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만렙의 귀환-68화 (68/127)

# 68

“갑자기 튀어나왔어.”

누가 말했다.

“천사님인가.”

누가 말을 받았다.

“이제 시험이 시작되나?”

“조심해야해. 듣기로 천사는 까탈스럽다고 들었어. 어떻게 나올지 아무도 몰라.”

그 뒤로 대화가 이어졌고 나는 상체를 일으켰다. 머리가 면도칼에 베인 듯 아파왔다.

여기가 천외천인가?

나는 눈을 비비고 주변을 살폈다. 하늘은 새 파랗고 땅은 흑갈색이었다. 호흡을 크게 쉬자 숨도 이상 없이 잘 쉬어졌다.

“천외천도 똑같구나.”

상위 차원이라고 조금은 다를 줄 알았는데 지구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나는 정보 창을 열어 내 정보부터 확인했다. 달라진 게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지구에 처음 도착했을 때처럼 변화가 있을지 모른다.

<주은성>

레벨: 1000 (윤회+ 1)

[경험치 16733/318993]

[체력: 1069] [감각: 308]

[의지: 125 ] [마력: 500]

[미 분배 포인트: 0]

“달라진 건 없네.”

스킬들도 확인해보니 변동사항은 없는 듯했다.

[윤회 1] [붕권 31]

[로우킥 17] [강권 33]

[탐색 5] [아이템 식별 3]

[탄지공 43]

[속성부여 – 서리 MAX]

[마나 골렘 1] [테이밍 MAX]

[천마신공 11] [천마비행술 7]

[은의 검법 1]

자의에 의한 차원이동이다보니 특전도, 초기화도, 아무것도 적용받은 게 없었다. 아니, 지구에서 특전으로 받은 윤회 스킬은 소원석에게 받은 것이니 자의와 타의를 구분 지을 필요는 없나.

어쨌든 아쉬우면서도 안심이 됐다.

“저기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혹시 천사님이십니까?”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와서 물었다. 덩치와 얼굴이 몽골인처럼 크고 골격이 장대한 사내였다.

“천사?”

내가 되물었다.

무슨 소리야. 뜬금없이.

“예. 갑자기 튀어나오셔서.”

주변을 살펴보니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나를 동물원의 원숭이 보듯이 관찰하고 있었다.

눈망울엔 경계의 기색이 가득했는데 마치 무서운 살인자를 보듯이 질색한 눈빛이라서 나도 기분이 좀 언짢아졌다.

그보다 천외천이라고 긴장했는데 평범하잖아.

나는 몸을 완전히 일으키고 사지가 멀쩡한지부터 살폈다. 팔다리부터 들고 온 아이템들까지 이상은 없었다.

“좋아. 아공간도 멀쩡히 잘 열리네.”

고개를 들고 정보 분석기를 사용하자 주변의 지형지물이 홀로그램으로 파악됐다. 야트막한 산과 평평한 평지, 그리고 빽빽한 수풀과 나무들이 보였다.

“여긴 숲속 어디쯤인가.”

뒤를 돌아보니 무슨 신전과 거주시설 같은 것도 있었다. 포탈이 정확히 나를 어디로 인도했는지 알 수 없었다.

여기가 천외천이 맞긴 한 걸까.

“이봐. 여기가 어디냐?”

남자에게 물었다.

“예?”

“여기가 천외천이 맞냐?”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잘······. 혹시 시험이 벌써 시작된 겁니까?”

“시험? 무슨 시험?”

남자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쳐다봤다. 의구심이 솟구쳤는데 마음속에서 성검이가 대신 해답을 줬다.

-여긴 천외천이 아니에요. 그 아래에 있는 천외지에요.

“천외지?”

-어, 제 말이 들리시나요!

“그래, 잘 들리네.”

나는 귀를 후벼 팠다. 그간 하도 시끄럽게 굴길래 마음의 귀를 닫고 있었는데 차원이동을 하면서 귓속말 거부모드가 풀린 것 같았다.

어쨌든 잘 됐네.

“천외지는 뭔데? 천외천과 다른 곳이야?”

-천외천 바로 아래에 붙어있는 행성이요. 천외천으로 가기 전에 거쳐 가는 통로 같은 곳이죠.

