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의 귀환-42화 (42/127)

# 42

“예. 지금현재 실버스타 길드에서 포션과 아이템을 거의 독점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당장 정부에서 운영하는 헌터마켓과 경매장만 보더라도 거래되는 대부분의 아이템들이 실버스타 출처의 아이템들이고요. 저희 쪽에서는 한 길드가 시장의 절반 이상을 독점하고 있는 것에 대해 사회유지측면에서 굉장히 위험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사회유지측면에서 굉장히 위험하다고요?”

“예.”

“어디가? 어떻게?”

그러자 김하균은 독점에 대한 원론적인 문제점을 제시했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내게 해당되는 사항은 없었다. 나는 올바른 경쟁을 통해서 아이템들을 판매했을 뿐이다.

“거품이 없는 저렴한 가격으로 아이템들을 판매하다보니 소비자들이 스스로 제 길드의 아이템들을 많이 구매하는 건데, 이게 어떻게 독점이고, 어디가 사회유지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거죠?”

“수많은 길드들이 현재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담합행위와 사재기로 시세를 조작하던 걸 제가 깨부순 거죠. 그리고 수많은 길드들이 아니라 상위 1퍼센트의 길드들 아닌가?”

비서가 커피를 타서 그들과 내 앞에 놓자, 나는 비서를 시켜 내 사무실에서 서류를 들고 오게 했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미리 준비한 게 있었다.

김하균은 목이 타는 듯 뜨거운 커피를 후루룩 마셨다.

“저희 쪽에서는 정보를 양도받길 원합니다.”

“정보를 양도받고 싶다고?”

“예.”

내가 웃자 김하균이 말을 이었다.

“포션 제조의 방법과 권한, 그리고 아이템들의 출처를 알고 싶습니다. 지속적으로 고급 아이템을 시장에 푸는 걸로 보아, 앞으로도 계속 아이템들을 판매하실 것으로 사료됩니다. 저희 쪽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그런 고급 아이템들을 꾸준히 시장에 풀 수 있는지 심히 궁금합니다.”

헌터협회 본부장 박동렬이 말을 받았다.

“사회유지법의 재능기부 법에 따라 우리는 당신을 강제로 연행할 수도 있고, 당신에게 일체의 권한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곱게 말하는 것은 얘기가 조용히 잘 끝나기를 원해서입니다.”

나는 무릎을 톡톡 두들겼다.

협박과 하대가 하도 자연스러워, 혹시나 탐색스킬을 사용해 보니 두 녀석 모두 상위급 수준의 헌터였다. 내 능력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 하는 듯했다.

경호원 없이 이곳에 온 이유가 이거였나?

“사회유지법이라··· 사회유지법···.”

그 놈의 사회유지법, 참 지긋지긋하다. 이놈의 나라는 해준 것도 없으면서 바라는 건 왜 이렇게 많은 건지.

“공익을 위해서 입니까?”

내가 묻자 김하균과 박동렬이 어리둥절했다.

나는 한 번 더 물었다.

“공익을 위해서 아닙니까? 사회유지법이 존재하는 이유 자체가···.”

“맞습니다.”

“맞습니다.”

그제야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나는 실소가 터졌다.

“이번에는 어디서 시켰나요?”

네크로 필리아 때의 일을 떠올리며 물었다.

그러자 박동렬이 옆에 세워둔 가방에서 영장을 꺼내서 내게 보여줬다.

“확인해보십시오.”

받아보니 영장은 진짜였다. 이번에는 확실히 정부가 요구하는 것이다.

“하, 웃기네. 이거.”

나는 영장을 한쪽으로 치워두고 물었다.

“사회유지법의 허용대상이 어디까집니까?”

박동렬이 대답했다.

“사회유지법의 대상은 대한민국 헌터 전체입니다. 대한민국의 헌터라면 단연코 사회유지법을 지켜야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지갑에서 헌터라이센스 카드를 꺼냈다. 그리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두 조각으로 찢었다.

“오늘부로 대한민국 헌터를 그만두겠습니다.”

그러자 김하균과 박동렬의 얼굴이 한껏 찌그러졌다. 어찌나 찰나의 순간인지 방귀를 뀌다가 똥을 지린 사람처럼 표정은 잠깐 만에 바뀌었다.

웃긴 놈들, 기분 나쁜 건 오히려 내 쪽 아닌가?

김하균이 물었다.

“그 말은 실버스타 길드를 없애시겠다는 겁니까?”

