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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의 귀환-66화 (66/127)

# 66

콰광!

놈의 손에서 불꽃이 일었다. 폭음과 함께 불꽃이 폭발했다. 내가 배를 움켜쥐고 뒤로 물러서는데 놈이 새된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아악!”

뭐야, 맞은 건 난데 왜 저놈이 비명을 질러.

시선을 내리고 맞은 부위를 봤더니 구멍 난 옷 사이로 내 몸이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그와 반대로 녀석의 주먹은 바위에 부딪힌 계란마냥 부서져 있었다.

“어!”

가만 보니 통증도 거의 없잖아?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깨달았다. 체력능력치가 1069가 됐더니 기본적인 내 몸의 내구성이 단단해졌다. 혹시 몰라서 습관적으로 놈의 공격을 피하고 있었는데 사실 피할 필요도 없었던 거다.

“탄지공도 쳐내고 빠르기도 나와 비슷하길래 좀 하는 놈인 줄 알았더니 순전히 템빨이었잖아. 실망인데.”

“크윽! 닥쳐라!”

“한손이 분질러진 상태로 그런 소리하니까 되게 모양새 빠져.”

긴장이 풀어지자 실망감이 몰아쳤다. 나는 마음 한 구석으로 은근히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 눈높이가 맞는 상대와 조우하기를 조금은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밑천을 숨기고 일부러 검술로 상대하고 있었던 건데.

“역시 주먹이 더 편해.”

성검을 바닥에 꽂고 손가락을 뚜둑 푸는데 놈이 뭐라고 중얼거렸다.

“──.”

그러자 놈의 등산가방에서 푸른 기운이 일렁이더니 다진 마늘처럼 짓이겨졌던 왼손이 멀쩡히 회복됐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뭐야. 신기하네. 그건 무슨 기술이냐? 등산가방이 아니라 만능가방이었나?”

내가 물었는데 놈은 내 말을 묵살했다.

“···미쳤군. 어이가 없어. 한낱 하계의 존재가 이렇게 강할 리가 없는데···. 설마 정보 분석기에 나타난 전투력이 오류가 아니었나. 그럴 리는 없을 텐데···.”

놈은 마른침을 삼키고 중얼거리더니 내게 손을 뻗었다. 손바닥에서 전기뱀장어 같은 번개가 튀어나와 날아왔다.

“오, 멋있어.”

아까 맞은 불꽃공격을 되새겨서 이번에도 맞아볼까 생각했는데 번개가 끝도 없이 연속으로 날아왔다.

아무리 하찮은 공격이라도 계속 맞으면 아프다. 피해야지.

파직! 파직! 파지직!

피할 수 있는 번개는 피하고 나머지는 맨손으로 쳐냈다. 찌릿찌릿한 공격에 주먹이 다 얼얼했다. 놈은 질렸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는데 예상 외로 이 번개가 회심의 공격이었던 것 같다.

벌써 밑천이 다 떨어졌나.

“더 보여줄 건 없나?”

“뭐?”

“천외천의 존재도 별거 아니네.”

“웃기지 마라! 하계의 벌레 주제에 기고만장해서는!”

놈이 살벌한 목소리로 바락바락 소리쳤다. 목소리에 감정이 잔뜩 묻어나서 조금의 위협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하계의 벌레면 넌 뭐야. 벌레보다 못 한 아메바 단세포냐.”

“이, 이익!”

“벌써 밑바닥 패를 다 보여서 얼추 결판이 난 것 같은데.”

놈은 아예 근접전을 포기하고 원거리로 승부를 보려는지 적당히 거리를 벌리면서 계속 번개와 불덩이를 던졌다. 뜨거운 열기와 찌릿한 번개가 땅바닥을 연신 휩쓸었다.

쓸데없이 화려해.

“그럼 나도 탄지공이 있지.”

아까는 샘플용으로 한두 개를 날렸지만 탄지공은 마력만 충분하다면 힘이 닿는데 까지 연속으로 날릴 수 있다. 내가 손가락을 튕겨 연속으로 탄지공을 날리자 내 손가락에서 빛의 섬광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갔다.

“이런 미친!”

놈이 경악을 하고 뒤로 물러섰다. 탄지공이 점점이 날아갔는데 몇 개는 놈이 휘두른 철봉에 막혀 사라지고 몇 개는 놈의 가슴과 허벅지에 직격했다.

“크아아아아악!”

빠르기는 나와 비슷하더니 역시 몸의 내구성이 안 좋네.

고통에 몸부림치는 놈을 보고 내가 재차 탄지공을 날리려는데 놈이 배낭에서 투명한 막대 같은 것을 꺼냈다.

