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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의 귀환-69화 (69/127)

# 69

호기심을 품고 그들을 관찰했다. 누구는 구슬을 먹기도 했고 누구는 구슬을 품에 챙기기도 했다.

나는 구슬을 먹는 것에 큰 의문이 들었다. 몬스터에게서 나온 구슬은 마정석과 마찬가지로 가치가 있는 물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먹는다는 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뭐지?

의문이 이어지고 있는데 갑자기 괴성이 들려왔다. 시선을 거둬들이고 고개를 돌렸더니 고릴라 같은 거대한 몬스터가 나를 마주보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더 징그럽네.

놈이 입을 쩍 벌리고 내게 달라붙었다. 커다란 송곳니가 흉물스럽게 반짝였다. 나는 체액이 몸에 묻을까 마력을 실어 탄지공을 날렸는데 빛의 섬광이 두개골을 통과하자 놈은 눈알을 희번덕거리더니 금방 쓰러졌다.

나는 사람들이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놈의 시체를 뒤졌다. 다행히 구슬이 있었다. 사람들이 얻었던 것처럼 핏빛의 시뻘건 구슬이었다.

이거 사실 피가 묻어서 빨간 거 아냐?

시체의 검은 털에 슥슥 문질러봤지만 여전히 빨간색이었다. 피가 묻은 건 결코 아니었다.

“나도 먹어볼까?”

구슬을 입 가까이에 대자 역한 혈향이 확 올라왔다. 몬스터의 피 냄새는 석유 냄새와 비슷했다.

이런 걸 잘도 삼켰단 말이지.

나는 도저히 구슬을 삼킬 기분이 들지 않았다.

-어! 뭔가 튀어나왔어요.

그때 성검이가 소리쳤다.

이 녀석은 대체 눈이 어디 있길래 잘도 보는 걸까.

생각을 접고 하늘을 보는데 난데없이 폭죽이 터졌다. 매캐한 화약 냄새가 나고 구름 사이로 날개 달린 드워프 족이 나타났다.

“요정!”

내가 소리쳤다.

요정과 똑같이 생겼잖아.

다행히 사람들이 ‘천사다!’, ‘저게 진짜 천사!’라고 외쳐서 내 외침소리는 조용히 묻혔다.

“이번 기수는 실력이 좋네. 많이도 살아남았어. 생존자도 없을 텐데 매번 실력들이 향상된단 말이야.”

천사라는 존재가 말했다. 사람들은 내게 보였던 것처럼 긴장한 몸짓으로 뻣뻣하게 굳었다.

“시험은 이미 시작됐다. 규칙은 이곳에서 한 달을 버티는 것. 그리고 허락 없이 이곳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당장은 아니지만 나도 천외천에 가기 위해선 시민권을 얻어야 한다. 지금 규칙을 알아서 나쁠 건 없다.

시험방식은 살아남기인 건가?

천사가 말을 이었다.

“그 외의 모든 것들은 통용된다. 몬스터는 매일 정해진 시간마다 나타날 것이고 약한 사람은 죽을 것이다. 천외천에 들어갈 자격은 쉽게 가질 수 없다. 너희들은 운이 좋았다는 걸 명심하길 바란다.”

천사는 말을 끝내고 나를 쳐다봤다. 혼자서 외딴 곳에 서 있으니 관심을 산 듯했다. 나는 천사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녀는 잠깐 눈두덩을 살짝 찌푸리더니 다시 풀었다.

그녀의 시선이 내 손에 잡힌 빨간 구슬을 지나친 걸로 봐선 구슬이 그녀의 의심을 잠재운 것 같았다.

그런데 천사의 전투력은 몇 일까.

나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천사가 다른 곳을 쳐다봤을 때 정보 분석기로 그녀의 전투력을 스캔해봤다.

“오.”

무려 3590이라는 높은 수치가 나왔다.

굉장한데. 하지만 역시 나보다는 약해.

그 순간 천사가 나를 다시 노려봤다. 그녀는 깨달은 듯 두 눈을 반짝이더니 흥미로운 장난감을 본 아이처럼 단숨에 내 쪽으로 날아왔다.

“너 누구야?”

천사가 물었다.

누구? 뭐라고 대답해야하지?

“사람.”

“너 어떻게 정보 분석기를 가지고 있는 거지?”

