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의 귀환-60화 (60/127)

# 60

소시지 같은 팔에서 피가 꿀렁꿀렁 쏟아져 나왔다.

감자튀김도 충분히 위력적이네. 참고해야겠어.

감상을 하고 있는데 팔을 부여잡은 놈이 뒤로 쓰러지고 휴지에게 작업을 걸던 놈이 나를 노려봤다.

“비겁한 칭챙총! 기분 나쁘다고 사람에게 총을 쏴!”

놈은 내가 날린 감자튀김을 전기총의 일종으로 착각한 듯했다.

손가락 튕기는 걸 못 보다니. 시신경에 녹조가 끼었나.

“총 안 쐈는데.”

내가 손바닥을 펼쳐서 흔들어보였다.

“헛소리!”

“감자튀김이야. 버리려고 던졌는데 네 친구가 맞은 거지.”

“그딴 거짓말을 누가 믿을 것 같아? 너만 총이 있는 줄 알아?”

그러더니 품에서 총을 꺼내 나를 겨눴다. 스테로이드 수백 개쯤 먹은 몸이라 주먹이 먼저 날아올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이었다.

이거, 생각보다 합리적인 새끼네.

그는 일체의 경고도 없이 내게 총을 쐈다.

탕!

천둥 같은 소리가 매장 안을 메웠다. 내가 빛의 속도로 손을 움직였다. 순식간에 총알을 낚아채고 화약 냄새에 코를 찡그리자 놈이 경악했다.

“뭐야! 왜 멀쩡해!”

“다짜고짜 머리에 총질이라니. 너 완전히 글러먹었구나.”

내 주먹 안에서 뜨거운 연기가 훅 피어올랐다. 그러자 놈이 숨을 멈추고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다.

“서, 설마 고위헌터였나!”

이제야 제대로 알아보는 군.

“빙고.”

나는 손에 쥔 총알을 그대로 돌려주려고 손바닥을 펼쳤다.

“어!”

그런데 어이없게도 총알이 가루가 돼 있었다.

“아, 나 체력 올렸었지.”

며칠 전부터 느낀 건데 남은 능력치를 전부 체력에 올인해버려서 힘 조절이 잘 안 됐다. 완전히 힘을 빼버리는 건 쉬운데 어중간하게 힘을 주는 건 힘들었다.

“그럼 뭘로 갚아줄까.”

“히, 히이이익!”

손바닥에 묻은 쇳가루를 탈탈 털자 놈이 눈을 크게 뜨고 기겁을 했다. 놈의 친구도 상황을 파악하고 헛바람을 들이켜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나는 몸을 움직여 놈들을 적당히 분질러줬다. 힘을 완전히 빼서 때려줬는데 피와 살점이 튀고 뼈가 뚜두둑 부서졌다. 물리치료가 잘 됐는지 놈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기절해버렸다.

이놈들 덩치만 크고 알맹이는 여러모로 부실하군.

그때 갑자기 커다란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그만 멈춰주세요!”

뒤를 돌아보니 매장의 매니저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총을 견착하고 있었는데 야구방망이만큼 커다란 샷건이었다.

보통 샷건의 탄환하면 자잘한 구슬이 들어가 있는 자탄형태의 탄환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매니저가 들고 있는 샷건은 총구크기부터 남달랐다. 총구가 어찌나 큰지 한 대 맞으면 단번에 몸이 두 동강 날 것 같은 총이었다.

그나저나 여긴 총기가 거의 스마트폰급 일상용품이네.

“싸움은 안 돼요! 나가주세요! 당장 나가주세요!”

매니저가 총으로 우리 쪽을 위협하며 소리쳤다.

“우리는 잘못 없어요!”

휴지가 받아쳤다.

“알아요. 하지만 다른 손님들께 위협이 돼요.”

“그 커다란 샷건이 더 위협적인데.”

“저번 달에도 살인사건이 일어나서 곤란했어요. 제발 순순히 나가주세요.”

내가 샷건을 가리키자 매니저는 울먹거리며 소리쳤다. 어깨를 가늘게 떨고 간곡한 어조로 말하고 있었는데 꼭 비를 맞은 생쥐 같았다.

하지만 근처에 식사를 할 곳이라고는 여기뿐인데.

