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의 귀환-41화 (41/127)

# 41

나는 아공간을 더 구매해서 휴지와 함께 아이템들을 옮겼다. 위험과 정보노출 탓에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 덕분에 우리는 무법지대의 통로가 열리는 시간에 맞춰 수많은 왕복을 해야만 했다.

“뭐에요! 이 엄청난 아이템들은!”

“맙소사! 안전지대 밖의 아이템들이잖아!”

은애와 아랑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기겁했다. 무법지대의 아이템들은 차폐막 안쪽의 아이템들보다 옵션이 월등히 좋다. 그런 아이템들을 톤 단위로 들고 오니 황당할 수밖에.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상대적으로 좋은 아이템들은 가족과 길드를 위해 남겨두고 나머지 아이템들은 싸게 처분했다.

기존 시세대비 백 분지 일의 가격으로 아이템들을 판매하니 이제는 상위권 아이템들의 시세가 곤두박질 쳤다.

“이건 혁명이야! 이제 고급 경매장의 아이템들이 예전의 절반 값밖에 안 한다고, 오빠!”

“아직 십분의 일밖에 못 옮겼는데.”

희소성 탓에 거품이 잔뜩 낀 예술작품처럼 그간 수준 높은 아이템들은 엄청나게 비쌌다.

그런데 내가 높은 수준의 아이템들을 마구잡이로 풀어버리니 시세가 개판이 났다. 담합과 사재기로 시세를 조작하던 수많은 상위권 길드들이 광분해서 일어나고 아이템들의 시세가 완전히 새롭게 매겨졌다. 충격을 받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뭐야, 이 미친 아이템들은? 설마 마왕을 잡아서 고문하는 거냐?]

[이 정도 옵션의 아이템들이, 어떻게 이렇게 싼 가격으로 시장에 나올 수 있는 건데?]

[소문으로만 듣던 드워프들과 협약을 맺은 게 아닐까?]

특이점이 갑자기 세상을 훅 덮쳤다.

갤럭시-1 수준의 휴대폰을 쓰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갤럭시-8수준의 휴대폰을 쓰게 된 것과 비슷했다. 그것도 더 저렴한 가격으로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나와 내 길드를 찬양하기도 했다. 내 존재가 혼란스러운 세상을 비추는 한줄기 구원의 빛이라는 것이다. 단지 포션과 갖가지 아이템들의 가격을 엄청나게 낮췄을 뿐인데 사람들은 나를 열렬히 지지했다.

“오그라들어···.”

나는 인터넷 뉴스 창을 닫고 컴퓨터를 껐다. 유적의 보상이 너무나 엄청나서 신이 개입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새끼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고마운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게다가 한편으론 이상했다. 보상을 받는 방식이 여전히 귀찮았고 힘들었지만, 신이 나를 위해 줬다고 하기엔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보통은 이렇게 한 번에 막 퍼주지 않는데.”

나는 기억을 헤집었다. 아르카디아에서 요정에게 따져서 물었을 때 들었던 말이 있었다.

-신은 병신이냐? 왜 한 번에 보상을 안 주고 자꾸 끊어서 주는 건데.

단계별로 성장하는 시스템에 화가 나서 내가 물었다. 한 번에 능력을 모두 주면 단숨에 마왕을 봉인하고 모든 걸 끝낼 텐데, 답답했다.

-세계의 균형 때문이에요, 용사님. 선과 악은 항상 수평저울처럼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요. 그보다 신님께 병신이라뇨!

요정은 그렇게 말했었다. 세계의 균형이라고.

-그 균형을 스스로 안 맞추고 남의 손발로 맞추는 거 보니 병신 맞는데.

-용사님!

-붙지 마, 꺼져. 해로운 곤충.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보니 확실히 내가 아는 신놈이 준 보상이라고 하기엔 이상했다. 놈은 보상에 관해선 천일염처럼 한 없이 짠 놈이었다.

“세계의 균형이라···.”

설마 내가 이런 보상을 받아야할 만큼 여기 균형이 틀어져 있나. 관자놀이를 톡톡 두들기다가 나는 생각을 그만뒀다.

