서 있었다. 헌터협회에서 나온 헌터전담 관리관들도 수십 명이 있었다. 심지어 하늘에는 헬기까지 떠 있었다.

“손들어! 움직이지 마!”

“거기서 멈춰!”

은성은 황당해서 우두커니 섰다.

* * *

은성은 순순히 잡혀서 조사를 받았다. 이런 때에 괜히 도주를 하면 오히려 유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 협회사람과 경찰로부터 대면하고 조서를 작성하니 모든 것들은 상식대로 흘러갔다. 은성은 진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어서 말했다.

“저녁 야식으로 치킨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관리부에서 저를 불렀고 네크로 필리아 길드로 넘겼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의식을 잃어서 저도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고요.”

“벽이 만년한철로 막혀 있었는데 탈출은 어떻게 한 겁니까?”

“갑자기 벽이 폭발했습니다.”

기록도 없고 증거도 없다. B급 헌터가 혼자서 5대 길드를 박살냈다는 건 말이 안 됐다. 그래서 사건은 상식적으로 흘러갔는데 이경호의 증언이 추가돼 은성은 피해자로 대우받게 됐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5대 길드가 전멸한 일인 만큼 사건의 경중은 컸다. 위에서는 은성을 순순히 보내주지 않았다.

며칠이 꼬박 지나갔다.

특별실에 감금된 채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사람이 와서 식사로 짜장면을 넣어줬다. 은성은 짜장을 풀고 면에 비벼서 후루룩 맛있게 먹었다. 단무지를 오도독 씹으니 새콤달콤한 맛이 별미였다.

은성은 불만보다는 호기심이 더 강했다. 곁눈질과 어깨너머로 보고 들으면서 이곳의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했다.

수가 틀리면 언제든 흔적도 남기지 않고 이곳을 쓸어버릴 수 있는 만큼 긴장은 하나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오랜만에 속세를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고 심신의 안정을 되찾는 힐링의 기회가 됐다.

* * *

죽림 길드의 건물은 강남의 논현동에 위치해 있었다. 접견실에서 유지미를 제외한 헌터회 소속 인원들이 현 사항을 논의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보고 이시백이 말했다.

“정황상으로 보자면 이번 일은 주은성 그 녀석이 저지른 게 확실합니다.”

다른 길드마스터가 끼어들었다.

“말이 안 되는데. 헌터 한 명이 단독으로 서열 4위의 네크로 필리아를 없앴다고? 그건 계란으로 바위를 깨부쉈다는 소리 아닙니까? 하물며 헌터등급 B급의 주은성은 일개 포션 장수인데.”

“혼자서 저지른 건 아닐 겁니다. 몰래 세력을 끌고 가서 처리했겠죠. 어떤 방법을 썼는지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그들은 심각한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장난을 치는 사람도 없었고 툴툴거리는 사람도 없었다.

“유지미 헌터는 뭐라고 했나?”

빌런의 길드마스터 한진수가 물었다.

“이번에도 풀어주랍니다. 정황상 그 녀석이 분명히 관계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요.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그건 좀 이상하군.”

“확실히···.”

순간 그들은 머릿속에서 공통된 생각이 스쳤지만 결코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타이거의 길드마스터 김강호가 말했다.

“하재팔이 음흉한 구석이 있어서 그렇지 쉽게 죽을 놈은 아니었는데 도대체 누가 그 놈을 죽였을까. 내 생각에는 주은성이 무법지대의 놈들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다른 이들이 맞장구를 쳤다.

“가만 보니 분명 처음부터 그런 의견이 있었죠. 확실히 의심스럽긴 했습니다.”

“맞아.”

“하지만 무법지대로 도망간 놈들이 그렇게 강해졌을까요?”

김강호는 슬슬 서두를 깔았다.

“그런 의심스러운 인물을 누군가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비호하고 있다면···?”

사람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김강호는 좀 더 강한 어조로 말했다.

“천마신교때부터 지금까지 유지미 헌터는 주은성과 관련된 사건을 계속해서 덮고 있다. 이게 말하는 바가 뭘까?”

김강호가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한진수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확실히 유지미라면 하루아침에 네크로 필리아를 없애는 것도 가능하겠죠. 하지만 그녀가 굳이 조용하게 일을 처리할 필요가 있을까요?”

사람들은 생각했다. 유지미는 저돌적이었고 거침이 없었다. 좋은 말로는 자신감이 넘쳐서 솔직했고 나쁜 말로는 대놓고 싸가지가 없었다.

이시백이 끼어들었다.

“어쩌면 네크로 필리아에서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아 본보기로 당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건들지 말라는 주은성을 건드렸으니까요. 우리도 섣불리 나섰다간 같은 꼴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좀 더 조심해야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한참동안 대화를 나눴고 그런 끝에 결론이 나왔다. 그들은 당분간 판단을 유예하기로 했다. 하지만 김강호는 납득하지 못 한 듯 이를 바득 갈았다.

* * *

보름이 지났다. 최종적으로 은성은 아무 이상 없이 시설에서 나올 수 있었다. 언론기자들의 눈을 피해 밖으로 나오니 아랑과 은애, 휴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랑이 호들갑을 떨었다.

“오빠. 고생했어. 볼 살이 반쪽이 됐잖아.”

은애가 미리 준비한 외투를 은성의 어깨에 걸쳐줬다.

“그 동안 고생많으셨어요. 어떻게 피해자를 이렇게 대우할 수가 있는지, 참.”

“아니, 나쁘지는 않았어.”

은성은 솔직하게 말했다. 말은 감금이었지만 거의 귀빈대우를 받았다.

의식주가 모두 썩 괜찮았다. 음식을 주문하면 주문하는 즉시 결제까지 해줬고 잠자리의 침대는 S사의 고급품이라 상당히 편안했다. 깨어있는 동안에는 인터넷은 되지 않았지만 문화생활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주인. 흔적은 완벽하게 처리했다.”

“그래, 수고 많았다.”

휴지의 머리를 쓰다듬고 은성이 주변을 훑었다. 그러고 보니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차돌파씨는? 안 보이는데?”

은애가 대답했다.

“오빠가 무사히 나오길 물 떠놓고 빌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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