그녀는 눈을 치켜떴는데 가까이서 보니 요정과 조금 다르게 생겼다. 외모는 거의 차이가 없었는데 풍기는 분위기를 보니 알 수 있었다.

나는 요정과 오랜 기간 함께 행동했다. 그래서 마치 자신의 애완동물을 정확히 알아보는 주인처럼 분위기의 차이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녀석도 내 외모를 구별하기 힘들어 할까?

아마 그럴 것이다. 마치 동물들을 볼 때 개체 간의 외모를 구별하기 힘든 것 마냥 이들도 내 외모를 구별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 쓸데없는 사념이 머릿속을 스치고 있었다.

“어떻게 정보 분석기를 가지고 있는 거냐고.”

천사가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 나는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서 굳었다. 그 행동이 그녀의 의심을 증폭시켰다.

“이건 분명히 MK2 신형모델 같은데. 초록색 구슬을 10개나 내야 살 수 있는 거잖아.”

나는 놀란 숨을 훅 들이켰다.

초록색 구슬을 10개나 주고 정보 분석기를 산다고?

이쪽 세계에선 구슬이 화폐 같은 건가?

의문을 곱씹고 있는데 그녀가 안경처럼 쓰고 있는 내 정보 분석기를 가리켰다.

“천외지의 벌레가 초록색 구슬을 10개나 얻는 일은 결코 없을 텐데. 너 대체 어떻게 정보 분석기를 가지고 있는 거야? 바른 대로 말해.”

“주웠어.”

나는 씨알도 안 먹힐 말을 꺼냈다.

“주워?”

“그래.”

“그래?”

천사의 음성이 기묘하게 올라갔다. 나는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왜?”

“왜에? 지금 왜 라고 했어?”

그녀는 내 말을 따라하더니 미간을 좁혔다. 역시 믿지 않았다.

천사가 공격 해올까?

나는 주먹을 꽉 쥐고 전신의 근육을 살렸다. 천사를 죽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에 몰아칠 태풍 같은 파급력이 문제였다.

현재의 나는 태풍의 눈에 서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까닥 잘 못하다간 위험한 상황에 맞부딪힐 것이다. 더군다나 천외천과 천외지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다. 최대한 조심히 행동해야한다.

숨을 죽이고 있는데 천사가 목을 세웠다.

“하계의 존재가 감히 내게 반말을 해?”

주웠다는 변명이 그녀의 화를 돋게 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녀는 내가 말을 높이지 않는 것에 분노하고 있었다.

“왜요.”

내가 다시 말했다.

“왜요?”

“왜 그러세요.”

나는 다시 한 번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그런데 그녀는 화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화를 삭일 시기는 이미 지나버린 듯했다.

“버러지 같은 놈이!”

천사가 손을 뻗었다. 새하얀 손바닥이 내 얼굴을 엄습해왔다. 나는 관대하게 한쪽 뺨을 내밀었다.

찰싹!

찰진 소리가 숲속 전역에 울려 퍼졌다.

와, 좀 아프다.

덕분에 재능도 없는 할리우드 액션을 취할 필요가 없어졌다. 리액션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나는 뺨을 움켜쥐고 앓는 소리를 냈다.

“아오, 아파.”

그런데 그 행동이 그녀의 의심을 더 사게 만들었다.

“너, 너 대체 정체가 뭐야?”

“왜요··· 아니, 왜 그러세요?”

“왜 안 죽어?”

아, 죽일 정도로 세게 친 거였구나. 어쩐지 좀 아팠다.

“죽어야 하나요?”

“아, 어, 어, 어···.”

천사가 황당해하더니 이번엔 주먹으로 내 복부를 때렸다. 나는 맞아줄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맞아줬다.

“윽! 꺄아아아악!”

복부를 움켜쥐고 있는데 천사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오버 액션을 해제하고 살펴봤더니 그녀의 주먹이 박살난 계란처럼 형편없이 으깨져 있었다.

“어!”

아까보다 더 세게 쳤구나.

나는 쫄쫄이 맨이 내 복부를 쳤던 기억을 떠올렸다. 바위를 상대로 더 세게 때려봤자 계란 쪽이 부서질 뿐이다. 그때의 상황과 비슷해졌어.

“아흐윽, 너 대체 정체가 뭐야···. 어디서 튀어나온 놈이야?”

천사가 울먹거리며 소리쳤다.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이러면 나가린데. 역시 죽여야 하나.