아직 유적에 아이템들이 많았다. 서둘러 옮겨야 했다.

* * *

쾅!

유지미는 황당해서 책상을 내리쳤다.

“씨발아! 무슨 소리야, 그게!”

책상이 쩌저적 소리를 내며 갈라지자 앞에 선 죽림의 길드마스터 이시백이 기겁했다.

“드, 들으신 대로입니다.”

“미친! 내가 잠깐 사냥을 갔다 온 사이에 이렇게 됐다고!?”

유지미가 아이템의 시세를 확인하며 기가 차서 소리쳤다.

물론 잠깐은 아니었다. 그녀는 강해지기 위해 무법지대에 꽤 오랜 기간 사냥을 나가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무법지대 입구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걸 보고 이상하긴 했었다. 하지만 이런 황당한 소식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저, 저도 이해가 안 됩니다만. 현재 실버스타의 길드장, 주은성 혼자서 아이템 시장의 절반 이상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아이템들을 공급해오고 있는 건지···.”

이시백이 현 상황을 말하자 유지미가 뒷목을 잡았다. 끓어오른 피가 그녀의 정수리 끝까지 솟구쳤다.

“그래서, 병신아! 그동안 넌 뭐했어!!”

유지미가 화를 참지 못 하고 부서진 책상의 절반을 집어 던졌다. 책상이 이시백을 지나쳐 사무실문에 강하게 부딪혔다.

“회, 회장님 본인께서 말하시길, 분명 주은성을 건드리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셔서···.”

“그래서, 헌터회의 모든 새끼들이 가만히 있었다?”

“예···.”

“씨발!”

나아가 정부와 상위권 길드에 압박을 가해서 주은성이 활보하게 가만히 놔뒀다. 하지만 그런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이시백은 멍청이가 아니었다.

“하··· 존나 재밌네. 최근엔 잠잠하더니···. 오랜만에 초창기 때처럼···.”

유지미가 의자에 몸을 묻고 눈을 감았다.

회귀를 할 때마다 그녀는 모든 것들을 혼자서 독식했다. 그래서 능력보다 충성심을 우선으로 헌터회를 만들었다. 누구도 믿지 않아서 똑똑한 놈들은 모두 죽이고 허수아비들만 남겨두었다.

하지만 어떤 절대자도 저 혼자 완벽할 순 없었다. 그래서 회귀 초기 때는 생각지도 못 한 나비효과로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경우가 흔했다.

허수아비들은 겁이 많아서 스스로 행동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오직 자신의 명령을 충실히 지키며 자신의 말대로 행동했다. 본심으로 살아가는 놈들을 모두 죽인 결과였다.

그녀는 숱한 회귀의 경험을 통해 그 문제를 혼자서 통제할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 나비효과 같은 문제는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주은성이 나타나기 전까진.

“언론은 또 뭐야? 제대로 통제 안 해? 사람들이 이 새끼를 무슨 구원자처럼 여기고 있잖아?”

“저희도 언론을 통제하고 있지만 일부 사람들이 자꾸 그를 영웅처럼 여겨서···.”

“하!”

유지미는 일어서서 부서진 책상 옆에 있는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즉시 전화를 걸었다.

“꼭두각시 새끼들이랑, 헌협 본부장새끼들, 헌터회 길드마스터들 다 오라고 해!!”

쾅!

수화기를 거세게 내리치고 그녀가 소리쳤다.

“네깟 놈이 헌터회의 부회장이라고요? 당장 꺼지세요!”

“죄, 죄송합니다.”

이시백이 사라지자 유지미는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사실 모든 게 그녀의 잘못이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어이가 없네.”

수많은 회귀 탓에 최근 위기감이 없긴 했지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날 줄이야.

지금 이 시점에서 사람들이 강해지면 곤란했다. 그럴 시기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어떤 것이든 손아귀를 한 번 떠나면 그 다음부터는 걷잡을 수 없다. 결코 본인의 의지대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똑똑똑!

그때 노크소리가 들려오고 길드 직원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또 뭐에요?”