“그건 또 뭐야? 생긴 건 꼭 딜도 같은 게.”

내가 떠오르는 그대로 물었다.

“이건 일회용이라서 쓰기 싫었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일회용? 일회용 딜도?”

철컥! 철컥!

놈은 내 비아냥을 무시하고 그 이상한 막대를 좌삼삼 우삼삼 돌렸다. 막대가 번쩍 빛나더니 막대 위에서 푸른 섬광이 모였다.

꼭 불꽃 분수가 터지는 500원짜리 폭죽키트 같네.

모인 빛은 물줄기처럼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나가더니 종국엔 마치 광선검 같은 모양새를 갖췄다.

지이이잉!

“광선검이었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놈이 철봉의 끝에 광선검을 붙였다. 톱니바퀴가 물리듯 두 무기가 결합했는데 원래 한 몸인 것처럼 잘 맞아떨어졌다.

“그럼 광선창인가?”

“넌 죽었어!”

파가각!

놈이 길어진 리치를 활용해 광선창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땅바닥이 패이고 곳곳에 흙먼지가 일었다. 건물이 부서지기도 했다.

나는 광선창을 주먹으로 쳐내고 단숨에 놈에게 근접하려고 했는데 놈이 휘두른 일격에 커다란 바위가 두부처럼 잘리는 걸 보고 관뒀다. 내 몸의 내구성이 아무리 뛰어나도 잘리면 다시 붙일 수 없다. 괜히 맞았다가 몸이 동강나면 나만 손해다.

“어떻게 할까.”

술술 피하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의외로 해답은 금방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놈이 지쳤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나와 달리 체력이 약하니 지구력도 낮은 것이다.

“벌써 지쳤나?”

“닥쳐!”

나는 놈이 숨을 몰아쉬는 틈을 먹이삼아 땅을 박차고 즉시 달라붙었다. 그리고 복부에 강권과 붕권을 연달아 먹였다.

뻐걱! 뻐억!

“갸아악! 구아아악!”

뚜두둑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놈의 입에서 한 움큼 피가 터져 나왔다. 마지막 붕권의 효과로 놈이 저 멀리 날아가 바위에 부딪혔는데 부딪힌 바위가 쩌저정 두 쪽으로 갈라졌다.

“쿨럭!”

역시 허약해.

나는 바닥에 떨어진 광선창을 확인한 후 놈에게 근접했다. 탄지공을 몇 개 날려서 시선을 분산시키고 놈의 허리에 로우킥을 갈기자 까드득 뼈의 하모니가 울렸다.

“커허헉!”

힘 조절에 실패해 상당한 힘을 실었는데도 놈의 몸은 동강 나지 않았다. 쫄쫄이 같은 타이즈 옷이 상당한 방어력이 있음을 실감했다.

“쫄쫄이도 특수 아이템인가.”

손을 들고 머리를 때리려는데 놈이 갑자기 손바닥을 펼쳤다.

“자, 잠깐···. 잠깐만!”

“왜.”

“내가 졌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그래서?”

“널 인정한다. 이쯤에서 그만하자.”

“무슨 헛소리야.”

나는 놈의 뺨을 후려치고 두 다리를 마저 분질렀다. 허벅지 아래가 피떡이 되니 살갗 밖으로 뼈와 혈관이 튀어나왔다.

아까와 같이 회복기술을 쓰는가 싶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물었다.

“뭐야? 회복 안 해? 포기했어?”

“회복세이지는 일회용이다.”

“그놈의 일회용은···. 기다려봐.”

나는 놈을 위협할 용도로 땅에 꽂아둔 성검을 들고 돌아왔다. 성검을 휘둘러 겁을 주려는데 놈이 꽥 소리를 질렀다.

“자, 잠깐! 그만 둬! 살려줘!”

“왜.”

새끼 겁은 엄청 많네.

“너희 세상이 왜 이런 꼴이 됐는지 궁금하지 않나? 날 살려주면 뭐든지 말해줄게.”

“궁금한데. 대충은 알아.”

“어, 어떻게?”

놈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깨달은 듯 입을 벌렸다.

“나는 나달보다 직급이 높아서 아는 게 더 많아. 너희 지구가 왜 이런 꼴이 됐는지 그 녀석보다 더 잘 알고 있어.”

“나달보다 직급이 높다고?”

“그래.”

“점점 강한 적이 파견 오는 시스템인가?”

내 혼잣말에 놈이 좋다고 손뼉을 쳤다.

“그래, 맞아! 날 죽이면 복수를 위해 더 강한 놈이 올 거야. 날 살려주기만 하면 보고서를 조작해서 일이 잘 마무리됐다고 보고할게. 그럼 더 이상 아무 일도 없을 거고 넌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어.”

