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나는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했다.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귀찮고 더러워서 피하는 거야.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다 태울 순 없잖아.”
“무슨 말이야?”
“되도록 범죄를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지. 가진 게 많을수록 잃을 게 많거든.”
“아하.”
휴지는 이해하는 척을 했다. 감정이 공유되다보니 그녀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귀찮아하고 있다.
“사람들 간의 법이지만 되도록 내 앞에서는 지켜줬으면 해. 혹시 몰라서 거듭 당부한다.”
“알았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입구가 열렸다. 우리는 널문다리를 지나쳐 무법지대로 들어갔다. 근처에 있던 헌터들이 한쪽 방향으로 몰리자 나와 휴지는 그들과 반대 방향의 인적이 드문 쪽으로 향했다.
한참을 걸으며 수풀을 헤집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몬스터가 등장했다.
“꾸익! 꾸이이익!”
“오랜만에 보네. 쥐새끼.”
“귀엽게 생겼어.”
무법지대는 죄다 이런 식이다. 던전의 포탈이 개화되면서 필드에 몬스터가 깔려 있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던전 전체가 필드에 그대로 옮겨진 경우도 허다했다.
[강철 이빨 땃쥐 LV 178]
햄스터와 비슷했지만 크기가 중형 견만큼 크고 앞니 두 개가 강철로 돼 있는 몬스터였다. 내가 벼락같은 속도로 다가가서 대검을 수직으로 꽂자 목뼈가 갈라지며 피를 내뿜었다.
“약해.”
시체에서 마석을 캐내고 허공에 대검의 핏물을 털었다. 다시 발을 옮기려는데 사방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꾸이익! 꾸익!”
“꾸이이이익!”
“꾸꾸꾸꾸!”
돼지 같은 울음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그 울음소리를 시작으로 수풀 사이에서 수십 마리의 땃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그래. 무리를 짓고 살았지.”
사회성은 있지만 판단력은 없는 몬스터였다. 쉽게 말해 두뇌의 역할이 불분명한 생물이다.
“꾸익! 꾸익!”
“꾸꾸꾸꾸!”
땃쥐들은 나와 휴지를 포위하고 단숨에 떼를 지어 공격해왔다.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에 맞서 나는 대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서걱! 서걱!
딱히 검술 스킬도 없었지만 목뼈가 잘리고 척추가 두 동강났다. 놈들의 머리와 배에서 피와 장기들이 쏟아졌다.
“꾸이이익!”
뒤에서 쇄도하는 놈의 두개골을 가르고, 나는 검을 휘두르기도 귀찮아 탄지공을 수십 차례 날렸다. 땃쥐들이 머리에 구멍이 뚫린 채 전기충격을 당한 것처럼 폴짝폴짝 바닥에 쓰러졌다. 마력이 높아지니 탄지공의 위력도 강해졌다.
푹!
“꾸익!”
마지막 놈의 눈알에 대검을 박아 넣고 나는 가볍게 손을 말아쥐었다 폈다. 검을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몸집도 작고 보상도 적어. 심지어 경험치도 짜다.”
보상을 챙기며 검에 묻은 피를 털고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비탈길을 오르고 둔덕을 지나면서 몇 차례 전투를 치렀다. 레벨 업 능력치를 모두 마력에 투자할 때쯤 어디서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주인, 이거 무슨 소리야?”
“사람들이 칼춤 추는 소리.”
꽤 깊숙이 들어와서 사람이 아예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탐색을 사용하자 전경이 금세 파악됐다. 저 멀리서 예닐곱의 사람들이 몬스터들과 싸우는 게 보였다.
“육개장 배터지게 먹겠네. 부상자가 둘이나 있는데 몬스터가 상당히 강한 놈이야.”
“뭔데?”
“인공 괴물.”
휴지가 물었다.
“인공 괴물이 뭐야?”
“갖가지 몬스터들의 사체로 만든 골렘.”
정확한 명칭은 누더기 골렘이었다. 아르카디아에서 고대인들이 무언갈 숨기려고 할 때 곧잘 입구에 세워 두던 놈이다.