“그럼 여긴 천외천이 아니란 거네?”

-네. 크게 보면 천외천의 한 구역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아니에요.

어쩐지 사람들이 다 착해 보이더라. 옷차림새도 타이즈 맨처럼 변태 같지 않고 정상적이고.

“그런데 너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 거냐?”

-저는 원래 천외천에 속한 존재였으니까요.

“그렇군. 그럼 여기서 천외천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해?”

내가 묻자 성검이가 귀찮다는 어조로 말했다.

-시민권이 필요해요.

“시민권?”

-네.

조금 놀랐다. 나는 천외천을 적들이 모여 있는 군집지역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군부대를 침입한 것처럼 무작정 공격을 받고 곧바로 전투가 일어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군.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었어.

아니, 천외천이 아니라 천외지니까 분위기가 다른 걸까.

작게 중얼거리는데 처음 말을 걸어왔던 남자가 다시 말했다.

“저기 천사님 괜찮으십니까? 왜 자꾸 혼잣말을 하시는지···.”

“천사님이라고?”

“예.”

아까부터 천사타령이네.

“나 천사 아닌데.”

“천사님이 아니시라고요?”

“응.”

내 말에 남자는 놀란 듯 펄쩍 뛰었다.

“하지만 갑자기 튀어나오셨잖아요.”

“갑자기 튀어나온 것과 천사가 무슨 상관이야.”

“혹시 이것도 시험 내용인가요?”

“무슨 헛소리야.”

나는 정보 분석기로 황당해하는 남자를 스캔해봤다. 전투력이 1100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치가 나왔다.

머리는 조금 모자라 보이는데 육체는 엄청 강하네.

전투력을 몇 번 분석하면서 느낀 거지만 전투력 1100이면 지구의 웬만한 헌터를 압도하고도 남는 수치다.

“역시 천외천에 속한 사람이라 그런가.”

둘러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1천 초반에서 후반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간혹 2천 초반에 달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 전투력이 6천인만큼 나는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고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이 사람들이 평범한 민간인이라면 나보다 월등히 강한 놈도 있겠는데.

지구의 민간인들은 전투력 수준이 두 자리 밖에 안 됐다. 간혹 세 자리가 있었지만 많은 수는 아니었고 헌터들과 비교하면 두 배에서 열 배까지 큰 폭으로 차이가 났다.

만약 여기도 비슷한 상황이라면 천외천에서 헌터로 분류될 강자들은 어쩌면 전투력이 1만을 넘을지도 몰랐다.

“···2만을 넘을지도 모르지.”

그런 생각을 하니 소름이 끼치면서도 희열이 들었다.

당분간은 내 정체를 숨기면서 조심히 지내야겠어.

외형적으로는 이들과 큰 차이가 없으니 조심스럽게 녹아들면 별탈은 없을 것이다.

“가만 보니 날개가 없네.”

“천사 아니라니까.”

나는 계속 천사타령을 하는 남자를 묵살하고 휴지부터 소환하기로 했다. 어딘지 모를 캄캄한 곳에서 홀로 갇혀 있을 휴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헌데 이상했다. 소환이 실행되지 않았다.

<대상을 소환하는데 필요한 마력 량이 부족합니다.>

그 대신 정말 오랜만에 보는 빛의 글귀가 떠올랐다.

마력 량이 부족하다니!

“말도 안 돼.”

기가 찼다.

천마신공을 배워서 배율도 300퍼센트가 됐는데 마력 량이 부족하다고?

정확히는 천마신공이 11레벨이 되면서 마력배율이 무려 305%였다. 내 마력 량은 1650이나 됐다.

“그런데 마력 량이 부족하다니···.”

불친절한 시스템은 마력이 얼마나 부족한지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나는 씁쓸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미안, 휴지.

이럴 줄 알았으면 널 두고 오는 건데.

혹시 몰라서 메자이의 부적을 사용해봤지만 차원을 넘나들 수는 없는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 그녀는 어딘지 모를 캄캄한 곳에서 내 오감을 다 느끼고 있을 것이다. 지난번에 듣기로 소환이 해제되면 다른 차원에 부유하면서 내 감정과 사생활을 공유한다고 했으니까.