“흐음.”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근데 나도 방금 떠오른 게 있어.”

“뭔데?”

“널 죽이면 더 높은 직급의 놈이 날 찾으러 올 거 아냐?”

“그렇지. 직급이 높을수록 강하니 넌 죽을 지도 몰라.”

“근데 생각해보니까 더 높은 직급을 가진 놈이 너보다 정보를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을 것 아냐? 그럼 굳이 널 살려둘 필요가 있나 싶어서. 나중에 그 녀석한테 정보를 캐내면 더 이득인 거 아냐?”

놈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붕어처럼 입을 몇 번 꿈떡였는데 반박할 말이 안 떠오르는지 그는 한숨만 연거푸 내뱉었다.

“하··· 이런··· 겁 대가리를 상실한 하계의 존재를 봤나.”

“유언은 거기까지냐?”

내가 묻자 놈이 침을 삼키고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옆구리를 긁었다.

쫄쫄이 품질이 별로 안 좋나보네. 이런 상황에서 옆구리가 간지럽다니.

위급한 상황에서 몸이 간지럽다면 대번에 목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문득 나도 구멍이 난 내 옷이 시선에 들어오자 장비를 제대로 맞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템빨이 필요할 때가 됐어.”

파아아!

그때 갑자기 놈의 등산가방이 새파랗게 빛났다. 내가 손을 들어 눈을 보호하자 커다란 등산가방이 퍼즐조각처럼 나눠지는 게 보였다.

“뭐야? 진짜 만능가방이었어?”

“제길, 이것까지 날리게 될 줄은 몰랐는데···. 대출혈이다.”

놈은 옆구리를 긁고 있던 게 아니었다. 모종의 이유로 등산가방을 조작하고 있었던 거다.

“숨겨둔 기술이 있었나?”

“너 두고 봐라.”

서로 얘기가 엇갈리는 가운데 등산가방이 훅 커졌다. 그러더니 파도가 물결치는 것처럼 포탈이 생겨났다.

“포탈!”

내가 놀라서 손을 뻗자 놈이 웃었다.

“늦었어. 이건 방어 시스템까지 구축되어 있다. 잠자코 내가 도망가는 걸 보고나 있어라.”

하지만 늦지 않았다. 내가 성검을 휘두르자 투명한 방어막이 손쉽게 깨졌다.

“헉!”

“놀라기는.”

“아, 안 돼!”

나는 살려둘 가치가 없는 적에게 온정을 베풀지 않았다. 성검이 궤적을 그렸고 놈의 목이 미끄러지듯 잘려져 바닥을 굴렀다.

댕강!

“신기한 놈이었어.”

나는 놈의 시체로 다가가 이것저것 살펴보았다. 등산가방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고 놈이 착용하던 정보 분석기와 쫄쫄이가 있었다.

아, 광선창도 있었지.

나는 그것들을 챙겨서 아공간에 넣었다. 쫄쫄이는 기분이 나빠서 버리려다가 그냥 챙겼다. 혹시 모르니까.

와중에 인종혐오단체인 크림슨의 휴대폰도 까먹지 않고 챙겼는데 비밀번호가 걸려있어 휴대폰의 내용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나머지는 미국 헌협의 밥 말라리를 만나서 해결하기로 하고 나는 다음 목적지를 향해 떠났다.

* * *

마검은 성검보다 더 찾기 쉬웠다. 51구역 근처의 지하에 숨겨져 있었는데 천외천의 놈에게 기부 받은 정보 분석기가 빛을 발했다. 언어가 번역돼 있어서 조작하는 것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고 몇 번 조작을 하자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덕분에 마검을 쉽게 얻을 수 있었는데 마검의 정령 벨라는 성검처럼 까탈스럽지 않았다. 나를 보자 크큭 거리며 계약을 요구해왔고 결과적으로 오른쪽 손등에는 푸른 성검의 문양이, 왼쪽 손등에는 붉은 마검의 문양이 생겨났다.

그리고 문양이 생겨남과 동시에 성검 클리브 솔리스와 마검 스톰 브링거가 합쳐졌는데 영화적인 연출 끝에 검은 기운이 흘러넘치는 하나의 검이 됐다.

나는 그 검에 성마검이라는 이름을 짓고 내친 김에 정령들의 이름도 개명해서 성검이와 마검이로 결정했는데 살짝 반발이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제 이름은 아자젤 솔리스에요! ‘성검이’라고 개명한다니, 그건 인간으로 치면 개똥이나 돌쇠 같은 이름이라고요!

마검이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성검이만 신경질이다.

어쨌든 나는 그녀의 의견을 무시하고 천외천을 대비해서 남은 채비를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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