“그럼 밖에서 먹을 테니까 주문한 거 나오면 갖다 줘.”

내가 태연한 어조로 말하자 그것까지는 거절하기 곤란했는지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서비스로 감자튀김 더 드릴게요.”

“음식이나 잘 갔다 줘.”

나는 휴지를 데리고 야외로 자리를 옮겼다. 적당히 앉을 곳이 없어서 건물 주변에 있던 나무상자들로 식탁과 의자를 만들었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는데 산처럼 쌓인 햄버거 세트를 직원이 낑낑거리며 들고 왔다.

“후, 엄청난 대식가시네요.”

직원은 차마 엄한소리는 못 하고 소심하게 불만을 표출했다.

그러게 가만히 있었으면 셀프였잖아.

직원이 사라지고 우리는 식사를 시작했다. 포장을 찢고 한참을 먹는데 열중했다. 내가 햄버거 하나를 먹을 때쯤 휴지가 스무 개를 넘게 먹고 있었다. 그녀는 제대로 씹지도 않고 그냥 삼키는 것 같았다.

“누가 보면 사흘 정도 굶은 줄 알겠다.”

“벌써 한 끼 걸렀다, 주인.”

휴지는 말하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 먹는데 집중했다. 내가 두 개쯤 먹고 기름기 때문에 질려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때 그녀는 서른 개를 넘게 먹고도 해맑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 가녀린 몸에 어떻게 이게 다 들어가는 걸까.

감자튀김을 먹으며 질린 얼굴로 그녀를 관찰하고 있는데 어디서 헬기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신경이 곤두섰다.

“설마 두들겨 팬 놈들이 어디 쪽 거물이었나.”

하도 바람 잘날 없는 인생을 살다보니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고개를 돌려 매장 안을 살펴보자 두들겨 맞은 놈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기절해있었다.

그럼 헬기의 출처가 저들이 아니란 소린데.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그때 멀리서 경찰차소리도 들렸다. 감각을 확장해서 집중해보니 한 두 대가 아니었다. 단순히 누가 신고를 했다고 보기엔 사이렌 소리가 지나치게 많았다.

“왜? 무슨 일이야, 주인?”

휴지가 식사를 마치고 물었다.

“귀찮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너 입가에 케첩 묻었다.”

나는 휴지의 입가를 닦아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하늘을 쳐다봤다.

역시 기분 탓이 아니었어.

저 멀리 구름너머에서 헬기 두 대가 이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시선을 돌려 좌우를 살피자 도로 끝에서 경찰차들도 보였다.

“우와! 저 커다란 건 뭐야!”

“헬기. 날아다니는 운송수단이야.”

“우와! 이쪽으로 다가온다! 엄청나게 시끄러워!”

휴지가 헬기를 보며 공중제비를 돌았다. 나는 눈가를 찌푸리고 멀거니 섰다.

헬기가 땅에 착륙하고 안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잠시 후 경찰차도 내 앞에서 멈추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내 예상대로 그들은 나와 휴지를 둘러쌌다.

“무슨 일이야, 주인?”

“몰라.”

공격을 해오면 나도 반격할 요량으로 자세를 갖췄는데 그들은 공격의사가 없는 듯했다. 마치 사열을 하는 것처럼 그들은 열을 맞추고 우리 쪽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대체 뭐지?

그때 대열의 중앙이 쫙 갈라지며 한 사내가 여성과 함께 내 쪽으로 다가왔다. 정장을 쫙 빼입은 콧수염이 멋진 흑인과 OL복장의 가슴이 큰 백인이었다.

“영광입니다. 주은성 헌터님. 정상적으로 입국하셨으면 저희가 먼저 나가서 환영이라도 했을 텐데. 많이 아쉽습니다.”

“누구세요?”

내가 황당해서 물었다.

“미국 헌터협회의 밥 말라리 요원입니다. 협회에서 협회부차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미국 헌터협회?”

“예. 저희 쪽에서는 주은성 헌터님이 입국하시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말라리가 황송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 사람들 내 뒷조사를 했나. 지나치게 준비한 느낌인데.

“무슨 일인데요?”

나는 퉁명스럽게 물으면서 여자 쪽을 쳐다봤다. 여자는 아직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다.

“아, 이쪽은 제 비서겸 통역담당입니다. 그런데 영어가 되게 유창하시군요.”

