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의 귀환-46화 (46/127)

# 46

내부 통로가 청와대와 이어진 곳.

삼청동 안가는 대통령이 언론을 피해 외부 인사를 만나는 곳이다. 대격변 이후 보강을 끝내서 가옥의 벽과 유리는 만년한철과 청옥으로 이뤄져 있었고, 지하층엔 만일을 대비해 수준 높은 경호헌터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안가로 들어가는 출입 도로부터 가옥의 보이지 않는 곳곳에 경호 인력들이 배치되어 있어서 대칭 전력에 맞서 최고의 안전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 미어터지도록 차량이 줄지어져 있었는데 모두가 유지미의 죽음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안가의 넓은 만찬장엔 정계인사들과 헌터회의 사람들이 북적거렸고 헌터회의 부회장 이시백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희희낙락거리고 있었다.

김강호가 잔에 술을 채우고 말했다.

“유지미 그년은 확실히 죽었겠지?”

이시백이 대답했다.

“3일이나 지났으니 확실히 죽었을 겁니다.”

한진수는 옆에서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즐거워했다.

“그래, 아무리 그 계집이라도 사람이라면 핵을 맞고서 버틸 수가 없지.”

은성의 생각과 달리 시간은 벌써 3일이나 지나 있었다. 그들은 용의주도하게 유지미의 죽음을 감시하다가 이제야 성대한 파티를 만끽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세상이야. 차폐막 밖에선 사용도 안 되는 핵무기에 최고의 헌터가 죽다니.”

김강호는 술을 털어 넘기고 웃었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죠. 이해하려고 노력해봐야 우리만 머리 아픈 거니 이해할 필요도 없고.”

이시백이 정수리를 만지며 대꾸했다. 정수리 위로 새싹 같은 머리털이 자라나 있었다.

“어쨌든 이제 우리가 헌터회의 머리야. 이해할 수 없는 이 세상이 우리 손아귀에 들어온 거지.”

한진수가 끼어들자 김강호와 이시백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유지미가 없는 만큼 내키는 대로 세상을 조종할 수 있었다. 숲속의 호랑이가 사라지자 늑대무리가 왕 노릇을 하는 것이다.

김강호가 물었다.

“가장 먼저 뭐부터 손대야 할까?”

이시백이 말했다.

“제 생각엔 사회유지법부터 손봐야할 것 같습니다.”

“사회유지법? 왜?”

“지금 당장 사회유지법이 정해져있지만 실제로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예를 들어 고급 아이템 관련법만 해도 민간인들이 사고 팔 수 없는데, 지키는 사람이 거의 없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듣고 있던 한진수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했다.

“맞는 말이야. 개돼지 같은 놈들이 악법도 법인데 딸통법마냥 그걸 무시하고 음지에서 지랄이니. 헌터 자격증도 없이 고급 아이템을 소지하는 건 사고의 위험이 있다고 대대적으로 세뇌시켜야 해. 물론 형벌을 증가시켜서 강제력도 올려야 하고.”

이시백이 덧붙였다.

“여론을 조작하면 금방일 겁니다. 대격변 이후 떠오른 총기 소유 주장도 안전사고로 엮어서 다 묵살시켜버렸으니까요.”

“맞아.”

한진수가 숨을 훅 내뱉고 말을 이었다.

“어차피 대충 감정 선동만 해주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싸우겠지.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최하층의 노예들은 아무것도 몰라서 조금만 자극을 주면 저들끼리 물어뜯고 싸우고 다툰다. 노예들이 스스로 노예인 줄 모르고 저마다 족쇄를 자랑하는 세상. 무엇보다 힘 있는 그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었다.

김강호가 물었다.

“실버스타 길드는?”

이시백이 대답했다.

“사회유지법으로 모두 잡아서 조사할 생각입니다.”

“아직 안 잡아 들였어?”

“헌협본부를 완전히 장악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철저히 해야 해. 반항할지도 몰라.”

김강호가 걱정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자 이시백이 고개를 도리질했다.

“반항 할 수가 있겠습니까. 고작해야 중견 크기의 길드인데 어디 감히 국가에게 대항을···.”

“그건 그렇지. 그래도 확실히 해야 한다.”

김강호는 손가락을 세우고 당부를 첨언했다.

“적당히 털고 몬스터 사고사로 위장하는 거 잊지 마라. 주은성 그 새끼가 튀어나온 이후로 언론에 기고만장한 놈들이 많아.”

“언론이라···.”