일반적인 골렘보다 강한데도 핵을 만드는데 마석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휴지가 물었다.
“우리가 가서 도와줄까?”
“아니.”
“왜?”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도와줄까 생각도 했는데 공연히 힘만 쓰고 욕만 얻어먹을 것 같았다.
“생명은 소중하다고 했잖아.”
휴지는 언뜻 내가 가르치며 흘렸던 말을 되돌려줬다.
“생명은 소중한데 내 생명이 가장 소중하지.”
나는 첨언을 덧붙였다.
“여긴 사람 목숨보다 돈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 그래서 괜히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줬다간 덤터기 씌기 쉬워.”
그간 보고 들으면서 느낀 바가 있었다. 세상이 아무리 위기에 부닥쳐도 사람들은 자기 주머니 사정만 생각한다.
“목숨 구해줘도 진심으로 고마워하기보단 몬스터를 처치하고 나온 부산물부터 생각할 걸? 물에 빠진 사람 도와주면 보따리 내놔라 하는 격이지.”
“어렵다, 참. 인간 세상 복잡해.”
“복잡할 거 없어. 되도록 남에게 피해 안 주고 나도 피해 안 입으면서 살면 돼.”
우리는 근처의 다른 몬스터를 사냥하며 시간을 보냈다. 누더기 골렘이 있는 곳엔 고대인의 유적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들의 목적이 유적이라고 확신했다. 그들이 전투를 종료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면 그때가 내가 나설 차례였다.
“아직 멀었어, 주인?”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한 명 더 쓰러졌으니 목숨 아까우면 도망가겠지.”
“으아아아악!”
그런데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수풀 너머에서 사람들이 달려왔다. 몬스터를 처치하면서 낸 소음 탓에 그들이 내 존재를 파악한 것 같았다.
“입구방향은 반대쪽인데 이쪽으로 뛰어오네.”
그들은 나를 발견하고 안도했다.
선두의 여자가 소리쳤다.
“도와주세요!”
도망치라는 게 아니고 도와달란다.
외진 곳에 휴지와 나, 단 둘이 있으니 높은 수준의 헌터라고 판단한 듯했다. 생각보다 순간적인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었다.
“혼자 다니는 놈 털어먹으려는 멍청한 놈들보다는 낫네.”
보통 위험한 지역에 적은 인원으로 다니는 사람은 굉장히 강한 부류다. 그런데 멍청한 놈들은 단순한 생각으로 그런 강한 부류를 얕잡아보고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왜 적은 인원으로 위험한 곳을 돌아다니는 걸까? 라는 생각을 못 하고, 그저 적은 인원이다! 이것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소리친 여자는 영리한 편이었다.
아마 한 두 번이 아닐 거다.
그러니까 이렇게 몬스터를 자연스럽게 떠넘기지.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 도망가자 누더기 골렘이 내 앞을 가로 막고 섰다. 사고력이 거의 없는 골렘류답게 때린 놈을 생각 못 하고 가까운 놈부터 공격한다.
놈의 외형은 기괴했다. 오우거의 머리와 짐승의 다리, 몸은 비늘로 덮여있고 등에는 와이번의 날개를 네 쌍이나 달고 있다. 얼핏 스핑크스와 닮아 있었다.
“끄어어어어엉!”
울음소리도 괴상하군.
나는 땅을 박차고 녀석에게 달려가 강권을 내질렀다. 놈의 두개골이 찌부러지며 피와 뇌수가 튀었다.
놈은 피를 울컥 토하고 무릎을 꿇더니 바닥에 쓰러져서 일어날 줄 몰랐다. 도망치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상황을 살폈다.
“어··· 어, 어···? 뭐야?”
그들은 도망치느라 과정을 제대로 보지 못 했다. 오직 혼자서 고스란히 식별한 리더 격의 여자가 중얼거렸다.
“···굉장해.”
뒤에서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었다.
“생명력이 얼마 안 남았었나 봐요.”
“마, 맞아.”
“우리가 거의 다 잡아놓은 상태였나 보네.”
