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의 귀환-47화 (47/127)

# 47

“저 말입니까?”

대통령이 바짝 쫄아서 되물었다. 흡사 모기 같이 작은 목소리였다.

“그래, 너.”

내가 콕 집어 지명하자 대통령이 기겁했다.

“히익!”

“확실히 어쩔 수 없이 뽑았다는 느낌인데.”

한 국가의 수장 같은 중후한 분위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간사하고 야비한 내시 같은 분위기만 풀풀 풍겼다.

대통령은 조심스럽게 다가와 내 앞에 서더니 다짜고짜 무릎을 꿇었다.

“살려주십시오!”

나는 기가 찼다.

“누가 죽인대?”

“그럼 살려주시는 겁니까?”

“아니. 일단 보고.”

“살려주십시오! 저는 죄가 없습니다! 헌터회에서 시킨 걸 했을 뿐입니다!”

거참, 당당하다.

“엄청 뻔뻔한데.”

나는 정치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식견도 짧았다. 그래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구별할 정도의 머리는 가지고 있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대통령이 손바닥을 싹싹 빌었다. 그러자 멀뚱히 서 있던 다른 정계인사들도 따라서 무릎을 꿇고 합창했다.

시끄러워.

“닥쳐!”

내가 일갈하자 장내가 삽시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이제 좀 살만하네. 나는 대통령에게 손을 내밀고 말했다.

“일단 휴대폰 좀 줘봐요.”

내 말투가 바뀌자 대통령이 잔뜩 긴장했다.

“여기 있습니다! 그럼 살려주시는 겁니까?”

“한 번만 더 목숨에 관해서 물어보면 바로 죽입니다.”

“예, 예! 죄, 죄송합니다. 압도적으로 죄송합니다!”

나는 전화를 걸어 박은애에게 미리 연락을 한 후, 대통령에게 엄포를 해서 휴지와 주아랑, 박은애, 차돌파를 이곳으로 불렀다.

지구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보다 그들이 국가정세를 더 잘 알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정계인사들을 죄인처럼 일렬로 앉혀두고 만찬장의 음식을 먹고 있으니 일행들이 왔다.

“헉!”

“이게 뭐야!”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대한민국 권력의 중추들이 하나같이 죄인처럼 무릎을 꿇고 있으니 황당할 법했다.

“이거 몰래 카메라? 아니, 이건 몰래 카메라일 수가 없는데!”

“이 사람은 진짜 대통령 아닙니까? 저 사람은 국방부장관이고···. 저 사람은 문화부장관, 정무수석, 민정수석······. 허어, 뉴스에서나 볼 법한 사람들이 왜 지금 이 자리에···.”

“지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

“배고파. 음식 먹어도 돼?”

각자가 저마다의 감상을 내뱉었다. 나는 그들에게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들은 내 말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결국 나는 좀 더 얘기를 풀어 유지미의 일과 아르카디아의 일도 말했다. 정신병자로 보일 것 같은 얘기였는데 그들은 나름대로 잘 들어줬다. 필요한 내용은 말해주고 불필요한 내용은 생략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러니까 오빠가 다른 차원으로 끌려갔던 용사였다고?”

“그래.”

“유지미란 사람은 회귀자였고?”

“응.”

“그래서 여차저차 갈등이 일어났고 지금 이 사단이 났다는 거야?”

“맞아.”

“오빠 제 정신 맞지?”

주아랑이 다가와서 내 이마에 손을 댔다. 나는 그녀의 반박에 손가락을 세워 장내를 가리켰다.

권력자들이 강아지처럼 이쪽을 바라보고 있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던 헌터회의 일원들이 시체가 돼 널브러져 있었다.

“확실한 건 내가 그 누구보다도 강한 무소불위의 절대자란 거지.”

일행들은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납득했다. 그간 내 행보를 곁에서 봐왔으니 거짓말을 쳐도 어느 정도 믿었을 것이다.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비정상적인 현실이었지만 내가 연관돼 있으니 도저히 묵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말도 안 돼. 진짜로 용사라는 게 있었어?”

“용사는 무슨, 노예지. 그 이름도 거창한 운명의 노예―.”

나는 언젠가 요정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박은애가 갑자기 손뼉을 짝 쳤다.