이곳엔 분명 신기한 아이템들이 많으니 마력 량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는 아이템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 희망을 걸어보자.

그렇게 궁상을 떨고 있는데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몬스터다!”

그 뒤로 다른 이들의 외침도 이어졌다.

“시험이 시작됐다!”

“모두 나가서 싸우자!”

“우와아아아!”

나는 고개를 훅 돌렸다.

몬스터? 무슨 일이야?

전방에 고릴라를 닮은 거대한 몬스터가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검은 털이 복슬복슬한 게 외형은 마치 고릴라 같았는데 몸집은 오우거만 했고 머리는 무척 거대했다.

특히 입술 밖으로 툭 불거져 나온 송곳니가 성인 남성의 팔뚝만 했는데 위쪽에만 두 개가 삐죽 튀어나와있어서 언젠가 봤던 고대 악마의 모습과 비슷했다.

흉흉하게도 생겼네.

사람들은 거기에 맞서 저마다 무기를 든 채 우르르 달려가고 있었다. 결연한 눈빛들을 보니 전투를 치를 셈인 것 같았다.

“당신은 정말 천사가 아니었군. 여기 세상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어.”

지금껏 천사타령을 하던 남자도 날 보며 헛웃음을 터뜨리고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의 곁에 있던 무리들도 함께 대열에 합류했다.

“이해가 안 되네.”

나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멀거니 섰다. 그리고 정보 분석기를 조작해서 거대 고릴라의 전투력을 확인했는데 황당하게도 1천이 넘는 수치가 나왔다.

한낱 몬스터 따위의 전투력이 무려 1천!

“진짜 미쳤네. 여긴 난이도가 헬이잖아.”

상황을 잠자코 보고 있는데 한 남자가 몬스터를 상대하는 모습이 보였다. 비명 같은 고함 끝에 칼이 휘둘러지고 피가 간헐천처럼 솟구쳤다.

정수리가 갈라진 거대 고릴라가 괴성을 지르며 쓰러졌는데 남자는 목숨이 아깝지 않은지 정수리에서 칼을 뽑자마자 쉬지 않고 전투에 전념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여 몸이 깡통처럼 분질러지기도 했고, 누군가는 유연하게 움직이며 몬스터들의 공격을 피해 잘도 전투를 치러 나갔다.

사람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몬스터에 맞서 죽자살자 싸웠다. 나는 그 광경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넋을 놓고 보고만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그때 성검이가 내 의중을 읽고 말했다.

-여긴 아마도 천외지의 시험장인 것 같아요.

“시험장?”

내가 놀란 숨을 훅 들이켜고 물었다.

-아까 전에 제가 천외천에 가기 위해선 시민권이 필요하다고 말했잖아요.

“그랬었지.”

-천외지에서 시민권을 받기 위해선 일련의 시험을 받아야 해요. 아까 천사 얘기도 그렇고 여긴 천외천의 시민권을 받기 위한 시험장이 맞는 것 같아요.

거참, 지랄 맞네.

도착해도 왜 이런 곳에 도착한 거야.

“그래서 여기선 어떻게 나갈 수 있는데?”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마검이는 뭐 아는 거 없어?”

내 물음에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마검이가 대답했다.

-크큭.

녀석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항상 의미 없는 웃음으로 일관했다. 한 번도 정상적인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

“넌 왜 맨날 웃기만 하냐.”

-크큭.

나는 포기하고 사태를 지켜봤다. 성검이가 말했다.

-어차피 천외천으로 가실 거 아니에요?

“맞아.”

-그럼 시민권을 얻어야지요. 지금 일은 잘 된 게 아닐까요?

“그렇긴 한데. 마음이 조금 변했어. 나도 사람인데 다른 차원 구경도 좀 하고 쉴 수 있으면 쉬어야지.”

그때 사람들이 전투를 모두 치르고 몬스터들의 시체를 갈무리 하는 게 보였다.

마정석이라도 얻을 속셈인가 생각했는데 희한하게도 몬스터에게선 다른 게 나왔다.

“구슬?”

시뻘건 빨간 구슬이 몬스터에게서 나오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모든 시체들에게서 나오는 건 아닌지 어떤 시체는 갈무리를 해도 구슬이 나오지 않았다.

저건 마정석이 아닌 건가? 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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