“길드는 제 동생과 지인들이 운영할 겁니다. 포션 제조방법은 공익을 위해서 제가 직접 사회에 뿌리죠.”

어차피 포션의 제조에는 강철 가시 구렁이의 사체가 꼭 필요했다. 해당 언더그라운드를 모두 소지한 내가 손해 볼 건 없었다.

박동렬이 물었다.

“그럼 아이템은?”

“아이템은 그냥 얻는 즉시 공짜로 나눠주겠습니다. 독점이고, 뭐고 그런 말 듣는 것도 짜증나니까. 아, 물론 공익을 위해서.”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돈은 썩어빠지게 많았다. 당장에 헌터수입을 제외하고도 수원시에 구매한 건물과 부동산으로 인한 수익만 해도 길드운영과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은 없었다.

김하균과 박동렬이 황당해서 입을 다물었다.

“······.”

“······.”

한참 만에 김하균이 입을 열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일개 개인이 판단할 영역이 아닙니다. 공익을 위해서 무료로 제공한다니. 그건 국가가 판단해야할 권리입니다. 지금 당장 정보를 국가에 환원하셔야 합니다.”

박동렬이 덧붙였다.

“헌터의 자격정지는 군인과 마찬가지로 개인이 자격정지를 요청할 시에도 상당한 유예기간이 있습니다. 고로 지금 당장은 사회유지법을 따르셔야 합니다.”

그때 때마침 비서가 돌아왔다. 손에는 내가 요청한 서류가 들려 있었다.

“이게 뭔지 압니까?”

내가 서류를 흔들어 보이자 김하균과 박동렬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나는 웃으며 물었다.

“대한민국 법의 적용대상이 어디까집니까?”

“설마···.”

둘은 입을 헤 벌린 채 다물 줄 몰랐다. 생선 가시에 목이 찔린 것처럼 얼굴이 벌겋게 부풀어 올랐는데 그 꼴이 몹시 우스웠다.

“이 종이에 서명만 하면 나는 미국시민입니다.”

내가 말하자 둘은 숨을 훅 들이켜고 상체를 뒤로 내뺐다. 나는 커피를 후루룩 마시며 말을 이었다.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노골적이지 않더군요. 넓은 땅덩어리 탓에 대격변 이후 더 심각한 타격을 입었음에도 자유를 보장해주더라고요. 언젠가 연락을 했더니 무기한 백지 시민권을 받았습니다. 언제든 오고 싶을 때 오라고.”

김하균이 삿대질을 했다.

“미국으로 망명이라니. 당신이 지금 저지르는 일은 매국노 같은 행위입니다! 국가를 버린다니요!”

“국가가 나를 버린 거지.”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행동을 지탄하고 비난할 겁니다.”

“당신들만 지탄하고 비난하겠지. 어차피 국적도 하나의 스펙인 시대인데, 탈조선 한다고 누가 뭐라고 하겠나. 오히려 축하한다고 박수쳐줄걸.”

박동렬이 끼어들었다.

“당신은 아직 대한민국 헌터요. 우리는 사회유지법에 따라 지금 당장 당신을 강제로 연행할 수 있습니다!”

나는 같잖아서 그가 보는 앞에서 서류에 서명을 했다.

“굿바이, 한국. 이제 미국시민이네.”

비서에게 서류를 넘기자 박동렬이 그녀의 손에서 서류를 낚아챘다. 어디까지 선을 넘나 보고 있으니 그는 빼앗은 서류를 갈기갈기 찢었다.

“자, 당신은 아직 한국인이요.”

“멍청하긴. 그건 보여주기 용이고 진짜는 벌써 넘겼지. 한참 전에 비서를 시켜서 미국에 보냈으니 지금쯤이면 전산처리가 완료됐을 걸.”

“뭐?”

나는 피식 웃었다.

“이제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라고.”

박동렬이 참지 못 하고 일어섰다.

“장난하나!”

“장난 아닌데.”

“어린놈이 주제 파악을 못 하는구나! 일개 헌터가 정부와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싸운 적도 없어.”

나는 철저히 그들의 방식대로 어울려줬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폭력을 지양하고 그 대신 그들이 내세우는 그 잘난 법을 그대로 돌려줬다.

내가 싸우고자 했으면 이미 한국은 멸망했을 거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겠지.

띠링!

그때 때마침 문자 메시지가 왔다. 영어로 써져 있었지만 알아먹는데 문제는 없었다.