“아!”

“왜?”

“그러고 보니 오빠가 사라진 뒤에 미녀길드에서 꾸준히 찾아왔었어요. 신이라느니, 세상을 구할 용사라느니, 아르카디아의 일이라느니··· 그런 얘기를 해서 쫒아냈지만요.”

“잘했어. 사이비는 문전박대해야지.”

배경 설명을 모두 끝내고 나는 본론을 꺼냈다. 그들은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석연치 않은 얼굴들이었다.

하긴 나라도 그러겠다. 미친놈 취급 안 해주는 게 어디야.

하지만 내가 당면한 문제를 꺼내자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던 나라가 유사국가였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뭐에요? 그럼 우리가, 아니··· 국민들이 지금까지 이 사람들에 의해 놀아났다는 거예요?”

“허참! 역시 헬조선이 괜히 헬조선이 아니었구만!”

박은애와 차돌파가 울분을 토했다.

“대통령부터 죽여!”

주아랑이 소리쳤다.

“왜?”

“저 새끼가 가장 나쁜 놈이야.”

주아랑은 휴대폰의 화면을 켜서 내게 들이밀었다. 휴대폰에는 대통령과 관련된 인터넷 기사가 줄기차게 나열돼 있었다.

“뭐야? 왜 이렇게 욕이 많아? 언론은 통폐합을 통해 통제되고 있는 거 아니었나?”

“그건 나도 몰라. 하지만 그게 사실이더라도 목숨을 걸고 진실을 알리려는 사람들이 있어.”

박은애가 끼어 들었다.

“21세기에요. 아무리 덮으려고 해도 악행은 퍼질 수밖에 없는 세상이에요.”

“하긴, 이런 사실들을 누군가 알면 열 받아서라도 퍼뜨리겠다.”

꽤 많은 인터넷 기사에서 비난 여론이 거셌다. 언론을 막으려다가 오히려 실수했나보다. 아니면 괜히 돈을 아껴서 기름칠을 좀 덜 칠해줬든지.

나는 대통령을 앞에 두고 인터넷을 검색하며 생각에 잠겼다. 각종 기사들과 정보들을 살펴봤더니 내용이 화려했다.

“비리가 왜 이렇게 많아. 주가조작, 횡령, 로비, 특혜 허가에··· 와, 도대체 얼마나 해먹은 거냐?”

알아볼수록 놀라움은 더해졌다.

“각종 비리문제에 네 가족 가계도는 왜 나와? 대한민국이 무슨 한 가족을 위한 가족형 국가냐?”

그러자 대통령이 항변했다.

“저, 저는 그래도 역대 대통령 치고는 적게 해먹은 편입니다.”

“적게 해먹어?”

“예. 대통령 측근 비리는 항상 있었던 일들입니다. 저는 정말 청렴한 정치를 하려고 노력했고···.”

나는 묵살하고 되물었다.

“청렴? 그럼 여기서 더 해먹고, 덜 해먹고가 왜 나와. 중요한 건 해먹었다는 거 아냐?”

그러자 대통령이 눈물을 흘렸다. 하품을 해서 쥐어짰는지 악어의 눈물인 게 훤히 보였다.

“저, 저는 헌터회의 압박이 있었지만 민생을 살피려고 노력했고, 국가 안전에 최선을 다 했습니다.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혼란스러운 시기에 국가가 건재할 수 있도록 항상 노력을···.”

“네가 아니라 네 밑의 사람들이 고생한 거겠지. 일단 넌 사형으로 확정하고 다음 놈으로 넘어가자.”

국가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것과 그 구성 인원들의 부패정도는 연관이 없다더니 정말이었다.

이어서 다른 놈들을 하나하나 까보니 가관이었다. 까면 깔수록 눈물이 나오는 양파처럼 도저히 두 눈 성히 뜨고 볼 수 없었다.

나라가 안 망한 게 용하구만.

그러던 중 내 시선을 잡아 끄는 게 있었다.

“이건 또 뭐야? ‘미국형 내무반 게 섯거라, 한국형 현대화 병영생활관이 간다’···?”

나는 ‘한국형’이라는 수식어에 주목했다. 일단 어떤 것이든 ‘한국형’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그것은 세금을 낭비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일 가능성이 높았다.