“칼보다 펜이 강한 줄 아는 놈들. 그런 놈들이 끊임없이 시비를 걸어오니까 조심해야 해. 멍청한 놈들이 상대의 덩치도 가늠 못하고 일단 덤비거든. 펜과 달리 칼은 강하다고 말할 필요조차 없는데.”

“알겠습니다. 걱정마세요.”

이시백이 침을 삼키자 한진수가 말을 자르고 끼어 들었다.

“하하하, 그래도 이제 걱정할 게 뭐가 있나? 그래봤자 귀찮은 정도잖아?”

“그건 그렇지.”

“맞습니다.”

한진수가 그들의 잔에 술을 채우고 말했다.

“우린 서로 배신하지 말자고.”

그가 잔을 높이 치켜들자 이시백과 김강호가 따라 잔을 들고 건배를 했다. 그들은 서로의 눈을 마주보고 술잔을 털어 넘겼다.

“크으.”

“캬.”

“맛 좋다.”

도원결의를 하는 것처럼 그들이 잔을 나눌 때, 갑자기 커다란 폭발음이 터지고 한쪽 벽이 무너졌다. 아무 생각 없이 떠들던 사람들이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휙 돌렸다.

“뭐야!? 저 새끼 누구야?”

* * *

나는 먼지를 걷어내고 건물 안을 살폈다.

“여기 숨어 있었구나? 쥐새끼 같은 놈들.”

만년한철로 막혀 있길래 혹시나 와봤더니 역시나였다. 단순한 새끼들. 그래도 찾는데 고생 좀 했다.

내 등장에 일단의 무리가 놀라서 소리쳤다.

“주은성!”

“뭐야! 저 녀석이 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말도 안 돼! 설마 유지미가 살아 있는 건가?”

그놈의 유지미 타령은···. 너무 많이 들었더니 아주 자진모리장단으로 귀에 눌러 앉겠다.

“흠.”

이럴 줄 알았으면 유지미의 머리라도 잘라서 싸들고 올 걸 그랬나. 내 마케팅이 잘 안 되어있다 보니 이 새끼들은 항상 유지미만 찾는다.

“주은성!”

그때 누군가 불쑥 나섰다. 정수리에 땜빵이 난 놈이었다.

“왜.”

“설마 유지미가 살아 있나?”

“아니, 죽었어.”

그들은 내 표정을 읽고 진위를 판단하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은근히 자존심 상한다. 이 새끼들 느긋할 때가 아닐 텐데.

내가 물었다.

“여기에 혹시 대통령도 있나?”

그러자 중앙 테이블의 한 중년인이 어깨를 움찔거렸다. 0.1초도 되지 않는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나는 놓치지 않았다.

“좋아, 정계인사들은 모두 손 들어라. 그럼 지금 당장에 죽이진 않으마.”

사회 혼란을 고려한 처사였다. 뇌의 기능이 불분명 하더라도 머리가 갑자기 사라지면 몸은 살아남을 수 없다.

하지만 내 부처님 같은 자비심에도 의외로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다. 몇몇은 미친놈을 보듯 이상한 눈으로 나를 흘겨봤다. 그들은 철저히 내 강함을 가늠하지 못 하는 듯했다.

새끼들, 살 기회를 걷어차네.

“모두 사이좋게 저승길 소풍가고 싶은가 본데. 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 모르나.”

으름장을 내뱉어도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본보기를 어떻게 보여줄까 고민하는데 땜빵남의 옆에서 다른 이가 입을 열었다. 눈썹이 송충이처럼 짙어서 강하다는 인상을 주는 남자였다.

“주은성.”

“왜.”

“넌 어떻게 살아있는 거냐?”

“어떻게 살아있긴. 살아있으니까 살아있는 거지.”

“그럴 리가. 분명 핵폭발에 휘말리고 만년한철에 깔렸을 텐데? 설마 유지미가 너를 살려준 거냐?”

그제야 깨달았다.

아, 이 녀석이 함정을 계획한 놈이었나. 진짜 오랜만의 고통이라 화가 좀 났었는데.

나는 침을 퉤 뱉고 단숨에 달려가서 녀석의 머리를 뽑아버렸다. 핏줄기가 솟구치고 목 아래에서 실타래 같은 뼈와 핏줄이 튀어나왔다.

땜빵남과 다른 놈들이 경악해서 소리를 질렀다.

“김강호!”

“이럴 수가!”