“그냥 보통이죠. 그런데 진짜 무슨 용건으로 절 찾아오신 겁니까?”

내가 다그쳐서 말하자 말라리가 가까이 다가왔다.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여기서 얘기를 꺼내는 건 좀 곤란합니다. 혹시 식사는 하셨습니까?”

휴지가 귀를 쫑긋 세우고 내게 귓속말을 했다.

“아직 안 먹었다고 해, 주인.”

“싫어.”

나는 손가락을 세워 우리가 앉아있던 곳을 가리켰다. 햄버거를 포장하던 종이와 일회용 컵, 냅킨 따위가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아직 치우기 전이었다.

“역시 최대한 빨리 왔는데도··· 흐음. 여러모로 접대의 기회를 놓친 것 같아 많이 아쉽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쉬워.”

말라리의 말에 휴지가 귀를 늘어뜨리고 뒷말을 덧붙였다.

그렇게 먹어도 더 먹고 싶을까.

도대체 위장이 얼마나 넓은 거야.

“그냥 여기서 얘기해요.”

나는 툭 내뱉듯이 말했다. 내가 단답으로 일관하자 말라리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저기 패스트 푸드점 안에서 얘기를 드려도 괜찮을까요?”

“저는 괜찮은데. 매니저가 싫어할걸요.”

“그럴 리가요.”

우리는 다시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매니저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소리쳤다.

“무슨 일이에요! 저 헬기들과 경찰들은 대체···!”

말라리가 신분증을 척 꺼내고 상황을 설명했다. 첩보수사물 장르의 영화에서나 볼법한 장면들이 연출됐다. 매니저는 놀랐다가, 경악했다가 나와 휴지를 보고, 헐레벌떡 달려와서 허리를 직각으로 꾸벅 숙였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그는 우리에게 잘못을 했다기보다 자신의 직업에 맞게 객관적으로 행동했을 뿐이었다.

우리는 다시 매장의 구석자리로 가서 앉았다. 콜라를 음료로 마시며 곧장 본론을 꺼냈다. 내가 말했다.

“이제 말해 봐요.”

말라리는 서류가방에서 종이뭉치를 꺼내며 말했다.

“최근 저희 측에서 알아보길 현재 주은성 헌터님께선 어떤 유적들을 찾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안 거죠?”

역시 내 뒷조사를 했었나.

“의도한 바는 아닙니다. 커다란 운석이 한 달 동안이나 탑 근처에 계속 떨어져서 그 원인을 알아내다보니 우연찮게 알게 된 겁니다.”

나는 레벨 업을 하기 위해 바벨의 탑에서 메테오를 날리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래서요?”

“저희가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탁자를 두들겼다.

“어떻게 도와준다는 건데요?”

“저희 쪽에서 파악하길 유적의 정확한 위치는 모르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나는 눈을 밝혔다. 말라리는 꺼낸 종이뭉치를 내게 건넸다.

“저희는 전 지구의 지상전역에 있는 모든 던전과 유적의 위치를 이미 정확하게 파악한 상태입니다.”

종이뭉치를 받아서 확인해보니 유적과 던전의 위치가 상세하게 정리된 지도였다. 위성으로 찍은 위성지도인지 실제의 산맥과 지형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었다.

나는 숨을 죽였다.

“대체 이걸 어떻게?”

“기술의 발달이죠. 저희 쪽에서 이런 건 일도 아닙니다.”

말라리가 말을 이었다.

“일반인들의 통행이 금지된 지역도 당연히 출입가능하게 조치해드리겠습니다. 극비의 51구역도 물론이고요.”

그때 휴지가 콜라를 다 빨아 마셔서 공기거품 소리가 보글보글 났다. 나는 내 콜라를 휴지에게 주고 물었다.

“설마 헌터협회에 가입하라는 건가요?”

“아닙니다.”

“그러면?”

“저희는 주은성 헌터님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습니다. 일방적으로 강요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요. 그저 소통하고 싶습니다.”

“소통?”

나는 놀랐다. 이거 지금까지 꽉 막힌 놈들과 다르네.

“서로가 대화를 나누고 곤란한 일이 있을 때 부탁을 하자는 겁니다. 물론 주은성 헌터님께서 거절하실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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