나는 한숨을 내쉬고 허리춤에 끼워놨던 성마검을 뽑았다. 성마검이 밝게 빛나자 천사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귀, 귀환자!”

“귀환자?”

“죄송합니다. 귀환자를 몰라 뵙고 죄송합니다.”

천사가 연거푸 사과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분위기가 단숨에 역전됐다.

귀환자라니, 무슨 소리야.

“설마···.”

이곳은 요정 같은 놈들의 통로로 이용되는 지역이었나.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가 이곳에 도착한 것도 이해가 된다.

천외천 대신 천외지에 도착한 게 어떤 변수가 있어서 발생한 일이 아니었어.

내가 추측을 하고 있을 때 넙죽넙죽 고개를 숙이던 천사가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돌아온다는 귀환자가 없었는데.”

그녀의 눈이 뱁새처럼 가늘어졌다. 나는 지킬 앤 하이드를 보는 것 같은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손목에 인식표도 없고.”

“인식표?”

“대체 정체가 뭐지? 당신 누구야?”

천사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폴더 폰 같이 생긴 것을 품에서 꺼내더니 망설임 없이 버튼을 눌렀다.

위잉! 위잉! 위이이이이잉!

붉은 빛과 함께 요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나는 그것이 비상벨과 비슷한 장치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런.”

나는 땅을 박차고 즉시 성마검을 휘둘렀다. 검이 궤적을 그리자 천사가 투명한 방어막을 급히 펼쳤다.

카강! 빠지직!

방어막이 성마검에 부딪히자 형편없이 깨졌다. 천사의 눈이 왕방울 만하게 커졌다. 검날은 그대로 들어가서 그녀의 팔을 베었는데 뼈째로 그대로 썰리자 천사의 오른팔이 고깃덩이처럼 땅바닥에 떨어졌다.

“끄아아아아악!”

“넌 살 기회를 버렸어.”

나는 더 이상 참지 않고 주먹을 뻗었다. 천사가 본능적으로 남은 왼팔을 치켜 올렸다.

빠드득!

나무토막이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천사의 왼팔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천사가 눈을 한껏 치켜뜨고 괴성을 질렀다.

“히이이이익!”

나는 주먹으로 천사를 패면서 생각했다.

이대로 납치해서 정보를 캘까.

검을 휘두르지 않는 것은 이용가치에 대한 재고 때문이었다. 멀리서 멀뚱히 지켜보는 사람들보다 천사가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누구냐! 당장 멈춰!”

“무슨 짓이야!”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른 날개 달린 드워프 족들이 날아왔다. 비슷한 시험장이 근처에 꽤 많은지 많은 수가 단숨에 날아왔다.

나는 일단 몸을 피하기로 결정하고 혼절한 천사를 두고 수풀 쪽으로 몸을 날렸다.

천마비행술을 사용하자 눈 깜짝할 사이에 그들로부터 멀어졌는데 그들은 내 쪽으로 따라오지 않고 한동안 사람들이 있는 대열을 이리저리 훑었다.

내가 수풀로 도망치는 걸 보지 못 했구나.

나는 정보 분석기를 사용해 지형지물을 파악하며 어디로 도망갈지 결정했다. 동시에 그들의 감시망을 확인했다.

오래지 않아 천사가 눈을 떴고 그녀는 동료들의 부축을 받아 몸이 회복됐다. 으깨졌던 왼팔도 회복됐고 잘려나갔던 오른팔도 붙었다.

역시 치료 수준이 굉장해.

그런데 그 이후의 광경이 황당했다.

천사를 중심으로 그들은 애꿎은 사람들을 일렬로 세워둔 채 대질 심문을 하고 있었다.

나는 저기에 없는데 무슨 짓이지?

천사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저 녀석이 아까 그 천사가 맞나?

나는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치료가 끝나자 구분이 힘들어졌다. 몇몇 개성 넘치는 천사들은 구별이 가는데 대다수의 천사들은 도통 구분하기 힘들다.

“어!”

그 순간 나는 확신이 들었다.

확실해. 저 녀석들은 사람들의 외모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 해.

내가 요정과 저 녀석들의 생김새를 구별하기 힘든 것처럼 저쪽도 마찬가지다.

그런 생각이 들자 과감하게 행동할 결심이 섰다. 나는 마력을 잔뜩 실어 탄지공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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