내 강함이 내비쳐지는 순간 장내가 만년설처럼 얼어붙었다. 경계만 하던 경호헌터들이 정계인사들을 호위해 움직이고 수십 명의 헌터들이 일사분란하게 나를 포위했다.

반응이 한참 느려.

당연히 나는 가만두지 않았다. 탄지공을 날려 도망가는 인원들의 머리를 관통하고 만찬장의 테이블로 출입구와 내가 들어온 벽을 막았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들은 대번에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됐다.

“뭐든지 적당히 라는 게 있어. 적당히 했으면 오늘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내 말에 땜빵남이 소리쳤다.

“무슨 개소리야!”

“말이 안 통하네.”

“네 놈이 더 말이 안 통해!”

그러더니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공격해! 저 새끼 죽여!”

머릿수의 만용인가.

주변의 헌터들이 성난 멧돼지처럼 몰려와 나를 공격하자 나는 긴 한숨을 내뱉고 반격에 나섰다. 장내의 정계인사들 탓에 장거리 무기를 사용할 순 없는지 칼과 창 따위로 공격해왔다. 덕분에 불필요하게 움직이는 수고를 덜었다.

“진정한 강자들이네. 강한 사람에게 겁 없이 덤비는 걸 보면.”

나는 번개 같이 몸을 움직여 놈들의 곳곳을 노렸다. 내 주먹과 발이 지나갈 때마다 피와 장기들이 솟구쳤다. 뼈 부서지는 소리가 수십 번 울리고 더 이상 덤비는 사람이 없자 내 주변에는 피떡들이 널려 있었다.

“공격해! 뭐해!”

땜빵남의 옆에서 다른 놈이 으르렁 거렸다. 나는 마력을 실어 놈에게 탄지공을 날렸다. 놈은 그것을 피하더니 즉시 내게 화살을 날렸다. 투창이라고 해도 될 만큼 거대한 화살이 내게 쏘아졌다.

“죽어!”

“죽겠냐?”

내가 콧방귀를 흥 날리고 녀석의 화살을 가볍게 쥐자 놈의 인상이 찌그러졌다.

“제길!”

나는 화살을 그대로 돌려줬다. 날아간 화살은 녀석의 명치를 정확히 관통하고 벽에 박혔다.

“어, 어어억! 한진수! 죽여! 저 새끼 죽이라고!”

땜빵남이 질겁해서 소리쳤다. 나는 웃었다.

“멍청이들이 곤경에 빠지는 건 대부분 만용 때문이지.”

땜빵남이 길길이 날뛰었지만 이제는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내 주변으로 시체들이 산을 이루자 그제야 각자가 가진 내부의 분노조절장치가 켜진 것이다.

이래서 단체의 광기가 무섭다. 사람이 여럿 모여서 잘못을 저지르면 모든 책임과 결과가 희석되고 겁을 모른다. 스스로의 생각을 접고 일단은 옆 사람을 따라 움직이고 보는 것이다.

“그래도 너희들은 줄을 잘 못 탔어. 도덕적 선악의 기준을 버리고 그저 윗사람 말대로 행동한 게 너희들 잘못이야.”

나는 남은 놈들을 살려두지 않았다. 탐색스킬을 사용해서 헌터로 보이는 사람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죽였다. 마지막으로 땜빵남이 구질구질하게 목숨을 구걸했지만 묵살했다. 놈마저 죽이니 장내가 조용해졌다.

“지긋지긋해. 처음부터 법 따위 무시하고 다 죽여 버릴 걸.”

쥐똥만큼 남아있던 애국심이 문제였다.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올바르게 살아가고자 했던 순수한 소시민의 마음 탓이 컸다.

“이거 쿠데타 같은 건가?”

하지만 내 순수성을 짓밟듯 누군가가 자꾸 나섰고,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덕분에 지구에 돌아온 뒤로 내 인생에는 컨텐츠가 끊이질 않았고 결국 이런 막장의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내가 한숨을 내쉬자 살아남은 정계인사들이 어깨를 움찔거렸다. 어찌나 크게 움찔거리는지 파도가 들썩거리는 것 같았다.

망할 놈의 허수아비들.

진짜 어떻게 나라가 제대로 돌아갔던 거냐.

“위에 있는 놈들이 똥을 싸면 밑에 분들이 열나게 치우고 있었겠지.”

헬조선의 유구한 관행을 떠올리며 나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일단 생각나는 것부터 고쳐보자.

“야, 거기. 일단 대통령부터 이리 나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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