너무 예상한 대로 뻔하게 행동해서 도리어 아무렇지 않았다. 혹시나 시체를 뒤적거리니 내 눈에 차는 게 없어서 나는 손을 뗐다.
여자가 다가와서 허리를 숙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저는 번뇌 길드 수색 제 6팀장 한소라라고 합니다.”
한소라는 내게 악수를 요청했다. 나는 대충 손을 맞잡은 뒤 몸을 돌렸다. 그러자 그녀가 다급히 나를 불러 세웠다.
“잠깐만요!”
“왜요.”
“혹시 어느 소속 헌터시죠? 실례가 아니라면 저희와 함께 일할 생각 없으세요?”
“네. 없는데요.”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어···? 저희 번뇌 길드는 대한민국 제 1의 길드인데···.”
내 단호한 거절을 예상하지 못 한 듯했다. 너무 단호박 같이 말했나.
“수고하세요.”
나는 그녀를 묵살하고 휴지를 불렀다.
“휴지.”
“응!”
“트랜스폼!”
휴지가 즉시 어부바 자세를 취하자 그들 중 남자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한소라가 즉시 말을 이었다.
“잠깐만요. 그러면 저기 시체에서 나온 아이템은 어떻게···.”
“당신들 가지세요.”
내 말에 쭈뼛거리던 사람들이 감사를 토했다.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어요.”
이제야 고맙다는 말을 한다.
자기들 목숨보다 돈이 더 귀중한 사람들이다.
“어차피 당신들이 먼저 발견해서 사냥하던 몬스터였으니까요.”
내가 구실을 던지자 사람들이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휴지를 타고 하늘을 날아서 누더기 골렘이 본래 있던 공터에 도착했다.
그들이 몬스터의 사체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유적을 먼저 선점할 생각이었다.
“안 아까워, 주인?”
“유적이 저딴 냄새나는 시체보다 수십억 배 더 중요해.”
나는 가볍게 대꾸하고 탐색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유적의 위치가 금세 파악됐다.
공터의 한 구석에 놓인 커다란 바위 밑이었다. 그곳에서 영롱한 빛이 식별되고 있었다.
나는 바위 앞으로 다가가 주먹을 내질렀다. 바위가 손쉽게 두 동강이 났다. 갈라진 틈새의 바닥을 쳐다보니 새파란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아르카디아의 언어였다.
스윽!
손바닥만 한 마법의 글귀를 어루만지자 빛이 하늘로 솟구치고 땅이 흔들거렸다. 지면에서부터 무언가 올라오고 있었다.
“이거 생각보다 더 대박인 것 같은데.”
“불길하다, 주인.”
휴지가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때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 기회가 크니 잡음도 컸다.
“저 사람이 유적을 찾았습니다!”
“어이! 잠깐만! 그건 우리가 먼저 찾고 있던 거예요!”
“우리 겁니다!”
한소라의 수색 팀이 뒤늦게 발견하고 달려왔다. 나는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이건 내가 먼저 발견했으니 내 겁니다.”
그러자 감히 덤비지는 못 하고 사람들이 내 앞에 굳듯이 섰다. 그들은 내가 괴물을 쓰러뜨린 상황을 나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까부는 것은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것일까.
‘역시 목숨보다 돈을 우선시 하는 사람들답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한소라가 나섰다.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저희 쪽에서 유적의 선점권한을 양도 받을 수 있을까요? 저희는 대한민국 1위의 번뇌 길드입니다. 보상은 충분히 드릴 수 있습니다.”
“아까부터 실례인데.”
딱 잘라서 말했다. 그놈의 번뇌 길드. 어지간히 자부심이 있나보다.
“그러면··· 혹시···.”
그녀는 질척질척 말을 이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이어지지 못 했다. 그 순간 갑자기 주변의 땅바닥이 훅 꺼졌다.
“어··· 뭐야?”
“지진?”
“왜 땅이 흔들려?”
그러더니 마법의 글귀를 중심으로 지면이 퍼즐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런, 싱크홀 형식의 유적인가.”
흔하지 않는 종류의 유적이었다. 다음순간 우리는 커다란 구멍에 먹혀져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