과연 내용을 읽어보니 황당했다. 대격변 이후 무너진 군대생활관을 보수하고 구식생활관을 현대화한다는 계획인데 관련된 기사들을 찾아서 읽어보니 비리 의혹이 곳곳에 자자했다.

“대격변 이후 10년간 12조 8000억을 썼는데 내무반 침대 하나 신식으로 못 바꿨다라···.”

그러고도 병영생활관의 현대화 사업 진행이 20% 밖에 되지 않아서 예산을 추가로 요구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국방부장관이 누구에요?”

“앗! 접니다!”

내 부름에 정장을 입은 사내가 벌떡 일어났다.

“어떻게 생각해요?”

“그, 그건···.”

“12조 8000억이면 400만원짜리 최고급 침대를 320만대 가량 구매할 수 있고, 항공모함을 4대 정도 건조할 수 있는 금액이라는데.”

물론 병영생활관을 보수하고 새로 지으면서 기타 인건비와 보수비가 더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격변 이후 군인 수가 대략 40만으로 줄어든 현재 12조 8000억이면 1인당 3000만원이 넘는 예산이었다.

그런 거금을 쓰고도 사업진행이 20%라는 건 말이 안 됐다.

“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밑에 놈들이 한 짓이라···.”

국방부장관이 내 눈을 휙 피하고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나는 봤다. 찰나에 놈의 동공이 심하게 떨렸다.

‘헌터회 놈들에게 갖다 바치면서 자기도 처먹었겠지.’

그때 잠자코 보고 있던 차돌파가 입을 열었다.

“저 새끼 국방부장관 주제에 미필입니다.”

“미필이요?”

“예. 총 견착하는 법을 몰라서 한동안 이슈화가 됐던 놈입니다.”

큼큼. 나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나 또한 헌터자격을 통해 병역을 면제받았다.

이후로도 양파 같은 논공행상이 계속 됐다. 논공행상의 본래 의미와 달리 상 대신 벌의 크고 작음을 따졌지만 반발하는 놈은 없었다. 모두가 조용히 고개를 수그리고 변명이나 했다.

“일단 이 자리에는 괜찮은 놈이 한 명도 없네. 이러면 여기 놈들은 전부다 모가지 댕강 치고 싹 다 갈아치워야겠는데.”

내가 판단을 내리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주아랑이 말했다.

“모두 다 죽여, 오빠.”

“흐음.”

슬쩍 박은애와 차돌파를 쳐다보니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 멀리서 휴지는 만찬장의 음식들을 먹으며 꺼억 트림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저 새끼들 하는 것도 없어. 살아있어 봤자 나라를 좀 먹을 놈들이야.”

주아랑이 정계인사들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그건 그렇지.”

확실히 놈들은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도리어 국민의 혈세를 좀 먹어 존재 자체가 적폐세력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내가 나라를 운영해도 쟤네들보다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였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재활용할 쓰레기를 고심하며 정하고 있을 때 박은애가 다가왔다. 그녀는 내 심중을 읽고 말했다.

“저 사람들 모두 다 죽여도 괜찮을 거예요.”

“응?”

“지금 보니까 환경부장관만 이 자리에 없어요. 대통령이 죽으면 새로 선거를 치를 때까지 규정된 순서대로 대통령의 직무를 대신하는데 저 사람들 다 죽여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아서요.”

아니, 문제는 분명 있을 거다.

다만 신경 쓰일 정도가 아니겠지.

“그럼 환경부장관은 상태가 괜찮을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보단 괜찮지 않을까요?”

“하긴.”

결심한 내가 탄지공을 날리기 위해 겨냥을 하자 갑자기 누군가 소리를 빼액 질렀다.

“으아아아! 자, 잠깐!”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문화부장관이었다.

“뭐요?”

내가 묻자 그는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시, 실례지만 어데 주씨 십니까?”

“성씨요?”

“예, 예! 대굴빡이 딱 우리 집안 사람 같은데!”

나는 잠깐 생각했다.

“그게 지금 중요한가요?”

“저, 저는 나주 주씨 입니다!”

“그래서요?”

나는 황당해서 그 사람을 가장 먼저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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