“무법지대 수색 팀 중 제 6팀이 전원 실종됐습니다.”

유지미의 왼쪽 눈두덩이가 크게 씰룩거렸다.

* * *

미녀길드의 한수진과 최소영은 안산시 고잔동에 위치한 정보길드 헌파라치를 이용한 직후였다.

“그 사람이 먼저 연락 올 거라며?”

한수진이 투덜거렸다.

“이상하네. 분명 신께서 말씀하시길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온다고 했는데.”

최소영은 의아했다. 그녀의 예지 능력이 말하길 기다리면 먼저 연락이 온다고 했었다. 하지만 단 한 차례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설마 예언이 바뀐 걸까?”

한수진이 받아쳤다.

“소영아. 이제 진짜 안 돼. 버틸 수 없어.”

“그치만···.”

“네 잡신의 예언이 적중률 높은 건 맞는데, 더 기다리고 있다간 사람들이 다 죽을 거야.”

한수진이 충고했다. 독점과 사재기로 수익을 얻던 그들의 길드는 파산에 가까웠다. 더 버티기도 힘들었다.

사실 그녀들은 수십 차례나 실버스타의 길드 건물을 방문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은성이 매몰차게 쫒아냈고 그녀들은 결코 은성을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 일단 말이라도 붙여보자는 것이었다.

헌파라치에서 은성의 휴대폰 번호를 알아낸 그녀들은 건물을 나오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고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누구야?

“어?”

전화를 건 최소영이 놀랐다. 주은성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웬 여자의 목소리였다.

“주은성씨 휴대폰 아닌가요?”

-내 휴대폰인데.

“아······.”

몇 마디 더 붙여봤지만 그녀는 확실히 주은성이 아니었다.

최소영은 전화를 끊었다. 분명 정보길드에서 주은성의 번호로 알고 받았는데 왜 다른 사람이 받는 거지.

“전화번호를 바꿨겠지.”

한수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 * *

나는 그 후로도 수차례나 아이템들을 옮겼다. 그러나 유적의 산더미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무법지대의 출입여건이 가장 큰 문제인데.”

무법지대는 매일 하루 두 번밖에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시간을 지키며 옮겨야 했기에 빠르게 옮길 수 없었다.

나는 오랜만에 사무실에서 미드를 보며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콜라를 마시며 재미없는 부분이 나와서 키보드로 넘기고 있는데 책상 위의 전화기가 울렸다.

“왜?”

전화를 받자 직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길드장님. 정부에서 손님이 왔습니다.

“손님? 정부에서?”

내게 찾아올 정부손님이 있었나. 설마 다 묻힌 네크로 필리아 건은 아니겠고.

-예. 어떻게 할까요? 길드장님을 뵙고 싶다는데.

나는 수화기를 잠깐 거두고 컴퓨터를 조작해 CCTV 화면을 띄웠다. 1층의 안내 데스크 앞에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

“음···. 일단 접견실로 올려 보내.”

얼마 지나지 않아 비서가 찾아와서 접견실에 손님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렸다. 복도를 지나서 접견실로 들어가자 머리가 풍성한 사람과 빈약해서 반짝이는 사람이 내게 인사를 해왔다.

“반갑습니다. 김하균 사회유지수석 보좌관입니다.”

머리가 반짝이는 사람이 자기소개를 했다.

“박동렬 서울시 헌터협회본부 본부장입니다.”

반대로 풍성한 사람이 소개를 이었다.

“실버스타의 길드마스터 주은성입니다.”

내가 그들의 손을 맞잡으며 자기소개시간을 마쳤다. 나는 비서를 시켜 커피를 준비하고 그들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내 물음에 사회유지수석 보좌관 김하균이 입술을 적셨다. 사회유지수석은 대격변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국민여론과 사회유지에 대한 보좌와 던전관리의 권한을 헌터협회와 함께 나누는 부서였다.

“다름이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에 유통되고 있는 포션과 아이템 문제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포션과 아이템이요? 그게 문제가 있나?”

찾아온 게 그거 때문이었나.

언젠가 예상은 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능구렁이처럼 모른 척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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