“처리완료 됐다고 문자 왔네. 요즘 세상에 경력 좀 있는 헌터는 이민이 하이패스더라고. 이제 난 미국시민이니 한국 법은 안 먹혀.”

“웃기지 마라!”

“덧붙여 일반시민이 아니라 상위급 헌터로 주한 미군과 동일한 권리를 가지고 있어. 당신들이 앉아있는 이 건물은 내 건물이니 치외법권이 적용되고. 방금 내 서류를 찢은 건 타국 헌터의 재물손괴로 볼 수 있지.”

박동렬은 커피 잔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잔이 파드득 부서지며 커피가 흘렀다.

“기물파손 추가.”

“개소리!”

순간 박동렬이 나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이 새끼, 역시 날 얕잡아보고 있었나?

나는 일부러 맞고 그의 손목을 비틀어 뽑았다.

“끄아아아아아악!”

“정당방위다.”

피가 튀고 손목이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박동렬이 사라진 오른손목을 쥐고 나뒹굴었다.

옆에서 놀란 김하균이 검을 뽑아 휘둘렀다. 파란색 기운이 검 끝에 실리며 내 몸을 노렸다.

“폭처법 추가.”

나는 맨손으로 검을 빼앗아 쥐고 그대로 검을 휘둘러 놈의 한쪽 어깨를 잘랐다. 오른쪽 어깻죽지가 잘려나가며 그가 뒷걸음질 쳤다.

“끄아아아악! 미친!”

“미친 건 너희들이고. 말이 어긋난다고 다짜고짜 공격을 해?”

그때 쓰러졌던 박동렬이 내게 검은 구체를 던졌다. 시꺼먼 칠흑의 구체가 내 머리에 날아와 박혔다. 하지만 내게는 놀라울 만큼 전혀 타격이 없었다. 천마신공을 배우느라 마력을 엄청나게 올렸기에 마법방어력도 엄청났다.

“뭐, 뭐야!?”

“아직도 자기주제를 모르나? 이러면 정당방위라니까.”

나는 걸어가서 박동렬의 남은 팔은 그대로 뽑았다. 피가 솟구치고 팔이 옷가지와 함께 찢겨져나갔다.

“끄아아아아아악!”

“엄살은.”

박동렬은 충격에 빠진 듯했다.

“···이럴 수가···. 어떻게 B급 헌터가··· 고작 B급 헌터 따위가···.”

“그러게 왜 스스로 와서 자살을 하나? 이런 레파토리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박동렬이 눈을 부라렸다.

“끄으으으으··· 너 감히, 감히, 공직자를 공격하고도 무사할 줄 알아!”

“그럼 너는 감히 미국의 헌터를 선제공격해?”

나는 걸어가서 쓰러진 박동렬의 목을 비틀어 뽑았다. 머리아래에서 피가 솟구치고 척추가 그대로 딸려 나왔다.

“이 정도는 무죄겠지.”

미국은 한국과 달리 정당방위를 폭넓게 해석한다. 한국과 달리 과잉방위가 없다. 처음 싸움을 시작한 놈이 잘못이 큰 것이다.

손에 묻은 피를 털고 있는데 김하균이 움직였다. 녀석은 잘린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다시 붙이고 있었다.

“호오, 재생 능력인가?”

내가 감탄하며 다가가자 그가 침을 삼키고 손을 흔들었다.

“자, 잠깐만.”

“왜?”

“그만둡시다.”

“나는 이제 시작인데.”

그는 박동렬의 머리를 흘겨보고 말을 이었다.

“주은성씨.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지만 우리는 최후통첩 같은 겁니다.”

“최후통첩?”

“당신은 모르겠지만 세상은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권력의 주체는 국가가 아닙니다.”

“무슨 개소리야? 권력의 주체는 처음부터 국민이었잖아. 거기서 국가가 왜 나와? 이 새끼들 생각하는 게···.”

내가 그들의 상식을 꼬집어 비난하자 말이 헛 나왔다고 생각했는지 김하균이 다시 말했다.

“헌터회.”

“헌터회?”

반응을 보이자 그가 이실직고 했다.

“머리가 있는 것들은 모두 죽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손과 발이 돼야 합니다.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부터 대통령 직속 산하기관의 수석들, 국방부, 국회의원, 각종 기관의 장관, 본부장들··· 전부 꼭두각시들입니다. 우리는 헌터회의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그 말은 지금 한국이 유사국가라는 거냐.”

“예.”

김하균은 일말의 주저 없이 대답했다. 나는 잠자코 들었다. 그는 숨을 몰아쉬고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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